‘B급 관심병사’ 출신 최근 제대병이 말하는 國軍의 현주소(下) 정훈장교는 야당이 싫어한다고 從北 표현 안 써
*MBC <진짜 사나이>는 열악한 야전부대와 달리 좋은 곳만 보여줘 *無能하고 솔선수범 않는 간부들 많아… “우리는 '기황후'나 보고 야근 수당이나 챙기자” *정치권 눈치 보느라 從北(종북)이라는 용어 사용 못하는 정훈 교육

李庚勳(자유기고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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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4박 5일 촬영하고 한 달 동안 방송 나가>
  
   MBC에서 주말에 방영하는 <진짜 사나이>가 인기입니다. 여성들은 ‘재밌다’는 반응이고, 남성들은 好不好(호불호)가 갈립니다. 군필자들 입장에선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 번은 경북 모 사단에서 <진짜 사나이> 촬영이 예정돼, 계획을 본 적이 있습니다. 촬영 기간은 4박 5일이었습니다. 4박 5일 촬영하고 4주, 한 달을 내보내는 게 진짜 사나이입니다.
  
   軍 생활하면서 군대를 일방적으로 美化(미화)하는 것 같아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습니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나뉘었습니다. 좋아하는 쪽은 자신이 속해 있는 군대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그려지니 '신기하다‘는 반응이고, 싫어하는 쪽은 ’비현실적이다‘는 반응입니다.
  
   방송을 보면 대다수의 병사들이 깨끗한 건물에서 쾌적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나옵니다. 현실은 일부 말끔한 건물을 촬영 장소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전방의 환경은 열악합니다. 겨울에 땅이 얼면 물이 부족해 샤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눈을 녹여 그 물로 샤워했는데, 많은 병사가 피부 질환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을 GOP 체험을 다녀온 후임병에게 들었습니다.
  
   저희 사단에서 사건 사고가 잦았던 A연대의 GOP 대대장인 모 중령은, “내가 신임 장교 시절 왔던 건물이 아직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위에서 중령이 되려면 족히 17년은 있어야 합니다. 한 綜編(종편) 뉴스에서 A연대의 식당과 군 관사를 촬영해 보도한 적이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A연대의 사건 사고가 많은 이유는 시설의 낙후성도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건물이 지금 전방의 건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방송에 나가야 하니 병사들이 말끔한 건물에서 쾌적하게 생활하는 양 보내는 것입니다.
  
  <진짜 사나이? 가짜 사나이!>
  
   병사들끼리는 ‘진짜 사나이’를 ‘가짜 사나이’라고 부릅니다. <진짜 사나이>와 관련된 기사가 나가면, 많은 예비역의 비판 섞인 댓글을 볼 수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는 방송을 위해 軍의 현실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와 같은 복무 환경을 지향해야 하지만, 우리 군대는 보여주기 식에만 그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 훈련병이 5주간 받는 신병교육 훈련을 진짜 사나이 출연진들은 2일 내외로만 받았습니다. 훈련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보급품 받고 경례 몇 번 한 것이 <진짜 사나이>의 훈련소 생활입니다.
  
   <진짜 사나이>를 보면 군의관이 내무반(생활관)을 방문해 순회 진료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 軍 생활 중 이런 사례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현실은 아파도 참아야 하고, 2분가량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의무대와 군 병원에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하루 종일을 쏟아 붓는 게 실제입니다. 이 때문에 계급이 낮은 병사들은 아프다고 해서 선뜻 의무대나 軍 병원을 가기 어렵습니다. 경계 근무를 서야 하는데, 계급 낮은 병사가 빠지면 계급 높은 병사가 대신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GOP 경계 근무를 서는 병사의 30~40%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무전기가 없어 휴대 전화로 대신할 뻔>
  
