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일이 한국에 미친 영향 3/7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정치는 국가의 생존이 달린 선택]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환타지 소설 읽듯이 읽으면 안 된다.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태종, 한의 여후, 당의 태종과 측천무후, 명의 영락제, 청의 옹정제 등 초창기에 치열한 권력 투쟁을 통해서 권력의 정상에 오른 이후에 이들이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백성들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한 것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사회 윤리 또는 국가 윤리 대신 오로지 개인 윤리의 잣대만을 들이대어 형제를 죽였다, 조카를 죽였다, 자식을 죽였다, 공신을 죽였다, 라는 그 한 가지 사실만 두고,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거들떠보지 않는 춘추필법을, 최소한 국가를 책임진 사람들은 계속 견지하면 곤란하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천하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고 그 국가는 저 막강하던 진이나 수처럼 밤하늘의 불꽃인 양 허망하게 스러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와중에 수십만 수백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흔히들 독재자로만 아는 위에 든 위인들은 하나같이 백성에겐 풍요와 자유를 안겨주되 정적에겐 가난과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수백 년 평화의 양탄자를 깔았다. 욕을 몽땅 덮어쓰는 대신 국가와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사후엔 하나같이 풍요로운 경제와 다채로운 문화와 활기찬 사회의 새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노력 없는 성공은 없고 희생 없는 영광은 없는 법이다.
  
  [영토를 넓히는 일은 국가의 흥망을 거는 대도박]
  
  특이한 나라가 신라이다. 삼국통일 후에 100여년 간 치열한 권력투쟁이 없었다. 아주 안정되었다. 지금까지 이걸 연구한 걸 못 보았는데,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 세상에는 절대 저절로 잘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신라는 남다른 데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약 신라가 발해 정복에 나섰다면, 거의 100% 신라는 망했다. 그럴 힘이 전혀 없는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00여년에 걸쳐 전쟁을 한 나라가 무슨 힘이 더 있었을까. 그것도 그냥 전쟁이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신라와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는 100여년에 걸친 세계대전의 대격전장이었다. 국가 총력전의 각축장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신라가 발해와 전쟁을 벌였다면, 당이 최소한 어부지리로 만주와 한강 이북을 차지했을 것이고 일본도 영남과 호남의 일부라도 차지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민족의 국가는 소멸되고 그들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보고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겪었을 것이다.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자부심이 높았던 고려는 정종 때에 광군(光軍)을 설치하여 군대를 무려 30만이나 유지했다. 그 결과 고려보다 수십 배 큰 송도 못 이긴 요와 금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발해가 망했지만, 금방 요가 들어서고 금이 들어서서 만주를 차지한다는 것은 '새총으로 호랑이를 잡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들의 침략에 나라가 안 망하면 다행이었다. 윤관이 17만 대군으로 여진을 물리치고 한때 9성을 쌓았지만, 그것마저 유지하지 못했다.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하기도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조선의 세종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의 국경선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국경선을 넓힌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 삼국 통일]
  
  우리는 삼국통일을 우습게 여기지만,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이건 엄청난 쾌거이다. 후삼국의 짧은 기간 외에는 무려 1300년 동안 우리 한민족은 동족상잔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국가 체제를 유지했다.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기적 같은 일이다. 중원과 북방의 초강대국들이나 고려말 이후 전쟁의 귀신이 된 왜에게 굴하지 않고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자주통일국가를 유지한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세계에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다. 우리는 중국과 비교하되, 중국이 통일국가로서 위엄을 떨칠 때와 비교하는 데만 익숙해져서, 신라의 통일을 초라하게 보고 특히 그 면적이 작다고 주눅이 들지만, 중국이란 나라도 통일과 분열을 얼마나 되풀이했으며 이민족의 지배는 또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중국은 BC221년에 통일했지만, 그 후로 나라가 산산조각 난 적이 부지기수이다. 전 중국인이 오랑캐의 지배를 받은 것만 해도 400년이 넘는다. 또한 오늘날의 저 오만방자한 중국이 5개 내지 10개 국가로 분열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그 빈틈을 노려서 우리가 만주를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신라의 삼국통일은 세계로 눈을 넓히면 더욱 빛난다. 우리나라와 면적이 거의 비슷한 영국이 통일한 것은 1707년, 우리보다 약 1000년이 늦었다. 북해도를 빼면(이것은 1868년 명치유신 이후에 병합) 역시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일본이 통일한 것은 1603년, 우리보다 약 900년 늦었다. 독일이 통일한 것은 1871년. 우리보다 1200년이 늦다. 유럽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졌던 로마제국이 망한 후 라틴족은 기껏 이태리 반도 하나를 통일하는 데도 무려 1400년이 걸렸다. 왜 이태리는 조상들이 그렇게 큰 나라를 가졌었는데, 그 모양 그 꼴로 분열되어 살았던가. 후손이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몽골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건설했지만, 지금은 땅만 좀 클 뿐 너무도 초라하다. 후손이 못났기 때문이다.
  
