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서울함락 前夜(전야)의 경무대 풍경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⑱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무엇(=극약)을 몸에 常備(상비)하고 있다는 것이 무자비한 대량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오히려 위안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李東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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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227>

오전 1150분 리지웨이 장군이 무쵸 대사와 함께 대통령을 뵈러 왔다. 대통령은 처음에는 표정 없이 담담한 태도로 장군을 맞이했다. 리지웨이 장군은 악수를 나눈 뒤 대통령 각하, 저는 한국에 머물려고 왔습니다. 기어이 적을 박살내겠습니다라고 군인답게 말했다. 장군의 결의에 찬 말을 들은 대통령은 비로소 낯빛을 누그러뜨리고 힘차게 장군의 손을 잡으면서 나를 소개하면서 나에게 제일 맛있는 차를 끓여 오라고 시켰다. 장군은 차를 마시면서도 자신은 한반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8군은 태세를 정비하는 대로 공세를 재개할 결심이라고 다짐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대통령이 리지웨이 장군에게 나를 소개하고 차를 가지고 오도록 한 후 장군이 유난히 기뻐한 이유가 또 있었다. 미국의 장군이나 여러 나라 대사들은 나를 대통령의 기분을 표시해 주는 청우계(晴雨計)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대통령 옆에 나타나는 날은 청명한 날씨로 면담 분위기나 결과도 좋은 반면 내가 나타나지 않는 날은 찬 바람이 도는 날이라고 누군가가 새로 부임해 오는 사람에게 귀띔해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지웨이 장군은 이날 대통령이 나를 옆에 세우고 그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서울을 떠나고 있었다. 한강교 부근에서는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는 피난민들의 대열이 처참했다. 그 피난민들의 대열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침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듯 한참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제 오후 리지웨이 장군이 일선을 시찰했는데 임진강 上流 38선 지역을 방어하는 백선엽 장군 휘하 제1사단의 우리 장병들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격려했다고 申 국방장관이 보고했다. 장군은 앞으로 더 이상의 후퇴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현 방어선을 死守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새로운 바람이 美 8군 전체에 파급되고 있는 모양이다. 리지웨이 장군은 美 제10군단의 지휘권도 인계 받을 것이라는 데 정일권 참모총장은 이를 통해 미군의 지휘권이 8군과 10군단으로 2원화되어서 협조가 잘 되지 않은 결과로 중공군이 우리의 방어선을 용이하게 뚫을 수 있었던 취약점이 시정될 수 있게 되었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송되어 온 부상병들을 돌아보고 온 대통령이 몹시 침통한 표정이어서 나도 무거운 마음으로 말없이 대통령의 오버코트를 받아들었다. 대통령의 코트 주머니에는 외출할 때 내가 챙기는 장갑과 잣 주머니 대신 종이와 헝겊으로 겹겹이 싸인 조약돌이 들어 있었다. 나는 김장흥 총경에게 오늘 외출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용하게 물어보았다金 총경에 의하면 대통령은 일선으로 떠나는 신 국방장관이 장갑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장갑을 사양하는 신 장관에게 억지로 주어서 보냈다고 한다. 부상병들을 위문한 후 대통령은 서울역 부근을 돌아 보았는데 추위 속에서 대통령이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다니는 것을 본 어느 노인이 불에 데운 뒤 종이와 헝겊에 꼭 싸서 손에 쥐고 있던 따뜻한 조약돌을 대통령에게 드렸는데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례로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잣 주머니를 그 노인에게 선물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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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국방장관이 와서 보고하기를 리지웨이 장군이 한국군 방어전선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미군 사단이 72문씩 보유한 야전포를 우리 국군 사단은 18문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고 탱크는 아예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신 국방은 그 동안 워커 장군에게 한국군 담당 전선이 너무 허술하다고 거듭 지적하면서 장비 증원 요청을 해 왔었다. 