   많은 이들이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한국군이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휴가 나가면 <진짜 사나이>를 본 가족들이 군대 이야기를 물어봅니다. 저는 이 물음들에 웃음으로 답하며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한 번은 대규모 훈련을 앞두고 대대 지휘통제실과 초소 경계 병력 간에 交信(교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간부들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병력과 지휘통제실을 연결할 수단이 없었던 것입니다. 무전기가 없으니, 대대 지휘관은 병사들의 휴대전화를 반입해 무전기를 대신해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은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백지화됐습니다. 다행히 인근 부대에서 무전기를 빌려, 휴대전화로 교신하는 일은 없게 됐지만 이 소식을 듣고 ‘농담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自主國防(자주국방)은 먼 나라 이야기>
  
   얼마 전, 집에서 가족들이 <진짜 사나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방송에 나온 부대의 보급품을 유심히 보니, 흔히 말하는 A급이었습니다. 일선 부대의 실제 보급 여건과는 달랐습니다.
  
   훈련 때 화생방 상황이 발생하면 화생방 保護衣(보호의)를 입습니다.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제대로 입기도 힘들고, 입더라도 곳곳에 구멍이 나거나 찢어져 있습니다. 병사들은 “어차피 화생방 상황 터지면 보호의 입어도 죽을 텐데, 뭐하러 고생해서 입느냐”는 말을 합니다. 지금 우리 軍의 실상은 전쟁을 준비할 수도, 치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有事時(유사시)에는 우왕좌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였습니다.
  
   병사들은 이런 식으로 駐韓美軍(주한미군)과 韓美同盟(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차츰 몸으로 느낍니다. 머리보단 몸으로 느끼는 게 확실하다고 합니다. 저는 입대 전에는 머리로만 느꼈는데, 입대 후 몸으로도 느꼈습니다. 21개월간 군 생활을 하면서, 자주국방은 먼 나라 이야기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아직도 전방에서는 가혹 행위가 여전>
  
   제가 소속된 소대는 사단 행정병으로, 선발된 병사들입니다. 일반 야전 부대보다는 복무 여건도 좋고, 우수한 자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희 소대는 구타를 비롯한 가혹 행위가 거의 없었습니다. 저희 大隊(대대)도 비슷했습니다. 가끔 잊을 만하면 사건이 터졌습니다. 가·혹행위가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진술서를 작성하고, 징계(영창 또는 휴가제한)를 받고 끝내는 식이었습니다.
  
   전방[GOP, GP 등 隔·奧地(격·오지)]은 저희와 사정이 달랐습니다. 아직도 구타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방을 체험한 후임병들에게 소식을 접할 때면 가혹행위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혹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간부들도 알고 있는지 물으니, “간부도 알면서 모른 척한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軍紀(군기)’를 잡아야 하니 가벼운 구타나 욕설은 알면서도 못 본 척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말하지만, 아직도 전방의 가혹행위는 殘存(잔존)한다는 것입니다. 불쾌지수가 높으면 사소한 것에도 사람이 폭발합니다. 폐쇄되고 억압된 곳에서, 강제된 군 생활을 하다 보니 병사들은 스트레스를 가혹 행위로 해소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나도 선임한테 맞았는데, 너도 맞자’는 보상심리입니다.
  
   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간부가 관심을 쏟는다면 상당 부분 가혹행위를 없앨 수 있습니다. 이는 지휘관과 부대 간부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28사단의 윤 일병의 폭행 사건도, 사건을 방지해야 할 하사가 동참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체력 검정 갯수 안 높여 주면 욕하는 간부도>
  
   8월 초 주요 언론은, 모 군단 소속 소령과 중령이 체력검정 결과를 조작하다가 적발되자, 인사참모를 협박해 구속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저는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간부 체력 측정에 도우미로 자주 참가했습니다. 도우미는 간부들이 체력검정을 하면 “윗몸일으키기 XX개”, “팔굽혀펴기 XX개”라고 갯수를 말합니다. 일부 간부들은 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도우미 병사에게 자신의 갯수를 더 불러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FM, 正(정)자세로 하지 않은 것은 갯수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체력 측정에 응한 간부는 제게 욕을 했습니다. 병사라서 어쩔 수 없이 그 간부의 욕을 고스란히 얻어먹었습니다. 욕을 먹고 난 뒤부터,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속칭 ‘가라’로 하는 것도 갯수에 포함시켜 줬습니다.
  
