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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AHAE’의 明(명)과 暗(암)
제1부 세월호와 兪炳彦(2)/유병언은 자신의 사진전시를 위해 루브르에 110만 유로, ‘물의 궁전의 숲’ 프로젝트에 140만 유로를 기부하고 베르사이유 궁전 대관료로 100만 달러를 썼다. 세월호에 화물칸과 3층 및 4층 객실을 늘리고 자신만을 위한 전시실을 이 배의 5층에 增築(증축)하던 무렵의 일이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연속변침 -거꾸로 쓴 세월호 전복·침몰·구조 보고서 名言 속 名言
2011년 ‘데모크라시 2호, 3호’ 화재로 燒失(소실)
  
㈜세모가 부채 1900억 원을 탕감받고 극적으로 부활한 때는 金大中-盧武鉉 정권 때였다. 2000년~2001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盧武鉉씨였다. 그 무렵 해양수산부는 연안여객운송업자에게 안전관리체계 수립 및 시행 의무를 면제시켜 주었다. 승조원들의 안전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도록 제도가 뒷받침해 준 것이다. 해양안전의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게 된 해양경찰청은 극구 반대했으나 청해진의 로비를 받은 해수부에게는 衆寡不敵(중과부적)이었다. 
  
해양경찰청은 대책을 강구했다. 국제안전관리규약 규정을 2003년부터 국내연안여객선에도 적용하려 한 것이다. 海警의 요구로 시작된 이 작업의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였고, 해양경찰청은 그의 外廳이었으며, 해수부 장관은 盧武鉉씨였다. 하지만 海警의 이런 시도는 2002년 10월, 해양수산부측의 준비 부족이라는 이유로 좌초됐다. 결과적으로 선원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구실로 안전교육, 구명정 교육 의무 등을 정부가 사실상 면제시켜 준 셈이 됐다. 이것이 기정사실로 굳어질 때는 盧武鉉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이었다. 승객들의 안전보다 선장과 선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게 만든 단초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합리적인 경영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따르던 구원파 신도들의 헌금과 기부금에 의존하는 兪炳彦(유병언)식 경영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고 ‘설립’-‘폐업’-‘재설립’-‘파산’-‘재창업’ 식으로 浮沈(부침)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완전히 침몰하지 않고 다시금 ‘부활하는 기적’을 연속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폐업’한 해운사의 보유 선박들을 새로 설립한 해운사가 ‘헐값’에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신도들에 의해 꾸준히 공급돼 온 자본금의 원천도 있었겠지만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의 보호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세모 해운 시절로 돌아가 보자. ‘범죄 수준의 기업 운영’은 세모 소유의 두 여객선 ‘데모크라시 2호’와 ‘데모크라시 3호’의 운명을 따라가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두 여객선은 ‘세모 해운’이 폐업하면서 ‘온바다 해운’에 팔려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실소유주가 유병언임은 변함이 없었다. ‘온바다 해운’도 2006년에 경영난으로 폐업하지만 이들 두 척을 제외한 보유선박들은 모두 실소유주가 유병언인 ‘청해진 해운’으로 넘어갔다. 그 사이 이 두 배는 원인 모를 화재로 燒失(소실)됐다(2001년). 
  
유병언은 2004년에는 ㈜세모의 한강 유람선 사업을 ㈜세양선박에 매각했으며 ㈜세모의 ‘조선 사업부’는 2005년 7월에 ‘㈜천해지’라는 회사로 分社(분사)된다. ‘㈜온바다 해운’은 데모크라시 2, 3호의 화재와 연이은 경영악화로 2006년에 폐업 처리했다. 부실경영으로 몸살을 앓던 ㈜세모는 李明博(이명박) 정권 출범 이틀 뒤인 2008년 2월27일, 법정관리를 졸업한다. 그 즉시 유병언은 측근을 동원해 자산 규모 5600억 원의 ㈜세모를 10분의 1도 안되는 373억 원에 사들였다. 
  
