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下전쟁―제2땅굴을 이렇게 찾았다! (1) : 유병현 당시 5군단장의 手記
“어제 아침 7시20분부터 사단 우측 비무장지대 안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분석해 본 바 인공적 작업소리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柳炳賢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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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한미연합사 창설의 主役-유병현 회고록》 中 ‘땅굴 탐색 작전’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제5군단장으로 부임

나는 1972년 6월에 제5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승리군단은 당시 다른 군단과는 달리 한 개 사단이 더 많은 4개 사단과 기갑여단, 그리고 독립 포병단으로 편성되어 있다(注: 현재 군단에는 3개 보병사단). 그 사단 중의 하나는 내가 베트남에서 지휘했던 수도 맹호사단을 기계화사단으로 개편한 것이다. 그 사단과 독립 기갑여단들의 편제를 짜고 창설을 계획한 것도 역시 내가 육본의 작전참모부장 때에 한 것이다. 이제 군단장으로서 이 2개 부대의 야전(野戰) 작전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옛날부터 철원, 김화와 북한지역의 평강은 이름난 전쟁터였지만 6·25 때는 철의 삼각지라 불릴 정도로 피아간에 이 군사 요충지를 장악하고자 혈전이 되풀이 되었다. 군단은 작전 지역이 철원과 김화를 포함하고 있어 적이 동쪽으로 우회하여 수도 서울을 공격하는 主접근로를 방어하는 임무를 진다. 군단은 나름대로 일단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나면 군단의 막강한 전력으로 평양으로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군단의 예하에 있는 사단들은 모두 6·25전쟁 이전에 창설되어 훌륭한 전력과 전통을 자랑한다. 군단은 두말할 것 없이 전략적 작전을 지휘하는 사령부이다.

나는 이때까지 작전과 교육으로 일관되게 복무해 왔기에 부임하자마자 군단의 모든 작전계획을 현지에서 재검토하는 일로 업무를 개시하였다. 그후 사단과 연대로 내려가 주요 거점에는 실병(實兵)으로 진지점령 훈련을 다 마쳤다. 전술토의를 집중적으로 하도록 권장하였다.

제6사단장의 지휘보고

1973년 11월 21일 저녁에 제6사단장 정명환(鄭名煥) 준장으로부터 특이한 지휘보고가 있었다. 내용인즉 “어제 아침 7시20분부터 사단 우측 비무장지대 안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분석해 본 바 인공적 작업소리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라는 것이다. 鄭 사단장은 부임한 지 반년이 지나 업무 파악도 끝나서 무엇인가 사단지휘에 큰 성과를 올리고 싶다는 열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다음날 나는 직접 현장에 나가 사단장의 설명을 듣고 최초로 지하의 음향을 탐지한 경계병 두 명도 면담하면서 연대장 김원태 대령 등 관계 장교들과 하루 종일 현장 상황에 대해 여러모로 검토를 하였다.

나는 땅에 주저앉아 기다린 끝에 몇 시간마다 발생한다는 괴상한 소리를 직접 감지할 수 있었다. 몹시 약하게 들리는 그 소리는 마치 성냥개비 머리로 나무판자를 때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였다. 땅에 몸을 대고 있어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상에 누워 있어서는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였다. 그 작은 소리가 깊은 야밤 나라를 지키겠다는 근무 의욕에 가득 찬 두 명의 경계병에게 탐지된 것이다.

일차적 판단으로는 지상음(音)이 아니라 분명히 지하에서 나는 음이었다. 성냥개비로 나무판자를 두드리는 듯한 아주 작은 소리는 한 번 일어나면 10~20회 정도 연속해 들리는 것이 특이하였고 그러한 연속음이 인위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 지하음은 진동을 느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아 무관심하게 넘길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일이 소대장서부터 군단장인 나에게까지 여섯 지휘단계를 거쳐 지체 없이 보고된 것은 부대의 우수한 경계 정신과 살아 있는 전투태세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지하에서 아주 미약하게 들리는 소리를 이틀 동안 분석해 보니, 같은 강도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어느 정도 비슷한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하니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시급히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고, 그것이 아군에게 해로운 적성(敵性)을 지닌 것이라면 지체 없이 효과적으로 제거 혹은 파괴해야 했다. 전방의 적 지역과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였으나 별달리 이상한 징후가 없다는 보고였다. 그러나 사단장과 일차로 이 지하의 이상 음(音)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았다.