   도우미 병사가 해당 간부의 측정 횟수를 말하면, 체력 측정을 주관하는 인사참모처 소속 소령급 인사장교와 감찰참모부에서 나온 소령급 감찰장교가 상호 확인을 하고 체력 측정에 응한 간부의 등급과 측정 횟수를 적습니다.
  
   한 번은 인사처 소령의 知人(지인)이 체력 측정에 응했습니다. 그러자 인사처 소령은 그 간부의 갯수를 조작해 등급을 올려주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감찰장교가 제지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일은 非一非再(비일비재)합니다. 체력 측정을 주관하는 장교들은 도우미 병사들에게 “체력 측정 똑바로 하라”고 말하고, 체력 측정에 응하는 간부 중 일부는 계급으로 깔아뭉개니, 중간에서 병사만 피곤해지는 것입니다.
  
  
  <“정신교육 듣지 말고 일하러 와라”>
  
   매주 수요일은 전군이 정신·政訓(정훈)교육을 하는 날입니다. 지휘관이 병력을 모아 놓고 교육을 하거나, TV를 통해 국군방송(국방TV)을 시청합니다. 행정 소대인 저희는 40여 명의 병력 중 정신교육에 참가하는 병력이 평균적으로 5~10명 정도였습니다. 해당 부서에서 일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령부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정신교육 듣지 말고 일하러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당장 해당 부서의 병사가 정신교육을 듣게 되면, 간부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정신교육은 부실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휘부도 이러한 실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사단 정보참모처가 대대 연병장에 안보 사진 및 敵性(적성) 무기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정보참모처 소속 병사는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날 전시회에 참가한 저희 소대 병사들은 40여 명 중 5명뿐이었습니다. 실제 적의 도발 유형을 알고, 적성 무기를 체험하는 것은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지만, 해당 간부는 그런 곳에 가지 않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일해야 하는데 어딜 가냐는 겁니다.
  
  <無能(무능)한 간부들>
  
   저는 사령부 행정병으로 自隊(자대) 생활을 시작할 때, 간부들의 수준이 높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착각은 금방 깨졌습니다. 인사처, 작전처, 정보처 등 일부 주요 부서를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유능한, 열의 있는 간부는 얼마 없었습니다.
  
   인사처의 한 소령급 장교는 자신의 컴퓨터 비밀번호를 몰라 밤 11시경에 부서의 계원을 사령부로 부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일은 드물지만, 잊을 만하면 벌어집니다.
  
   저희 소대는 본부근무대에 속해있지만 모두 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합니다.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소대원 중에는 교사도 있고, 有數(유수)의 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업무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간부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병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의 한 장교는 담당 병사가 없으면 일을 제대로 못 합니다. 다른 부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저희 소대원들은 무능한 간부들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간부와 병사의 업무 능력이 逆轉(역전)된 것입니다. 업무에 더 정통해야 할 간부가 오히려 병사가 없으면 일을 못합니다. 이는 선발된 행정병이 유능한 측면도 있지만, 간부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군은 대표적으로 여름에는 유격 훈련, 겨울에는 酷寒期(혹한기) 훈련이 있습니다. 사령부는 행정병이 없으면 돌아가지를 않아, 몇몇 행정병들은 유격 훈련이나 혹한기 훈련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하더라도 곧바로 사령부 간부들의 차를 타고 복귀해 다시 일을 합니다. 훈련이 힘들어서, 병사가 걱정돼 빼주는 것이 아니라, 간부 자신이 힘들어서 병사를 훈련에서 빼오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병사를 사령부로 불러 올려 일을 시키고, 주말도 뺏긴 채 간부의 일을 대신하는 게 행정병의 군 생활입니다. 행정병이라고 편하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육체적으로는 다소 수월해도 정신적으로 힘든 곳입니다.
  