  로마나 몽골과는 달리 그 조상이 우리 조상보다 훨씬 못났던 일본이나 영국 또는 독일은 우리보다 900년에서 1200년 통일이 늦었지만, 그 후손이 우리보다 훨씬 잘났기 때문에 못난 조상을 원망하지 않고, 아니 그런 조상을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불철주야 노력해서 옛 전통에 새 전통을 차곡차곡 쌓아서 세계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전쟁 도발과 식민지 경영의 과오는 있었지만, 이 세 나라는 오늘날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평화로운 통일 국가를 구가하다가 이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채 강대국에 운명을 맡기고 있는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특히 한반도 크기의 영국은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달성한 덕분에 100여년간 전 세계의 태양으로 군림했다. 그 상징이 그리니치 천문대이다. 그 곳을 중심으로 동경과 서경, 곧 동쪽과 서쪽이 나뉘어진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란 말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세계의 중심이란 말이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인도나 러시아가 아니라, 일개 섬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면적은 우리와 거의 같지만 그 조상이 못나서 영국은 우리보다 1000년이나 늦게 통일했지만, 그 후손이 잘나서 못난 조상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달팽이처럼 국내로 움츠려드는 게 아니라 독수리처럼 세계로 눈을 돌리고, 노인처럼 지팡이를 짚고 과거로 뒷걸음질치지 않는 게 아니라 청년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감으로써 만주나 중원 따위가 아니라 5대양 6대주의 패자가 된 것이다.
  
  우린 어떤가. 똘똘 뭉쳐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어려운데, 한 나라 안의 국민들이 가슴에 저마다 증오와 원망을 품고 입에 가득 욕설과 저주를 내뱉으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대를 이은 독재자가 해괴한 구실로 대를 이어 국민이야 굶어 죽든 말든 오로지 군대만 양성함에도, 그의 선의를 철석같이 믿고 그가 달라는 대로 나라의 세금을 뚝 떼어 식량과 달러와 비료를 아낌없이 고일(상납할) 뿐, 2300만 동족의 생존과 인권은 그 독재자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기는 자들이, 70% 이상의 세금납부자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분배의 투명성을 요구하면, 권력과 조직과 방송을 이용하여 도리어 이들을 시대착오적인 수구보수자라며 민족화해에 찬물을 끼얹는 자라며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집요하게 뒷조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상식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어찌 국론이 핵이 분열되듯이 분열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이렇게 국론이 갈가리 찢어진 나라가 어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가 있을까.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북한은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암울한 일제시대에 그렇게 해서라도 조선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기개를 길러주기 위해서 한 단재의 말을 세계 11위의 경제강국이 된 오늘날까지 앵무새처럼 외우고, 특히 전쟁을 일으켜 동족을 300만 죽이고 조상과 일제와 소련과 중국이 물려주고 적선한 것을 뜯어 먹기만 하고 전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어 300만을 굶겨 죽이고, 전 국민의 평균 신장을 저 가혹했던 일제 시대 때보다 평균 5cm나 낮추어놓고도, 일대일로는 중국의 통일 왕조인 수와 당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우세했던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신라의 통일을 욕하고 저주하는 것으로 열등감과 죄의식을 해소하려는 북한의 선전선동에 말려 들어가, 삼국통일과 김유신 이야기만 나오면, '뚜껑이 열리는' 사람들은 제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도 이젠 그럴 소리를 하면 차분하게 설득해서 싹수가 노랗지 않게 해야 되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마징가 제트' 같은 의식 수준을 갖고 있는 것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욕하기 전에]
  
  개인이라면 중소기업 하나라도 알짜배기로 키우고 나서 삼성을 욕하고, 한국의 위정자라면 남북통일은커녕 일본에서 두 번 다시 망언이 못 나오도록 독도를 명실상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고 나서, 북한은 적화통일의 망상은 제발 버리고 백두산과 간도 하나라도 제대로 차지하고 나서, 삼국통일을 욕하기 바란다. 학자라면 동북공정을 들고 나오는 중국의 입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서 김부식을 욕하기 바란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당당히 본기(本紀)라고 하여 중국과 똑같이 당당히 황제국의 역사로 기술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제발 한번이라도 읽고 나서 삼국통일과 김유신을 욕하기 바란다.
  
  단재 신채호는 「삼국사기」를 거의 읽지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읽었으면 본기가 뜻하는 것이 뭔지 김유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몰랐을 리가 없다. 거기엔 죽은 지 400년이 넘었지만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고려의 사대부만 아니라 나무하는 아이와 물긷는 아낙네도 칭송해 마지않던 김유신에 대한 기록이 문무왕을 빼고는 삼국의 역대 모든 왕에 대한 기록보다 많고, 통일 이전의 역사는 신라에 대한 기록보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훨씬 많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맞서 삼국의 역사를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바로 이 「삼국사기」이다. 괴이하게 서로 철천지원수라는 식민사관 학자들과 민족사관 학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대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한 김부식이 편찬한 이 「삼국사기」이다. 중국은 사마천의 「사기」와 진수의 「삼국지」가 있고, 일본은 「일본서기」가 있고, 우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있다. 이 4권은 각기 자국의 고대사를 가장 자세히 기록한 정사(正史)이다. 우리가 고구려를 우리 땅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삼국사기」이다. 무령왕릉의 지석을 통해 입증되었듯이 「삼국사기」는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에 비해 훨씬 정확하다.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업신여기면, 중국과 일본은 쾌재를 부르면서 저네들의 사서에 비추어 우리 고대사를 제멋대로 왜곡하여 한국의 과거만이 아니라 한국의 현재도 멸시하고 한국의 미래마저 어둡게 한다.
  --계속--
  
[ 2005-03-31, 14: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