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세력이 민주화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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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세력은 바로 건국세력이다
  
  
  출처: 프리존
  글쓴이: 김광동 박사 2005/05/23
  
  
  대한민국 60년은 일관된 민주주의 발전과정이었다. 우리 민주주의 발전은 결코 특정 시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민주화세력’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반화된 ‘민주화세력’이란 다른 선진 국가들에도 없고, 우리 주변의 다른 나라에서도 없는 현상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다. 민주화세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민주화세력이라 날뛰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킨 건국세력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첫발은 1945년 해방되는 그날 시작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는 우리 민족사 최초로 복수정당제를 기반으로 자유민주적 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구성하였다. 당시로선 혁명이었다. 남들도 다 했던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었고, 중국까지도 아직 자유민주적 선거 그 자체가 문명시대라는 오늘까지 있어 본 적이 없다. 앞으로 20년 이내에도 있을까, 말까 하다. 러시아도 자유민주 선거가 정착된 지 불과 10여년으로 이제 걸음마에 해당한다. 심지어 대만까지도 1949년부터 1988년까지 계엄령이 계속되었고 그때까지 선거라는 것이 없었다. 스위스도 1971년에 가서야 여성까지 투표권이 주어지는 보통선거권을 도입했고 미국도 1965년에 이르러서야 문맹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우리는 달랐다. 공산전체주의의 코앞에서 바람앞의 등불같은 체제를 지키면서도 선거(Election)가 끊어진 적이 없다. 한국만큼 건국부터 복수정당제(複數政黨制)가 정착된 나라도 없다. 독립촉성국민회, 한민당, 자유당, 민주당, 공화당 등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보듯 복수정당제가 확고히 정착해 있었다.
  
  
  
  극소수 서구국가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만큼 선거에 의해 정치세력이 평가받고 교체되는 나라도 없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늘 박빙의 승부를 이루었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서울 등 대도시 지역에서 야당의 승리는 거의 기정사실화되다시피 했다. 심지어 5백만명이 희생된 피해를 입은 한국전쟁중에도 1952년 대통령 선거는 치러져야 했다.
  
  
  
  주변의 대부분의 나라에선 선거도 복수정당제도 없었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에선 계급독재를 명목으로 공산당이나 노동당이라는 단일 정당제만 유지되었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마찬가지다. 대만조차 국민당만이 존재했었고 싱가포르조차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광요의 인민행동당이 전체의석 100%를 차지해오다 불과 몇 년전부터 완화되어 이제 겨우 두석을 내줘 지금도 총 84석중 82석을 인민행동당이 장악하고 있다. 홍콩도 복수정당제니 선거니 하는 것이 아예 없었고, 일본조차 1955년부터 40년동안 자민당 집권체제 아닌가.
  
  
  
  한국을 제외한 주변국가들은 대부분 단일 정당제만이 유지되었고 지도자는 핵심세력간의 권력투쟁이나 비밀회의를 통해서 교체되거나 세습되었다. 스탈린,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 등에서 보듯 단일 지도자들은 대부분 신격화(神格化)되었다. 북한은 60년을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두명의 아버지와 아들이 통치해오고 있고 대만조차 장개석에서 장경국으로 부자세습되었다. 싱가포르도 결과적으로 단일정당제에 기반한 이광요 부자 세습체제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중국도 아직 최고 지도자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대한민국은 60년전 건국때부터 다른 나라들과 차원을 달리했다.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집착은 대단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주변 국가들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하던 수준의 민주주의를 건국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복수 정당제는 흔들리지 않았고, 선거를 통해 지도세력은 항상적으로 변화되었고, 최고 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공산주의전체와 그리고 북한 공산주의와 싸우면서도 낮은 민주주의 경험과 낮은 경제사회수준에도 ‘민주주의 혁명’을 시작하고 발전시켜 왔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가히 민주주의의 최고봉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은 결코 1987년을 전후한 ‘민주화 세력’에게 독점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발전의 제3단계에 해당될 뿐이다.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혹시 1987년 전후의 민주화운동으로만 가능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건국과정의 민주화혁명과 산업화혁명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왜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민주화세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민주화되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왜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선 복수정당제나 선거가 아직도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건국과정의 민주주의 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건국과정의 민주주의 혁명과 60년에 걸친 민주주의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화세력’은 자기 이전의 시대를 민주주의를 짓밟은 반민주주의 체제라고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역사적이고 반지성적이다. 학계와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대한 이 같은 역사인식의 혼란이 오늘 우리 사회의 혼란과 표류의 기원이자 요체다.
  
  
  
  
  
  
[ 2005-05-23, 16: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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