  
  <솔선수범하지 않는 간부들>
  
   사단장 전속 부관을 했던 모 대위는 자신의 총을 직접 닦지 않고, 자신의 병사에게 시켰습니다. 軍 생활하면서 사령부 간부가 직접 자신의 총을 닦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총기는 제2의 생명’이라는 말은 병사들에게만 해당하나 봅니다.
  
   軍전투지휘검열(軍指檢) 때 일입니다. 훈련이 시작되자 비상이 걸렸고, 營外(영외)거주자 소집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소집 명령 문자를 받은 한 장교는 제게 전화해서, “지금 밖인데, 간 것처럼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인사처에 “어떻게 해야 소집령에 응한 것으로 처리됩니까?”라고 물으니, 소집 문자를 보낸 인사 장교는 “그거 안 해도 돼. 할 필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인사 장교의 그 말을 듣고 허탈했습니다. 원래 절차는 사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영외거주자 소집령에 응한 것을 직접 기록해야 합니다.
  
  
  <야근하지도 않고, 야근 수당 받아>
  
   저희는 행정병이기 때문에 ‘夜勤(야근)’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과 시간(주중 09:30~17:30) 이외의 업무는 모두 야근이라고 합니다. 병사의 야근은 원칙적으로 간부와 함께 해야 합니다. 병사 혼자서는 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간부는 병사에게 일을 시키고 자신은 퇴근하거나 사무실을 비웁니다. 그러면서 야근 수당(초과근무수당)은 꼬박꼬박 타 먹습니다. 병사들에게 돌아오는 야근의 혜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근 열심히 한다고 포상 휴가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간부가 부르니까 병사는 사령부로 올라가서 일할 뿐입니다. 가끔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夜食(야식)과 같은 먹을거리를 사주는데, 먹을 것 한 번 사주고 등골 빼먹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월호도 (정부가) 북한이 했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날은 세월호가 침몰한 날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부서에서 장교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병사인 저는 이들에게 커피를 타준 뒤,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장교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좌초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도(세월호 침몰) (정부가) 북한에서 했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라면서 농담 반 진담 반 式(식)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장교는 “그러게요”라고 반응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사단의 XX 장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기황후'나 보고 야근 수당이나 챙기자”>
  
   사단 사령부는 일반 참모부서와 특별참모부서로 나뉩니다. 일반참모부서는 인사참모처, 정보참모처, 작전참모처, 군수참모처, 교훈참모처를, 특별 참모부서는 정훈공보부, 재정참모부, 법무참모부, 부관참모부, 감찰참모부, 군종참모부를 말합니다.
  
   사령부에서는 일반 참모부서가 이른바 主流(주류)입니다. 훈련도 일반 참모부서가 도맡아서 합니다. 대규모 훈련 때입니다. 사령부의 全간부가 퇴근도 못 하고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이중 특별참모부에 속한 한 간부는 “훈련은 작전처나, 정보처가 하는 것이지, 우리는 기황후(MBC 드라마)나 보면서 야근 수당이나 챙기자”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후임병에게 전해 들었는데,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이 발언을 한 간부는 해외 파병 경험도 있는 간부였습니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일부 간부들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서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많은 간부가 욕을 먹고 있습니다.
  
  
  <문 걸어 잠그고, 불 끄고 없는 척>
  
   훈련의 하나로 화생방 상황이 터졌습니다. 사단장도 대피소로 이동하는데, 일부 장교들은 대피 훈련에 참여하지도 않고,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기 위해 불을 끈 뒤 문을 걸어 놓기도 했습니다. 저도 간부의 지시로, 불 끄고, 문 걸어 놓고 사무실에 숨어 있었습니다. 軍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모습에 점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졌습니다.
  
