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지옥의 문턱에 섰을 때의 지도자 모습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발췌] ⑯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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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결심은 이번에는 景武臺에서 죽겠다는 것

프란체스카 여사는 195012월 초부터 22일까지는 따로 일기를 쓰지 않고 미국에서 개인 자격으로 사실상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비공식 주미 대사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올리버 (Robert T. Oliver)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서 이를 보내는 것으로 일기 쓰기를 대신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기간 중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우리의 운명이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뒤에 설명했다. 이 때 올리버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었던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를 아래에 발췌한다

 

저의 일기는 만일 그것이 한국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면 출판하도록 하십시오. 저는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만 대통령은 출판을 해도 좋다고 하십니다. 이곳 사태는 매우 악화되어 있습니다. 공산도배들이 막 물밀 듯이 달려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미국 군사당국은 평양에서 민간인들에게 2개의 교량을 쓰도록 했다고 (미군당국이 임명한) 김성주 평남지사와 임준덕 평양시장이 와서 말했습니다. 사리원에는 약 10만명의 피난민이 야외에서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의를 열어 미 국무성과 유엔에 대해,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여 유럽을 무장시키고 수백만의 한국인들은 야수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살육하도록 내어주자고 영국이 제안했다는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묻기로 결의했습니다. 나는 무쵸 대사에게 보낼 편지를 초안했습니다. 나는 토요일 그에게 전화했고 일요일에도 그와 영국의 태도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무쵸 대사는 그 보도는 사실이 아닌 신문기자의 억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교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국은 외교에 있어서는 항상 미국을 이겨 왔습니다. 아마도 영국은 지금 아시아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유럽에서의 전선(戰線)을 강화하기 원하는 프랑스나 캐나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동봉하는 전문을 어제 보내드렸습니다. 그 전보가 귀하에게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리의 전보들을 검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검열은 하지 않더라도 며칠 동안 깔고 앉아서 전보의 효과가 없어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대통령이 타협에 응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대통령의 말을 잘못 인용했습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하여 다시 성명을 발표하려 합니다. 대통령의 계획에는 타협이나 그러한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엔군은 지금 싸우지 않고 후퇴하고 있고 한국군은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대혼동과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군은 미국 사람들의 지휘 하에 있기 때문에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하여 유엔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평양시민들은 남하(南下)를 원했는데 미군 당국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성주 평남지사의 압력에 의하여 약 10만 명의 평양시민들이 교량이 끊기기 전에 대동강을 도하하여 남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서울 시민들은 다투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는 중이고 상점은 모두 철시(撤市)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발표된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영국 애틀리(Clement Atlee) 수상의 공동성명 발표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떠나지 않고 경무대(景武臺)에서 죽어야 한다고 결심하고 계십니다. 왜냐 하면, 만일 유엔이 철수하는 경우 자신의 영도 하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해 싸운 남한의 2000만 국민들은 도살(屠殺)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중공군은 만행(蠻行)에 있어서 북한 공산주의자들보다 더할 것입니다. 시민들은 지금 공포에 휩싸여서 밤새워 짐을 싸서 남쪽으로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한강에는 지금 가교(假橋)가 하나뿐이어서 많은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서 나룻배로 도강하고 있습니다.

유엔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우리가 남하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공군 지원은 물론 한국군에 대한 모든 지원은 없어질 것이니까요. 박사께서는 공산주의와 맞서 싸워온 민족을 포기하고 이들을 공산주의자들의 횡포에 맡기게 되지 않도록 여론을 환기시켜 주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동족인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생명을 걸고 싸워온 한국은 물론 외국 침략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힘껏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이 싸우지 않고 후퇴만 하는 것이 그들의 가슴을 찢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기와 긍지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유엔군은 유엔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므로 지금 후퇴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에게 참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기 자신도 지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 이 같은 맥아더 장군의 말은 절대로 비밀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 실정을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서울에는 지금 외신 기자들이 와 있고 그들은 누구든지 그들에게 가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 여과(濾過)없이 보도해 버립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고 특히 패배주의적인 유언비어들을 만들어서 기자들에게 전하고 있는데 기자들 가운데는 이같은 이야기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보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엔군이 평양과 진남포, 원산에서 시민들을 버리고 후퇴하게 되자 시민들은 참으로 실망, 낙담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은 포항에서 도보로 동해안을 따라 북진했는데 지금 그대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어째서 미군이 터키군이나 해병대처럼 싸우지 않고 후퇴만 거듭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은 중공군과의 전투를 회피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군이 중공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동해안의 2개 사단에 대한 병력과 장비의 보충이 필요합니다. 한국군 총사령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동해안의 한국군은 너무나도 병력과 장비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부전선의 한국군은 트럭을 한 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군대는 그들의 무기를 인력으로 운반해야 하고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유엔이 도대체 중공군의 참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시민들의 피난에 관하여 무슨 대책을 세웠는지를 알고싶어 합니다. 특히 6·25 때 피난하지 못했던 시민들은 이번에는 기어이 피난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이에 관하여 이미 두 가지의 성명서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시민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마지막 구절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군은 후퇴하는데 시민들에게 남아서 싸우라고 할 수도 없지요. 그러나 시민들에게 피난을 권고하는 것은 우리 편의 약세를 보여서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게 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이미 누구라도 자의로 남하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강 다리를 건너도록 허용하라고 이기붕 서울시장에게 지시했습니다. 시민들은 밤낮으로 보따리를 싸서 남행 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군대는 후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양까지 갔다 온 비행기들은 평양 이남에서는 적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지난 9일 유엔군 민사처장 챔프니 대령을 방문, 시민들을 위하여 가교 두서너 개를 한강에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서울 시민들에게 언제든지 한강을 도강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현재 한강에는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할 때 가설한 2개의 가교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인 10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한강 다리를 시찰했습니다.“