그러나, 그 동안 신 국방은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리지웨이 장군이 드디어 이의 시정을 약속한 것이다. 리지웨이 장군은 또 우리 국군이 과거에는 별로 혜택을 받지 못했던 공중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미군은 1개 사단이 4km의 전선을 담당하는 반면 우리 국군 1개 사단은 그 10배인 40km 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데다가 미군이 담당하고 있는 전선을 가보니 언덕마다 대포가 배치되어 있고 탱크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자네의 훌륭한 운전 솜씨로 탱크를 몰고 전방에 나가서 힘껏 싸워 볼 생각이 없나고 물어서 운전기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 오후 나는 그 동안 손님 접대를 위해 아껴왔던 평양 사과와 함흥 사과를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남아 있는 경무대 부엌 식구들과 고용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통령은 경무대로 특별한 손님을 청해서 식사를 대접할 때마다 이 사과들을 後食으로 내오게 해서 이것은 우리나라 평양에서 생산된 사과라고 하던가 이 사과는 함흥 사과라고 자랑했기 때문에 나 역시 줄곧 이 사과들을 아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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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전 11시 예배를 보려고 정동 예배당으로 갔다. 그러나 있어야 할 深夜 예배와 아침 예배가 모두 취소되어서 교회에는 오직 우리 두 사람밖에 아무도 없었다. 경무대로 돌아와서 점심을 들고 잠시 쉰 뒤 경무대 뜰을 돌아보며 산책을 했다. 대통령은 뒤뜰을 거닐 때마다 그곳에 묻어 놓은 김장독을 보면서 흐뭇해 해 왔었다. 내가 특히 멸치젓국 달이는 냄새가 경무대 방마다 밸까봐 걱정했을 때도 대통령은 나와는 반대로 맛있는 냄새가 구수하다면서 오히려 즐거워했었다. 戰時 중이지만 내일이 설날이라 부엌에서는 안남미로 가래떡을 만들겠다고 해서 허락해 주었다. 대통령은 떡국을 무척 좋아해서 미국에서 고생을 하며 독립운동을 할 때도 나는 설날 아침에는 반드시 떡국을 끓여서 드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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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오늘 아침 고기 국물이 아닌 북어 국물로 끓인 떡국을 동치미와 함께 두 그릇이나 들었다. 대통령이 설날인 오늘 우리 국민 모두가 배고픔과 추위를 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순간 나는 목이 메어 눈물이 나왔다. 주로 일본에서 신선한 고기와 온갖 산해진미(山海珍味)를 공수(空輸)로 날라다 먹고 있는 미군 장성들과 미국 대사가 가끔 우리에게도 음식과 식자재들을 보내오고 있지만 대통령은 이러한 음식과 식자재들을 결코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그들에게 개인적인 신세를 지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아침에도 고기 국물이 아니라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북어 국물로 떡국을 끓이기로 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대통령이 고기로 만든 음식보다 오히려 북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어찜과 북어무침은 우리집 단골 메뉴일 뿐 아니라 북어대가리나 껍질도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다. 경무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양 노인이 북어대가리를 열심히 모으는 것을 대통령이 칭찬하는 것을 보고서는 나도 북어껍질을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마음속으로 북어대가리와 껍질은 끓여서 개밥에 섞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른 봄 어느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양 노인이 주방에서 끓이는 국 냄새를 맡은 대통령이 잠옷 바람으로 나가서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그래서 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주방에서 대통령과 양 노인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통령이 새벽 찬 공기에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옷 위에 걸치는 가운을 들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북어대가리를 듬뿍 집어넣고 파와 풋고추를 썰어넣고 끓인 국냄비를 가운데 놓고 대통령과 양 노인이 대접 가득히 담은 국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대통령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부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양 노인은 술을 대단히 좋아했다. 전날 밤에도 술을 마시고 아침 일찍 와서 자신이 먹으려고 끓인 북어 해장국을 대통령과 함께 들게 된 것이다. 대통령은 나에게 생선은 머리 부분이 제일 맛이 있고 소는 꼬리 부분이 맛이 좋다고 일러 주었었다  

