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닮아가는 南北의 외교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벼랑 끝 외교]
  
   북한은 ‘벼랑 끝’ 외교(brinkmanship diplomacy)에 대해 국제특허를 받았다. 로열티를 얼마나 바쳤는지 모르나 한반도 唯一합법정부인 한국도 2000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이 외교정책을 조금씩 흉내 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2005년부터 무엇에 쫓기듯, 아니면 크게 자신감이 생긴 듯 노골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올인 작전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도박에서는 이를 죽기 살기(all-in)라고 한다. 한국인은 카지노나 주식시장에서 이 올인 작전을 쓰는 자가 부지기수인데 하나같이 패가망신한다. 그러나 15년간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바둑에서는 다르다. 자주 쓰는 건 아니지만, 이를 써서 멋지게 성공하곤 한다. 실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작년 이후 올인보이 최철한이 이 수를 써서 불가사의하게도 고금세계제일이라는 이창호한테 번기 승부에서 연이어 3번이나 이겼다. 안타깝게도 아직 그것이 세계무대에서는 안 통한다. 이창호를 생각만 해도 지난 10여년 동안 가슴이 답답했던 중국의 상호가 무르익은 구양신공으로 최철한의 설익은 구음신공을 맞받아쳐서 ‘공공의 적’을 물리치고 만리장성을 넘어온 그를 응씨배 정상에서 간단히 무릎 꿇렸던 것이다. 그 얼굴에서 해맑은 웃음이 사라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과는 3 : 1!
  
   반면에 이창호는 연초에 영웅을 질시하는 한국의 독특한 풍토를 그대로 이어받은 기계(棋界) 때문에 깊은 내상을 입고서 고독의 깊은 계곡에서 폐관수련에 전념하는 중에 내상을 반도 치료하지 못한 몸으로 천하절경 금강산에 올라갔다가 올인보이가 전력으로 던진 검은 돌을 맞고 분분히 흰 돌을 던지며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지만, 기적적으로 만신창이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벌떼처럼 덤비는 중국과 일본의 절정 기사들에게 한 자락 숨겨 두었던 잠력을 실어 검은 돌 흰 돌을 하늘에 휙 뿌렸다. 픽, 픽, 픽, 픽! 4명이 연이어 쓰러졌다. 어린애 팔 비틀기로 이겨 버린 것이다.
  
   개인의 명예가 아닌 국가의 명예가 걸린 싸움을 맞아, 그는 한 자락 숨겨 두었던 잠재력을 지긋이 끌어올려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늘 가득히 쏟아져 내려오는 검은 돌 흰 돌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흰 돌 검은 돌을 마주 던져서 모조리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몸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기적 같은 승리를 낚았던 것이다. 우레같이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 폭포수같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 여운처럼, 아름다운 시처럼 동양 3국에 다시 울려 퍼지는 선문답 같았던 그의 예언! 절체절명의 승부를 앞두고 돌부처처럼 과묵한 그가 단호하게 던진 한 마디, 뭇 영혼을 울렸던 저 한 마디: “포기는 할 수 없구요.”
  
   “신에게 아직 12척이 남았으매, (저들이 비록 1,000척을 거느렸다고 하나) 감히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미완의 대기인 최철한도 이미 국내에서는 올인 작전으로 크게 성공했거니와, 불가사의한 이창호와 역사의 기적 충무공도 올인 전략을 구사해서 세계 최강 세력과의 대결에서 기적을 낳은 적이 있다. 공전절후의 실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여건은 각박했지만, 실력과 정신력과 정보력과 지혜가 하늘을 가리고 땅을 덮은 충무공과 이창호는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전략과 전술로 낱낱이 분석해 보면 전혀 기적이 아닌 기적을 낳을 수 있었다. 각각 명량대첩과 상해대첩을 낳았던 것이다.
  
