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9·38호실의 비자금과 張成澤(장성택)의 悲劇
前 CIA 요원 마이클 리의 現代史 秘話-47/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아들에게 권력이양을 서둘렀다. 이 과정에서 김경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는데 ‘돈 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군부와 노동당 일부세력이 장성택을 시기질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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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의 경제지원, 마약과 위폐, 외화벌이, 무기수출, 밀수, 그리고 각종 범죄행위로 마련한 돈으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對南적화공작을 지원, 김정일의 통치자금, 김정일 일가의 초호화판 생활비와 유흥비 지출, 그들의 애완견도 프랑스산 샴푸를 쓴다.
  
  2008년 9월30일자 <동아닷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역대 정부가 북한에 제공한 경제지원 액수는 김영삼 정부가 2266억 원, 김대중 정부가 2조7028억 원, 노무현 정부가 5조 6777억 원, 이명박 정부가 2113억 원으로 총 8조 818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美 의회조사국(CRS) 보고에 의하면 남한이 제공한 경제지원은 거의 전액이 북한에서 핵개발과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39호실의 경우
  
  북한의 경제를 파괴하는 무서운 제도적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남한사회에 몇이나 될까. 내각의 국가계획위원회가 나라 살림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김정일 개인이 마음대로 39호실과 38호실이란 조직을 통해 사용하고 있었다. 2004년 기준 북한의 구매력기준(PPP) GDP는 295억8000만 달러로 남한의 8578억 달러에 비해 30분의 1 수준이었다. 2012년에는 북한이 400억 달러, 남한은 1조 6400억 달러로 북한의 40배 이상이 되었다.
  
  이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인민은 굶주리고 헐벗고 있는데 120만 명의 군대를 유지하며 對南공작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39호실의 경우 1970년대 중반 조직이 되어 형식적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 산하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김정일이 직접 그 조직을 장악·운영했다. 당이나 내각이나 국가 등 어느 기관에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으로 아무도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김일성 생존 당시 일부에서, 특히 국가계획위원회와 경제관계 부처에서 “나라살림이 이렇게 힘든데 국내자금이 39호실에 너무 쏠리고 있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해선 인민이 이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면서 이를 일축하기도 했다. 39호실의 세부 조직이나 규모에 대해서는 북한 내에서도 비밀로 되어 있어 어떤 사건이나 활동에 의해 노출된 것 이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39호실이 보유하고 있는 비자금의 규모나 연간지출이 얼마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쉽게 말해 북한에서 가장 큰 지출은 전쟁준비와 군비유지를 위한 지출이고, 그 다음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기 위해 쓰는 돈이고, 세 번째는 남한을 파괴하기 위한 對南공작비이며, 네 번째가 인민경제를 위한 국가운영비라고 하는데, 39호실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對南공작활동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39호실은 대성은행과 고려은행을 장악하고 있다. 주로 대성은행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는데 스위스 은행과, 비엔나에 있는 금별은행과 이 은행을 통해 마카오, 홍콩, 독일, 일본, 영국 등 세계 유력은행에 자금을 분산 보유하고 있다. 1997년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에 약 46억 달러를 갖고 있다고 어느 고위급 탈북자가 진술했다. 이것은 김정일이 비자금의 ‘빙산 일각’이다.
  
  마약밀매와 위조지폐 등 범죄행위를 통한 자금조달
  
  39호실은 대성총국을 운영하며 산하 120여 개의 무역회사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대성총국이 너무 설치는 바람에 내각 산하 무역성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39호실은 국내에 원평대흥 수산사업소, 문천금강 제련소, 대성 타이어 공장 등 100여 개의 공장과 기업소를 직영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내 17개 금광이 39호실에 속해 있고 연간 약 12톤의 순도가 높은 순금을 생산하고 있다. 금 수출은 주로 마카오에 있는 조광무역상사가 처리해 왔으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국제 밀수꾼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모든 재외공관과 국내기관이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성금, 정성품, 외화벌이’ 등의 명목으로 김정일에게 바치는 뇌물이 39호실에 들어가며, 이를 위해 외교관들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면서 추잡한 밀수를 하고, 국내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민들이 추가노동으로 버섯재배, 산채채취 등으로 ‘위대한 장군님께’ 바치는 충성금을 마련했다. 재외공관에 나가 있는 대사나 외교관들의 근무공과는 39호실에 바치는 외화벌이 액수로 판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밀유지 때문에 인민군 보위사령부 소속 몇 개 연대 병력이 양강도와 자강도의 산간오지에서 생산하는 아편(일명 ‘검은 금’)과 코카인(일명 ‘백도라지’)과 필로폰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39호실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 식량이 부족한 북한 처지에 1만7000 에이커에 달하는 농경지를 양귀비 재배지로 전환해 연평균 약 50톤의 아편을 생산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요덕수용소 부근에 수용소 면적 15배의 아편재배 농장을 개간했다고 한다.
  
