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모를 자유 戰士의 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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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自由 戰士의 碑
  
  
   1950년 6월 28일 여기에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시민이 맨 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
  
   여기 자유 서울로 을어 오는 이 언덕에
  
   붉은 군대들이 침공해 오던날
  
   이름도 모를 부상병과 입원환자
  
   이들을 지키던 시민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을 부르는 소리 남겼노라
  
   그들의 넋은 부를 길이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속에 편히 쉬어야 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게 하라
  
  
  [해설] 이 비문은 서울 대학 병원 영안실 옆 동산 입구에
   6. 25 당시 학살된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석비에 새겨진 글 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한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전 전선을 유린하고 당시 서울의 북쪽
   관문이었던 미아리 고개 전투마저 탱크를 앞 세우고 돌파했을때
   지금의 창경궁앞 원남동 서울 대학 병원에는 1,000여명의 부상장병
   들과 일반환자들이 병원 응급실, 입원실, 수술실, 병원복도 할것 없이
   가득차 있었다 합니다 국군은 남소위가 이끄는 1개소대병력만이
   경비를 하고 있었는데 서울 함락을 목전에 둔 다급한 전황속에서도
   당시의 의사, 간호사들은 환자를 두고 피난할 수 없다 하여
   그대로 병원에 남아 있었고 이에 경비 병력 또한 서울대 병원
   낮으막한 뒷산에 저항 진지를 구축하고 결사 항전에 들어 갔습니다
  
   인민군은 1개 대대 병력을 투입 치열한 전투 끝에 소대장 남소위가
   전사하고 선임하사 민 하사를 비롯한 소대원 전원이 부상병들을
   보호하려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곧 이어 인민군들은 병원 구내로 진입하여
   900명 이상의 부상병, 입원환자 및 그 가족을
   산채로 구덩이에 묻거나 불에 태워 죽이고
   사람들을 총을 난사하여 무자비하게 학살 하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상) 국방 군사 연구소
  [한국 전쟁사] (제1권) 전사 편찬 위원회
  
   +++ 명복을 빕니다 +++
  
  
[ 2005-03-27, 19: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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