  
  <꽃을 심지만 금방 말라 비틀어져>
  
   저희 사령부는 부대 美化(미화)에 신경을 썼습니다. 사령부 정문에 주로 꽃을 심었는데, 이렇게 심은 꽃들의 특징은 화려해서 눈에 보기는 좋지만, 기후에 맞지 않아 금방 말라 비틀어진다는 것입니다. 꽃을 열심히 심는 후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큰 나무를 심어서 부대 내부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옮음에도 자잘한 꽃 심기에 몰두했습니다. 전술적 思考(사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소원수리, 일명 마음의 편지>
  
   軍 생활을 하다 보면 부대 자체적으로 애로사항을 적는 시간이 있습니다. 소원수리, 일명 ‘마음의 편지’라고 하는 시간입니다. 이때 병사들은 부대의 가혹 행위 등을 적거나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설문을 진행하는 간부는 ‘신원 절대보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新兵(신병)들이 종종 넘어가는데, 신원이 절대 보장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쓰든 마음만 먹으면 결국엔 밝혀집니다.
  
   가령 A이병이 B상병에게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적어내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 뒤 A이병의 신원을 보장하고 B상병의 신병을 처리하는 것이 正常(정상)입니다. 일선 부대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질심문 식으로 사건을 처리합니다. 신원이 보장되는 줄 알았던 A이병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질심문하지 않더라도 진술서를 쓰는 과정에서 B상병이 A이병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마음의 편지 등을 통해 건의 사항을 제출하면 이 내용을 행정병이 종합해 정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내용이 나오는지 다 알게 되고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XXX 일병이 OOO 병장한테 맞았다고 썼다’ 등. 신원이 안 드러나면 필체까지도 확인할 정도입니다. 애초에 신분보장이라는 말은 語不成說(어불성설)입니다. 병사들이 건의한 내용조차 간부가 직접 정리하지 않아, 병사들의 입을 통해 안 좋은 소문이 퍼집니다. 군 생활 좀 해본 병사들은 ‘더러워도 참는다’는 심정으로 마음의 편지 같은 것도 쓰지 않고, 제 憤(분)을 삭여가면서 군 생활을 합니다. 마음의 편지는 일종의 고발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부대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이를 막아서 쉬쉬하려는 목적과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편지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병사들은 선임들의 사례를 듣고 경험해 왔기 때문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세탁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마음의 편지 등을 통해 많은 병사가 세탁기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대대의 간부가 고장난 세탁기의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세탁기가 고장난 것을 왜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마음의 편지 작성 시간에 이런 걸 적어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어찌 됐든 두 달 만에 세탁기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이런 적도 있습니다. 저희 옆 소대는 淨水器(정수기)가 있습니다. 소대원들은 이것이 부러워 마음의 편지에도 ‘정수기를 설치해달라’고 여러 번 썼는데, 예산 문제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희 소대는 사령부 행정병이라 실무 간부들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한 병사가 사령부 간부에게 ‘정수기’ 이야기를 꺼냈나 봅니다. 며칠 있다가 정수기가 생겼습니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지시하니, 병사들이 수차례 건의했던 것보다 일이 빨리 처리됐습니다.
  
  
  <내부 고발자의 身元(신원)이 드러나는 곳>
  
   우리 사회는 내부 고발자의 身元(신원)이 곧 드러나고 배신자로 취급받습니다. 제 선임의 이야기입니다. 이 선임도 사령부의 행정병이었습니다. 새로운 중령급 참모 때문에 해당 부서의 간부와 병사들이 힘들어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간부는 병사들에게 욕을 하며 화풀이도 했습니다.
  
   저희 사단은 제대할 때 부대 발전을 위한 의견 수렴을 병사들에게 받습니다. 사단의 감찰참모부가 의견을 종합하고, 감찰 참모가 사단 참모장에게 보고합니다. 제 선임이 쓴 내용이 참모장에게 보고됐나 봅니다. 참모장이 해당 부서의 참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모장이 자리를 뜨자 이 참모는 감찰부 감찰장교에게 전화했고, 이 감찰장교는 제 선임의 정보를 알려줬다고 합니다.
  
   사단의 감찰부라면 병사들 사이에서는 공신력이 있습니다. 사단의 민원이 제기될 경우 처리하는 主務(주무) 부서도 감찰부입니다. 제 선임의 신원을 그리 쉽게 알려줬다는 말을 듣고,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선임은 이제 민간인이 돼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겠지만, 나중에 신원이 이런 식으로 밝혀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됩니다. 그 선임의 희생으로 해당 부서의 후임병들이 다소 편해졌습니다.
  
