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관심병사’ 출신 최근 제대병이 말하는 國軍의 현주소-제2彈 (下)
*‘무장 탈영’이라는 표현 대신 ‘행군 낙오자’ *내게 위안을 준 상사의 한 마디…"우리가 할 일은 너희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이다"*사관학교 출신 제외한 일부 간부들은 병사보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많아

李庚勳(자유기고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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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이기는 한국군>
  
   軍에서는 워게임(War Game)이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敵(적)과 가상 전투를 펼칩니다. 군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 중 ‘창조21’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사단 지휘통제실에 근무하는 병사에게 워게임을 하면 누가 이기는지 물으니 한국군이 항상 이긴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기냐고 물으니, 그는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해서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敵이 기습할 것이라고 想定(상정)하지 않고, 우리는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계획대로 적과 교전함에도, 후방까지 밀리다가 겨우 이기는 걸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기는 이유 중에 하나로, 워게임 프로그램에 북괴군의 공군 전력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적의 공군 전력은 배제하고 전투를 치뤄 얻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軍전투지휘검열 기간 중 북괴군과의 전면전을 가상한 워게임을 할 때였습니다. 우리 사단 포병 부대에서는 敵이 있을 것으로 파악한 곳에 열심히 포격을 가했지만, 생각만큼 타격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敵 탱크의 남하를 막기 위해 살포식 지뢰를 매설했지만, 제대로 맞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단이 보유한 좌표와 검열 때 사용한 시뮬레이션 좌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물자를 종이 카드로 대체>
  
   상급 부대인 군단이 예하 부대인 사단의 전투 수행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치르는 검열이 군전투지휘검열(군지검, 軍指檢)입니다. 검열기간 중에는 국지도발, 전면전 등과 같은 상황이 주어지고, 사단은 이에 실제 대응하는 것을 평가받습니다. 실제 전투라는 가정하에 모든 병력이 움직이고, 물자도 실제 분배합니다. 저희 부대는 병력이 얼마 안 된다는 이유로 실제 물자를 나르거나 보급하지 않고 종이 카드로 대체했습니다. 실탄을 210발씩 나눠줘야 함에도 종이 카드로 대신한 것입니다. 전투 식량도 종이로 대신했습니다. 훈련이 끝난 뒤 종이를 다시 걷지도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훈련을 쉽게 받아 편했지만, 지나고 보니 이게 무슨 실제 상황을 대비한 훈련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훈련을 주관하는 부서에 있던 한 병사는 말도 안 되는 ‘가라’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보고서만 그럴싸하게>
  
   전방 예하 부대는 사령부에 실시간으로 여러 정보를 보고 해야 합니다. 정보를 융합하는 부서에 있던 병사들은 예하 부대에서 보내주는 정보들이 엉터리라고 말합니다. 전방 어느 지역에서 보내준 온도나 습도가 실제로 측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수치들이 보고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서에 근무한 병사들도, 예하 부대가 상급 부대로 보고서를 보내지만 내용이 확실한지는 작성자인 예하 부대밖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속칭 ‘가라’로 보고를 해도 상급 부대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병사들은 보고서의 내용보다는 보고서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내용은 자세히 읽지도 않고, 보고서만 받으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업무를 볼 때였습니다. 사단장 비서실에서 전속부관이 저희 사무실로 전화해 보고서를 하나 써 올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간부가 없는데 병사가 써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전속부관은 형식만 맞춰서 빨리 올리라고 했습니다. 사단장이 보는 것이니 신경을 써가며 자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관은 중간 중간에 전화해 보고서 진척 상태를 물어봤습니다. 그리곤 제게 내용은 중요하지 않으니 형식만 맞춰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올리라고 했습니다.
  
