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과 ‘크레이프’ 만들기에 도전하다!
[연재3/조인정의 유학 스토리] 國籍이 다른, 인종이 다른 우리가 같은 일에 몰두하며 함께 즐거움을 누리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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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이후 美 전역의 백화점과 쇼핑매장에서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After Christmas Sale)을 시행한다. 26일 아침, 레이첼 엄마와 레이첼과 함께 에리의 도심에 위치한 백화점과 마트로 쇼핑을 갔다. 예상대로 백화점은 인산인해였다.
 
모든 매장 안에는 SALE이라는 사인이 곳곳에 대문짝만하게 붙여져 있었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에게 양보란 없었다. 카운터에는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에게선 세일상품을 꼭 사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와 레이첼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폭탄세일을 하고 있는 옷과 초콜렛 등을 구입했다.

레이첼이 발이 여덟 개 달린 귀여운 문어모양 귀걸이를 사고 있을 때, 레이첼의 엄마는 내게 ‘귀를 뚫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내가 구입한 것들은 모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한 거였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건넨 것이었다. 하지만 귀를 뚫는다는 건 내 귀에 구멍을 낸다는 것 아닌가? 귀에 총을 쏘아 구멍을 낸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지레 겁을 먹었다. 총이 아니라 뾰족한 바늘이라고 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계속되는 거부에도 레이첼과 레이첼의 엄마는 나를 계속 부추겼다. 일곱 살 정도 된 보이는 금발의 한 여자아이가 내 옆에 다가오더니 귀 뚫는 것은 하나도 두려운 게 아니라며 원치 않는 용기까지 북돋아주었다. 결국 계속되는 성원에 힘입어 귀 뚫는 것을 감행하기로 했다. 식은땀이 났다. ‘혹시 귀를 뚫은 후 피가 멈추지 않거나 어딘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귀여운 여자아이의 엄마는 내게, ‘자신의 직업이 간호사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종이에 구멍을 내는 펀치 같은 것을 손에 든 여자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견디기 위해 땀이 흥건히 젖은 내 두 손을 레이첼에게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One, Two, Three! 예방접종을 맞을 때 주사 바늘이 내 팔을 찌르는 것과 같은 아주 순간적인 아픔이었지만, 참을만 했다. 레이첼과 내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를 향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살면서 결코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두려움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아 조금 뿌듯했다.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국의 달콤한 맛

이제는 모두 대학생이 되어 버린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 메기(Maggie Davis), 브래난(Brennan McAndrew), 메디(Maddi Filutz)를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만나고 싶었다. 내가 레이첼의 집이 있는 에리에 도착한 그날부터 메기는 매일같이 언제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12월27일을 메기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고,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메기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은 오후 1시였기에 나는 레이첼의 집에서 브런치(brunch)를 하고 떠나기로 했다. 브런치 담당은 보통 레이첼의 아빠였다. 피넛버터나 메이플 시럽을 넣어 돌돌 말아 먹는 얇은 스웨덴식 팬케이크를 좋아한다고 걸 알고 있던 레이첼의 아빠는, 내가 놀러 오는 날이면 이 스웨덴식 팬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나와 레이첼이 요리사가 되기로 했다. 우리들의 특별한 메뉴는 바로 달콤한 꿀이 듬뿍 들어있는 ‘꿀호떡’이었다. 나는 미국에 가기 前 한국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만들기 편하면서 그들 입맛에 맞을 특별한 한국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마침 호떡을 생각해냈다. 물론 된장찌개, 김치, 잡채 등 한국적인 음식들도 많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副(부)재료를 구하기 힘들고,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부족한 나의 솜씨로는 만들기 어려웠다.

난 레이첼 가족에게 호떡믹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뒤, 손을 걷어 부치고 호떡 만들기에 돌입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그들에게서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한국의 맛’을 느껴보고 싶어하는 기대감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우리 고유의 맛있는 음식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반죽을 시작했다.

