暴雪이 선물한 캐스빌에서의 마지막 하루
“비행기가 취소됐어.” “야호!” 나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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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빌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고 펜실베이니아 에리(Erie)로 떠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이 20년 만의 살인적인 한파(寒波)로 꽁꽁 얼어붙고 만 것이다. 한파는 미국을 화성보다 더 춥게 만들었고, 북극의 찬 공기가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위스콘신주는 영하 30~40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대부분의 항공기가 결항되었다. 나는 본래 12월20일 금요일 아침에 위스콘신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계획이었으므로, 19일 저녁에 이미 크리스탈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다. 다음번 미국을 찾을 때는 크리스탈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를 함께 가자는 약속까지 하고 말이다. 밤에는 영원한 추억을 간직하고파 에이미 가족과 가족사진을 찍었고,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트리샤와 브라질 친구 비아(Beatriz Magalhaes), 지역관리자 몬티(Monte Scholl)는 나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직접 집을 찾아왔다.

그들과 내가 포옹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에이미는 내 비행스케줄이 한파로 혹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항공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하는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에이미의 표정을 읽고 깔깔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모두 잠시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었다.

“비행기가 취소됐어.”

전화를 끊자마자 에이미가 말했다. “야호!” 나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왜? 솔직히 말해서 일주일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나누고 정들어 버린 나의 친구들과 이토록 빨리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먼 거리라는 장벽으로 만남이 어려웠던 친구들과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재회할 수 있을지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헤어짐으로 인한 슬픔의 눈물을 터뜨려야 마땅했던 순간이 ‘친구들과 함께 할 하루를 벌었다’는 기쁨으로 순식간에 밝은 활기를 찾았다. 깜깜한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는 듯 곧 들이닥칠 이별 앞에 우울했던 내 기분은, 내일에 대한 기대와 기쁨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캔슬된 건 비행기뿐만이 아니었다. 살인적인 추위와 폭설로 대부분의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다. 아침 일찍 휴교령을 접해 들은 키근은 침대에서 한 번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조금 섭섭했다. 엉겁결에 선물로 받은 ‘하루’였지만 키근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면(冬眠)하는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었다. 트리샤는 내게 아침식사를 하러 함께 카페에 가지 않겠냐는 기분 좋은 제안을 했다.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나는 분명히 두꺼운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털장갑을 낀 채 에스키모처럼 완전무장을 했지만 카페에 걸어가는 동안 살을 벨 듯 몰아치는 찬바람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온 세상이 폭설로 겨울왕국이 되어 있었다. 무시무시한 추위로 내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었고 마비가 된 듯 얼얼했으며, 발가락은 얼어붙어 한발 한발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카페에서 맛있는 와플을 아침으로 먹은 후, 나와 트리샤는 ‘크리스마스 쿠키 만들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트리샤의 옆집에 살고 계시는 트리샤의 외할머니는 고소한 땅콩버터 쿠키, 달콤한 초콜릿칩 쿠키, 특유의 향이 있는 진저브래드맨(gingerbread man: 사람모양의 생강쿠키) 등 세상의 모든 쿠키란 쿠키 만들기는 전부 구워낼 수 있는 쿠키전문가 같은 분이셨다. 우리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쿠키를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공되어 시중에서 포장∙판매되는 쿠키반죽을 사용하여 설탕쿠키를 만들었다. 쿠키 초보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제일 간단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얀 반죽을 손으로 얇게 편 후에 크리스마스 쿠키틀을 이용하여 다양한 모양으로 반죽을 찍어냈다. 그리고 찍어낸 그것들을 오븐 팬에 잘 올려서 구워냈다. 오븐에 넣어 둔 쿠키들은 6분여쯤 지나자 노릇노릇 구워졌고 집안은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찼다. 7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설명서에 나와 있는, 쿠키가 완성될 타이밍이었다. 나와 트리샤는 잔뜩 부푼 기대감을 안고 오븐을 열었다. OOPS! 뚱뚱했다! 분명 틀로 예쁘게 찍어낸 천사와 크리스마스트리, 루돌프 모양의 쿠키들은 모두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원래 형상을 찾기 어려웠다. 귀여운 천사의 모습에서 뚱뚱해진 천사로 순식간에 변한 쿠키를 바라보며 우리는 배꼽이 빠질 만큼 웃었다. 하지만  쿠키의 맛은 예술이어서 우리는 매우 만족했다. 외관보다 맛이 더 중요하다고 우리의 실수를 타이르며 말이다.

