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사실일 겁니다."
생활 속의 名文/倫剛 申明秀 會長 1週忌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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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늘 당신은 이승에서의 73년간의 소풍을 마치고 알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 세상으로 낙조처럼 장엄하게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追慕辭

倫剛 申明秀 會長 1週忌에 부쳐

보고 싶은 사람 신명수 회장, 평안하게 잘 쉬고 계시겠지요?

그 청정한 모습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 이리도 생생한데, 신 회장이 우리들 곁을 떠나간 후 어느새 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이 당신을 그리워하며 지금 이렇게 당신의 유택 윤강원에 모였습니다. 신 회장, 혹시 지금 우리들 모습을 보시고 계십니까?

8090수를 누리는 것은 보통이고 100세 인생도 흔한 세상에서 인생 칠십 고래희란 말은 두보(杜甫)가 살던 당나라 시절의 얘기려니 싶었지요. 하지만 지난해 오늘 당신은 이승에서의 73년간의 소풍을 마치고 알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 세상으로 낙조처럼 장엄하게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남겨 놓은 것은 키다리 아저씨의 수줍은 뒷모습과 빠져 나간 우리들의 머리카락만큼 헤일 수 없이 많은 추억과 사연뿐입니다. 공자님도 미지생(未知生) 언지사(焉知死)라시며 사람이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하셨다는데 무엇이 궁금하여 그리 바삐 알아보러 가셨단 말입니까?

친구란 자주 만나면 번거롭고 안 만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라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 같은 당신을 그리는 마음이 참으로 짠합니다. 신명수 하고 조용히 불러보면 그냥 이름 석 자지만 형의 이름을 불러 보는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감회는 제각각의 사연과 추억들로 넘쳐흐를 것입니다.

나에게도 내 나름으로 추억과 사연들이 있습니다. 소탈하고 박식했던 당신과의 귀중한 추억이지요.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전혀 없이 회사일로 처음 만나 시작된 관계가 35여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서로의 애환과 처지를 소곤소곤 나누던 친구 사이로 발전했지요. 회사 이야기에서부터 자식들 이야기까지. 겉은 질박해 보였으나 속은 따스했던 당신과 나는 신사 생으로 같은 해에 태어났고 생일도 같은 9월생으로 진짜배기 동갑내기였지요.

그래도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는 큰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친구라고 하였으나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문자 그대로 외우(畏友)였지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명문 학교들에서 공부하고, 탄탄한 경제력까지, 키는 왜 또 그리 컸었는지. 생각해보면 나는 형에게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은 폭넓은 지식을 갖춘 진정한 지성인이었지요. 끊임 없이 많은 독서를 통해 얻은 다방면의 지식은 참으로 해박하였고, 형이 교유하던 세계 각국의 일류 인사들에게서 얻은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 분야에서 거침이 없었지요.

가업이던 동방유량()을 종합식품회사인 신동방()으로 우뚝 세우는 사업을 전개해 국민들의 새로운 식생활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식품산업 발전과 축산 진흥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1989년부터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으로 10년 넘게 봉사했고, 세계청년 경영자들의 모임인 YPO의 국제이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후배 경영인들이 세계적인 안목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지요.

명수 형, 그런데 인간 신명수의 트레이드 마크는 누가 뭐래도 센스 오브 유머 즉 유머 감각일 것입니다. 힘 안들이고 좌중을 웃기거나 미소 짓게 하는 날카로우면서 감칠맛 나는 형의 유머 감각은 일품이었지요. 게다가 중요한 대화중에도 익살스러우나 품격 있는 유머를 통해 핵심을 전달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지요.

명수 형, 형과는 같이 나눈 추억도 많았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터키의 카파토키아에서, 알라스카의 氷河까지 그리고 네덜랜드의 크로로 뮐러 미술관에서 호카이도의 골프장까지. 그래도 당신이 그리워질 때 먼저 생각나는 곳은 북창동 골목의 칼국수 집입니다. 천하의 신명수 회장이 제일 즐겨먹던 음식이 4,000원 짜리 칼국수였지요. 며칠 전에 추 지석 형과 같이 그 칼국수 집에 갔었습니다. 여름이면 당신이 그리 좋아하던 콩국수도 여전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입원하기 전에 자주 가던 비빔밥집도, 시청 앞 지하상가의 굴국밥집도, 그대로 있습니다. 복개된 청계천을 산책하고 가던 콩나물 국밥집도 그대로 있지만 당신이 떠난 것을 슬퍼하는 주인 아낙 때문에 다시는 발길이 돌려지지를 않습니다.

몬타나의 빌링스에서 치료하고 돌아와 같이 점심하던 자리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형, 이번 고비만 넘기면 내가 장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 보니까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좋은 신약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더군요.

그날 나는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입원하기 얼마 전에는 꿈 얘기를 하셨지요. “간밤의 꿈에 검은 도포를 입고 칼을 든 사람이 찾아와서 어디론가 같이 가자고 해서 나는 못 간다며 큰소리로 쫓아버렸다. 그 날 밤엔 저도 한잠 못 잤습니다. 자장면 먹으러 가던 길에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길바닥에 주저앉는 당신을 붙잡고 오군과 둘이서 망연자실하던 그즈음이었지요.

명수 형,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사실일 겁니다. Momento Mori 아시지 않습니까?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이상향 아르카디아에서도 청춘은 시들고 사람은 죽어 땅에 묻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마세요. 작년에 마지막으로 떠나는 당신을 보내며 어느 생에 다시 만나리이까하고 마음속으로 흐느껴 울었는데, 이제 형을 사랑하는 우리들 모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형을 따라 나설 것입니다.

명수 형,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는 지금 형이 이곳에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쯤 天上낙원에서 영생을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형과 마지막으로 작별한 곳이 이곳이니 이곳으로 형을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혹시 하늘나라에서 외로울 때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이곳으로 슬쩍슬쩍 다녀가면 어떻겠습니까?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 한번은 마을을 다녀 간다고 시인 정 호승이 읊으셨던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지혜로운 마법사 간달프가 한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지 끝이 아니야.

평생지기처럼 좋은 사람, 그리운 친구 신명수 회장, 다시 만날 때까지 신의 은총 속에서 편안히 안식을 누리소서.

2015829金 弼 圭

[ 2015-09-23, 00: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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