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 인맥': 여명(黎明)그룹
기성 정치권에 편입되지 않았던 여명그룹의 흐름은 소위 생활밀착형 시민운동으로 이어졌다. 문화운동, 환경운동, 협동조합운동, 작게는 공동육아운동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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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래 기사를 외부 뉴스사이트로 옮기지 마십시오.
(2014년 12월8일자 보도)

1980년대 운동권 세력 가운데 조직 명칭과 규모, 지도부 등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단체가 있다. 바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며 소련식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여겼던 ‘여명그룹(이하 여명)’이다.

여명(黎明)그룹은 북한을 대안으로 삼았던 NL(민족해방) 계열의 운동권과 노선을 달리했던 조직이다. 소련식 사회주의를 추종했던 여명은 88서울 올림픽 당시 소련 팀을 응원했다. 記者와도 안면이 있는 前 여명그룹 중앙위원 출신의 A씨는 수년 전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여명은 소련을 사회주의 조국이라고 여겼다. 88년 서울 올림픽 때 상부로부터 지령을 받은 것이 소련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가 운동권 서클과 연계된 학생들을 동원했고, 실제로 이들은 당시 미국과 소련이 벌인 농구경기에서 열렬히 소련을 응원했다.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운동권에서 함께 활동했던 지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개 左派 활동이 생계와 연계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연유로 이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과거를 완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여명 그룹'에서 박원순 진영으로 간 사람이 50여 명

월간지 <신동아>는 2014년 12월호에서 <차기 대권주자 박원순 서울시장 秘인맥: ‘박원순 캠프’의 핵 ‘여명그룹’>에서 과거 여명 출신 운동권들의 활동을 다뤘다. 이들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넓은 의미의 여명그룹에서 박원순 진영으로 간 사람이 50명은 될 것이다. 여명 출신들이 박 시장의 ‘문고리 책사(策士)’가 됐다. ‘박원순 대통령 만들기’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 그룹은 서울대 출신이 주축이었으며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한양대 등 공대 출신이 많았다.”

▲“(여명은) 중앙위원회 아래 지역 위원회, 지구, 소모임의 점조직으로 이뤄졌다. 경인라인, 수원라인은 물론이고 부산, 창원, 구미에도 조직이 있었다. 가명(假名)을 사용한 데다 횡적인 교류 없는 없고 수직적으로만 이뤄졌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모르겠지만 여명은 세련되고 모던했다. 주사파를 한심하게 봤다. 추측이지만,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옛 동지들은 선거를 하면 정의당을 많이 찍을 것 같다. 새청연도 별로 안 좋아한다. 새누리당보다 통진당을 더 싫어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어쨋거나 박원순 시장의 성향이 여명과 잘 맞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0년 민중당을 발의한 것도 우리다... 살다가 생각을 바꾸기란 어렵다. 내부에 갈등이 상당히 많았다. 우리는 독일어 문헌을 바탕으로 소련 공산당이 왜 개혁, 해방에 나섰는지 서술했다. 사회주의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우리(여명)가 경실련의 지역조직의 리더가 됐다. 26개 가량의 지역조직에서 경실련 소속으로 노동운동을 했다. 지방 경실련의 책임자를 맡은 것이다.”

여명그룹, 1990년 민중당 창당 주도, 이후 경실련으로 이동

여명그룹의 前 멤버 중 한 인물은 자신들이 민중당의 창당을 발의했다고 밝혔는데 민중당은 이우재, 이재오, 장기표 등이 기존의 ‘민중의당’과 ‘한겨레민주당’ 참여인사들을 중심으로 1990년 11월 창당한 운동권 정당이다. 민중당은 강령에서 국보법․안기부법 등 반(反)민주 악법 철폐, 남북한 연방제 통일, 재벌 해체 및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 국유화 등을 주장했었다.

민중당은 북한과의 공조에도 역점을 기울였는데, 1990년 8월3일에는 소위 북한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민족통일문제를 협의한다는 명목으로 30명에 달하는 북한방문대표단(단장 이재오)을 구성, 1991년 2월23일 조선로동당의 초청을 수락해 방북을 결정하기도 했다.