   [올인 작전에 실패한 신립과 원균, 인조와 대원군]
  
   그러나 감히 조총의 탄막을 향해 조무래기 여진족에게 써 먹던 방식으로 기마병을 몰아 왜병을 단숨에 짓밟아 버리려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신립이나 퇴로도 확보하지 않은 채 왜적이 파 놓은 함정으로 짓쳐 들어간 원균도 올인 작전을 썼지만, 일패도지 싸움다운 싸움 한 번 못해 보고 순식간에 군대를 궤멸시키는 바람에 제 목숨 하나 건지지 못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상황에서, 돕기는커녕 왜적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들이 그림 같은 다도해에서 충무공이 승전의 깃발을 울긋불긋 높이 휘날릴수록 그나마 충무공 덕분에 온전했던 호남에서 식량과 군사를 더 한층 뭍으로 뭍으로 징발해 가고, 심지어 수군도 뭍으로 막무가내로 빼내 가는 한편 중상모략의 칼을 천하제일 일본도보다 더 예리하게 가는 상황에서, 충무공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눈물과 땀으로, 부드러운 눈길과 넉넉한 품으로, 묵묵히 군사와 피난민의 잠재력을 십이분 끌어올려 고심참담하게 길러낸 당시 세계최강의 전함과 천하의 겁쟁이들이었으나 충무공 휘하에서 하나같이 용 같고 범 같은 군인으로 거듭 난 조선의 수군을 이끌고, 원균이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나아갔다.
  
   기어코 중상모략의 칼로 충무공의 단전을 깊숙이 찌른 뒤에 충무공의 사병이나 진 배 없었던 세계최강의 수군을 고스란히 접수한 후 마침내 한 척도 남기지 않고 건곤일척의 올인 작전을 펼친다며 몽땅 이끌고, 왜군의 고함 소리만 듣고도 간이 콩알 만해져서 경상우도의 대소 전선 1백여 척을 모조리 자침시키고 화포와 군기를 바다 속에 수장시킨(징비록) 후 충무공 뒤에 졸졸 따라다니다가 장수가 된 지 처음으로 총지휘자가 되어 진군의 북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원균이 왜적을 무찌르려 나아갔다. 섬 곳곳에 군사와 전함을 숨기고 조선의 수군이 깊숙이 들어오기만을 키득키득 웃으며 기다리던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무턱대고 한산도에서 나와 거제도를 뒤로 하고 파도가 높은 난바다로 원균이 나아갔다.
  
   400년 후, 아들들을 몽땅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어 군대에 한 명도 보내지 않은 KBS의 사장 정연주가 해괴망측한 대하드라마를 만들어 찬탄해 마지않는 원균이, 그 옛날 스스로는 왜병은커녕 닭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주제에 시기심을 정의감으로 확신하고 중상모략을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맹신한 선조와 원균과 윤두수 등처럼 충무공을 마냥 빈정대는 것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삐딱한 이름을 크게 날리려는 소설가 겸 교수라는 김탁환이 하늘처럼 우러러 받드는 원균이 나아갔다.
  
   충무공을 중상모략의 칼로 사정없이 찌른 뒤 수군 중 절반을 이미 뇌물을 받고 ‘고향 앞으로’ 보내어 사수는커녕 노군(櫓軍)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조선과 명과 왜가 서로 다른 꿍꿍이속으로 외교전을 펼치던 몇 년 동안 최후의 그 날을 위해 전력보강에 여념이 없던 충무공을 비겁하고 용렬한 자로 몰았던 주제에, 막상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갖은 핑계를 대며 어물쩍거리다가 도원수 권율에게 곤장을 맞고 씨근덕거리며 충무공이 그토록 중요시했던 정보 파악과 군인의 사기를 깡그리 무시하고 원균은 모든 것을, 조선의 운명과 조선 수군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까지 삼신할미와 칠성님에게 오롯이 맡기고 대소 300여척의 3도 수군을 몽땅 이끌고, 올인 작전을 펼친다며, 건곤일척의 전쟁을 치른다며 거친 파도를 잠재울 듯 큰소리치며 느릿느릿 왜군을 찾아 나섰으니, 가만히 두어도 왜병이 하늘을 향해 공포탄만 콩 볶듯 쏘아대도 조선의 판옥선과 거북선과 수군은 물고기에게, 조개에게, 해초에게, 꽁치와 고등어와 갈치와 홍어와 멸치와 전복과 대합과 굴과 플랑크톤과 미역과 다시마에게 육보시하기 위해 다투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빠지게 되어 있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실지로 그랬다!
  
   욱일승천하는 후금에게, 이미 온몸에 죽음 꽃이 만발한 명을 여반장으로 거꾸러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후금에게 천둥 같은 목소리로 인륜도덕을 논파한 인조와 주전파도, 청·일·러 세 강국 사이에 끼어 지엄하신 왕이 한 고을의 사또 정도의 힘밖에 없었던 나라 형편에 척화비를 세운 대원군이나 이를 열렬히 지지한 위정척사파도 신립이나 원균과 진 배 없는 무리였다. 아무런 실력도 정보도 지혜도 없이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고 사는 주제에 가당찮게 도덕적인 순결성과 권력의 정통성을 내세운 그들은 필패할 수밖에 없었다.
  