‘범죄 수준의 기업 운영’은 세월호 침몰사고 후 청해진 해운을 수사해 온 이진호 검사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李 검사는 지난 7월 뉴욕타임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종교와 사업을 연계해 신도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내 사업을 키웠다”면서 “기업운영 주체, 대주주들, 심지어 내부 감사들까지 모두 구원파 신도였고 어떤 식으로든 견제와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全無(전무)했다. 兪씨 일가가 돈을 원하면 기업은 내주는 식으로 운영됐다”고 말했다.
  
검사와 금융 규제 관련 담당자들의 말에 의하면 유병언과 그 일가는 富(부)를 축적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수법들을 개발했다고 한다. 가장 돋보이는 수법은 유병언씨가 주장하는 100 여 개의 특허들이다. 그들은 특허권과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자회사로부터 돈을 ‘빨아내고’ 있었다. 장남 유대균은 청해진 해운사의 이름 사용료로 145만 달러를 받았고, 차남 유혁기는 ‘세월호’ 이름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로써 얼마를 받았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청해진 해운의 공식 대표는 유병언이 아니고 김한식이다. 검찰에 따르면 청해진 대표 김한식은 구원파의 독실한 신도였고, 그의 이름으로 유병언의 주식 10%를 숨겨주었다고 한다. 공판에서 김한식은 “유병언의 형 유병일씨에게 청해진 해운은 고문료로 13만1000달러(한화 1억3682만 원)를 지급했다”고도 했다. 서류상으로 유병언과 그 자녀들은 청해진 해운의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해진 해운의 최대 주주는 또다른 선박회사인 ‘주식회사 천해지’로 밝혀졌고, 이 회사는 유병언의 두 아들이 대주주로 등록된 ‘아이원아이(I-One-I)’라는 투자회사의 소유다. 검찰은 유병언이 이 모든 회사의 실질적인 회장이나 결정권자로서 매월 1만 달러 이상의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부터 한동안 유병언은 국내에서 큰 활동을 한 흔적이 없었다. 
  

사진 작가 ‘AHAE’
  
기사본문 이미지
유병언의 사진집 도록 표지
검찰은 유병언 일가의 또 다른 재산 축척 수법으로 사진 전시 및 판매를 예로 들었다. 세월호 사고 후 검찰의 조사결과 청해진 해운의 모기업인 ‘아이원 홀딩스’ 계열사 중에 ‘아해(AHAE)’라는 이름의 기업이 발견되고, 투자회사 ‘아이원 홀딩스’의 대주주인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가 ‘아해 국제 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 프레스’의 대표인 점이 확인되면서, 미국에서 활동 중인 사업가 겸 사진작가 ‘아해’가 유병언임이 드러나게 됐다.
  
‘아이원 홀딩스’와 ‘아해(유병언)’의 사진, 그 사진을 인쇄해서 판매하는 ‘아해 프레스’와 ‘㈜ 천해지’ 및 그 계열사인 ‘청해진 해운’ 사이에 돈과 명예는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었나. ‘아이원 홀딩스’는 2012년에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 등 유럽 각지에서 개인 전시회를 여는 데 후원사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를 위해 유병언의 이름으로 110만 유로(약 16억 원)를 기부했고, 베르사이유 궁전 분수 再단장 사업비 140만 유로(약 20억 원)를 부담한 것이 밝혀졌다. 이때 ㈜ 천해지는 국제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 프레스 프랑스’와 사진 예술작품을 판매하는 ‘헤마토 센트릭 라이프 연구소’에 각각 14억 원, 12억 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유병언은 자신의 사진을 한 장당 4천여만원씩 받고 청해진 해운 등 자신의 계열사들에게 약 500 억 원 어치를 강매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빼 돌렸다고 한다.
  
사진작가 ‘아해’와 그의 ‘세계적 규모의 사진 전시회’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유병언이 잠적한 4년여 동안 그는 줄곧 사진 촬영에 몰두했다고 한다. 왜 하필 사진이었을까. 
  