<12
13>

오후 3시경 챔프니 대령이 찾아왔는데 방금 받은 극비 명령 때문에 대통령을 뵙기를 청했습니다. 民事담당의 챔프니 대령은 8군사령부로부터 교사, 기술자, 의사들을 포함하여 저명한 민간인들과 그 가족들의 명단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8군은 3500명의 가족을 선박으로 제주도로 피난시킬 준비를 진행시켜 왔는데 비상시에는 그들을 우선 피난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한동안 챔프니 대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대통령이 들어왔습니다. 챔프니 대령이 대통령에게 이틀 이내로 8군이 피난시키고자 하는 민간인들의 명단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자연히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어제 워커 장군이 어째서 서울시민들이 서울을 떠나느냐고 나에게 힐문(詰問)을 했는데 오늘 당신이 와서 일부 시민의 피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영문이냐고 따졌습니다. 우리는 미 대사관이 몇 사람만 남고 모든 직원들을 비행기로 철수시킨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유엔군은 서울에서 철수하지 않고 사수(死守)할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히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대통령은 내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대통령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습니다. 수감자들의 대부분은 지난번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우리 양민들을 체포하고 살해하는 것을 도와준 공산분자들입니다. 대통령이 각 감방을 지날 때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을 위한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수감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참회하는 모양인데 시민들은 어떤 경우가 되었든지 반역자 노릇을 한 그들에게 대단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많은 양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감옥 시찰로 감방 사정이 호전되고 수감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대통령은 참으로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 왔습니다.

오늘 노블 박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는 말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대통령이 낙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 질문했던 기자들은 대부분 영국 기자들이고 그들은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지 아니한 기자들입니다. 특히 발렌타인 같은 기자는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또 영국 기자들은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질문을 던져서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했었습니다.

내각회의에서 각료들은 유엔韓委 대표들과 당면한 비상사태에 대비할 연석회의를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회의를 앞두고 신 국방장관과 백낙준 문교장관이 대통령에게 와서 회의 석상에서 너무 언성을 높이시지 말 것한국군의 독자적 작전지휘권을 회수해야 하겠다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을 건의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정부 당국이 미군과 협조하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요일 오후 330분부터 있었던 유엔韓委와의 연석회의 내용에 대해 유엔한위 대표들은 대단히 만족해했습니다.

챔프니 대령 휘하에서 철수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사람들은 모든 민간인들을 철수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추위 속에서 어디에선가 꼼짝하지 못하게 될지 모르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 남행길에 나서고 있습니다.

13일 오전 9시 노블 박사는 미국 대사가 워싱턴으로부터 받은 電文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미국정책을 요약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유엔총회에서 6개국 공동결의안을 계속 밀고 나간다.
동시에 미국은 아시아 13개국이 제출한 정전(停戰)안을 유엔총회에서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미국은 이 나라들이 중공의 동의를 구하려 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미국의 목표는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을 이룩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중공을 승인하는 데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한다. 그러나 쌍방은 한국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유화(宥和)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의견을 함께 한다. 특히 양국은 한국과 타이완 지지 정책을 변경하지 아니할 것이며 일본과의 평화조약에 중공이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아니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전투는 유엔의 행동에 따라야 하며 한국사태의 해결은 유엔의 정책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이같은 방침의 틀 안에서 평화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국과 영국은 공산침략에 대항하여 한국에서의 전투를 지속한다.
영국은 타이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중공이 타이완을 수중에 넣게 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에서 미국과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라디오가 미국의 여론이 이 추위 속에서 전투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정전을 희망하는 쪽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하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영국보다도 영연방의 여러 나라들이 전투를 종식시킨다는 것을 명분으로 인도를 통하여 중공과 타협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 문제에 대하여 정직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국을 믿을 수 없고 또한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영국이 베이징에 대표단을 보낼 것을 제의한 사실을 보면 유엔은 이 문제에 관하여 굴복하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베이징이 대표단을 오라고 한 것은 그들과 의논을 해 보겠다는 것일 터이니까요. 만약, 그들이 베이징으로 가서 미국과 한국을 모독하는 일이 허용된다면 유엔의 체면은 어찌 되는 것일까요.