  <‘무장 탈영’이라는 표현 대신 행군 낙오자>
  
   軍의 특성상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가 터지면 일단 덮고 보려는 행동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꼬리 자르기, 책임 회피, 허위 보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軍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사단 주요 부서에서 근무한 병사는 “평소 정훈공보부의 일은 부대에서 사고가 터지면 이 내용이 사회로 나오지 않도록 은폐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각 언론사는 군부대에 인맥을 심어 놓고, 사건·사고가 터지면 미리 제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언론사가 제보를 받고, 軍에 문의하면 그때야 정훈부가 뒷수습한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예하 부대에서 한 병사가 맹장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병사가 빠지면 업무에 지장이 생기니, 담당 간부는 참고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복막염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상태가 심각해져 투석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이 병사의 부모님이 언론에 내용을 알리고, 부대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하자 부대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휘부(사단장, 부사단장, 참모장)의 행정병과 사단 주요 부서의 행정병들이 밤늦게 올라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인접 사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行軍(행군) 중 한 병사가 무장 탈영을 했습니다. 이 소식이 옆에 있는 저희 사단에도 공유됐습니다. 정작 표현은 ‘무장 탈영’ 대신 ‘행군 낙오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부대에서 무장 탈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행군 낙오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시받았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알려져도 무장 탈영보다는 행군 낙오자라는 용어가 주는 파급력이 적기 때문입니다.
  
  <출신별로 보는 장교>
  
   육군은 장교를 양성하는 과정이 육군사관학교(陸士)와 육군3사관학교(3士), 學軍(학군)장교(ROTC), 학사장교, 간부사관이 있습니다. 간부사관은 대학 2년 수료 이상인 병사 또는 부사관이 장교가 되는 과정입니다. 의무병과, 법무병과, 군종병과 등 특수 병과 장교에 해당하는 특수사관도 있습니다.
  
   육사는 1년에 약 200여 명, 3사는 약 450여 명, 학군은 약 4000여 명, 학사는 약 600여 명, 간부사관은 약 100여 명 정도의 장교를 배출합니다. 양성 과정마다 배출되는 장교의 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초급 장교의 많은 수를 學軍 장교가 차지합니다. 이 때문에 전방 부대에 가면 소대장과 같은 초급 간부에 학군 출신이 많습니다. 통계를 보면 약 70%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은 의무 복무를 끝낸 뒤에는 많은 수가 사회로 돌아갑니다. 학사 장교도 이와 비슷합니다.
  
   사단 주요 직위자에는 육사 출신이 많았지만, 신임 장교 중 육사 출신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육사에서 한 해 배출하는 신임 장교가 약 200여 명이다 보니 이들이 전방 사단에 골고루 나뉘고 나면 육사 출신 소위의 수는 사단마다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사단에는 다섯 명이 왔는데, 이 정도면 많이 온 거라고 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육사 출신 장교들은 우수했습니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습니다. 업무 능력도 모두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군인을 평생의 業(업)으로 삼은 이들이라 그런지 달라 보였습니다. 육사를 나왔다는 자부심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육사는 그 해에 가장 먼저 장교 임관을 해 가장 앞선 군번을 받습니다. 육사 출신 장교의 군번은 곧 육사 성적이기도 합니다. 2008년도에 육사를 수석 졸업한 이의 군번은 08-10001이고, 20등으로 졸업하면 08-10020입니다. 육사 졸업 성적이 평생을 꼬리표처럼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령부에는 군번의 끝자리가 한 자릿수인 장교가 두 명 있었습니다.
   3사 출신들은 편차가 컸습니다. 자질이 좋았던 장교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병사들에게 3사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음에도, 자질이 부족한 일부 3사 출신들 때문에 저평가를 받았습니다. 저희 사령부에는 소령급 3사 출신 장교가 3사 후배인 중~대위급 장교들의 군기를 잡곤 했었습니다. 부대 내에서 3사의 위상은 ROTC보다 조금 앞섰습니다.
  
   학군 장교는 주로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운 뒤 제대를 많이 하지만, 이 중 장기 복무를 신청해 계속 軍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사령부에서도 학군 출신이 몇 명 있었는데, 이들은 튀지 않고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속한 부대의 지휘관과 소대장도 학군 출신이었는데 무난한 편이었습니다.
  
