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CIA 국장에게 편지를 쓰다 -19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19/그날이 1976년 6월7일이었다. 메리어트 호텔에는 내가 처음 만났던 그 세 사람이 또 나와 있었다. 갖고나온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을 내밀며 “입사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했다.

李明山(마이클 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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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art 백화점에 입사해 2년이 거의 다 되어갈 때, 나의 심신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극한상황에 빠지면 극한투쟁을 하게 되어있다. ‘쥐도 급하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하루는 비장한 생각을 하고 K-Mart 백화점에서 99달러짜리 스미스 코로나(Smith Corona) 타자기를 하나 사들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그 당시 미국의 모든 국가정보기관들의 총수인 조지 H.W. 부시 CIA 국장(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George H.W. Bush) 에게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 내용을 요약하면, 우선 나 자신을 소개하고, 내가 서울에 있는 美 502군사정보단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미국정부를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가를 말하고, 지금 현재는 미국에 이민을 왔으나 시민권이 없는 관계로 나의 능력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직장에서는 받아주지도 않고, 백화점에서 물건이나 판매하는 세일즈맨(salesman)이 되어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인적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마치 보석세공 전문가를 채석장에 보내는 것과 같은 처사이며 미국정부의 실책이라고 떼를 썼다. 그리고 나의 사진과 그동안 받은 표창장 감사장들을 첨부해 다음날 우체국에 가서 특별등기우편물로 발송했다. 그날이 1976년 3월3일이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조지 H.W. 부시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반드시 읽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약 3주가 지나 퇴근해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의 이름이 마이클이며, 얼마 전에 조지 H.W. 부시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느냐?”
  “예, 맞습니다.”
  
  그리곤 하는 말이, 오는 수요일 오후 1시에 로슬린(Rosslyn)에 있는 메리어트(Marriott) 호텔 로비로 나오라고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홧김에 허공을 향해 쏘아올린 나의 화살이 포토맥(Potomac) 강 넘어 랭글리(Langley)에 있는 CIA 본부 8층, 부시(Bush)의 책상 위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날 밤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 약속된 장소에 나가니 CIA 본부로부터 세 명의 간부들이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고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조지 H. W. 부시가 나의 편지를 직접 읽었으며, 동아시아 공작처장에게 서둘러서 나를 만나보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내가 충분한 자격을 구비하고 있다면 시민권이 없어도 채용할 계획인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며, 동아시아 공작처에서는 마침 나와 같은 인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정의 수속절차를 밟겠는데 제일 먼저 필기시험을 봐야 하고, 약 6개월간의 신원조회를 거쳐야 하며, 신체검사와 성격적성검사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어느 빈 방으로 가서 한 시간 동안 필기시험을 치르게 했다. 만약 내가 이 시험에 합격하면 미국의 행정고시(Civil Service Examination) 합격의 인정을 받게 되며 CIA 입사수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이틀 후, 그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통보였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아내에게만 이불 속에서 귀띔했다. 6개월간의 신원조회를 기다려야 하는데 초조하기도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잘 진행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저들이 얼마나 서둘렀는지 2개월 만에 신원조회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며칠 후 로슬린에 있는 모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언제나 순풍처럼 불지 않고 걸림돌이 도처에 깔려 있다. 두주일 간이나 지났는데 병원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급하여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나의 입사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이유냐고 물으니 “美 연방정부는 절대로 고혈압 환자를 채용하지 않는다” 고 냉담하게 잘라버렸다.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였다. 내가 거기에서 좌절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는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두 분이 계시다. 하나님과 엄마다. 나는 당당하게 담당의사에게 항의를 했다. 이 일은 반드시 하나님이 알아서 처리하게 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고혈압 환자가 아니다. 세상에 낯 설은 땅에 이민 와서 2년 동안이나 백화점에서 중노동을 하고 혈압이 안 올라간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입사하면 분명히 나의 혈압이 며칠 사이에 정상으로 떨어질 것인데, 사람을 여기까지 띄워놓고 나 같은 인재를 그 따위 혈압 때문에 내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 말을 들은 담당의사는 껄껄 웃으면서 “세상에 당신 같이 당당하고 뻔뻔한 인간은 처음 보았다” 하면서, 속히 나의 패밀리 닥터(family doctor)를 찾아가서 그가 나의 건강문제를 계속 관리하겠다는 서류를 작성 및 서명하여 자기에게 우송하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음날 임응순 박사를 찾아가 ‘Michael is and will be under my medical attention’ 이라고 쓴 편지에 서명을 받고 즉시 우편으로 보냈다. 며칠 후 CIA 본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로슬린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 로비에 또 나오라는 기별이었다. 아! 드디어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것으로 판단이 되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그날이 1976년 6월7일이었다. 메리어트 호텔에는 내가 처음 만났던 그 세 사람이 또 나와 있었다. 갖고 나온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을 내밀며 “입사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그때의 감격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서류에 있는 행정규정과 보안규정을 정독하고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한 다음 우리는 또 한 번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했다,
  
  “As of this moment, you are on the federal payroll.” (이 순간부터 자네는 연방정부 공무원이다.)
  
  <계속>
[ 2014-10-11, 22: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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