   [서희가 큰소리치고 을지문덕이 멋진 오언절구를 읊을 수 있었던 까닭]
  
   큰소리치려면 개인적으로는 을지문덕이나 서희의 용기와 지략과 임기응변술을 갖추고 국가적으로는 막강한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서희가 만주를 차지한 거란족의 요가 아니라 청천강 이남을 차지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멋진 논리를 청산유수처럼 읊조려 거란의 대군을 물리쳤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인조와 같은 무리들이거나 지적 능력이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 되는 자들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인조 시대의 주전파들도 능히 청을 준엄한 말 몇 마디로 물리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말의 문인관료들도 능히 일본과 청과 러시아를 물리쳤을 것이다. 사서오경을 누구나 달달 외고 있었으니까.
  
   서희가 소손녕의 8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은 고려가 정종 이래로 30만의 광군을 보유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초전에서 고려군에 패한 후 소손녕은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었다. 그는 서희에게 말싸움에서 진 후 고개를 푹 숙이고 80만 대군을 끌고 되돌아간 우매하고 용렬한 장군이 결코 아니었다. 말도 조리 있게 잘했지만, 서희는 국제정세를 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 거란족이 가장 염려한 것은 이제 막 중원을 도모하려고 하는 참에 고려가 송과 동맹관계를 맺고 요의 뒤를 급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희는 기꺼이 요의 연호를 쓰겠다고 했던 것이다. 송을 돕지 않고 요를 상국으로 섬기겠다고 한 것이다. 시원시원하게, 전혀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요의 신하국을 자처한 것이다. 조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는 중립을 지키기로 굳게 약속했다. 이에 배후를 안전하게 도모한 소손녕은 황제국의 장수로서 은혜를 베풀어 여진족이 살던 강동6주를 고려가 취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고려의 황제는 요의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러 가지 않았다. 그래서 중원을 짓밟은 요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던 것이다. 결국은 실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에 고려도 놀고 있지 않았다. 말의 외교는 미봉책이라는 현실
  을 직시하고, 미구에 칼의 외교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 편입한 강동6주를 철옹성으로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마침내 강감찬이 귀주에서 대첩을 거둠으로써 고려는 동북아시아에서 요와 송과 더불어 솥발처럼 굳세고 안정되고 대등한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을지문덕의 용기와 지혜도 놀랄 만하다. 칼과 창과 방패의 군사력 이상으로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대장군이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적장을 찾아가서 항복하는 척하고 적정을 샅샅이 살폈다. 그렇게 직접 관찰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는 필승의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군인이었지만 무식하게 직접화법으로 큰소리친 게 아니었다. 말만 번드레한 조선이나 북한이나 오늘날 한국의 위정자와는 차원이 다르게 세련된 교양인이었다.
  
   그는 안전한 곳에 이르러 승리를 확신하고서 오언절구의 시로써 행군 길이만도 장장 960리에 뻗쳐 있었던 113만(보조인원까지 합하면 300만 내지 400만) 적군을 감히 조롱하는 한편 엄히 경고하면서 최후통첩을 날렸다. 얼마나 멋진가! 가슴이 떨리지 않는가! 눈가에 이슬이 맺히지 않는가! 심모원려한 됨됨이로 보아 그는 아마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필승의 전략과 전술과 작전을 구상하는 한편 그 시를 여러 번에 걸쳐 고쳐 썼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즉흥시처럼 낭랑하게 읊었을 것이다.
  
   與隋將于仲文(수의 장수 우중문에게)
  
   神策究天文 (그대의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도리를 꿰었고)
   妙算窮地理 (그대의 놀라운 헤아림은 땅의 이치를 아울렀도다)
   戰勝功旣高 (싸우면 이기는 그대의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이쯤해서 그만 만족하고 돌아감이 어떻겠소)
  
   [약할수록 큰소리치는 한국인]
  