  美 의회조사국(CRS)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 외교관들은 면책특권이 부여된 외교 행랑을 이용해 지난 수십 년 동안 헤로인, 코카인, 필로폰, 아편 등을 밀수했고 15개국에서 최소한 35회 이상의 마약밀매에 연루됐다고 한다. 1996년부터 드러난 북한의 ‘메타암페타민’ 수출은 주로 일본, 태국, 필리핀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권을 겨냥한 것이었다. 북한은 지금도 연간 10~15톤의 고품질 ‘메타암페타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또 美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북한이 마약밀수로 버는 돈은 연간 약 1~2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은 39호실의 비자금 조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밀수와 마약 외에 위조달러 유포가 포함되어 있다. 북한은 가장 정교한 위폐 기술을 갖고 있다. 미국의 조폐공사가 사용하고 있는 인쇄기와 비슷한 1000만 달러짜리 요판 인쇄기로 가짜 달러를 찍어낸다. 북한의 위조달러 유포가 최초로 적발된 곳은 1974년 칠레에서다.
  
  그 후 적어도 몽고, 독일, 러시아, 마카오, 홍콩 등 9개국에서 적발되었고, 한국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연간 유포 액수는 약 15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를 단순 범죄행위로 볼지도 모르지만 미국을 위시한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참으로 심각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39호실 비자금의 용도
  
  이러한 범죄행위를 통해 조성되는 39호실의 비자금은 과연 어떠한 목적에 사용될까. 중앙에서는 김정일 직속 비서실 내에 두 개의 전담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나는 권영록을 중심으로 하는 자금관리반이다. 또 하나는 박용무를 중심으로 하는 물자 조달반이었다. 권영록은 주로 해외에 나돌며 비엔나에 있는 금별은행 주변에서 맴돌았다.
  
  그는 내각 총리에게 호통을 칠 만큼 김정일의 막강한 측근이었다. 39호실 비자금의 유통, 환전, 송금, 배정, 지출 등 자금운영의 총책이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자유분방한 호화생활을 누렸다. 권영록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가족들이 스위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러시아, 유고 등 해외에 체류할 때 사용하는 호화주택이나 비밀 아지트의 구입과 운영을 담당했다. 스위스 은행에 있는 39호실 비자금의 관리는 베른 주재 북한대사가 총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 같은 숨은 이해관계 때문에 스위스 정부는 눈에 띄게 스위스 내에 체류하고 있는 김정일의 애첩이나 측근들을 보호해 서방세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박용무를 중심으로 하는 물자 조달반은 다엑심(Daexim)이란 회사를 운영하며 국내에 아미산 상사, 2월 은빛 달 상사 등 여러 개의 방계회사를 두고 있었다. 로마, 파리, 코펜하겐, 프라하, 부다페스트, 브라티슬라바, 마카오 등 해외에 10여 개의 지사와 상주요원들을 두고 김정일과 그의 가족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자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역할을 했다.
  
  박용무는 북한의 외교여권 외에 리카르도 박(Ricardo Pwag)이란 이름으로 브라질과 포르투갈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일본과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니며 김정일만을 위한 소위 ‘1호 물자’를 조달했다. 39호실의 비자금은 최우선 순위로 금수산 기념궁 유지비와 金氏 일가의 호화생활 유지비에 쓰였다. 김정일의 숨겨둔 애첩에 대한 생활비는 물론 39호실 비자금에서 나갔다.
  
  7~8월 삼복중에도 김정일은 유럽 각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었다. 이를 녹지 않게 평양까지 보내는데 담당일꾼들은 아이스크림 한 통을 위해 특별 비행기 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정일의 소위 기쁨조 파티나 모든 유흥비도 39호실 비자금에서 지출됐다.
  
  그리고 김정일의 체제유지비에 39호실 비자금이 사용됐다. 주체사상과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작업에 관련된 모든 사업, 중요한 국책 사업, 선심용 사업,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를 따르는 측근 관리에 쓰는 돈이 그 돈이었다. 당의 정치국원급 이상 간부와 국방위원회 위원들과 기타 측근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하며 호화주택과 벤츠 차량 2대씩이 배정됐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對南공작활동의 자금원이 39호실이란 사실이다. 과거 남한정부와 현대가 제공한 모든 돈이 39호실에 흡수됐다. 금강산 사업이나 개성공단 사업에서 버는 돈이 39호실에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개성공단의 공원들이 버는 돈의 60퍼센트가 39호실에 들어간다.
  
  해외동포들이 北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고 생활보조비로 주고 온 돈, 그리고 남한의 기독교나 기타 종교단체들이 선교목적으로 제공하는 돈이 철저하게 39호실에 흡수된다. 김대중이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는 조건으로 제공한 4억5000만 달러가 북한의 對南공작 전초기지의 하나인 마카오 조광무역상사의 계좌를 통해 39호실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사건이다. 김대중·노무현 시절 10년 동안 북한에 준 돈이 모두 39호실에 들어갔다.
  