   韓民求(한민구) 국방장관은 8월 5일, 28사단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고충신고 및 처리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선 부대에서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해 나갈지 의문이 많습니다.
  
  
  <군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는 民願(민원)>
  
   군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가 정식 민원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요즘엔 인터넷 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제기합니다. 이 민원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일정 기간 내에 지정된 담당자가 반드시 답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부들은 민원을 굉장히 피곤해합니다. 민원인 입장에서는 민원제기만큼 확실한 수단이 없습니다.
  
   저도 입대 전에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확실한 답변을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몇몇은 제게 유선으로 설명한 뒤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했습니다. 민원을 담당하는 부서의 병사는 “민원 횟수가 부대 평가에 반영돼 민감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간부들과의 관계는 不可近不可遠(불가근불가원)>
  
   훈련병 시절부터 평범한 군 생활을 하지 못했던 저는 新兵(신병)이 오면 두 가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첫째로,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대하는 것이 가장 큰 애국이자 효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軍에 와야 합니다. 간첩을 잡고, 훈장을 타면 크나큰 영광이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21개월간 무사히 軍 생활을 하는 것만큼 큰 효도와 애국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다쳐서 사회로 나가면, 군대 탓, 국가 탓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간부들과의 관계는 不可近不可遠(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는 많은 병사들이 간부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하고 제대합니다. 저는 후임병들에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기 때문에 간부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밤을 지새워 야근을 해도, 흔히 말하는 포상 휴가 하나 주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군 생활하면서 얻는 樂(낙)은 한 번씩 나가는 휴가입니다. 간부들은 병사들이 휴가를 나가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휴가 주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휴가 하나 받기를 원했던 병사들이 휴가를 받지 못해 실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사회가 군필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후임병과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불합리한 대우에도 묵묵히 군소리 안 하고 자기 할 일하는 것을 군대에서 배워 오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군필자를 우대한다는 것 아니냐.” 의무 복무이니 참아 가면서 군소리 말고 열심히 군 생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병사들은 간부 등쌀에 밀려 욕먹어가며 자신들의 군 생활을 해나갑니다. 문제는 일부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모든 일과 책임을 떠넘긴다는 데 있습니다. 월급 200~300만 원씩 받아가며 일하는 간부와 13만 원 받는 병사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했습니다. 계급이 존재하는 이유는, 각자의 위치에 맡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朝鮮日報 신춘문예 당선되자, 실무자들은 귀찮아해>
  
   소설가 최인호 이후 46년 만에 두 번째로 현역 군인이 朝鮮日報(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습니다. 이 병사는 저희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이 병사가 당선되자, 부대의 공보 업무를 맡는 실무 담당자들의 표정이 안 좋았습니다. 이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실무 간부들은 이 병사에게 축하한다는 말보다 “작품 내는 거 保安性(보안성) 검토 맡고 보냈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이 병사가 “소대장에게 허락 맡았다”고 하자, “왜 사령부 ○○부에는 보고를 안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외부에 기고나 작품을 제출할 때 부대에서 ‘보안성 검토’라는 명목으로 확인을 맡아야 합니다. 저도 국방일보에 기고하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보안성 검토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관련 업무 담당자에게 일종의 ‘허락’을 맡는 것입니다.
  
   이 병사 때문에 실무자들은 주말에도 출근해 일했습니다. 개인과 부대엔 영광이지만, 실무자들에게는 귀찮은 일입니다. 이 일을 옆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軍생활은 기대가 무너지고 실망이 거듭되어, 언제부턴가는 우리 군의 이러한 모습이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저도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400명 중 학점 취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군대에서도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해본 적 있을 겁니다. 현실은 軍 생활이 힘들어 틈만 나면 자기 바쁩니다. 저도 자대에 배치 받은 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채우고 제대하기로 계획했지만, 하나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선임병을 보면 “저 시간에 자기 계발하면 될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상 제가 선임병이 되니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잠만 잤습니다.
  
