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가족, 위스콘신의 에이미 一家와 再會하다
‘조금 더 일찍 찾아 왔었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도 있었지만, 캐스빌에 머물 동안 일분일초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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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行 비행기표를 구입하다!

 2013년도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차갑게 스치는 겨울바람이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 앙상한 가지들이 거리를 가득 매우는 12월의 중반이었다.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차마 몸으로 실감할 여유조차 내겐 없었다. 2012년, 한 해 전에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매일같이 계속되는 숙제와 시험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내 모습이 아직 생생하기만 하다. 그러나 현재 나는 어떠한가? 두 달 전 나는 또 한 번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일본대학입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운 좋게도 나는 일본 일류 사립대학인 와세다 대학교에 합격했다.

‘일본에 가겠다!’라는 굳은 결심과 확신이 있었던 후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내 눈앞에 닥쳤다. 미국 유학 첫 해에 진심 어린 사랑으로 나를 아껴주었던 호스트 에이미 가족은 2011년 6월에 내가 그 집을 떠난 후로 줄곧 내게,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놀러 와! 우리 집은 언제나 너에게 열려있어.’ 라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에이미 가족에게는 나도 사랑하는 가족의 일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땅덩어리, 미국의 학교를 재학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도 나는 빠듯한 학업과 과외활동으로 인해 에이미 가족을 다시 찾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기필코 나를 기다려주는 에이미 가족과 재회할 거라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나는 9월 리하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가 시작하기 보름 정도 먼저 미국에 입국해 에이미 가족을 찾아 갈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일본대학입학’이라는 갑작스럽게 닥친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그 예정에 차질이 생겼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일본대학에 입학하여 다니게 될 4년 동안 미국에 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간과 돈이라는 문제가 내 발목을 잡을 것은 안 봐도 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지난 2년 반 동안 내가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에이미 가족에게 또 다시 4년을 기다리게 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위스콘신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입했고, ‘미국에 발을 딛는 이상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고 오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펜실베이니아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2013년 12월13일, 미국 미시간의 디트로이트 공항(Detroit Metropolitan Wayne Country Airport)으로 가는 13시간의 긴 여정에 몸을 실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또 약 한 시간을 더 날아 위스콘신의 메디슨 공항(Dane County Regional Airport)에 도착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보고 싶은 호스트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이번 여행은 여태껏 불안한 미래를 등에 지고 떠나는 걱정스러운 여정이 아니라서 부담감은 훨씬 덜했다. 다만 ‘에이미 가족을 만났을 때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할까?’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네가 찾아와준 게 가장 큰 선물이야”

생애 첫 미국유학, 몇 년 전 아무것도 몰라 쩔쩔매던 수줍은 여자아이가 발 디뎠던 메디슨 공항에 나는 다시 도착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나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혹시 길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았고, 동양인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주변인들의 시선도 더이상 개의치 않았다. ‘당당함’이란 지난 유학생활 동안 겪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나의 성과물 중 하나였다. 수화물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한 층 밑에 위치한 수화물섹션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그 앞에 서있던 반가운 얼굴이 나를 향해 아주 밝은 웃음을 지었다. 호스트 엄마 에이미(Amy Morley)였다. 2년 반 전의 모습과 변함없이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에이미와 포옹을 나눴다.

미용사인 에이미가 내게 건넨 첫 번째 말은 이러했다.

“머리 염색했구나? 앞머리도 잘랐네.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구나. 예뻐졌네.”

역시 ‘직업은 못 속인다’고 나는 생각했다. 에이미는 수화물섹션에서 나의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내내 내게 ‘비행은 어떠했는지, 배는 고프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오느라 짐을 2개나 가지고 왔다”는 나의 말에, “선물은 필요하지 않아. 네가 찾아와준 것이 가장 큰 선물인 걸”이라며 내게 감동 어린 말을 건넸다. 타지에 있던 딸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엄마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두 번째 고향 ‘캐스빌’의 변화

에이미의 집이 위치한 캐스빌(Cassville)은 위스콘신의 수도인 메디슨(Madison)에서 약 2시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에 호스트 오빠인 챈스(Chance Morley)를 태우고 함께 가기로 했다. 챈스는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밀워키(Milwaukee) 캠퍼스에 재학 중이었는데, 이번 주말만큼은 나를 보기 위해 학교버스를 타고 밀워키에서 3시간을 달려 메디슨에 왔던 것이다. 챈스가 학교버스에서 내렸다. ‘과연 어떻게 변해있을까?’하는 궁금함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고민이 또다시 밀려들었다. 진갈색 안경을 끼고, 윤기 나는 금발에 비니모자(beanie)를 쓴 채 내려오는 그 사람은 영락없는 챈스 오빠였다. 챈스는 방긋 웃으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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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고도 따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져 있는 이 곳이 바로 에이미의 집이었다.


