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거짓말, 이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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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의 추억 그리고 이광재의 거짓말
  
  
  
  출처: 뉴라이트닷컴 객원칼럼
  글쓰이: 곽대중 2005-05-19
  
  
  손가락의 추억 그리고 이광재의 거짓말
  100년전 역사도 들추는 사람들이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 이리도 비겁해지는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손가락을 잘라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화제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댓글을 보니 비난의 의견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설마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잘랐겠느냐”하는 의견들이 종종 눈에 띈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순진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운동권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잘라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중반까지도 운동권들 사이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실은 필자도 손가락을 자를 뻔 했다. 지금 ‘독수리 타법’으로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손가락 마디가 다 붙어 있는 것이 너무도 고마워 자꾸 어루만지게 된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처음 고백하는 일이지만 나는 사실 대리 신검(身檢)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신체적인 문제로 군대를 면제받은 다른 동지가 대신 신검을 봐주기로 하고 주민등록증 위조까지 마쳐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약속이 엇갈려 그 동지를 만나지 못했고, 그럼 신체검사를 받지 않으면 되련만, 순진했던 나는 뭔가 큰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봐 눈물을 머금고 신검을 받았었다. 결과는 ‘1급 현역’. 사상(思想)은 모르겠으되 신체는 대한민국 표준 남성이었다.
  
  호출기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그렇게 길이 엇갈렸던 것인데, 그때 만약 그 동지와 연락이 되었다면 나도 군 면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 아마 지금의 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가 덜컥 신검을 받고 오니 조직에서는 난리가 났다.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고, 손가락을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누가 지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 결단이 중요했는데, 다행히 나는 그런 용기(?)를 내지 않았고 존경하던 한 선배도 만류했다. 물론 그 선배는 ‘도바리’(군대를 가지 않고 도망치는 것)를 권유했지만.
  
  여하튼 운동권에 조금이라도 발을 깊게 담근 남학생이라면 어떻게든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유는 이랬다. 당시 운동권은 대한민국을 ‘미제(美帝)’의 식민지라고 생각했고, 국군은 미제의 용병(傭兵)이며, 그래서 군대에 가는 것은 미제의 용병이 되어 끌려가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80년대 초반 운동권 가운데에는, 이른바 ‘녹화사업’ 등으로 인해, ‘혹시 군대에 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까’ 걱정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는 소수 핵심 운동권에게나 해당할 사안이었다.
  
  대다수는 잘못된 사회인식 때문에, 그리고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군대에 가서 2~3년을 ‘썩는’ 것이 아까워, 군대에 가지 않으려 했다. 운동의 ‘공백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군 제대를 하고 나서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드물었던 탓에, ‘사상의지가 약해질 봐’ 군대를 의도적으로 기피했다. 이러한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는 거의 없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래서 손가락을 잘랐다. 군대에 가기 싫어 그랬다. 술을 진탕 마시고 작두로 싹둑 잘라내곤 ‘결의’를 다졌다. 잘린 손가락 마디를 학내에서 주로 집회를 하는 광장 한 켠에 묻은 ‘자랑스런 선배’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후배들에게 회자되곤 했다. 내 주위에도 그렇게 손가락 발가락을 자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상의 이야기가 80~90년대 학생운동권의 ‘팩트’(사실)다.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와 이광재 의원의 경우를 보자. 앞서 “이광재 의원이 손가락을 잘라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화제”라고 했다. 80~90년대 학생운동권의 ‘팩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 ‘팩트’를 지금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광재 의원이 단지(斷指)의 이유를 그 동안 속여왔던 것에 대해서는 재삼 거론하고 싶지 않다. <월간조선>의 보도에 의해 이 문제가 불거지자 이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서 “그 시절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후회하지 않는 일을 왜 지금껏 숨겨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나간 일을 갖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이 의원 개인적으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가슴 아픈 상처 가운데 하나이리라.
  
  그러나 이 의원이 손가락을 자른 것을 ‘시대의 탓’으로 얼버무리려 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 의원은 단순히 얼버무리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듯하다. 군사정권에 협조했던 사람들도 '당시 시대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군사정권을 반대하고 혐오했던 사람이 ‘시대의 탓’을 앞세우는 변명의 화법은 판박이다.
  
  국가의 법과 질서를 만들고 그 집행을 감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일단은 ‘법과 질서’에 분명한 기준을 두고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의원은 군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손가락을 잘랐고,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실정법에 위배된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긴 했지만 공인(公人)으로서 과거 행적이 문제되면 솔직히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밝혀야겠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국민의 몫이다. 시대 상황이 어떠쿵 하는 것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의 길을 가겠다’던 냉철한 80년대 운동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비굴한 정치인의 모습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 ‘386’의 최후는 과연 이런 것인가.
  
  조선노동당 문제 등으로 논란을 빚었던 이철우 의원의 사건 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과거사(過去事)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왜 386 정치인들은 자신의 현재적 신분을 망각하고 ‘시대’를 운운하는가. 그때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분명한 ‘팩트’를 밝히고, 그것이 이렇게 잘못되었다, 용서를 구한다, 딱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 살고자 했던 자신의 과거가 소중해, 그것이 조금이라도 구겨지는 것이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세상 모든 일에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기 마련이다. 산업화 세대의 오류는 샅샅이 찾아내 부정(否定)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민주화 세대는 무오류(無誤謬)와 순결무구로 남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탐욕이다.
  
  이 의원은 홈페이지에 “용서를 구하기도 이해를 구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해명의 말을 시작했다. 천부당 만부당이다. 이해를 구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고 이 의원은 용서부터 구하면 된다.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신체에까지 자해를 해 ‘이광재 학생’이 운동의 대의에 충실하고자 했을 때, 묵묵히 군대에 갔던 사람들이 수만 명이다. 그들 모두를 아직도 ‘바보 용병’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목을 뻣뻣이 세우되 그렇지 않다면 무릎 꿇고 사죄하라. 좀 솔직하고 깔끔해져라. 이것이 공인의 자세다.
  
  곽대중(99년 전남대총학생회장, dailynk.com 논설위원)
  
  
  
  
[ 2005-05-19, 16: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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