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CIA 은퇴 後 43년 만의 '신혼여행'-27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27/우리는 이 땅에 왔다가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李明山(마이클 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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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27일, 나는 해외 장기근무를 마치고 워싱턴 본부로 돌아갔다. 한 달간의 휴가 후 사무실에 가보니 새로운 일들이 벅차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관계 전문지식 때문에 정부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할 경우 내가 자주 동원됐다. 국무성, 국방성, NSA, FBI에 파견근무를 했으며 감사장도 많이 받았다. 매년 6개월 이상 해외출장을 갔고, 2000년 2월29일 은퇴할 때까지 4년 8개월 동안 무려 5개의 훈장을 받았다. 1999년 3월14일에는 GS-15로 진급을 했다.
  
  은퇴 직전 한 달간 60여 명의 은퇴자들이 기밀보안유지 규정, 은퇴 후 신변안전, 건강관리, 재정관리, 새로운 환경으로의 적응요령, 여행정보, 주거비용의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교육을 받았다.
  
  나는 은퇴란 인생의 한 과정의 마감일 뿐이며, 출구는 새로운 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인생을 그려보는 자세를 갖게 됐다. 하지만, 나의 젊음과 정열을 다 바쳐 헌신한 소속을 떠나면서 허탈하기도 했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때 느낀 심정을 말하자면 인생은 결코 영광스러운 것도 비애스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왔다가 겸허하게 조용히 떠나는 것이다. 굳이 허무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인생 말엽에 나만을 위한 시간과 내가 선택한 형식의 자유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 선택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 땅에 왔다가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인생 종말에 그것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나의 은퇴식장에는 많은 상관과 동료직원들이 참석했다. 동료 한 사람이 내가 쓴 은퇴 고별 詩(시)를 낭송할 때 마음이 여린 여자직원 몇 사람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비둘기>
  
  광장에 우뚝,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거대한 동상
  그 부동의 위용보다, 나는 하늘을 날고 보도의 모이를 쪼아 먹는
  한 마리의 작은 비둘기가 되고 싶소.
  
  세월이 지나면 영광도 비애도, 어차피 잊혀지는 이름들
  비바람 맞고 녹스는 동상 밑에, 어느 날 내가 쓰러져 죽었을 때
  그 행복한 죽음을 쓰레기더미에 묻고, 한 줌의 흙으로 나를 덮어주오
  
  
  
  Looming high above the plaza,
  the grand statue draws the gaze of all passing by.
  But, its lifeless dignity is not for me.
  I would rather be the small pigeon
  that flits the sky and picks seeds from the pavement.
  
  Hero or martyr, all are forgotten with the passing of time.
  So when I collapse beneath that rusting statue some rainy day,
  just lay me on the trash heap and
  sprinkle a handful of dirt over me
  to comfort my peaceful oblivion.
  
  (은퇴 후에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
  
  내가 1957년 결혼을 했을 때 당시 형편으로는 남들이 다 하는 화려한 신혼여행도 못해보고 살았다.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고 그저 바쁘게 뛰면서 아내와 여행다운 여행도 못해보고 살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불평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늘 그것이 마음 속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은퇴하자마자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니 아내와 결혼한 지 43년 만에 뒤늦은 신혼여행을 하기로 작심했다.
  
  2000년 2월29일에 은퇴하고 3월3일 차를 몰고 길을 떠났다. 미국 동부 95번 국도를 타고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그리고 플로리다 등 다섯 개 주를 통과해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Key West)에 갔다.
  
  매일 6~7시간씩 차를 몰고 시원한 대서양을 바라보며 장장 3일간의 긴 자동차 여행이었다. 그곳에 가서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가 살던 집도 가보고, 여러 생선 요리도 먹고, 우리 두 늙은이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으나 역시 젊었을 때처럼 풋풋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기에 즐거웠다.
  
  오래 누적된 빚을 갚았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Disney World)에 들러 관광을 했다. 沿道(연도)에서 싱싱한 오렌지를 사서 차에 싣고 떠난 후 2주일 만에 집에 왔다.
  
  <계속>
[ 2014-10-24, 14: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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