사진 예술은 선천적 재능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미술이나 음악과 달리 高價(고가)의 사진 장비가 필수적이다. 미술적 재능은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그 능력을 선보일 수 있고, 음악적 재능은 肉聲(육성)이나 악기 연주만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진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타고난 ‘사진의 才能’이 존재하는지는 둘째로 치고라도 ‘高價의 장비’ 없이 그 능력을 드러내 보일 방법은 없다. 
  
여러 대의 사진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그에 따른 각종 악세사리들이 만만찮은 비용을 요구한다. 그런 값비싼 장비를 동원해 사진을 촬영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상당 부분 財力(재력)과 연결돼 있다. 
  

260만 장의 컷수가 의미하는 것 
  
그는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촬영했나. 그가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한 작품은 ‘자신의 방 窓門(창문)을 통해서 4년 동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자연 사물을 찍으며 지낸 결과물들이었다’고 한다. 막강한 재력 없이는 불가능한 시도인 것이다. 기자는 그의 사진첩을 2013년 겨울 무렵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영문으로 ‘AHAE’라고 돼 있는 이름을 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난감해 했던 기억이 있다. 책을 펼치니 페이지마다 우리의 자연 속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의 사진들로 채워졌는데, 그 앵글과 타이밍이 절묘했다. 게다가 자신이 기거하는 창밖으로 4년 동안 보고 찍었다는 것이다. 동물들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거리에서 당겨 찍기 위해서는 망원렌즈가 최소한 500mm 이상 되거나 확대를 아무리 해도 화질에 이상 없을 정도의 값비싼 카메라가 아니면 불가능하리라 싶었다. 그의 작업 과정을 소문을 통해 듣게 됐는데, 그는 카메라를 40대나 동원해 자연의 풍광을 매 10초마다 촬영하고 그 중 한 컷을 골라내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컷 수가 자그마치 260만 장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그 노력에 탄복하겠지만 기자는 속으로 씁쓸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말 창밖을 보면서 하루 종일 그것도 4년 동안 260만 번의 셔터를 본인이 직접 눌렀을까? 아니면 감지센서를 현장에 설치하고 카메라의 릴리즈와 연동시켜 자동 촬영한 영상을 메모리칩으로 모이게 한 다음, 사람을 시켜 선별, 관리하게 했을까. 상당 부분 돈으로 해결 가능한 작업이었던 셈이다. 

‘아해’의 첫 사진전은 2011년 5월 일주일 동안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 웅장한 ‘밴더빌트홀’에서 열렸다. 당시 작가 ‘아해’의 전시회를 주관한 회사는 ‘헤마토 센트릭 라이프 연구소’였다. 사장은 Keith H. Yoo였다. 바로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의 영문 이름이다. 이 회사는 ‘혈액의 중요성과 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비영리 기관’으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단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주력 상품은 ‘녹차’였다. 
  
뉴욕 전시회가 열렸을 당시 ‘아해’를 위해 세계적인 무대 설치작가(찰스 마츠, 가이 올리버 등)와 유명 에이전시들이 동원된 선전물, 유명인들과 정치인들이 참여한 화려한 오프닝과 유명 작곡가가 직접 작곡한 음악 등이 화려한 무대를 수놓았다. 지금도 인터넷의 어느 블로그에는 당시의 감동을 사진과 함께 올려둔 사람도 있다. 
  
이후 ‘아해’의 전시는 프라하, 런던, 모스크바, 플로렌스, 베니스 등 세계적인 전시공간을 누비며 연이어졌다. 
  
 
전시회마다 政官界(정관계) 거물들 등장
  
프랑스 파리의 전시는 가히 압권이었다. 파리에서 ‘아해’가 처음으로 이름을 드러냈을 때는 2012년 5월이었다. ‘아해 프레스’가 프랑스의 한 廢村(폐촌) ‘쿠르베피’를 경매를 통해 52만 유로(약 7억 300만 원)에 사들이면서부터다. 당시 프랑스 언론에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이 마을의 구입 동기가 ‘환경 친화적, 예술적, 문화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아해’라는 작가는 “그 마을에 단 한 번도 방문한 적도 없었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힌 적도 없는 인물”이라고 보도됐다. 이 무렵 ‘아해 프레스’는 프랑스에서 ‘아해 프레스 프랑스’라는 自회사를 두게 된다. 그리고 이 회사를 통해 한 달 뒤 파리 전시회를 열었다. 
  