   학사 장교는 제가 처음 자대 전입해 왔을 때 만났던 소대장이 있습니다. 사령부에서도 학사 장교들을 봤는데, 군 내부의 위상은 학군 장교 다음으로 보곤 합니다. 그 뒤로 간부사관이 있는데, 간부사관은 그 수도 작아서 두드러지는 위상은 없습니다.
  
   공군 병사로 다녀온 지인도 공군사관학교(空士) 출신과 사관후보생(士候) 출신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사후는 장교로 복무하는 제도입니다. 대부분이 의무 복무를 채운 뒤 제대를 합니다. 그는 “공사 출신들은 애초에 군인을 하기 위해 들어왔고, 사후는 병역을 이행하기 위해 들어왔기 때문에 가치관과 병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좀 빌리자면, 공사 출신은 리더십이 있어 병사와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사이처럼 잘 맺지만, 사후 출신들은 병사들을 함부로 대하는 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戰時가 되면 리더십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신별로 선후배가 끌어준다고들 말합니다. 경험해보니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두 분의 사단장을 모셨는데, 한 분은 3사 출신이었습니다. 전속부관도 3사 출신을 기용했습니다. 전속부관은 일종의 수행비서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24시간 1년 내내 붙어있다고 보면 됩니다. 모든 장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장성급의 선택을 받은 장교들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엘리트 코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사단장의 전속 부관일 경우 중위, 3성 장군은 대위, 4성 장군일 경우 소령이 맡기도 합니다. 3사 출신 사단장 이후 육사 출신 사단장이 왔는데, 이 분은 3사 출신 전속부관이 다른 보직으로 나갈 때까지 밑에 두었습니다. 이후 보직 교환 시기가 되자 전속부관을 육사 출신 중위로 바꿨습니다. 육사 출신 사단장이 3사 출신 전속부관을 바꾸지 않고 데리고 있자, 모 소령은 “(3사 출신) 전속부관이 사단장의 마음을 알까”라고 했습니다.
  
   최근에는 사단장급 이하의 將星(장성)은 전속부관이 장교에서 부사관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희 사단에서는 중사 진급이 확정된 모 하사가 전속부관을 맡고 있습니다.
  
   인사처에는 장교의 보직·임명 업무를 맡는 요직이 있습니다. 계급은 대위입니다. 사단에서 이뤄지는 대령 이하의 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있던 3사 출신 대위가 전출을 앞두고, 후임에 3사 출신을 추천했지만, 예하 부대에서 육사 출신을 끌어다 임명했습니다.
  
   한 번은 예하 부대에서 병사가 자살했습니다. 사단 징계 위원회가 열리고, 지휘·감독 부실을 이유로 학사 출신 중대장에게 감봉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중대장은 ‘밤늦게까지 일하며 숙소에도 잘 들어가지 않고, 병사들을 관리 감독했다’면서 소명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징계에 참여했던 3사 출신 모 중령은 ‘병사들과 계속 붙어있었으면, 병사들이 얼마나 불편해했겠냐. 그게 사고를 더 유발한 것 아니냐’면서 오히려 이 중대장에게 면박을 줬다고 했습니다. 징계위원회에 참석하고 저희 사무실로 온 이 중대장은 상심한 표정이었습니다. 마침 소식을 들은 학사 출신 중령이 사무실로 들어와선 “나도 학사 출신이라서 고생 많이 했다”면서 이 중대장을 격려했습니다.
  