민중당은 제14대 총선에서 제6공화국의 실정을 비판하고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 것을 주장하며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단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해 1992년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이후 일부 간부들이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 지역당’(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민중당의 선거 참패로 여명그룹과 안산지역민주노동자연맹(안산노련)의 활동가 상당수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운동 단체에 투신했다.

'2000년 낙선, 낙천 운동 때 민중당 출신들 예전 사고 방식으로 되돌아가'

아래는 경실련을 주도했던 한 인사의 <신동아> 인터뷰 내용이다.

“1989년 경실련이 출범했다. 1992년 민중당이 붕괴하면서 그중 3분의 1이 경실련에 들어왔다. 지역 경실련 책임자를 그 친구들이 맡았다. 두고두고 후회하는게, 내가 떠나도 경실련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가한 것이다. 2000년 낙천, 낙선 운동 때 민중당 출신들이 예전 사고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실련 본부는 따라가지 않았으나 지방의 경실련이 지지했다. 그것이 경실련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하단 '관련기사' 참고)

민중당 해산(1992년 3월)에 앞서 1992년 1월 경찰청 보안국은 한국사회주의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 사건을 발표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前身)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민족통일 민주주의 노동자동맹(삼민동맹), 안산지역민주노동자연맹(안산노련) 등 3개 단체를 합쳐 창준위를 결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여명도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에 관여했으나 조직은 드러나지 않았다. 노회찬 등이 주도했던 인민노련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에 실패한 후 1993년 결성한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를 거쳐 2000년 민주노동당(민노당, 現 통합진보당의 前身) 창당에 참여했다.

민노당은 2004년 이후 NL(민족해방) 계열이 당을 주도하면서 NL과 PD세력 간에 당권 논쟁이 벌어졌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NL이 당권을 쥐면서 민노당은 통진당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노회찬, 조승수는 통진당을 나와 정의당을 창당했다.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로 활동 영역 넓혀

기성 정치권에 편입되지 않았던 여명그룹의 흐름은 소위 생활밀착형 시민운동으로 이어졌다. 문화운동, 환경운동, 협동조합운동, 작게는 공동육아운동이 그것이다.

<신동아> 보도에 따르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서왕진 現 서울시장 정책수석비서관이 여명그룹 출신이라고 한다. 서 정책수석은 1기 박원순 시장 때 정책특보와 비서실장, 2기(7월1일~2014년 12월 현재) 때는 정책수석을 맡았다. 

서 정책수석은 서울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환경정책학과, 미국 델라웨어대학교 에너지환경정책센터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환경부 환경영향평가위원,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환경정의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서 정책수석은 환경정의연구소 소장 시절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왕진 정책수석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여명그룹과 관련해 “그런 게 있으면 대단하겠다. 박 시장은 전혀 상관이 없다”며 “과거의 인연과 서울시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환경정의연구소의 상급 조직은 ‘환경정의’인데, 이 단체는 서왕진 정책수석이 과거 사무처장으로 일했던 곳이다. 현재 이 단체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씨다. 그는 2012년 4·11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이끌기도 했다. 또 같은 해 10월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고문단에 합류한 바 있다.
 
환경정의 이사장을 지내고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있는 前 농림부장관 김성훈씨는 2011년 서울시장 보선 당시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 이사 중에선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등이 ‘박원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단체 공동대표인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의 경우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이다.
 
단체 공동대표인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대사 교수의 경우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공개적으로 ‘박원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단체 공동대표인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의 경우 현재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관련 기사] 박원순, 딸과 함께 不法 '낙천-낙선 운동' 주도
2011년 11월17일자 보도

 “法(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法이 지켜져야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法律(법률)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다. 惡法(악법)이 法일 수는 없습니다.” (2000년 2월16일, 총선연대 박원순 상임집행위원장의 ‘검찰소환에 응하는 소감’에서)
  
■ 박원순 씨는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1월12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개 좌파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不法(불법) 낙천·낙선 운동을 선두에서 지휘했다. 
  
