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는 이후락의 과잉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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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16일.
  
  저녁 6시 30분쯤 청와대 식당에서 朴대통령은 비서진들과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 경호 문제가 화제로 오르자, 대통령이 말했다.
  “沿道(연도) 경비는 사전에 행차를 알리는 것이므로 적절치 못해. 그리고 자동차로 지방에 다녀올 때도 서울 시장이 뻔질나게 나오는데 그 시간에 자기 일이나 하지. 그런 필요 없는 짓 하지 말라고 일러 줘요.”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대통령은 사투리 이야기를 꺼냈다.
  “군 생활을 하면서 各道에서 모인 출신 장교들 때문에 평안도·함경도·경상도 사투리를 한때 섞어서 썼던 적이 있어. 지금도 그 버릇이 좀 남아 있을 거야. 윤태일 서울 시장과 이주일 감사원장이 어떻게 말하는 줄 아나? ‘앙이 먹겠다’, ‘앙이 술 마시겠다’고 얘기해. 일본도 가고시마 사투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대통령이 尹시장과 李원장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어 비서관들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도 소리내어 웃었다.
  
  李厚洛의 과잉 충성, 金大中 납치
  
  1973년 9월 7일.
  
  이날짜 조선일보는 ‘당국에 바라는 우리의 충정,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사설의 필자는 鮮于煇 주필이었다.
  이날 朴대통령은 李厚洛 정보부장이 보고차 들리자 이렇게 말했다.
  “어이 李부장, 정보부는 사람 잡아 가두는 데라는 말이 있는데 鮮于 주필도 잡아넣을 거야?”
  대통령의 말투는 잡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이 사설의 全文이 실렸다. 鮮于 주필은 수원에 있는 친지 집으로 피신했다.
  며칠 뒤 선우휘의 동생 선우련 공보비서관은 청와대 구내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나오는 대통령을 우연히 만났다.
  “요즘 형님은 잘 계신가?”
  “형님은 사설 때문에 정보부가 잡으려고 해서 피신중입니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형님이 피신 중에 닭고기를 많이 먹어 살이 무척 쪘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잡아넣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정보부장에게 전화할 테니 형님에게 오늘 저녁 마음 놓고 나오시도록 전해요.”
  대통령의 그 말이 있고 난 뒤 선우휘 주필은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고, 일주일이 더 지나서는 선우련과 함께 대통령이 초대한 위로 술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한참 동안 술을 마시다가 대통령이 몹시 불쾌하다는 듯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그놈 말이야. 머리가 좋고 빨리 돌아간다고 내가 중용했더니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가지고 나를 국제적으로 망신당하도록 하고 있어.”
  “그래도 충성하느라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과잉 충성이오.”
  
  1973년 10월 19일.
  
  이날 朴대통령은 오전에 吉典植공화당 사무총장과 金龍泰원내총무를 불러 당무 보고를 받았다. 오후엔 윤주영 문공부 장관을 면담했다. 대통령은 식당에서 저녁6시10분부터 2시간40분 동안 김정렴 비서실장, 박종규 경호실장, 홍성철 정무수석, 조상호 의전수석, 김시진 민정수석, 김성진 공보수석, 오원철 제2경제수석, 김용환 경제1수석, 유혁인 비서관, 선우련 비서관, 양윤세 비서관과 함께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아주 편한 분위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일본 재벌들이 한국에 진출함에 있어서 때로 과한 욕심을 부려 세금도 적게 내려고 하고, 또한 자기네 나라에서는 못하게 하는 공해 산업을 우리 나라에 공동 투자 형식으로 들여오고 있는데, 기업인들은 이 점에 대해서 유념해야 할 것이야. 언론인들에게 산업 시찰을 권유해서 이런 점들을 실제로 보고 지적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구먼. 지금 유행하고 있는 자연석과 모래 및 자갈의 수출을 엄금해야지,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몇 년 못 가서 거꾸로 우리가 모래와 자갈을 수입하는 판국이 될 것이야. 이에 대한 조처를 정부가 하면 또 불만이 있을 터이니, 언론이 이런 것을 실제로 보고 신문에다 쓰면 자연스럽게 경제인들에게 충고도 되고, 효과도 볼 수 있을 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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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른 사람이 잘사는 것은 수상한 일이야”
  
  1973년 11월 2일.
  
