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와 키근과의 作別
[연재1/조인정의 유학 스토리] 나를 ‘진짜 가족’으로 생각해 준 에이미와 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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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조인정 씨는 유학記 《소심한 인정이의 대담한 선택》(조갑제닷컴 刊, 1만 5000원, 하단 참조)의 著者이다. <조갑제닷컴>은, 이 책에 수록되지 않은 조인정 씨의 ‘유학 스토리’를 연재한다. 아래 글은 조인정 씨가, 미국 유학 중 홈스테이를 했던 에이미의 집(美 위스콘신州 캐스빌)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2014년 12월21일 토요일 아침, 나는 아이오와州(주)의 더뷰크 공항(Dubuque Regional Airport)에서 아침 6시30분 비행기를 타고 일리노이州의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다시 뉴욕州의 버팔로 나이아가라 국제공항(Buffalo Niagara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2년 전 캐스빌을 떠나는 마지막 밤에도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키근(홈스테이 엄마 에이미의 아들)과 약속을 했다. ‘공항에 가는 아침까지 잠자지 않기’였다. 서로에게 있어 이별 전 마지막 일분일초가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항상 ‘해낼 수 없는 과제’였다. 이유는 밀려오는 잠 때문.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난 이번에도 잠이란 독한 놈과의 싸움에 지고 말았다. 물론 키근은 이번에도 역시 보란 듯이 이겼다. 약속을 지켜냈다. 키근은 매번 내가 약속을 깼다며 핀잔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귀여운 동생이 누나에게 던지는 짜증이 섞인 말이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런 키근의 핀잔은 내게 귀여운 애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에이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침내 나는 캐스빌과 작별을 했다. 내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제2의 고향’인 캐스빌과의 작별을 할 때면 항상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공항에 가는 동안 나와 키근은 깊은 잠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차에서 내린 순간 얼굴에 닿는 차가운 새벽 공기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언제나 그렇듯 차디찬 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아마 이별을 앞에 두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원치 않는 이별… 나는 공항을 향해 떠났다.

보통 공항이라고 하면 게이트 앞에 비치된 의자에 비행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앉아있는 게 보통이자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모두 한 손에 표를 든 채 서성이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걸 거야!’ 나는 생각했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미국에 덮친, 역사상 최악의 寒波(한파)로 비행기 운항이 취소되었고, 항공회사는 승객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비행기 대신 버스를 실어 날랐다. 같은 돈을 지불하고 단 한 시간이면 비행기로 도착할 시카고를 버스를 타고 세 시간을 들여서 가야 한다는 게 울화가 치밀었지만, 예고 없이 빚어진 사고였기에 누군가에게 화풀이도 할 수 없었다.

새벽 6시25분, 버스에 오를 준비를 모두 마친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에이미와 키근과 하기 싫은 이별을 해야만 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헤어짐이 없는 이별은 없고, 슬픔이 없는 이별은 없다는 것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지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선 역시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에이미와 마지막으로 포옹했다. 에이미는 버스에 오르려는 내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언제나 내 딸이야.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또 보자. 조심히 가고 도착하자마자 연락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감동의 눈물이 울컥 치솟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웃어 넘겼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슬픈 이별은 피하고 싶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키근은 공항에 절대 가지 않겠다는 말을 늘어 놓았었다. 물론 나는 그의 말이 100% 농담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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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잠을 청하는 키근



항상 심한 장난과 농담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아는 키근은 어쩔 때보면 철 없는 어린아이 같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착한 마음씨로 나를 누나라며 진심으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남동생이 바로 그였다. 키근은 그 날 아침에 농구부 연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을 견디고 밤을 새가며 나를 위해 공항까지 함께 왔다.

이토록 착하고 훌륭한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무한한 축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고마운 동생 키근과 안녕을 할 때는 슬픔이 솟구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억지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달콤쌉쌀한 이별이었다.

내가 오른 버스는 정확히 6시30분에 출발했다. 에이미와 키근과 인사를 건넬 때까지 꾹 참고 있었던 눈물이 볼을 따라 흘렀다. 눈물샘이 고장난 것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나를 가족의 一員(일원)으로 생각하며 지난 일주일 간 나를 위해 베푼 에이미 가족의 사랑과 관심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다 갚기 어려울 것 같았다.

추억의 한 장면, 한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에 천천히 진한 여운을 남기며 지나갈 때, 에이미 가족의 그 모습과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 같아 그리움은 더 커졌다. 당장 버스를 세우고 돌아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다. 이어폰에서 발라드의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감정은 북받쳐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퉁퉁 부어버린 눈을 가까스로 떠보니 어느새 시카고 공항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속)



| 저자·조인정曺認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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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3일 경기도 부천 출생. 2009년 겨울 석천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자습시간에 안재우·안재연 선생님의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를 읽고 어릴 적부터 열망해 온 미국 유학에 도전을 꿈꿨다. 2010년 9월 부천여자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유학, 미 국무부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국 위스콘신주 소재 이글 크리스천 아카데미(Eagle Christian Academy)에 입학했다. 11월 마지막 날, 위스콘신주 캐스빌(Cassville)의 새로운 호스트 에이미 가족을 만나면서 캐스빌 고등학교(Cassville High School)로 전학했다.


2011년 6월 사립유학으로 전환, 펜실베이니아주 에리(Erie) 소재 머시허스트 고등학교(Mercyhurst Preparatory School)에 11학년으로 입학했다. 2년 간 매 학기마다 내신 성적(GPA) 4.0 이상으로 First Honors를 받았고, 봉사활동, 합창, 소프트볼, 볼링, 토론, 뮤지컬 등 다양한 과외활동 또한 활발하게 수행했다. 졸업을 앞둔 시점 뉴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리하이 대학교(Lehigh University)에 합격, 아시아학과(Asian Studies)로의 진학을 결정하며 미국 고등학교 유학 3년의 종지부를 찍었다.

2014년 여름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일본문화·언어에 대한 관심, 경제적인 문제로 일본으로의 전향을 결정한다. 마침내 2014년 4월, 일본 명문 사립대학 중 하나인 와세다 대학교(Waseda University) 국제교양학부(SILS: Schools of International Liberal Studies)에 입학하여 현재는 1학년 새내기로 매일 행복한 일본 생활을 즐기며 일본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 2015-04-02, 11: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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