  2005년에 김정일의 범죄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39호실의 2500만 달러를 불법자금 세탁혐의로 미국이 제재를 가했을 때 북한은 그 정도의 금액으로도 심각할 정도로 휘청거렸다. 이런 사례를 보아도 39호실의 비자금이 북한의 체제유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경제압박을 선제공격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다.
  
  38호실의 경우
  
  38호실은 김경희가 중앙당 경공업부 부장 재직 당시 김일성의 특별 배려로 경공업부 산하에 자금 활성화를 위해 조직됐다. 그러나 김경희는 38호실을 통해 조성되는 자금을 인민경제를 위해 활용하지 않았다. 김정일 일가의 비자금으로 치부해 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으나 아무도 그를 꺾지 못했다. 39호실의 비자금은 주로 김정일의 통치자금으로 사용됐으나 38호실의 비자금은 주로 김정일 일가의 內帑金(내탕금) 즉 개인 자금으로 사용됐다.
  
  39호실 계열의 상사들은 주로 외교관계가 있는 나라들을 상대로 교역을 했고, 38호실 계열의 상사들은 주로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을 상대로 교역을 했다. 그리고 38호실은 해외에서 식당들을 운영했고 국내에서는 고려호텔과 외환상점들을 운영했다. 당시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도 38호실 비자금에 상당히 관여했다. 2008년에 자금관리 개선조치로 39호실과 38호실이 통합되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2010년 5월 다시 분리됐다. 그리고 한동안 장성택이 39호실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김정일의 애첩 김옥이 38호실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첩보도 있었다.
  
  경제운영의 모순
  
  북한의 경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세 갈래’ 통제경제(three-pronged economic practice)를 운영하는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향후 어떠한 경제개혁이나 개방정책을 도입한다 해도 이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수렁에 빠져 있는 북한의 경제는 구제할 길이 없으며 자연도태 될 것이다.
  
  ‘세 갈래’ 경제란 이런 것이다. 국정운영에서 가장 비중이 높아야 할 내각담당 제1경제위원회의 ‘민생경제’는 최하위 우선순위로 떨어져 있고, 1년 GDP가 고작 400억 불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당 산하 제2경제위원회의 ‘군수경제’에는 재래식 무기에서 핵무기 개발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전쟁준비자금을 배당하고 있다. 김씨 일가를 위한 제3경제위원회의 ‘수령경제’에는 국가 자산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이 ‘수령경제’를 조성하는 39호실과 38호실의 비자금 운용에서 파생되는 비리와 암투, 이권 경쟁, 배신, 분열, 혼란, 체제불안, 피의 숙청 등 심지어 믿었던 조카가 고모부에게 온갖 더러운 누명을 씌워 처형하는 비극까지 발생했다. 이런 ‘악순환’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결국 체제모순으로 쓰러질 것이다.
  
  장성택의 꿈과 오판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39호실 비자금은 베른에 있는 북한대사 이철(본명 이수용)이 1987~2010년 기간 동안 장장 23년간 관리했다. 2008년 7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이양을 서두르고 있을 때, 이철이 2010년 평양에 돌아와 스위스 은행의 39호실 비자금을 후계자 김정은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분산된 비자금 관리를 수습하는데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과거 노동당 작전부를 지휘했던 오극렬 계열에서는 이들 자금이 회수됐지만, 중앙당의 장성택 계열이 장악한 부분은 완전 회수가 불가능했다. 자금관리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김경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서운 김정일 시대는 가고 철없는 김정은 통치가 출범하면서 ‘돈 냄새’를 더 맡고 싶어하는 군부와 노동당 일부에서 장성택의 영향력과 비자금 관리의 기득권을 시기질투하면서 칼을 갈고 있었다.
  
  2002년 10월26일~11월3일까지 8박9일간 18명의 북한 경제시찰단이 남한을 다녀갔다. 당시 시찰단에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박남기가 단장이었으며 장성택과 화학공업상 박봉주가 끼어 있었다. 남한의 놀라운 경제발전을 목격한 그들은 개방경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으나 살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다가 김정일 시대가 가고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자 서서히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성택이 순진하게 자신의 영향력만 믿고 ‘수령경제’ 비중을 내각중심의 ‘민생경제’로 이전할 것을 염두에 두고, 박봉주를 내각총리에 앉혔다. 가시적으로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위 ‘연식개혁’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장성택은 결정적으로 한 가지를 오판했다. 북한에서는 수령절대주의와 그를 옹위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형태의 경제개혁도 불가능하며, 경제개혁 그 자체가 체제에 대한 도전인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경제개혁은 필연적으로 39호실과 38호실의 비자금으로 조성되는 ‘수령경제’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내각중심의 경제활동과 외화벌이는 더 활발해지고 39호실과 38호실의 외화벌이는 축소되어야 한다. 장성택이 더 현명했다면 경제개혁 이전에 체제의 목을 치는 칼을 먼저 뽑았어야 했다. 우리는 그가 북한의 고르바초프가 되어주기를 기대도 해 보았다.
  
  <계속>
[ 2014-11-18, 17: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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