캐스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 세 명은 내가 부재했던 2년 반 동안 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명이었던 나의 담임선생님, 그리고 음악 선생님이 내가 떠난 바로 다음해 은퇴하셨다고 했다. 또 사회 선생님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수술을 받고 한동안 학교를 비워야 했지만 곧 회복하고 돌아오셨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여파로 인해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에이미의 집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이웃집에 살던 귀여운 아이들 메디와 코디도 일 년 전에 이사를 했다고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달라진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쩌면 나는 내게 있어 ‘제2의 고향’인 캐스빌의 모든 것이 내가 없는 동안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몇 년 전 찍어둔 사진처럼, 내가 보고 겪었던 그 모습 그대로 멈추어 있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2년 반 전의 모습으로 시간을 돌려놓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설지 않은 풍경의 작은 마을이 점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혼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집들, 산과 강을 벗 삼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다정한 얼굴로 기다리는 곳, 바로 내 인생의 두 번째 고향 ‘캐스빌’이었다.

캐스빌의 풍경은 2년 반 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달라진 건 유유히 흘러간 시간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에이미는 나의 단짝친구였던 크리스탈(Krystal Phillips)을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당연히 나는 “YES”를 외쳤다. 크리스탈은 캐스빌의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크리스탈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사전에 크리스탈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고 도착한 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Hi, Krystal!”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나의 출현으로 소스라치게 놀란 크리스탈은 연거푸 “Oh My God”를 외치더니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 정도까지 크게 놀랄 거라고 예상치 못했던 나였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운 마음에 크리스탈에게 달려가 안아주며 달랬다.

'정말 너 인정이야?'
“그럼! 정말 보고 싶었어.”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반가웠다. 짧은 대화 뒤, 우리는 며칠 뒤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훤칠한 청년이 되어버린 남동생 키근

드디어 머릿속으로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던 집에 도착했다. 집도, 정원의 나무도, 이웃집들도 다 하나같이 그대로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는 그 모습에 잠시 아무 말 없이 향수에 젖어 들었다. 집 내부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장식들과 전구들로 한껏 분위기를 낸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해서, 벽난로 앞에 줄줄이 놓여 있는 호두까기 인형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내부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한 명의 식구가 늘어났다는 것이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었다. 근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할머니(에이미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면서 할아버지(에이미의 아빠)가 에이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에이미는 현재 외국 교환학생을 두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쓰던 방은 현재 할아버지가 사용하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스웨덴에서 온 호스트 오빠였던 에릭이 예전에 사용하던 방에서 일주일간 잠자리를 청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과 선물을 풀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Here comes your favorite brother!” (네가 가장 좋아하는 남동생이 여기 왔어!)

굵은 목소리에 키가 훤칠하게 큰 한 남자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누구라고 금방 단정 짓기 힘들었다. 몇 초 동안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누구일까? 앗, 키근(Keegan Morley)이었다!

“Don’t say you are Keegan!” (네가 키근이라고?!)

내 첫마디였다. 나와 비슷한 키에 통통해서 귀엽기만 했던 내 동생 키근이 어느새 이렇게 훌쩍 자라있는 청년의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떡하니 서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똑바로 키근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낯선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성숙해진 외모와 모든 것이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나의 놀라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키근과 에이미는 큰 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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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만에 다시 만난 동생 키근은 외모, 신장, 목소리까지 모두 어른스럽게 성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개구쟁이 같은 어린아이 같은 성격은 벗어나질 못했다. 거울 앞에서 장난치며 포즈를 취하는 키근의 모습


캐스빌에서 맞는 첫 저녁식사는 키근이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레스토랑 샌드바(Sand Bar)에서 하기로 했다. 1000명 정도의 적은 인구가 살고 있는 캐스빌답게, 에이미가 샌드바의 문을 열자마자 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정말이지 캐스빌이란 곳은 거리를 걸으며, 마트에서 장을 보며,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이웃이고 친구였다. 이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가족만큼 가까웠다. 에이미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나를 알아보고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따뜻한 포옹을 건넸다. 그리고 몇 분 후, 우연하게도 나를 가르쳐주신 영어 선생님과 남편도 그곳에서 만나 반가운 재회를 했다. 선생님은 물론 나를 굉장히 기쁘게 맞아주셨다.

미국에서의 첫 저녁식사는 샐러드와 스테이크였다. 낙농업이 미국에서 제일인 위스콘신에서 역시 샐러드의 토핑으로 나오는 치즈의 맛은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입에서 녹았다. 탱글탱글한 질감에 진한 육즙이 나오는 스테이크, 그리고 따끈하게 구워진 통감자는 한국에 머물던 몇 달 동안 잠시 잊고 있던 내게 미국의 맛을 다시 상기시켰다. ‘오늘만큼은 배가 터지게 먹어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동안에도, 나의 손은 음식을 입으로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추억이 있는 장소, 2년 반 만에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 가족들과 이웃들은 나를 행복에 젖어 들게 했다. 이곳에만 오면 엄마의 품속에 꼭 안겨있는 것처럼 편안하기만 했다. ‘조금 더 일찍 찾아 왔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도 있었지만, 캐스빌에 머물게 될 일주일 동안 일분일초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계속)

[ 2014-10-02, 11: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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