   마음 독하게 먹고 목표를 달성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少數(소수)에 불과합니다. 어딜 가든 이런 특별한 소수는 존재합니다. 이 소수가 국방일보 지면을 장식하고,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군대에서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일반화하는 데 이용됩니다. 대다수의 병사는 자기 계발할 정도로 여유가 없습니다. 조금 시간이 나면 쉬기 바쁩니다. 쉬지 않고 자기 계발을 하면 몸이 상합니다.
  
   사회에서 군 복무를 ‘버리는 시간’으로 바라보니 군 당국은 자기 계발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보여주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제가 군 생활하면서 접해본 400여 명의 병사 중 학점을 취득하려고 시도했던 병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도 자도 졸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곳이 군대입니다. 병사를 위한 복무 여건이 충족되지 않은 풍토에서 병사들에게 자기 계발을 권유하는 것은 沙上樓閣(사상누각)입니다. 위의 사례처럼 신춘문예 당선된 병사를 귀찮아하는 게 군대의 전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자격증 몇 개 정도는 딸 수 있지만, 군 당국이 홍보하는 것처럼 커다란 무언가는 이룰 수는 없습니다. 나라 지키러 왔지, 자기 계발하러 군대 온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군대입니다.
  
  
  <언론 보도에 민감한 우리 군대>
  
   이날은 제가 부대 대표로 사단에서 주최하는 對敵觀(대적관) 발표 경연대회에 참가한 날이었습니다. 경연대회가 한창일 때, 예하 연대에서 사격 훈련 중 산불이 났습니다. 부대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언론도 산불 소식을 들었나 봅니다. 공보 업무를 책임지는 부서의 참모는 언론이 산불을 어떻게 보도할까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했습니다. 이 때문에 경연대회가 차질을 빚었습니다.
   신문사별로 기자의 성향을 정리해놓은 문서도 있습니다. 軍을 비판적으로 취재하는 기자가 있었는데, 이 기자의 이름을 사단의 몇몇 행정병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군부대에 진공청소기가 보급되고, 드럼 세탁기가 보급됐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일부 부대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전방의 多數(다수) 부대는 아직도 환경이 열악합니다. 저희 부대도 드럼 세탁기가 있었지만, 자주 고장이 나서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드럼 세탁기의 장점 중 하나가 건조 기능인데, 부대에서는 “건조 기능을 사용하면 금방 고장이 난다”면서 건조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통돌이 세탁기’가 최고입니다. 아직도 GOP에서는 세탁기가 부족해, 열 명분 빨래를 한 번에 돌리곤 합니다.
  
   군대는 밖에서 군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重視(중시)합니다. 안에서 바라보는 군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건이 터지면 은폐하려 하고,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그때서야 뒷수습을 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은 군 당국의 발표나 홍보성 기사를 보면 조롱이 섞인 반응을 내보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겪어봤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정치권 눈치 보느라 從北(종북)이라는 용어 사용 못하는 정훈 교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前職(전직)인 국방장관 시절 從北(종북)세력을 敵(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일선 부대에서도 종북 세력의 실체를 알리는 정훈 교육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한 정훈 장교는 “野黨(야당)이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재임 당시 정훈 교육을 놓고 야당과 氣(기) 싸움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김관진 장관의 ‘종북세력=敵(적)’이라는 관점에 일부 야당 의원들이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군대 분위기는 ‘종북’이라는 용어 사용을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급 부대에서도 ‘사단 차원에서 정훈 교육 교재를 만들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괜히 용어 등을 잘못 선택했다가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정치권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사단 백골부대 동영상도 삭제>
  