  <진급>
  
   저희 사령부에는 소령 진급 심사 대상자가 육사·3사 각각 세 명, 학사 한 명씩, 총 일곱 명이 있었습니다. 이 중 세 명만 1차로 소령에 진급을 했는데, 육사 두 명과 3사 한 명이었습니다. 3사 출신으로 소령에 진급한 모 대위의 경우, 교환 보직이라는 일종의 가산점을 받아 진급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육사 출신 중 유일하게 소령 진급을 하지 못한 모 대위는 징계 기록이 있었다고 합니다. 육사 출신은 거의 대부분 대위에서 1차 시기 때 소령으로 진급합니다. 진급 심사는 육군 본부에서 실시하며, 결과는 해당 계급으로 진급하기 한 해 전에 발표합니다. 진급이 예정된 년도부터는 진급한 계급장을 달기 전까지 계급 뒤에 '(진)'이라고 표현합니다. 진급 예정자라는 뜻입니다. 이번에 소령으로 진급한 대위들은 2015년 1월 1일부터 소령(진)으로 계급을 표시하고, 2015년 7월이면 소령이 되는 것입니다.
  
   소령으로 무난하게 진급할 것으로 생각한 3사 출신 대위가 떨어진 것을 듣고 의아했습니다. 이 장교는 해외 파병도 다녀오고, 일도 잘해 평판이 좋았습니다. 사단의 자랑이었고, 사단장도 이 대위가 소령 진급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알고 보니 중대장 시절의 평점이 좋지 않아서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소령 진급은 중대장(대위)이 된 후 5년간의 평점을 종합해 심사합니다. 당시 이 대위가 중대장을 너무 일찍 맡는 바람에, 다른 중대장에 비해 좋은 평점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평점은 지휘관이 작성하는데, 우수·보통·열등으로 반드시 일정 비율을 나눠 매기는 상대 평가 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중대장 중 서열이 낮은 바람에 열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10명이 모두 똑같이 잘 해도, 몇몇은 우수, 몇몇은 보통, 나머지는 열등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날 진급하지 못한 대위가 있는 사무실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급에 떨어진 장교들은 일찍 퇴근했다고 합니다. 소령 진급을 한 간부가 있는 사무실은 여기저기서 진급 축하 전화가 왔고, 케이크도 사와 축하를 하곤 했답니다.
  
   장교는 한 계급을 일정 기간 복무하면 진급 심사에 들어갑니다. 이 진급 심사를 한 해에 한 번씩 받습니다. 통상 세 번째 시기에까지 진급을 하지 못 하면, 진급이 힘들다고들 표현합니다. 종종 3차 시기 이후에도 진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드뭅니다. 예하 부대에서 3사 출신 대위가 4차에 소령 진급을 했다고 합니다. 한 계급에서 일정 기간 진급을 못한 장교는 전역해야 합니다.
  
   20년 이상 복무할 경우 군인 연금을 받습니다. 장교의 경우 소령으로 계급 정년을 다 채울 때까지 복무하면 군인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위로 전역했다가 부사관으로 다시 입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병사들은 사소한 관심과 말 한 마디에 영향받아>
  
   제가 속한 부대는 사단의 직할부대인 본부근무대입니다. 소속된 병사의 수는 많았지만, 간부는 적었습니다. 사단 사령부여서 부대 편제가 일반 부대와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은 본부근무대 소속으로, 사단 사령부의 행정 부서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는 것입니다.
  
   저희 부대의 간부들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건강하지 못한 제가 무사히 軍생활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상사가 저녁 점호 때 병력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너희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이다."
  
   간부들의 사소한 관심과 말 한 마디가 병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敵(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라는 교과서에 나오는 진부한 표현으로는 병사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적이 쳐들어오면 손 놓고 있을 병사들도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간부들이 부모의 심정으로 병사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육사 출신 모 중령은 사단 주요 부서의 참모입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부서의 간부들에게 ‘병사들 회식 시켜주라’고 지시하고, 병사를 챙겨주려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한 번은 명절을 앞두고 이 중령이 자신의 부서 병사들에게 샴푸와 바디 워시가 담긴 선물 세트를 나눠줬습니다. 이를 본 다른 부서의 병사들이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이 부서의 병사들만 명절 선물을 받았습니다. 병사들은 사소한 관심과 격려를 받는 樂(낙)으로 군생활의 고단함을 버텨내곤 합니다. 필요할 땐 불러다가 야근을 밥 먹듯이 시키던 다른 부서의 간부들은 명절이 되자 말 한마디 없었고, 명절 연휴 때도 병사들을 불러 올려 일을 시켰습니다.
  