   한국인은 힘이 약할수록 상황이 불리할수록 큰소리친다. 젖 뗄 무렵부터 익힌 솜씨다. 귀는 꼭 막고 입은 있는 대로 벌려서 극히 일부만 타당한 자기 논리만 바락바락 내세운다. 떼를 쓴다는 말이다. 떼쓰면 안 통하는 게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굴 믿고? 당연히 부모를 믿고서! 때로 한두 대 맞는 수도 있지만, 그건 그 다음에 돌아올 사탕이나 장난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비법을 한국인은 누구나 익히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벼랑 끝’ 외교는 철저히 계산된 작전이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상대의 기를 콱 막는 것이 첫째 작전이다. 그리고는 양보하는 척 ‘안 받으면 말고’ 식으로 작은 조문을 몇 개 툭 던지고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면 시간을 질질 끌면서 그 하나하나에 뇌물을 요구한다. 이것이 두 번째 전략이다. 세 번째는 갖은 핑계를 대며 상대방에게 계약 위반의 죄를 뒤집어씌우고 불리한 조항은 단 한 줄도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 모두가 국내에서 정적을 처단하고 절대 권력을 확보할 때 써 먹던 방식이다. 1945년 이후 김일성 부자는 적어도 50만 명은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었을 건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제와 일제와 남조선괴뢰의 첩자란 죄명을 덮어썼다. 99.9999% 날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시대에 정적을 제거할 때에 임금을 시해하려는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날조하던 것과 흡사하다.
  
   송시열이 효종의 천진난만한 북벌계획으로 키운 군대를 요상한 논리를 동원하여 이를 장악하여 사약을 마시고 죽을 때까지 임금 이상의 권력을 휘둘렀듯이, 세도 정치를 하던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도 외국 군대에 비하면 다 합쳐야 대대급도 안 되었지만, 국내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군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서 정적을 압살했듯이, 김일성과 김정일은 처음에는 소련의 4만 군대에 빌붙어 다음에는 100만 인민군을 한 손에 틀어쥐고 정적을 필요할 때마다 대역무도죄로 몰아 그 씨를 말렸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다. 북한은 폭력과 방송과 국가보위부(비밀경찰)와 사회안전성(경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든 후 정적을 여반장으로 제거하던 솜씨를 외교에서도 그대로 써 먹는다. 뒷받침은 물론 군대다. 그래서 300만이 굶어 죽고 2000만이 영영실조에 걸려도 군대는 더욱더 강성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선군정치요, 강성대국전략이다. 따라서 김정일은 국제환경이 불리할수록 미사일과 핵무기와 전투기와 잠수함의 개발과 구입에, 땅굴파기에 전력을 기울인다. 최소한 한국을 박살낼 수 있거나 최악의 경우에 자폭할 수단이 있으면,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하고 요구하는 대로 들어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떼를 쓰듯이 믿는 구석이 군대 외에 또 있다.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다. 미국과 일본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북방의 두 강국과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꼭꼭 믿고 싶어 한다. 그런데 북방 삼각동맹이 자본주의의 맛을 안 두 나라 때문에 냉전시대처럼 여의치 않은 듯하자, 민족공조의 이름으로 한국을 끌어들이는 한편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북한은 힘이 있었을 때는 외교무대에서 큰소리치지 않았다. 입으로는 달콤하게 평화를 말하면서 소련과 중국을 끌어들여 아예 전쟁을 도발했다. 아니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무장공비를 내려 보내거나 정부 관료들을 우르르 암살하거나 민간 항공기를 폭파시켰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을 정도로 힘이 없던 때의 이승만이 큰소리를 제일 많이 쳤다. 동해에 평화선을 마음대로 그어 일본을 질리게 만들었고 전쟁포로를 마음대로 풀어주어 미국의 기를 꺾어 버렸다. 그 작전은 둘 다 멋지게 성공했다. 그러나 힘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휴전협정에 서명도 않고 목에 피가 나도록 북진통일을 부르짖었지만,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한국은 국력이 나날이 커지고 권력도 더불어 공고해졌을 때는 오히려 유연했다. 힘에 걸맞
  는 ‘정상적인’ 외교를 지향했다. 대북 자신감을 바탕으로 박정희 정부가 공표한 6·23 선언에서 보듯이 이념에 관계없이 ‘실리’외교를 대원칙으로 삼았다. 원하면 남는 식량도 북한에 무료로 주겠다고 했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확고한 대북 경제우위를 점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군사우위도 점한 5공 이후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걸핏하면 남북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김영삼 정부 이래 북한은 남북 외교의 주도권을 쥐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 의해 중국과 러시아마저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자, 믿고 떼쓸 데가 전혀 없게 된 김일성 부자는 온순한 양처럼 굴어 한국과 세계의 이목을 흐려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 ‘민족을 이념에 앞세우겠다.’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약한 북한은 시종일관 큰소리치고 강한 한국은 도리어 절절맨다. 한국의 퇴영적인 외교 전통에 비춰 보면 이건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다. 이런 비정상이 도리어 조선 중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정상이었으니까.
  