‘아해 프레스 프랑스’는 설립 즉시 세계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루브르 미술관이 관리하는 튈르리 공원에 1000㎡의 공간을 빌려 파빌리온(pavillion·會場)을 세웠다. 또한 이 전시회를 기념해서 200유로(약 27만 8000원)짜리 책도 발간했다. 거기에는 큐레이터이자 예술사학가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장으로 알려진 ‘앙리 로이에트’씨가 序文(서문)’에서 ‘아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일상 속에서의 특별함, 그것이 그이다.’ 
  
‘앙리 로이에트’ 미술관장뿐 아니라 그 무렵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예술계 유명인들이 앞다투어 ‘아해’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2012년 여름에 파리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지하철 통로나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AHEA라는 포스터가 도배된 풍경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런 ‘아해’는 2013년에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도 전시회를 갖는다. 그해 초에는 이미 일본으로부터 중고선박을 인수해 ‘세월호’라고 이름 짓고 이름값을 받아가며 화물칸과 3층 및 4층 객실을 늘리고 ‘아해’ 유병언 자신만을 위한 전시실을 이 배의 5층에 增築(증축)하던 무렵이었다. 무거운 대리석 바닥재를 사용함에 따라 배의 무게만 230t 이상 무거워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파리의 전시회를 두고 파리의 藝術街에서도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2013년 8월29일자 展示 웹진 ‘루브르 푸흐 투스’(Louvre pour Tous-모두를 위한 루브르)에서 ‘베르나르 아스크노프’(Bernard Hasquenoph) 기자는 <베르사이유의 아해, 돈의 특권>이란 제하의 기사를 올렸다(블로그 ‘영화낙서판’에서 cliche씨가 올린 번역문 참조-注). 그는 이 글에서 ‘아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실체를 추적해 가며 그의 형편없는 예술적 재능과 엄청난 수단들을 취재해서 노골적으로 힐난하고 있었다. 돈에 굴복한 프랑스 예술인들을 비난하는 글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이 글을 주목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는 기사를 통해 ‘아해’라는 작가의 사진전시를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재능이 넘쳐난 끝에 거대한 문화 기관에 전시되는 경우가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단순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루브르든 베르사이유든, 우리가 알기에는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이가 많든, 백만장자이든 창작 초심자를 후원하는 것은 그런 기관들의 의무가 아니다.” 
  
베르나르 기자의 울분은 둘째로 하더라도 ‘아해’와 그의 아들이 2012년부터 이듬해까지 프랑스를 위해 ‘헌신’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2012년에 루브르에 110만 유로 기부, 아무도 기부하지 않던 ‘물의 궁전의 숲’ 프로젝트에 140만 유로 기부, 2013년에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수개월간 사진전을 열기 위한 대관료 100만 달러, 그 밖에 ‘규정상 절대 숫자는 말할 수 없다’는 몇몇 공간의 기부액수들….
  
‘창작 초심자’인 ‘아해’의 베르사이유 전시회에 동원된 수단들은 뉴욕 전시에 비할 바가 아닐 만큼 가히 기록적이다. 베르나르 아스크노프 記者의 기사에 자세한 목록이 있어 인용해 본다. 
  