  <간부가 너무 쉽게 된다>
  
   최근 軍 관련 사건·사고가 터진 뒤, 예비역들이나 현재 복무 중인 병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화 주제도 군대 이야기로 흘렀습니다. 軍당국에서 발표하는 내용과 대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들의 생각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이들은 “간부부터 변해야 한다”고들 이야기했습니다.
  
   사단 요직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한 제 동기는 “간부들의 책임감이 많이 떨어진다. 진급에만 관심이 있고, 사건·사고가 터지면 덮기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또 “軍 간부가 너무 쉽게 된다. 머릿수 채우려고 뽑으니, 경쟁도 없고 발전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관학교 출신을 제외한 일부 간부들은 병사보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우수한 인력이 직업 군인으로 입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교의 경우 계급 연한이 있어 한 계급에서 일정 기간 내에 진급하지 못할 경우 제대를 해야 합니다. 이와 달리 부사관은 장기 복무 심사를 통과하면 정년이 보장됩니다. 장기 심사만 넘기면 마음 놓고 편하게 군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일종의 무사안일한 공무원이 돼버린 것입니다. 부사관들은 장기 복무만 통과하길 바라고 軍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년이 보장되고, 경쟁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20년을 채우면 연금을 받습니다.
  
   <제대한 병사들, 軍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여론무마용>
  
   제대한 병사들은 軍당국이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도 “합리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에 밀려 뒷북으로 문제를 수습하니, 부작용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 같다. 정작 본질적인 해결 방안은 하나도 제시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부대에서 어떻게든 사고만 안 나면 되기 때문에 軍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애가 자살하고 다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으니 사건·사고만 안 터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병사를 실제 관리하는 간부에게 강한 권한을 주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 간부들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친구는 가치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으니, 제도부터 현실적으로 개선해 가치관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軍당국이 내놓은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복무 중인 한 병사도 휴대전화 반입 문제를 공식화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일선 부대에서는>
  
   최근 제대한 知人(지인)과 군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라면서, “(윤 일병) 사건 터지고 나서부터 병사들끼리 경례도 안 하고 관등성명을 대는 것도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에 새로 온 부대장은 신병이 들어오면 洗足式(세족식)을 해준다고 합니다. 선임과 후임 사이에 문제가 일어나면 후임의 말을 절대적으로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제가 복무한 부대에서는 현재의 ‘소대 단위’의 계급별(동기) 생활관에서 ‘대대 단위’의 월별 생활관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통상 병사들은 선후임 관계를 ‘중대 단위’로 ‘月(월)’에 따라 맺습니다. 10월 1일에 입대한 A와 10월 30일에 입대한 B는 동기이지만, 11월 1일 날 입대한 C는, A·B에게 후임인 셈(A=B>C)입니다. 현재의 계급별(동기) 생활관에서도 선후임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군에서는 월별로 생활관을 추진하는 것 같습니다. 해당 부대의 간부들도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상부의 지시라면서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병사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저희 부대는 본부근무대로, 소대마다 특성이 있는 부대입니다. 사령부 행정 업무를 보는 참모 소대, 경계를 맡는 경비 소대, 수송을 맡는 수송 소대, 군악 업무를 맡는 군악대와 같이 소대 마다 다른 임무가 있음에도, 사건·사고를 막겠다고 내무반을 통폐합하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와 야구 선수, 농구 선수가 한 데 엉켜 생활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일과 시간 이후에는 병사들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말하지만 군대는 사회처럼 오후 6시가 되면 모든 업무가 끝내는 게 아닙니다. 간부들이야 6시에 퇴근하지만, 병사들은 퇴근의 개념이 없습니다. 24시간 부대에서 지시를 받으며 생활하는 이들입니다. 선후임 관계가 사라지면, 유사시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월별 생활관으로 전환되면 우리 군은 그때부터 ‘아저씨’ 군대가 될 것입니다. ‘중대’만 다르면 아저씨가 되는 오늘날의 군대에서, ‘대대 단위’로 월별로 생활하게 되니 선후임과 군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와 군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비군 훈련장 분위기가 연상됩니다.
  