반죽은 손에 붙으며 질척했는데 조금 더 반죽을 하니 내가 원했던 형태로 변했다. 큰 반죽을 적당히 떼어내 동그랗게 굴려 그 안에 흑설탕과 견과류가 섞인 잼믹스를 두 세 스푼씩 넣고 봉했다. 레이첼도 옆에서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를 도왔다. 한국의 호떡이 스웨덴식 얇은 팬케잌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레이첼의 엄마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기름의 양이 조금 적다 싶었지만 호떡 만들기 초짜였던 나는 레이첼 엄마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곧 일이 터졌다. 호떡 속의 설탕이 달콤한 시럽으로 잘 녹고 있을 거라 믿었지만, 호떡 밑바닥은 까맣게 타들어가 탄내가 부엌에 진동했다. 까만 연기가 프라이팬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결국 첫 작품은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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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호떡굽기에 열중하고 있는 레이첼



역할을 바꿨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를 도와 팬케이크를 자주 만든 레이첼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뒤집개를 한 손에 든 레이첼의 모습은 사뭇 진지해 보이기까지 했다. 충분한 기름 양, 손목의 스냅, 진지한 눈빛을 보면서 얼마나 그녀가 호떡 만들기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호떡은 한국 길거리에서 파는 노릇노릇한 호떡과 비슷했고, 한 입 물면 속에 꽉 찬 달콤한 시럽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레이첼 엄마가 식탁보까지 깔면서 품위 있는 가족식사 자리가 준비되었다. 순간 ‘호떡은 한국에서 간식이지 식사 메뉴가 아니다’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게 옳았을 수도 있지만, 진지해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에 잠자코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각자 호떡을 자신의 접시 앞으로 가져왔다. 왼손의 포크로 호떡을 찍고 오른손의 나이프로 호떡을 썰었다. 스테이크를 먹는 것 같았다. 호떡이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는 음식이었던가?

그들의 반응이 어떠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레이첼 가족 모두가 호떡의 달콤한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또 그들은 한국의 호떡이 미국의 아침식사 메뉴 중 하나인 ‘시나몬 롤’(cinnamon roll: 계핏가루로 만든 필링을 듬뿍 채워 넣은 달콤하고 고소한 맛의 롤케이크)과 비슷하다며 입맛에 딱 맞는다고 했다. 넉넉하게 만든 호떡을 전부 먹고난 후 행복한 미소를 짓는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사랑하는 친구 메기와의 재회

호떡으로 아주 흡족한 점심 식사를 마쳤더니 시계는 이미 정오를 넘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이첼 아빠의 차를 타고 메기와 만나기로 했던 웨그먼스(Wegmans)라는 마트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눈에 띄는 얼굴의 한 사람이 나를 향해 해맑게 웃는 얼굴로 방방 뛰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메기의 모습이 보였다. 메기는 내가 자신 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는지,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환호를 질렀다. 그녀는 나와 팔짱을 끼며, “인정아, 네가 진짜로 내 앞에 있어! 믿을 수 없어!”라고 수 없이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의 집이 있는 코노 레이크(Conneaut Lake)로 가는 45분 동안 차 안에서 나와 메기의 수다는 끝날 줄 몰랐다. 그동안 서로 각기 바쁜 생활로 인해 대화할 시간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도착하자 메기는 나를 위해 손수 크레이프(crepe: 밀가루를 이용해 얇게 구운 팬케이크의 일종으로, 잼이나 과일 섞은 것을 펴 발라 돌돌 말아 즐기는 디저트)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알고 보니 며칠 전 크리스마스에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크레이프 요리책을 선물 받았단다. 우리는 앞치마를 두르고 달걀, 우유, 설탕 등 모든 재료를 꺼내어 크레이프 만들 준비를 모두 마쳤다. 레시피에는 적당량의 밀가루와 우유, 달걀, 설탕 등을 넣도록 되어 있어 매우 간단해 보였다.

쉬운 요리란 진정 존재하지 않는 걸까? 예상 외로 ‘크레이프 굽기’는 쉽지 않았다. 크레이프에 특성 상 얇게 부쳐내야 하기에 뒤집개로 뒤집을 때 잘못하면 부서지기 일쑤였다. 크레이프 중간에 구멍이 나거나 찢어져버리면, 메기도 당황스러운지 민망하게 웃더니 “찢어진 크레이프는 내가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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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프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와 메기


우여곡절 끝에 크레이프 만들기가 끝나고 시식시간이 왔다. 우리는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시럽, 휘핑크림(whipping cream: 세게 저어서 거품을 낸 크림)을 크레이프 위에 바르고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돌돌 말아 베어 먹었다. 맛도 있었지만, 메기가 나만을 위해 정성들여 만들어 준 크레이프이기에 그 맛이 더 있었을 것이다. 
 
레이첼 가족과 메기와 함께한 호떡과 크레이프 만들기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國籍(국적)이 다른, 인종이 다른 우리가 같은 일에 몰두하며 함께 즐거움을 누렸다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런 추억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대학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종종 떠오른다. (계속)

[ 2015-04-08, 15: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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