○땅속의 이상 음은 비무장지대 내 중앙분계선을 넘어 남쪽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지하음이 들리는 곳은 평강, 철원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주접근로(路) 상에 있다.
○소리를 탐지한 곳은 지표면에 흙이 얇게 덮여 있으나 관목도 없는 화강암반 지대이다.
○시계(視界)가 열려 있어 피아간에 지상관측이 용이하고 부대 이동에 장애물이 없다.
이상의 관찰사항을 종합해 아래와 같이 사단장에게 지시하였다.
○사단은 지하의 청음(聽音)과 전면의 적정관측에 중점을 두고 경계를 강화하며 적이 저지를지 모르는 여러 가지 우발상황에 대한 전술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
○의심지대에 청음 초소를 대폭 증가 배치할 것. 청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부대 의무실에 있는 청진기를 경계병들에게 휴대시켜 땅에 대고 청음하여 그 효과를 높일 것.
○녹음기를 청음 초소에 배치해 마이크를 땅에 묻어서 녹음한 소리의 강약을 초소 간에 비교하면서 물적 증거로 확보할 것.
○중요한 철원 접근로의 방어를 책임진 군단은 제6사단의 작전능력을 보완해 주며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줄 것.
○이를 위하여 시급히 이상 音의 실체를 알아내어 그 중심 위치를 찾기 위한 과학적 수단과 방법을 찾아낼 것.
○확실한 정보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불필요한 유언비어의 유포와 과민한 대응을 방지할 것.
○철원 일대에서 혹 있을지도 모르는 적의 지하 작업과 연결된 고정간첩의 활동을 찾아낼 것.
○보안을 위해 사단은 매일 아침에 한 번만 군단으로 종합보고를 하되 ‘지하음’을 ‘몇 초소 관측 보고’라고 하며 ‘연결된 소리’의 묶음은 ‘차량 몇 대’, 그 ‘연속 음’은 ‘인원 몇 명’이라는 음어를 사용할 것.

이러한 내용들을 숙지한 충성스러운 제6사단의 경계병들은 비무장지대 내에서의 미세하지만 수상한 소리를 계속 탐지하고 있었다. 중요한 정보를 활용해 나라를 지켜내는 것은 바로 상급부대의 책임이다. 바야흐로 지금 그 중요한 임무가 해당지역의 사단과 군단에 내려진 것이다.

군단 공병여단에 임무 부여

제6사단이 보고한 의심지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군단지역에 소규모 광산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성동 헌병검문소에서 산정호수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옥석을 채취하는 광산이었다. 군단의 공병여단장 백기진 대령을 불러 비밀을 지키도록 주의를 주며 세부 EEI, 즉 필수 정보 획득요목을 지시하였다.

나는 백 여단장의 조직적이며 치밀한 분석력을 신뢰하면서 여단 내에서 광업·토목·지질학을 전공한 ROTC 출신 장교 중에 적임자를 선발해 목적은 비밀로 하고 아래의 중요 정보를 획득 분석해 3일 내로 제1차 보고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지시한 요지를 열거한다면, 광산에서 광맥을 찾아 지하에 갱도를 파고 들어가는 공법과 굴착해 들어가는 데 폭약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하수와 퇴적물을 처리하는 방법, 지하 작업에 사용하는 공구(工具)와 안전 수칙 등이었다.

그 외에 지하에서 폭파 작업을 할 때 외부 산 위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지, 그때에는 반드시 거리나 땅속 깊이를 달리해 녹음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세부지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연대장 시절에 지하로 불과 30m 길이의 터널을 파서 통로로 진지를 연결하는 공사를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 공사를 연구하는 장교들에게는 연구 과제의 목적을 알리지 않도록 거듭 강조하였다. 연구 과제를 책임진 기술장교들은 3일이란 단시일에 아래와 같은 연구 결과를 보고해 주었다.

○수평으로 갱도를 파고들어갈 때는 2m×2m로 공사하는 것이 능률적이고 경제적이다.
○갱도는 수평갱이 좋고 가급적 경사와 수직갱은 피한다.
○폭약을 사용할 때는 암반의 질에 따라 여러 개의 작은 폭약구를 뚫으며 가급적 소량의 폭약을 사용해 여러 차례 폭파한다.
○퇴적물은 작은 갱도차를 사용해 갱 외부로 반출한다.
○폭파 후 생긴 퇴적물이 옮겨지는 대로 갱목을 대서 낙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다음 폭파작업을 준비한다.
○갱 내의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4~5시간 간격으로 다음 폭파 작업을 한다.
○150m 깊이에서 일어나는 폭파음은 산 밖에서 약간의 진동과 함께 쉽게 감지된다.
○지질에 따라 같은 거리와 깊이에서도 소리의 감도 차가 크다.
○지질과 지형에 따라 최대 500m 떨어진 외부에서도 탐지된다.
○그러나 긴장하고 정신 집중을 하지 않으면 지하음을 다 듣지 못하고 놓치기가 쉽다.