   육군 3사단에서 백골부대를 소개하는 3분 가량의 동영상을 유투브(youtube.com)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인기가 좋아 조회 수도 높았습니다. 백골 부대의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인데, 야당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동영상에 [1948.4.3~7.3 해방 후 제주 무장공비 폭동 진압을 시작으로]라는 문구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주 4·3사건을 언급한 것입니다. 어느 순간 3사단 동영상이 유투브에서 사라졌는데, 야당에서 이 동영상을 내리라고 했다고 정훈 장교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한때 정훈 장교가 돼 장병들의 정신 전력을 책임지는 장교가 되길 꿈꾼 적이 있습니다. 군에 입대하니, 현장의 정훈 장교는 제가 생각했던 정훈 장교와 거리가 있었습니다. 일선 부대의 정훈 장교는 장병들의 政訓(정훈) 교육보다는 公報(공보) 업무에 중심이 쏠려 있습니다. 장병들에게 적개심을 고취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할 이념을 전파하는 것보다는, 부대가 외부에 어떻게 홍보될지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투철한 이념 지식을 갖춘 이보다는 영상,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공사 출신 정훈 장교, “저기 수구꼴통 온다”>
  
   입대 전에 기대했던 정훈 교육과 실제 정훈 교육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곳의 사정은 어떤지 궁금해 공군 출신 병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정문 경계 근무를 서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하루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안보 강연이 있었답니다. 부대에서는 1년에 두 번, 외부 저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습니다. 공사 출신 소령급 정훈 장교가 외부 강사를 인솔하기 위해 정문으로 나왔는데, 초청한 외부 강사가 부대로 들어오는 것을 보곤 정훈 장교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기 수구꼴통 온다.”
  
  
  <지금의 정훈 교육은 敵愾心(적개심)을 고양하지 못 해>
  
   호지명은 “지도자는 이념으로 전쟁하고, 병사는 적개심으로 전투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정훈 교육은 틀에 박혀있고, 생생한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알리는 영상물을 보면 모두들 지루해 합니다. ‘뻔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몸으로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살기 좋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 학문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의 적개심을 고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의 총탄에 戰友(전우)가 피를 철철 흘리며 고꾸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실제 피를 흘리지 않고도 적개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정훈 교육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21개월 간 군 생활하며 느낀 점>
  
   건강은 잃었지만, 軍 복무를 통해 군대를 알게 되고, 한국인의 감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군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고, 여자라면 한 남자의 어머니 또는 아내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국민皆兵制(개병제)인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치르는 통과의례인 셈입니다.
  
   군대는 兵(병)이 없으면 지탱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군대는, 자동적으로 충원되는 병사를 2년간 마음껏 굴립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생기기도, 가해자가 생깁니다. 병사들의 복무 여건이 개선돼야 우리 軍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징병제를 택한 우리 군대가 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국군의 미래는 없고, 미래 없는 국군은 ‘자유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한국군은 병사들의 복무 여건을 향상시킬 소프트웨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無形(무형) 전력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國父(국부) 李承晩(이승만)이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라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했고,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박정희)가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다음에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우리 군도 兵營(병영) 문화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첨단 무기가 戰勝(전승)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월남 패망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첨단 무기가 잠깐 빛을 발할지 몰라도, 결국엔 步兵(보병)이 평양 주석궁에 태극기를 계양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해야 戰後(전후)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피 흘리며 散華(산화)할 이들은 젊은 우리 병사들입니다. 시급 180원이라고 마음껏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자신의 소중한 2년을 바치는 것입니다.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합니다. 병사를 지휘 감독하는 간부의 자질과 의식이 향상돼야 합니다. 軍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부대를 지휘해야 할 해당 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군 간부의 현실입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병사의 主敵(주적)은 간부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간부가 존경받는 풍토라면 어떻게 이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간부부터 병사들에게 존경을 받겠다는 자세로 軍 생활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존경하면, 존경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간부부터 솔선수범해 존경받는 간부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임해야 병사들이 따를 것입니다.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수와 병사 그리고 조직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은 목표를 가지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軍에게 필요한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우리 젊은이들은 이 시간에도 폭염과 혹한을 견디며 전방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고, 領海(영해)와 領空(영공)을 수호하며 우리의 안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일 때 제2의 임 병장, 윤 일병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군대가 병사를 사랑하고 보호할 때, 국민도 군대를 사랑하고 보호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연재 끝)
  
   이경훈 19500625k@gmail.com
  
  
[ 2014-08-07, 11: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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