<▲ 몇 주 전부터 메트로와 버스를 뒤덮는 광고들 ▲ 2개월 반에 걸친 오랑쥬리 館 대여(매일 10시-18시 관객에 개방, 城 휴관일인 월요일 포함, 녹턴 밤 공개 등) ▲ 장-루이 노미코프 셰프(미슐랭 스타 요리사-注)가 준비한 오프닝 갈라 디너 ▲ 폐회식 불꽃놀이에 온 사업가들, 사교계 명사들, 카를라 브루니(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의 부인-注) 모친 ▲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대사 ▲ 9월8일 폐막식은 오페라 르와얄에서 개최 ▲ 무대 설치가와 엄선된 조명 ▲ 최고 품질로 현상된 사진들(높이 5m 폭 12.5m) ▲ 배경에 깔린 잔잔한 음악들 ▲ 관람객들을 위한 하얀 벤치 ▲ 전시회장에 배부된 ‘아해’ 사진을 바탕으로 한 명함 ▲ 비판이라고는 한 줄도 없는 작가 스스로 발행한 방명록(찬양 일색-注) ▲ 드넓은 전시회장에서 근무하는 검은 복장의 도슨트 인원들(docent 전시회장에서 작품 설명과 안내를 하는 자원봉사자들-注) 그들은 城(베르사이유 궁전-注)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플로랑스 도레(Florence Dorè) 에이전시, 즉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곳에서 고용된 사람들이었다. 이 젊고 아름다운 남녀들은 충분히 교육받고 똑같은 내용을 관객들에게 완벽히 전달한다.>
  
이 목록 이외에도 뉴욕타임즈는 ‘사진전이 끝나고 열린 콘서트에서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새로운 곡인 ‘심포니 6번 아해’라는 곡도 연주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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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에서 열린 전시회마다 이와 유사하게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오갑렬 체코 대사가 유병언의 妹弟(매제)였다. 오갑렬 대사의 노력으로 유럽의 政官界(정․관계) 거물들이 ‘아해’의 전시회를 빛내주기 위해 참석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프랑스 전시회에서 ‘아해’의 차남인 유혁기는 ‘아해 프레스 프랑스’를 통해 이 전시회를 추진하면서 돈도 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2012년 한 해에만 700만 유로 이상의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베르나르 기자의 기사 말미를 다시 인용해 본다. 
  
<게다가, 이 전시는 이익을 극도로 추구하고 있다. 전시 자체는 관객들에게 무료인 반면, 상점에는 온갖 종류의 상품을 구비하면서도 환경 에콜로지를 추구하며 이윤에는 관심이 없다는 작품 성격과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개당 혹은 세트로 판매되는 엽서, 보통 사이즈 카피본, 포스터, 책 (그중에는 詩集도 있다. ‘아해’는 詩도 지으므로), 종이, 책갈피, 노트, 마우스패드, 자석, 퍼즐, 천에 인쇄된 카피본, 부채, 우산, 머그컵, 액자, 거울 등등. 전시회 장소의 매장과 (보통 몇 퍼센트를 리베이트하는) 사이트 AHAE.com. 이것은 과대망상의 증상인가, 아니면 이익을 추구한 결과인가? 어쨌거나, 2012년 한 해에 아해 프랑스 프레스 회사는 700만 유로가 넘는 매상을 올렸다.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알기 어렵다. 이 회사는 전시회 준비 과정에 드는 비용을 자신의 모회사에 청구하였으며, 대부분을 서비스 비용 계약으로 처리했지만 한편 여기에 파생상품의 판매에서 온 수익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장도 들어간다.
  
이러한 상업적 면모는 한 흔치않은 이탈리아 기자가 플로렌스에서 열린 전시회에 대해 ‘진짜 멀티내셔널’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프랑스 블로거 몇몇도 아해의 사진에는 끌렸다지만 상업적 면모에 쇼크 받았다. '생각해 볼 일이다. 공짜다. 하지만 나갈 때 조심하길. 각종 상품이 있다. 우편엽서(2.5유로씩이나 된다! - 베르사유에서는 3유로)부터 예쁜 포토 앨범과 액자, 포스터, 마우스패드, 문진, 게다가…초콜릿, 차,… ‘아해 프레스’라고 서명되어 있다. 자연은 자연이지만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
  
유병언의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자. 그가 파리에서 자신의 사진 전시회로 분주했을 2012년 가을에 청해진 해운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中古(중고) 선박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계속>
언론의 난
[ 2014-10-01, 11:00 ] 조회수 : 73059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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