   한국의 문화를 잘 모르는 미국은 1994년에 북한한테 폭 속았다. 속았음을 깨닫게 되자, 동북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걷힐 줄 모른다. 더군다나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하여 미국도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테러를 앞두고는 발본색원하거나 상대가 리비아처럼 자진해서 백기를 들지 않는 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북한은 더하다. 한국에 민족공조란 미끼를 던져 친북세력을 광범위하게 구축한데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최소한 겉으로는 북한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비빌 언덕이 있고 빼앗을 보온밥통이 있다는 말이다. 핵무기가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자식을 안고 여차하면 동반 자살하는 한국의 부모처럼 자폭할 수단이 있다.
  
   [미국과 일본에 노골적으로 대드는 한국의 외교]
  
   대신에 한국은 강한 미국과 일본에는 살살 약을 올리는 식으로 속내를 내보이다가 이젠 아예 드러내놓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조마조마하게 연일 강수를 뻗친다. 국내에서 정권을 잡고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전략을, 억지와 생떼를 방송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반복하고 강조하고 퍼뜨려서 마침내 국민들이 시나브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슬금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전략을, 이제 드디어 노골적으로 외교무대에 써 먹는다. 실은 그만큼 정권이 위태롭다는 말이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땅 끝에 선 듯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이럴 때 북한이 무슨 억하심정은커녕 관심조차 없던 나라를 원수 나라로 점찍고 약을 바짝바짝 올려 관심을 갖게 만든 다음, 금방이라도 던질 듯이 한 손에 수류탄을 들고 말의 도발을 일삼아서 그 나라를 진짜 원수 나라로 만들어 위협하는 말이 외신을 타고 들어오게 유도하여 격렬한 민족감정을 부추기듯이, 더없이 호의적인 전통의 동맹국과 우방을 적으로 만들어 민족감정을 불러일으켜 국내의 정치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한다. 당연히 이 민족감정은 북한과 공유한다. 공동의 적을 만들고 공동의 친구를 만든다.
  
   [민족주의의 함정]
  
   여기에 큰 함정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서 내외적으로 수억의 사람들이 불안해 마지않는다. 김정일 정권은 자국 국민을 노예로 만든 반민족 집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게 잡아도 300만 정도가 북한의 반민족적 봉건적 지배세력인데, 이들 외에 북한의 2천만 주민은 기아와 공포에 휩싸여 일제시대보다 더 가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 괴이한 궤변을 늘어놓는 노무현 정부와 인권 탄압국인 쿠바, 수단, 투르크메니스탄, 중국 등 몇 개 국가 외에는 전 세계가 북한의 가혹한 인권탄압과 기아정책과 선군정치를 규탄한다. 그런데 민족공조니 통일이니 하는 것은 이러한 북한의 독재세력과 현 정부와 그 지지 세력 그리고 한국의 순진한 민중들이 부르는 이중창이다.
  
   히틀러가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을 증오하고 공산당을 사갈시했다고 하여 민족주의자나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듯이, 김일성 부자가 독립운동을 사칭하거나 천 배 만 배 뻥튀기하고 자신이 저지른 남침의 죄과를 호도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을 독사보다 미워하고 북한보다 월등히 잘 먹고 잘 살게 한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두 명만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인간 말자로 취급한다고 해서 그들이 민족주의자요, 평화주의자요, 서구형 자유민주주의자이자 북구형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과 개방으로 실지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해야 민족주의자요, 평화주의자요, 자유민주주의자요, 평등주의자가 된다.
  
  [누가 민족주의자이고 누가 반민족주의자인가]
  
   한국도 마찬가지다. 눈만 뜨면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탓하고,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군사 독재 타령하고, 민주화 운동 자랑하고, 환경보전을 노래 부르고, 남녀평등을 울부짖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에 피가 나도록 노래하고, 평화의 춤사위를 길거리에서 대대적으로 펼친다고 하여 그들이 민족주의자요, 자유민주주의요, 평화주의자요, 평등주의자요, 환경지킴이요, 독립군의 후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게 도와 주고, 미국보다 교육, 금융, 물류, 의료, 법률, 관광 등 서비스 분야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게 도와 주고,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실업률을 대폭 낮추고, 강성노조를 설득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대폭 줄이고, 이전보다 골고루 잘 살게 해 주고, 국민 누구나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한국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는 동맹국 또는 우방과 아름다운 외교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면, 자손대대로 만경대 김씨 가문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북한의 김정일을 설득하여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하여 대량살상무기를 버리고 베트남도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게 하면, 그런 정부와 여당을, 학자를, 방송인을, 언론인을 인기 스타나 스포츠 스타 못지않게 사모하여 너도나도 사인공세를 펼친다.
  