선거법 87조는 선거일 20일 전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다. 따라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지만 총선연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관위는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不法행위임을 거듭 경고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검찰은 총선시민연대 지도부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고소·고발 사건 54건을 접수, 6개월 동안 被(피)고소·고발인 208명에 대한 수사를 벌였고, 2000년 총선연대 간부 2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13부는 2002년 9월26일 이종찬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총선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참정권을 침해했다”면서 朴변호사등 총선연대 간부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연대해서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2004년 9월21일에는 이사철 前의원이 朴변호사 등 총선연대 간부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 대법원이 “총선시민연대는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 불법(不法)으로 확인된 낙천·낙선 운동은 2004년 총선에도 계속됐다. 
  
2003년 12월23일 환경연합 등 39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패정치추방과 정치개혁실현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준비단’은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내년 총선에서 改惡(개악)을 주도한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 운동은 이듬해 1월 ‘2004년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 같은 해 2월 ‘2004총선시민연대’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2004총선시민연대’는 2월5일 여야 중진의원을 대거 포함한 1차 공천반대자 66명의 명단을 발표, 2000년과 마찬가지로 反좌파 성향의 인물을 걸러냈다.
  
‘2004총선시민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은 2004년 3월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범국민행동(이하 탄핵무효행동)’에 참여, 탄핵에 찬성한 의원을 축출하는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다. 박원순씨는 최초 ‘2004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탄핵무효행동이 구성되자 오종렬·문규현 등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탄핵무효행동의 낙천·낙선운동 역시 불법(不法)이라고 봐야하지만, 노무현 탄핵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산되면서 有耶無耶(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최근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등 朴씨가 주도해온 시민단체 활동과 관련, 그 순수성에 문제를 제기하자 朴씨는 “대통령 실장의 발언이 대통령의 생각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임 실장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면서 “청와대가 선거에 실제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惡法이 法일 수는 없다’면서 我田引水식의 法해석을 해온 朴씨는 국보법도 惡法이라고 본다. 민주국가에서 公人(공인)이 ‘惡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서울시장에 출마해 당선까지 됐다. 
  
■ 박원순 씨의 장녀 박다인 씨는 서울예고 재학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당시 총선연대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부친의 불법 낙선-낙천 운동을 도왔다. 당시 박다인씨는 <세계일보>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은 사회를 꿈꾸는 시민단체의 몽상가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라며 “세상을 밝게 만드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그녀는 또 자신이 박원순씨의 딸이라는 사실은 참여연대 상당수 상근 간사들도 모르고 있다고 밝힌 뒤, 자신의 신원이 “외부에 알리는 것을 아버지가 무척 꺼리는 편이다. 방한 중인 청년환경운동가 대니 서처럼 ‘아름다운 청년 시민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넷 <한겨레> 역시 박다인 씨가 ‘총선연대 10대들의 꿈나무 모임’(cafe.daum.net/kidngo) 회원으로 활동에 나서 “활동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면서 그녀를 소개했다. 총선연대 낙천-낙선운동에 참여했을 당시 박다인씨는 서울예고 2학년 재학 중이었다. 그녀는 2002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에 입학, 2006년 법대로 전과해 2011년 2월 졸업했다.  
 
정리/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2016-02-01, 11: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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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고기     2016-02-08 오전 9:58
원숭이 한마리가 우리를 탈출하면 나라가 시끄럽게되는군
조련사를 불러 목에 개줄 채우고 발모가지에는 족쇄
채워야 조용할텐데...에~휴
   bellgold     2016-02-01 오후 3:24
국민 모두가 정신차리고 지자체장들이 어떻게 지자체행정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감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유신     2016-02-01 오후 12:12
민주체제나 공산체제나 대중을 속이고 선동하여
이용해먹는 건 똑같은데
그런게 가능한 건 대중의 무지 무식 때문
정치인들이 거기에 사악한 목적을 더했다는 걸
빼면 근본 다를 게 없음
대한민국에 무속인 20만 목회자 10만의 숫자가
대한민국의 지적 수준을 대변
박원순의 공작은 다음 대선에서 그를
대통령 만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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