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스케이트장, 얼어붙은 미시시피江
캐스빌은 관광객을 끌어 모을 뚜렷한 상징물은 없었지만, 미시시피강 상류에 위치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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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느낄 수 없던 아름다운 풍경

캐스빌에 도착한 12월13일 금요일, 나는 트리샤(Tricia Haverland)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트리샤는 내가 캐스빌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급식시간마다 한 테이블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그녀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 함께 밤을 새면서 놀기도 했던 단짝친구였다. 우리는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에 함께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눈이 소복이 내려와 온 세상을 하얗게 수놓은 토요일 아침, 나는 트리샤, 그리고 또 다른 단짝친구인 애비(Abby Rauch)와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처음 몇 분간은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가 함께 했던 몇 년 전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고, 그렇게 어색함은 와장창 깨어졌다. 그날 아침메뉴는 노릇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와플, 요구르트가 잔뜩 올라간 달콤한 프루트컵(fruit cup: 잘게 썬 여러 가지 과일을 컵에 담은 것)과 따뜻한 커피였다. 보기만 해도 달콤한 심포니에 젖어 연달아 감탄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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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친구들과 함께 한 아침식사, 달콤한 와플과 프루트컵.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 건 그 순간 카페 안에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던 캐스빌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기분 좋은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요즘 어떠세요? 가족은 어때요? 정원 돌보는 일은 잘 돼가고 있나요?”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살아가는 순수하고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트리샤의 엄마와 할머니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무척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카페 안 하얀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나와 친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런 따뜻한 모습은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캐스빌에서 보낸 일주일여 시간 동안 트리샤에게 정말 고마웠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하기 일주일 전이었기 때문에 키근과 챈스는 학교에 가야 했고, 이는 트리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는 3시경 이후로 거의 매일같이 나는 트리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아이오와주의 더뷰크(Dubuque)에 위치한 쇼핑몰에서 스티커사진을 찍기도 하고 쇼핑도 했으며, 레스토랑에서 중국요리를 먹고, 집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기도 했다. 또 어느 저녁에는 트리샤의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캐스빌 고등학교 남자 농구부의 원정경기를 응원하러 가기도 했다. 이 날은 지난 경기들을 모두 종합해보았을 때 위스콘신주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1위, 2위 고등학교가 벌이는 경기였기 때문에 놓치면 후회할 게 뻔했다. 내가 재학했던 학교의 승리를 바라고 소리 질러 응원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결과는 대승이었다. 캐스빌을 떠나야 할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매일같이 내게 소중한 경험과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준 트리샤에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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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교인 캐스빌 고등학교가 승리하기를 있는 힘껏 응원하면서 농구경기를 관람한 나, 트리샤, 애비. 이 날의 우승팀은 훌륭한 실력에 단결력까지 겸비한 캐스빌 고등학교 남자 농구부였다.


트리샤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침 시간 대부분은 크리스탈(Krystal Phillips)과 보냈다. 크리스탈과는 화요일 아침에 만났다. 크리스탈은 집에 언니인 엔젤(Angel Phillips)과 함께 있었다. 예전 이야기에서 언급했듯이, 크리스탈과 엔젤은 둘 다 소프트볼(softball)에 있어서 프로선수만큼의 실력과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다. 내가 소프트볼이라는 스포츠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이유도 크리스탈의 긴 설득 때문이었고, 내가 후보명단의 예비선수로서의 기간을 매우 짧게 마치고 바로 레귤러멤버로 경기에 임하게 된 것도 매 주말 크리스탈, 엔젤과 함께한 혹독한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둘은 내가 무관심하게 지나쳤을지 모를 ‘소프트볼’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였고, 나의 가능성을 믿고 이끌어주어 발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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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집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왼쪽부터 크리스탈, 엔젤, 나). 크리스탈과 엔젤은 내게 소프트볼 코치이자 선배이며 동료였다. 크리스탈의 설득으로 시작한 소프트볼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미국 고등학교 유학 3년 내내 꾸준히 학교 팀 내 우익수로 뛰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스케이트장, 얼어붙은 미시시피강

12월18일 화요일, 이 날은 크리스탈의 열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스케치북에 사인펜을 이용해 한국어로 그녀의 이름을 크게 적고, 이름 주위를 아기자기한 손그림으로 장식해 그녀에게 선물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선물은 아니었지만 친구가 투자한 시간과 정성을 생각해 작은 선물에도 큰 감동을 받는 친구가 바로 크리스탈이었다. 이 날 점심으로 나와 크리스탈, 엔젤은 집 가까이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치즈버거와 튀김종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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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의 생일을 맞이하여 내가 그려 준 선물. 정성껏 그녀를 위해 그려낸 작은 선물이었지만 감동하여  기쁘게 받아주는 크리스탈에게 내가 더 고마웠다.