   [2000년대를 쥐고 흔드는 1980년대]
  
   1980년대 어두운 골방에서 대학생과 재야와 야당 인사들이 민주주의 공부를 하는 와중에 자진해서 또는 북한의 공작을 받고 민족의 이름으로 우르르 북한 정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이래, 대통령 직접 선거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초지를 일관하지 않으면 변절과 배신으로 보는 한국의 독특한 유습에다가 잘못된 생각이라도 권력을 잡으면 모든 게 정당화되는 한국의 독특한 후진적 정치문화 때문에, 민족과 통일이 남북의 7천만 겨레 대부분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모습과는 판이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방송과 인터넷에는 이제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평화통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유와 평등, 자주와 민족이란 명분을 내세워 남북이 공존하는 정체불명의 체제로, ‘연합제와 연방제를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는 요상한 말로 실은 북한 정권이 시종일관 주장해 온 고려연방제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남북이 함께 펼치는 위태위태한 올인 외교]
  
   마침내 남북한이 함께 ‘벼랑 끝’ 외교를, 외교 상식을 모조리 뒤집는 ‘올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조국의 국력을 업고 중국이나 만주의 초강대국과도 당당히 맞서서 능수능란한 ‘실리’ 외교를 펼쳤던 신라의 김춘추나 고려의 서희가 아니라, 역시 조국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용기와 지략으로 동서양을 통틀어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전쟁을 찬란한 승리로 이끈 을지문덕이 아니라, 미친 개 한 마리(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조폭 같은 자) 때려잡을 몽둥이 하나 없는 주제에 민족의 자존심과 삼강오륜만 앞세우고 ‘명분’ 외교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대원군 내지 인조를 오늘에 본받아, 주변 4강이 노골적으로 또는 내심 전혀 반기지 않는 ‘민족공조의 벼랑 끝’ 외교를 펼치고 있다.
  
   10배, 100배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에게 100배, 1000배의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가진 나라에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준열히 꾸짖고 있다. 화란인 희동구의 도움으로 월드컵 4강에 한번 올라가더니, 한국이 4대 강국으로 올라선 줄 아는가 보다. 민주화도 도덕성도 그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줄로 아는 모양이다.
  
   [허풍, 공갈, 협박에 강대국과 국민은 거듭 속지 않는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큰소리는 허풍일 따름이다. 정보와 지혜가 빠진 큰소리는 공갈일 따름이다. 민초를 노예로 삼은 독재자의 큰소리는 협박일 따름이다. 생존을 위협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자와 동조하는 큰소리는 나라와 겨레에 대한 저주일 따름이다.
  
   큰소리치려면, 외교에서 올인 작전을 펼치려면, 전쟁도 불사하려면, 상대를 거꾸러뜨릴 수 있는 군사력과 경제력과 정보와 지혜를 갖춰야 한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민심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을지문덕처럼, 김춘추처럼, 서희처럼, 이순신처럼, 이창호처럼 정보와 지혜와 용기를 갖춰야 한다. 실은 이런 실력자는 오히려 겸손하다. 조용조용 연인에게 말하듯 속삭인다.
  
   허풍과 공갈과 협박으로 의표를 찔러 강대국과 국민을 한두 번 속일 수는 있지만, 그건 스스로의 운명을 힘과 정보와 지혜가 월등한 강대국과 국민의 끝없는 선의에 맡기는 위험천만한 모험과 만용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은 처절하게 망한다. 망하고도 그 누구에게서든 동정의 눈물 한 방울 받지 못한다. 동정은커녕 방송의 선전선동에서 깨어난 자국 국민으로부터 아름아름 비웃음의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다.
  
   이 나라 이 겨레가 머잖아 장맛비처럼 흘릴 피와 눈물을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고 땅이 꺼지는 듯하다.
  
   (2005. 3. 27.)
  
  
  
[ 2005-03-28, 07: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