그토록 대통령이 즐겨하는 북어 머리탕에는 비타민 D와 칼슘이 풍부하여 몸에 좋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양 노인이 넣는 재료 외에도 당근과 양배추와 고기를 더 넣어서 영양가가 훨씬 더 많은 북어 국물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드리고는 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양 노인이 하는 식으로 끓여 달라는 것이었다. 역시 한국 음식 맛을 내는 데는 내가 양 노인을 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언제나 떡국 끓이는 솜씨만은 마미가 제일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오전 10시 정부는 경무대 앞마당에서 직원들의 신년 하례(賀禮) 모임을 가졌다. 오후에는 각계각층의 많은 시민들이 신년 하례를 위해 찾아 왔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황해도 곡산(谷山) 등 북한의 여러 지방에서 온 피난민들이었다. 

1115, 趙炳玉 내무장관이 급하게 경무대로 들어왔다趙 내무는 敵軍이 유엔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우리 군이 후퇴 중이며 경찰은 의정부(議政府)를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고하면서 대통령에게 다음날인 2일 아침 경무대를 떠나서 남하할 것을 건의했다.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서울을 철수해서는 안 된다면서 국방장관과 리지웨이 장군 및 무쵸 대사의 말을 들어 볼 때까지는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造 내무는 돌아갔다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불렀다. 자정이 넘어서 신 국방장관이 들어와서 조 내무가 내각이 서울 철수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소집한 각의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신 국방은 자신은 미군이 철수를 권고하기 전에 한국측이 먼저 서울을 떠나는 것은 잘못이라고 조 내무의 즉각 철수 주장에 반대했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자신은 결코 서울을 다시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이어서 국방장관의 견해를 지지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후일(後日) 회고담(懷古談) 

당시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결심이 하도 확고해서 나는 다시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戰亂을 겪는 동안 워낙 여러 차례 죽음을 마주한 탓이어서 그토록 겁이 많은 내가 이때는 두려움보다 오히려 평안함을 느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기독교인인 대통령과 나는 죽고 사는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통령의 권총과 함께 보다 확실한 천국(天國)행 티켓을 각자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무엇(=극약)을 몸에 상비(常備)하고 있다는 것이 무자비한 대량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오히려 위안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그토록 비장하고 심각한 순간에 경무대 뒤뜰의 김치 항아리에 담을 김치 걱정을 하고 있었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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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사관의 노블 박사가 오전 9시쯤 찾아와서 리지웨이 장군이 오늘 원주 지역을 시찰할 예정인데 대통령을 모시고 가서 우리 국군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기를 희망한다고 전해 왔다. 대통령은 장군의 희망에 따르기로 했다. 노블 박사는 리지웨이 장군의 생각도 같다면서 서울이 치열한 격전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부산으로 떠나 주기 바란다고 말하고 우리가 오늘 오후 서울을 떠날 것을 건의했다. 대통령은 노블 박사에게 우리가 지금 서울을 떠나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丁一權 장군으로부터 전반적인 전선 상황을 설명들은 뒤 결국 3일 오전 9시 서울을 떠나기로 방침을 정했다

대통령은 오후 리지웨이 장군과 무쵸 대사를 대동하고 원주(原州)를 향해 서울경마장의 활주로를 이륙했다. 대통령의 원주 방문이 워낙 예고되지 않은 돌발적인 일이어서 한국군 지휘관 유재흥(劉載興) 장군의 소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한국군 장병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대통령에게 2시간 이내에 홍천(洪川)을 탈환하겠다고 다짐하더라고 한다美 제10군단의 알몬드 군단장도 원주에 있었는데 대통령은 좀더 많은 시간을 우리 국군 장병들과 보내기 위하여 美 제10군단은 방문하지 않았고 리지웨이 장군만 그곳을 방문했다 

오후 4시 각의가 열렸는데 趙 내무는 마치 자신에게 내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美 고문관이 있어서 정확한 정보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면서 우리 정부의 南下를 다시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는 趙 내무에게 미국 사람들이라면 그 고문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결코 그 같은 공포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일침(一針)을 가했다고 한다. 결국 대통령과 정부는 다음날 서울을 떠난다는 것과 戰時내각은 군대와 함께 서울에 남는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戰況보고는 불리한 소식만 전하고 있다.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고 내려오는 敵을 현대식 무기로 막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대통령과 나는 서로 말없이 조용히 밤을 보냈다. 우리는 이제 다시 떠나면 언제 서울로 돌아올 것인가? 6월에 떠날 때는 며칠 동안 수원에 내려갔다가 미군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대로 즉시 서울로 돌아올 것으로 믿었었다. 그런데 우리는 탱크와 항공기와 군대를 가지고도 적을 막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미 육군참모총장 콜린스(Lawton Collins) 장군이 부산에 들렀다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장교에게 무엇으로 공산군을 막아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적군 장교가 그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원자탄(原子彈)을 사용하는 방법뿐이라고 답변했다는 사실을 들은 것을 기억한다. 중공군의 人海전술은 오직 원자탄을 사용함으로써만 저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시옵니다. 하느님, 부디 이 불쌍한 우리 국민들과 저희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앞으로 계속]

[ 2014-09-08, 21: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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