그리고는 엔젤이 모는 차를 타고 캐스빌을 탐방하기로 했다. 캐스빌은 위스콘신 안에서도 작은 마을로서 관광객을 끌어 모을 만한 뚜렷한 상징물은 딱히 없었지만, 미시시피강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혹독한 겨울바람에 거대한 미시시피강의 표면도 꽁꽁 얼어붙어 세상에서 가장 큰 스케이트장을 보는 듯했다. 우리는 차로 한국의 북악스카이웨이를 닮은 굽이진 드라이브코스를 따라 어느 산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위스콘신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하얗게 뒤덮인 세상과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놓고 있는 수백, 수천 그루 나무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툭 튀어나와 있는 절벽에는 침엽수 한 그루가 늠름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엔젤은 가뿐히 절벽으로 걸어 나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한 발짝 디디는 것조차 다리가 덜덜 떨려서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절벽을 잘못하여 발을 헛디딜 경우 한 순간에 중심을 잃고 저 밑으로 떨어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크리스탈이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절벽까지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그림 같은 배경을 뒤로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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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위스콘신을 배경으로 크리스탈과 함께. 높은 산자락 위에서 보는 캐스빌은 온통 하얀 눈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낸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장관을 연출했다.


내 동생 키근(Keegan Morley)은 더 이상 2년 반 전의 통통하고 귀여운 남동생이 아니었다. 꾸준히 학교 농구부의 멤버로 연습을 하고 경기에 임해서 그런지 키는 나보다 훨씬 더 컸고, 목소리도 훨씬 더 남자다워졌다. 몇 달 전에는 운전면허증도 취득하여 부모님께 자신의 차도 선물 받게 되면서 이제는 그 차를 타고 학교를 등하교 했다. 예전과 180도 다르게 어른스러워진 키근의 모습은 사실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가 더 이상 남동생이 아니라 나보다 몇 살 더 먹은, 내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오빠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말인 일요일에는 키근의 강력한 추천으로 아이스스케이트를 타러 가기로 했다. 키근은 자신의 여자친구도 데리고 왔는데, 키근의 친구인 브래드(Brad Klein)도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했다. 토요일 저녁까지만 해도 키근은 어른같이 변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하는지, 여전히 내게 우스운 농담을 하며 철부지 같은 장난을 쳤다. 그런데 여자친구 앞에서는 분명히 너무나 상반되는 의젓한 태도를 보였다. 할리우드 배우로 캐스팅 되어도 손색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 스케이트장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키근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브래드는 이 날 난생처음으로 아이스스케이트를 타는 것이어서, 어정쩡한 자세로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거북이 마냥 엉금엉금 손톱만큼씩 앞으로 나아갔다. 예전에 스케이트를 두세 번 타본 경험이 있는 나와 데이브의 여자친구는 보란 듯이 그 세 사람 옆을 쌩쌩 지나쳐 달렸다. 자기 몸 하나 챙기는 것도 버거울 것 같은 키근이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고 마치 아기 돌보듯 옆에서 보살피는 모습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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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주말을 맞아 타러 간 아이스스케이트. 얼음판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스피드에 가슴까지 탁 트여 즐거웠지만, 곧 닥친 키근의 사고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키근은 결국 사고를 쳤다. 스케이트장 운영 종료시간 약 15분 전이었다.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느꼈던 것인지 키근은 어느새 벽에서 손을 땐 채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쿠당탕!” 조금 더 속력을 내보려던 키근은 중심을 잃고 순식간에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얼음판에 정면으로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고, 왼쪽 눈에는 커다랗게 새파란 멍이 들고 말았다. 키근이 발라당 넘어지는 모습이 처음에는 웃겨서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곧 이것이 심각한 사고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모두들 스케이트 타는 것을 잠시 멈추고 키근을 부축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키근은 여자친구가 해주는 얼음찜질로 응급처치를 받았다. 물론 팬더처럼 눈두덩에 검붉게 생긴 멍도 심각했지만, 그보다 더 심각했던 건 넘어졌을 때 받은 충격으로 아이스스케이트장에서 벌어졌던 그 사고 이후 반나절 동안의 일들에 대해 다음날까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이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에 키근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물론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계속되는 ‘너 나 누군지 알아?’라는 질문공세를 받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따로 있었다. 혹시 닥칠지도 모르는 건강상의 위험 때문에, 키근은 며칠 동안 농구부 코치의 명령에 따라 연습을 할 수 없었고, 다른 학교와의 농구경기에서도 주전선수로 뛸 수 없어 경기 내내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며칠 후 에이미와 함께 크리스마스 쇼핑을 가기로 했다. 미국 사람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란 일 년 중 그 어떤 특별한 날보다도 더욱 기다려지는 날이며, 가장 성대하게 축하하는 명절 중 하나이다.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즌에는 가족, 친척들, 친구들 모두에게 전달한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몇 주에 걸쳐 크리스마스 쇼핑을 다니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며 몇 달 전부터 미리 선물을 구입하기도 했다. 학교와 아르바이트 때문에 주말을 제외하고는 나와 어울릴 시간이 없었던 키근도 이 날 하루만큼은 우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쇼핑을 가기로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교장선생님과 각 과목선생님들이 ‘인정이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라고 말해주며 이 날의 즐거운 결석을 이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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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쇼핑 중 내 동생 키근과 함께. 귀여운 캐릭터 모자들을 써보며 우리는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행복의 바다에서 신나게 춤추다