   종로구에 한 중학교에서 2·3학년 학생이 1학년 학생을 집단 폭행해 사망케 했다고 합시다. 교육부가 사건·사고를 막겠다고 종로구에 있는 모든 중학교를 학년별 중학교로 만들어, A중학교에는 1학년만 받고, B중학교에는 2학년만 받는다고 하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지금 군당국의 대처가 이와 같습니다.
  
  <1:29:300, 하인리히 법칙과 부대 운영>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고 있습니다. 보험회사 직원인 하인리히가 산업 현장에서 재해 발생 비율을 조사해 얻어낸 법칙입니다.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다쳤을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고가 나기 전에는 반드시 그 징조가 되는 가벼운, 사소한 사고가 일어납니다. 사소한 사건·사고를 최소화해야만 대형 사고로의 발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사소한 사건·사고는 간부의 세밀한 관심과 관찰로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일선 부대에서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한 게 쌓여서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휘관이 책임지고 訓育(훈육)해야>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잘못하면 ‘부모가 가정교육을 잘못시켰다’고 합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사가 잘못하면 올바르게 훈육하지 못한 지휘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필요할 땐 軍에 오라하고, 사건·사고가 터지면 병사들 탓, 가정교육 탓, 사회 분위기를 탓을 하며 꼬리를 자르고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책임한 부모가 무책임한 자녀를 만들 듯, 무책임한 간부가 무책임한 병사를 만듭니다.
  
   사자가 이끄는 사슴의 무리와 사슴이 이끄는 사자의 무리가 싸우면, 사자가 이끄는 사슴의 무리가 이긴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만큼 리더, 지휘관이 중요한 자리입니다.
  
   軍당국도 일선 부대 지휘관이 병사들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 복무에 부적합한 이들은 事前(사전)에 가려내, 일선 부대의 지휘 부담을 줄여줘야 합니다.
  
  <이순신 같은 리더가 필요해>
  
   군 경험을 되새겨보고 발전적인 방향을 구상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일개 병사 출신에겐 너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고 없는 군대보다는, 군대다운 군대가 되어야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보면서, 우리군은 ‘싸우지 않는 군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단된 국가에서, 敵이 핵무장을 하고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데도 태평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고, 평화라는 시대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韓美동맹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도움을 줬지만, 역설적으로 부작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의 현실 감각이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도와줄 것이다’는 생각이 우리 국민들 사고에 깊게 박혀있습니다. 우리 군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군대는 보고서를 잘 만들어 윗사람한테 잘 보이고, 사건·사고 없는 부대의 지휘관이 유능한 지휘관이 됩니다.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꽃이나 심으라 하고, 병사들은 빨리 제대하기만을 바랍니다. 군대는 언론 보도가 어떻게 나갈까 노심초사해 합니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은폐부터 하고, 드러나면 그때서야 뒷수습하고 뒷북 대책 내놓기 바쁩니다. 관료화된 군대가 유사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심됩니다.
  
   어떻게 하면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까 고민해봤습니다. 戰時가 돼 피를 흘리면 저런 무의미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피를 흘린 뒤에야 정신을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변화하려는 노력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이 화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순신과 같은 리더의 출현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萬事(만사)는 人事(인사)라고 했습니다.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오늘날 우리 軍이 가진 병폐를 해소해 군대다운 군대를 만드는 데 힘쓰길 소망합니다. (끝)
  
[ 2014-08-21, 14: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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