중공은 의향만 있다면 유엔측 제의를 수용할 것입니다. 베이징에 간다는 일 그 자체가 동양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미 유화를 택한 것입니다. 유화일 뿐 아니라 이미 저쪽에서 첫 라운드를 이긴 것입니다.

우리는 유엔한위의 네덜란드 대표인 판 에드왈드 남작을 경무대에서의 오찬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에게 한국의 앞날이 매우 암담하다고 걱정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유엔군은 유럽의 군사정세를 개선하기 위하여 조만간 한국으로부터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방위할 수 있는 지역은 남한 한 모퉁이의 작은 지역 - 낙동강 교두보보다도 작은 지역 - 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한국정부가 결국은 망명(亡命)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대답하기를 당신의 말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한반도가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그 심리적 영향은 전체 공산주의 세력에 파급된 것이고 그 결과 일본이나 필리핀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인도네시아와 그 밖의 동양 여러 나라들도 그러한 식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에드왈드 남작은 대통령의 장래에 대한 전망이 정확하다면서 그러나 그의 생각으로는 지금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미군은 우리 경무대 직원 가족들이 화물차로 부산과 대구로 피난하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서울시민들이 서울을 떠나는 것과 관련하여 겪고 있는 비참한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경무대 변호사인 임철호 씨는 부친이 여러 해 동안 중환(重患) 중이어서 병석(病席)의 부친을 두고 피난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분의 부친이 별세했다는 보고를 받고 우리는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분의 부친은 효성스러운 아들과 가족들이 서울에 남았다가 공산군에게 당할 일을 걱정한 나머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독약(毒藥)을 먹고 자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과 자손들이 자유를 찾아서 피난 길에 나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 것입니다.

<1220>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베어리 씨가 와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의 처우 문제에 관한 서한을 제출했습니다. 사실은, 베어리 씨의 소관 업무는 전쟁포로이고 민간인 죄수는 그가 간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대사관도 베어리 씨가 소관 외의 일에 참견하는 데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베어리 씨는 민간인 수감자들도 군 포로수용소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은 대통령은 지난 12일 서대문 감옥을 다녀 온 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수감자들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특사(特赦)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은 대통령이 젊은 시절 감옥에서 사형수로 수감되어 있다가 7년의 옥고(獄苦)을 치른 뒤 풀려난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통령은 감옥에서 처형되었던 옛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수감자들을 특사할 계획입니다. 대통령은 비지땀을 흘리며 교수대(絞首臺)에 매달리던 사형수들의 창백한 얼굴과 자신의 감방 바로 뒤에서 목에 칼이 떨어지기 직전 우리 나라 만세를 3()했던 애국지사 장호익 장군의 모습을 꿈 속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오전 9시 경제협조처장 마이어 씨가 부책임자 콜맨 씨 및 로랜 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자신은 도쿄로 가고 부책임자인 콜맨 씨가 서울에 남기로 했다고 합니다. 1230분 유엔韓委의 필리핀 대표 아프리카 씨를 초대하여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지금 서울은 시가지와 동네집들이 많이 비어 있고 물자가 귀해서 손님 접대에 애로가 적지 않습니다. 고기나 생선을 구하기 힘들어서 주로 계란과 두부를 소재로 해서 손님 식탁을 꾸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한 것은 오늘 손님인 아프리카 박사가 두부 요리를 특별히 좋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전 1030분 대통령은 워커 장군의 2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춘천 전선으로 출발했습니다. 대통령은 춘천에서 지역 민간 지도자들 및 국군장교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산 위와 들판에 있는 장병들은 밥을 지게로 운반해다가 먹는데 항상 밥이 얼어붙어 있답니다. 그들에게 전투용 식료품을 줄 수 없으니 문제입니다. 차라리 건빵이 꽁꽁 언 주먹밥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미군당국에 그들의 레이션을 우리 장병들에게도 공급해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하고 있지만 한국군에게 돌아갈 레이션은 없다는 것이 그들의 대답입니다. 대통령은 우리 군인들에게 전투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는 현실에 몹시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미군들처럼 따뜻한 군복은 물론 전투식량도 보급받지 못한 채 추위를 견디어 내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의 일기에 관하여 다시 말씀드린다면 그 어떤 부분이라도 제 이름을 관련시키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한국전쟁을 겪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사실을 기록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 2014-08-24, 13: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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