학교에 결석을 확인 받으러 가는 키근을 따라 나도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에이미도 함께 갔다. 제일 먼저 교장실에 들렀다. 교장선생님은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하셨다. 사회 선생님은 교장선생님보다 더 기뻐하셨다. 사회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내가 가장 아끼는 학생이 왔네!”라며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키근을 바라보며 “물론 너도 내 최고의 학생이지만 인정이는 최고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학생이야”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수학 선생님이자 나의 옛 소프트볼 코치이기도 했던 미스터 비(선생님의 姓은 Bernetzke였지만 긴 姓을 부르기가 어려운 학생들은 그를 짧게 Mr. B로 줄여 불렀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내가 학교에 다녀간 이후, 키근으로부터 미스터 비와 사회 선생님이 수업 중 내 이야기를 언급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위스콘신 캐스빌 고등학교(Cassville High School)를 재학할 당시 나는 10학년의 소포모어(sophomore)였고, 미스터 비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기하학(Geometry)과 대수학(Algebra II), 두 과목을 동시 수강했다. 다른 수업과목과 비교해 유학 첫 해, 내게 있어 수학 수업을 들으러 가는 건 다른 어느 클래스를 들어가는 것보다 심적으로 부담감이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고는 했지만 미스터 비는 칠판에 공식과 예를 적어가면서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기 때문에, 단순히 학생들 앞에서 진행되는 여느 수업보다 쉽게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시험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A4용지 한 페이지 전체가 빽빽하게 영어로 채워져 있어 받는 순간부터 한숨이 나오는 걸 자연스런 증상이라 여겼던 모든 과목과는 달리, 수학 시험문제지는 ‘계산기를 이용해 답을 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훨씬 부담감이 덜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캐스빌을 찾았다는 소식은 키근의 입 밖에서 나가 이미 며칠 전부터 교내에 만연히 퍼져 있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미스터 비는 수업 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정이는 내가 여태껏 가르쳐 온 외국학생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학생이야!”

이 이야기를 키근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매 수업시간에 열정적으로 강의하며, 방과 후에도 계속되는 나의 질문공세 하나하나에 정성스레 답해주셨던 선생님의 인자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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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스러운 수학 선생님이자 소프트볼 코치였던 미스터 비. 방과 후 나의 수학 관련 질문 공세에도, 소프트볼 정규연습 후 부족한 부분 보완을 위한 개별연습 자청에도 미스터 비는 단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언제나 친절하게 도움을 주었다.


수업 중 사회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하신 말씀도 트리샤를 통해 전해 들었다. 수업시간 중에 선생님은 나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내 수십 년의 교직생활을 통틀어 그 애만큼 열심히 공부했던 아이는 없었어.”

별다른 감흥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던 미국아이들을 향해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정말이래도. 믿어줘.”라고 연거푸 강조해 말씀하셨다고 한다.

‘미국 유학’이라는 내 어릴 적부터의 인생의 꿈을 실현시키면서, 나는 내가 선택한 그 길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학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꾸준히 앞을 향해 걸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너무나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었던 나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업시간에 발표하기를 꺼려했었다. 이런 나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분명 선생님들은 나의 존재를 어렴풋이 기억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듣는 선생님들의 나에 대한 시선과 평가는 내가 겪었던 그 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모두 다 보상해주었고 나를 행복감에 잔뜩 취하게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선생님들로부터 듣는 칭찬에 나는 마치 드넓은 행복의 바다에서 신나게 춤추는 한 마리 고래가 된 것만 같았다.

쇼핑을 위해 도착한 백화점은 어디를 둘러보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백화점 중앙에는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가 금색 장식 끈으로 한껏 멋을 내고 우뚝 서있었다. 트리 앞의 커다란 빨간색 의자에는 역시 빨간색 옷을 입고 복슬복슬한 하얀 턱수염을 기른 산타할아버지가 자신의 무릎 위에 앉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캐럴의 멜로디 또한 모두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기대감에 부푼 밝은 웃음으로 활짝 피어났다.

에이미는 챈스에게 줄 선물부터 가족들과 친척들 모두에게 줄 선물을 구입해야 했기에 여러 매장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았다. 함께 매장을 둘러보고 있던 키근은 내게 “혹시 내 여자친구 선물 고르는 거 도와줄 수 없어?”라고 물었다. 며칠 동안 어떤 선물을 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키근을 옆에서 지켜본 나였기에 흔쾌히 그를 돕기로 했다. 여자친구 선물로 스웨터 하나를 고르면서도 어떤 색, 어떤 디자인, 어떤 사이즈를 고를지 결정하기 어렵다며 내게 “Is this ok?(이거 괜찮아)?”라고 수십 번도 더 물어보는 키근이 귀엽기만 했다. 물론 우리가 어렵사리 결정했던 선물들은 에이미의 눈에 차지 않아 결국에는 에이미의 결정에 따라 다른 스웨터, 목도리, 초콜렛, 백화점상품권을 키근의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로 결정하게 되었다.

(계속)

[ 2014-10-06, 14: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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