놀라운 것은 250m 깊이 전후에서 잡은 녹음의 감도와 질이 6사단의 지하음과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했지만 적이 제6사단 전방 비무장지대 내 지하에서 땅굴을 파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상당히 객관적 판단방법으로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무모하게도 폭이 4km나 되는 비무장지대를 지하로 가로지르는 갱도의 굴착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게 추정되었다. 김일성 도당(徒黨)은 지상과 해상 그리고 제3국을 통한 대남침투를 감행하다가 이번에는 지하로 대남(對南) 교란 통로를 개척하려 한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임무를 지닌 우리 군으로서는 그 상황을 위기로 판단하였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그를 위해서는 수많은 추가적인 정보가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군단 공병여단장인 백 대령에게 이 공병 기술장교들로 하여금 강원도의 다른 몇 개의 광산을 탐사해 추가적인 기술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하였다.

북한군 땅굴공사에 관련된 공병 기술반의 보고

공병 기술반이 강원도 광산들을 돌아보고 나에게 제출한 조사 보고는, 수상한 지하음이 무엇인지를 확정 짓게 하는 중요한 자료였다.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광산은 아직도 일본식 지하갱도(地下坑道)의 굴착법을 쓰고 있으며 북한도 마찬가지다.
○갱도를 파 들어갈 때는 먼저 폭약을 써서 암석이나 광석을 폭파한 후 인력으로 폭파구를 정리하고 퇴적물을 갱 외로 실어낸다.
○퇴적물은 광산용의 좁은 궤도에 작은 운반차를 사용한다.
○폭파용 화약은 지질에 따라 가급적 작은 양을 사용하되 20~30개의 폭파구를 만들어 도화선으로 연결해 터뜨린다.
○폭파는 나선형으로 판 폭약구를 밖에서부터 안으로 1~2초의 간격을 두고 터지게 하고 마지막으로 중심부의 폭약에 점화되면 암석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갱도 입구가 열리게 한다.
○한 차례의 폭파로 갱도는 90cm 정도 전진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인력으로 정리해서 만들어지는 갱도는 2m×2m가 능률적이지만 밑바닥은 30cm 정도 넓어진다.
○갱목을 대고 퇴적물을 들어내는 동안에 폭파조는 다음 폭파 준비를 하며 숙달된 작업반은 약 4~5시간에 한 번씩 폭파하면서 갱도를 전진시킨다.
○갱 내에서는 작은 삽과 곡괭이를 주된 공구로 사용한다.

이와 같은 종합보고는 포천광업소에서 얻은 지식을 더 확실하게 해줄 뿐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6사단의 청음보고 분석과 완전히 일치하였다. 이로써 나는 제6사단 전방 비무장지대 내에서 적이 지하에 땅굴을 파 내려오는 것이 확실하다고 단정하고 상부에 지휘보고를 하였다. 적의 무모한 흉계를 비무장지대 내에서 탐지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군 사령관과 육군 참모총장에게 이상의 지휘보고를 하면서 앞으로 땅굴의 탐지와 우리가 땅굴을 반대로 파 들어가 파괴하는 작전을 2급 비밀로 분류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地上관측과 聽音보고

군단지역은 물론 전(全) 야전군의 지상 관측보고를 종합해도 적의 지하음과 관련된 지상 관측보고는 여전히 없었다. 우리가 적 지역에서 이상한 지상 활동이 관측되지 않는지 정보 획득 노력을 집중하는 데 못지않게, 적측도 우리 6사단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활동을 관측하고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鄭 사단장은 해당 지역에서 아군의 활동이 평상시와 다름없도록 통제를 강화하고, 특히 의심지역으로의 차량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도록 하였다. 그 지역으로 출입하는 데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적측에서 관측되는 약 300m의 통로에는 위장망을 치는 공사를 하였다. 정보 통제지역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후방지역 외출도 제한하였다. 적에 관한 정보수집 못지않게 우리 내부의 보안에도 특별히 노력을 해야 한다.

그동안 의심지역에 깔아 놓은 청음 초소는 증가되었고, 날이 지남에 따라 청음 기술도 향상되어 갔다. 이들 청음 초소는 들리는 소리의 강약에 따라 1에서 5까지 분류해 기록하여 통계를 내게 하였다. 그 소리의 강약을 기계로 정확하게 기록을 못 하는 것이 유감이었지만 근무하는 장병은 애국심으로 그 약점을 향상해 나갔고, 보고의 질도 높아져 갔다. 지하음을 종합 분석해 판단까지 하는 기술은 보병사단에게는 과중했으므로 일차적으로 청음하고 보고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군단이 편성해 운용하고 있는 기술반에 종합 판단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보고를 종합하고 분석해 나가다 보니 점차 그 소리가 인공적인 공사음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주야(晝夜) 구별 없이 계속 들리며 한번 일어나기 시작하는 소리는 1~2초 간격으로 20회 정도 연속해서 들렸다. 나는 정 사단장과 함께 불확실함을 전제로 하고 상황을 종합 분석해 보니 소리가 나는 중심부를 150m 정도로 축소해 판단할 수 있었다.