   합동통신 趙成天 기자가 주일 특파원으로 전출하는 것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 모임이 朴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있었다. 趙成天, 崔鍾哲(동아방송 간사), 李鎔昇(경향신문 간사), 그리고 비서관 중에서는 김성진, 유혁인, 권숙정, 선우련 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민성에 대한 얘기를 필두로 무척이나 진지한 모습으로 여러 화제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잘 살고, 게으른 사람은 못 사는 사회야말로 건전한 사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게으른 사람이 잘 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죄다 수상한 일이야.”
   대통령은 대화 중간에 잠시 중동의 석유 국가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난 후, 화제는 또다시 국민성 문제로 넘어왔다.
   “자연의 혜택으로 국민이 오히려 게을러지고 진취성이 없어지면 그 국민의 장래는 어두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의 혜택이 많았던 곳은 오히려 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의식주의 불편이 없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빈둥빈둥 놀다가 보니 때는 이미 늦었고…. 결국 남방 지대의 국민들이 미개국으로 남게 된 것은 앞에서 말한 근면성과 깊은 관계가 있어요. 때문에 자연의 혜택 여부보다는 국민들의 근면성 여하에 따라 경제력이 좌우된다고 확신합니다.”
   정치 문제 역시 중요한 화제였다.
   “공화당과 신민당 국회의원들을 보면 아직도 선거구를 의식하면서 구태의연한 의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다 보면 국회는 물론이고 나라도 발전하지 못합니다. 유정회 의원들처럼 진지한 태도로 모든 일을 제발 국가적 차원에서 해 주면 내 마음이 좋겠습니다.”
  
   “정말 필요한 건 대공화기”
  
   1973년 11월 9일.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에게 오찬을 베풀었다.
   “지금부터 내가 한 말들은 극비 사항에 해당되기 때문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시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보도 금지(off the record)를 요청한 후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남북 관계와 주한 미군에 관한 것―대통령이 알고 있는 각종 정보와 계획, 한미 간의 민감한 문제 등―이었다.
   “북한이 남북회담을 할 때, 당초에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미국 내의 여론을 환기시켜 실효를 거둬 보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그 반응은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미군이 한국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니까 대화를 끊으려 하고 있어요.
   그뿐 아니라 북한이 지금 金大中 사건을 트집잡아 李厚洛이 밉다고 회담을 중단시켰으니까, 때가 오면 쌍방 대표의 전면 교체를 제의하여 회담 재개를 촉구할 생각입니다. 그 시기는 아마 유엔 총회가 끝난 후의 적당한 시기가 좋을 듯합니다.
   현재로선 남북조절위원회나 적십자회담 모두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굳이 의의를 찾는다면 단지 회담을 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남북대화는 우리의 국력이 월등하게 강해 金日成 스스로가 ‘이제 무력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자인하게 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장을 더욱 강화하고, 이에 바탕이 되는 경제력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북한의 정세를 좀더 자세하게 분석해 주었다.
   “(제4차) 중동전이 일어났을 때, 나는 한반도의 안보를 무척 걱정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북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습으로 상대국 영토를 점령한 후 휴전하는 그런 과거 사례가 金日成에게 어떤 모험심을 일으키게 할지도 모릅니다.
   또 요즘 보면 평화협정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는가 본데, 북한의 저의를 잘 알아야 합니다.그들이 평화협정을 제의하는 것은 진정으로 건설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 전술상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 회담 결렬의 책임을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무력 적화통일을 하려는 심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국민들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요.
   금년 유엔 총회에서의 남북 대결은 어떤 쪽의 안이 통과되더라도 그대로 실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대결은 누가 지지국을 많이 얻느냐 하는 스코어전(戰)에 불과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환담은 그칠 줄 몰랐으며, 특히 무기 구입 부분에서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앞으로 안보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대공화기(對空火器)입니다. 이 화기 가격은 한 개에 10만 달러 정도라고 하는데, 가령 미국이 원조를 하지 않거나 팔지 않을 경우에는 구라파에서라도 꼭 사올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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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의 기본선을 지켜라”
  
   1973년 11월 30일.
  
   이날 오전 朴대통령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0차 수출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어서 무역회관을 찾아가 세계우수상품시제품전시회를 구경했다. 오후에는 내년도 예산안 보고차 온 태완선 경제부총리, 김주인 국회예결위원장, 최동규 기획원 예산국장을 만났다. 朴대통령은 경인에너지 사장 金鍾喜를 불러 약40분간 요담한 뒤 전남일보 金南中사장을 면접했다. 저녁 6시40분부터 8시25분까지는 수석비서관과 공보비서관을 불러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曺相鎬 의전수석, 洪性澈 정무수석, 金詩珍 정보수석, 金聖鎭 공보수석, 吳源哲 경제제2수석, 金龍煥 경제제1수석, 柳赫仁 정부비서관, 鮮于鍊 공보비서관, 梁潤世 경제비서관이 참석했다.
   朴대통령은 중앙일보내의 노동쟁의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대통령은 식사 시간 내내 유신 정신의 고양을 강조했다.
   “지금 사회를 보면 모든 면에서 긴장이 풀린 것 같은데, 우리가 유신을 단행할 때 설정해 둔 기본선에서 절대로 후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평균선을 기본선보다 강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늦추기도 하고 죄기도 해야 되겠지.”
   잠시 후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 대해 위로의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본사에서 가끔씩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모양이야.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社에서는 기자들이 무조건 청와대 쪽을 두둔한다고 생각하는가 보지요. 키신저하고 만났을 때 들은 얘기인데, 그쪽도 신문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그러더군.
  ‘신문이 국가를 해치고 있다’고까지 표현했어. 위에서 볼 때는 그러한 느낌들이 다들 비슷한 모양이야.”
   대통령은 키신저와 환담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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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27, 16: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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