뚱뚱해진 쿠키에 만족한 나와 트리샤와는 달리 쿠키 전문가이신 트리샤의 할머니는 우리가 빚어낸 작품을 안타깝게 바라보셨다. 결국 할머니는 며칠 전 자신이 미리 대여섯 통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던 여러 종류의 쿠키반죽을 우리에게 건넸다. 갖가지 쿠키틀과 쿠키장식에 필요한 스프링클(sprinkle: 설탕과자나 케이크 위를 장식할 때 사용되는 여러 색과 모양의 작은 알갱이), 프로스팅(frosting: 버터나 쇼트닝이 들어가 촉촉하며 부드러운 크림과 같은 촉감을 내는 것)까지도 모두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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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쿠키 만들기 도전에 성공한 나와 트리샤. 재미로 시작한 쿠키 굽기에 완전히 빠져버린 우리는 이 날 온 식구들이 크리스마스 날 먹어도 남을 엄청난 양의 쿠키를 만들고 말았다.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쿠키를 만드는 동안 캐스빌 고등학교의 교환학생인 브라질 친구 비아(Beatriz Magalhaes)와 멕시코 친구 대니(Danny Regalado)가 찾아와 우리를 도왔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몇 달 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모국인 브라질로 돌아간 친구와 화상전화를 하기도 하면서, 우리 넷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쿠키를 만들었다. 트리샤 할머니의 대단한 솜씨로 만들어진 쿠키반죽을 사용해서 그랬는지, 두 번째 도전한 쿠키는 오븐 안에서도 마법처럼 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노릇하게 구워졌다. 오븐에서 쿠키를 꺼낸 후 몇 분 동안 그 열기를 식혔다. 그 위에 프로스팅을 바르고 스프링클을 뿌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게 장식을 했다. 집에 놀러 온 트리샤 동생의 친구들도 우리가 만든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꾸며진 과자를 맛있다며 덥석덥석 집어 먹었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쿠키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는 이미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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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집 안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나와 브라질 친구 비아.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한 친구였지만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트리샤와 직접 집에 찾아와 준 비아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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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에이미 가족과 함께. 생각할 때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지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지금이라도 달려가 만나고 싶은 나의 가족이 바로 이들이다.



호스트 아빠 오션이 만들어 준 스테이크와 통감자, 새우튀김을 마지막 저녁 만찬으로 ‘캐스빌에서의 일주일’이라는 제목의 내 이야기는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져 갔다. 저녁식사 후 키근은 자신이 얼마나 운전을 잘하는지 내가 떠나기 전에 보여주겠다고 했다. 깜깜한 밤, 지나다니는 차 한 대 없던 넓은 빙판길에서 키근은 나를 태우고 위험천만한 드리프트(drift: 코너를 돌 때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밟아 뒷바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상태) 기술을 펼쳤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차가 빠른 스피드에 회전하며 기우뚱해 지는 것에 깜짝 놀라 간이 콩알만 해져서 목이 쉬어라 꽥꽥 괴성을 질렀다. 그런 나를 보며 키근은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 또 반복하며 드리프트를 멈추지 않았다. 액션영화에서 볼 때는 분명 멋지게 보이기만 했던 드리프트가 현실에서는 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져 무서움과 두려움에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물론 그 날 키근은 자신의 드리프트 기술에 자아도취 했지만 말이다.

함께 쿠키를 만들었던 트리샤, 비아, 대니, 트리샤의 남동생은 자정이 지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내 캐스빌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내가 아직 끝내지 못한 나머지 짐정리를 하는 동안 친구들은 지하에 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이야기를 하며 내 정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새벽 2시쯤이었을까? 겨우 모든 짐정리를 마쳤다. 정리를 마치면 곧장 지하에 내려가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 나의 바람이었지만, 순식간에 밀려오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는 침대에 풀떡 쓰러지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트리샤와 비아가 내 방에 들어와 잠자고 있는 나를 조용히 불러 깨웠다. 정말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던 것이다. 친구들은 여태까지도 내가 짐 정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안했다. 이제는 정말 이별의 순간과 맞닥뜨렸다. 트리샤, 비아와 마지막으로 포옹을 나누며 그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내게 선사했던 소중했던 시간과 추억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캐스빌에서 잊을 수 없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한 순간들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별을 받아들이고,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겠지만, 그리고 또 어쩌면 정말 오랜 시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지만, 서로 자주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기로 약속하며 포옹을 했다. 따뜻한 밤이었다. 

(계속)

[ 2014-10-27, 17: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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