군단에서는 우리 군 내부는 물론 주한미군과 널리 해외로도 첨단 청음장비의 존재를 알아보려 노력했다. 또한 적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중대한 비밀공사가 아군에게 탐지되지 않도록 사단과 군단 지역 내에서 상당한 반대방책을 쓰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필요한 보안방책을 실행해야 했다.

넓은 비무장지대 지하에서 적이 시도하고 있는 지하공사를 찾아내는 일은 아무도 해보지 않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군단은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제6사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하였다.

전문학자의 자문

아무리 무모하고 이성을 잃은 행동을 즐기는 북한이라 할지라도 국제기구가 정한 4km나 되는 비무장지대 지하로 갱도를 파 내려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중요한 일을 우리 군인들이 아무리 충성스러운 열의를 다한다 할지라도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국방과학연구소를 통하여 주로 서울에서 광업과 지질학자 수 명을 초청해 그분들의 자문을 요청하였다. 학자들이 몸에 맞지 않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비무장지대로 들어왔다. 날씨는 청명하여 일대의 관측이 극히 양호했다. 중앙분계선 너머 적의 경계초소(GP·Guard Post)도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분들에겐 미안한 일이나 지하갱도의 탐색작전은 미확인 상태이므로 현지답사의 목적은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분들을 적 진지를 관찰할 수 있는 지대로 안내하니 몹시 긴장하였다. 나도 신변보호를 위해 그분들을 오랫동안 적의 관측 아래 노출시켜놓을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분들이 의심지대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적의 공사음이 들리지 않아, 대신 지금까지의 청음 내용을 구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구두설명을 듣고 난 후 대략 다음과 같은 요지의 내용으로 자문해 주었다.

“초겨울의 기후변화로 지층구조가 자연히 수축되어 일어나는 소리가 아니면, 두더지 등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가려고 나무뿌리 등을 잘라서 저장하는 소리, 동물들이 동면 굴을 파 들어가는 소리 등”으로 의견을 주었다.

그분들은 지하에서 일어나는 인공적인 공사일지 모르겠다는 시사(示唆)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것은 중요한 군사기밀이었으므로 나도 견해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였다. 현 단계에서는 보안이 작전의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탐색 工事팀의 발족

나는 제6사단으로부터 계속 올라오는 청음 보고를 분석하고 포천광업소와 다른 광산에서 얻은 지하갱도 굴착 기술에 관한 지식 그리고 지하에서 폭약을 사용할 때 지상에서 감지되는 소리 등을 종합하여 분석해 보았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잠정적 지휘판단을 하여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이 조치는 제6사단장의 ‘비무장지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지휘보고가 있은 지 7일 만이었다.

즉, “적은 어리석게도 휴전선 비무장지대 밑으로 땅굴을 파 내려오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일은 단순한 휴전협정 위반이 아니라 6·25와 같은 불법 남침 행위를 다시 일으키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군단은 적이 파 내려오고 있는 지하 땅굴을 반드시 찾아내어 일찍이 그 만행을 내외에 폭로하여 민족공멸의 전쟁을 예방해야 한다.

제6사단은 청음 기술을 발전시켜 땅굴의 현 위치를 판단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지상에서 일어날 우발적인 도발에도 대처할 모든 전술적 대비책을 세운다. 군단은 제6사단의 과중한 임무를 줄여 주어야 하며, 특히 관련된 정보의 수집, 첨단 기술지원과 종합적 연구와 분석을 위해 5·1공사반(가칭)을 발족시켜 차후에 군단의 종합적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등이었다.

이 공사반은 군단의 참모편성과는 분리시켜 그 활동사항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통제지역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5~6명의 소수인원으로 편성한 이 특수 임무반에는 나와 공병여단장 그리고 두 사람과 동행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외부인사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보안을 위해 군단지역 내의 증가된 기갑 전력을 위한 새로운 전술도로 개발 임무라고 위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외부로 발신하는 문서와 전화통화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우리가 적의 지하 땅굴에 관한 정보 획득에 노력하고 있는 것 못지않게 적 역시 우리가 그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탐지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계속)

 

[ 2015-04-02, 15: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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