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가 김대중을 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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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1973년의 납치 사건 때 金大中씨를 살리는 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이 더러 있다. 당시 미 CIA 서울지부장이던 도널드 그레그(뒤에 주한미국대사 역임), 당시 주한미국대사 필립 하비브가 그런 사람들이다. 돈 오버도퍼 기자가 쓴 '두 개의 코리아'란 책에서도 그런 주장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하비브 대사가 김대중 납치 직후 주모자가 정보부임을 알아내고 朴대통령 정부의 고위인사에게 김대중씨를 죽이면 한미관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썼다.
  
  미국이 김대중씨를 살렸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金大中 납치에 직접 관여했던 李厚洛 부장, 정보부 공작단 간부들, 납치선의 선원들은 한결 같이 애시당초 金大中씨를 죽이라는 지시나 계획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CIA의 역할은 많은 경우 과대평가되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즐기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또한 李厚洛 부장을 물러나게 하는 데 CIA가 작용을 했다고 주장하나 이 또한 과장이다. CIA가 그런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金大中 강제귀국 4일 뒤인 1973년 8월17일자 미 국무성의 비망록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CIA와 의논하고 있다. CIA는 李厚洛 부장과의 관계에 대해서 신중한 검토를 하고 있다. CIA는 한국의 안정과 관련하여 이후락을 겨냥한 어떤 행동을 실천에 옮길 것을 생각중이다>
  1978년 미국의회에서 나온 '한미관계 보고서'는 '미국측이 朴鐘圭 경호실장을 통해서 朴대통령에게 李부장에 대한 불만과 李씨의 그런 행동이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임을 통보했다'고 썼다.
  
  오버도퍼 기자는 '두 개의 코리아'에서 '1973년 10월 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한 서울법대 교수가 고문을 받고 죽은 뒤 도널드 그레그 CIA 지부장은 청와대측에 李부장과 협력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그 몇 주 뒤 그는 해임되었다'고 썼다.
  
  李厚洛 부장은 1973년12월3일에 해임되었다. 朴대통령은 김대중 납치 사건 직후 이미 그를 해임시키려고 마음먹었으나 그렇게 하면 한국 정부가 정보부의 납치 실행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韓日관계가 11월 초 金鍾泌 국무총리의 사과 訪日로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朴대통령 귀에 李부장에 대한 미국측의 불만이 전달되었다고 해도 이미 나 있는 결심에 별다른 영향은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1973년12월3일 朴대통령은 10부 장관을 바꾸면서 李厚洛 부장을 해임시키고 후임에 申稙秀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대통령 공보수석 비서관 金聖鎭은 李부장의 몰락을 보면서 1년 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날은 유신선포 직후였다. 李부장이 유신조치에 고생을 했다고 청와대, 군장성, 정보부 간부, 내무 관료들을 초청하여 큰 저녁식사 모임을 마련했다. 金수석이 그 자리에 갔더니 '술잔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담소를 하는 자리인데, 李부장 주위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을 정도로 아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고, 다른 자리는 이 빠진 자국처럼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고 한다. 金 수석은 '이 자리는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빠져나왔는데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오더란 것이다. 金 수석은 그런 일을 생각하면서 지금 李厚洛 부장의 심경은 어떠할까에 생각이 미치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2005-03-30, 00: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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