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1)/북한 전체주의 역사서를 표절한 역사교과서
독립투쟁을 한 적이 없는 김일성을 왜 한국 교과서가 과장, 미화하나? 김일성이 한 것은 중국공산당 활동과 전체주의를 지향한 계급혁명, 그리고 전체주의자 스탈린 휘하의 소련군인으로의 활동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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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연재/북한 전체주의 역사서를 표절한 역사교과서

김 광 동, 나라정책연구원장

. 문제 인식

국민 기본교육을 위한 교과서로서의 역사란 국가공동체가 겪어온 과거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다. 무한대의 사실로 구성된 역사를 교과서로 재구성하여 교육하는 이유는 민족과 국가가 성취하고 걸어온 삶의 궤적에 대한 내용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성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유된 인식에 기반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중 국민 기본교육으로 담아야할 역사서술의 대상과 기준은 인류문명사적 보편가치의 지향이면서도 민족과 국가가 맞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룩하고 성취해온 기록이자 기억의 형성일 수밖에 없다.

본 글은 국민 기본교육으로 실시되는 역사교재인 고등학교 근현대사의 내용이 담고자한 역사교육의 목적과 서술을 어떤 방향에서 재구성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방법적으론 북한의 역사서 <현대조선역사>(1983)와 대한민국 검인정 교과서(비상교육, 미래엔, 천재교육, 두산동아)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 비교 결과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가 i) 그와 같은 역사서술 대상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며, ii) 그런 내용으로 서술되게 된 이유를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9개 주제를 선별하여 한국의 역사교과서가 얼마만큼 북한의 역사서술과 관련성을 갖는지를 규명함으로써 전체주의 체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역사 서술과의 특별한 관계를 제시하고, 북한 역사서의 아류(亞流) 수준으로 재편집되어 있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새롭게 인류 보편가치를 중심으로 한 문명사, 민족사, 국가사의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 ‘현대조선역사의 서술과 역사교과서 비교

1. 근거없는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찬양

개인숭배 전체주의를 만든 주역이던 김일성은 결코 독립운동을 한 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조선역사>(1983)는 허위사실에 의한 날조로 김일성 주도의 항일활동을 대대적으로 조작해냈다. 김일성이 한 것은 중국공산당 활동과 전체주의를 지향한 계급혁명, 그리고 전체주의자 스탈린 휘하의 소련군인으로의 활동이 전부다. 설사 북한 선전이 실제라 하더라도 당시 조국광복회 정도 규모의 단체와 활동은 수천 개에 달했고, ‘보천보 전투라는 면 소재 주재소 습격사건 역시 단 한 명의 일본군과 경찰 희생도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개인숭배 차원에서 날조한 역사는 비판되고, 바로 잡혀져야 함에도 대한민국 교과서는 거꾸로 역사적 가치도 없는 공산당활동이나 조국광복회보천보 전투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 이어 1941년부터 일본과 중립(불가침)조약을 맺고 일본의 對美전쟁을 간접 지원한 소련과 스탈린군으로 활동했던 김일성은 근원적으로 독립투쟁을 할 수 없었다. 원폭투하 후인 194589일부터 단 6일간 소련군이 벌인 對일본전 때도 그는 참여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사에서 김일성의 활동은 역사적으로 전혀 의미없는 수준이기에 서술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임에도, 우리 교과서는 날조된 내용을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고등학생들로 하여금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역사로 교육시키고 있다.

현대조선역사

대한민국 교과서

김일성은 19343월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 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내오는 획기적인 대책을 취함으로써 모든 당조직들에 대한 통일적 지도체계를 정연하게 확립하였다.(73)

김일성은... 반일민족통일전선 조직체의 명칭은 각계각층 인민들의 공통된 염원이 반영된 <조국광복회> 또는 <민족해방운동>과 같은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통일전선조직이 내세워야 할 강령의 기본내용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혔다.(100)

김일성은 193655조국광복회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103)

김일성의 친솔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일제가 <금성철벽>이라고 호언장담하던 국경경비진을 뚫고 193764일 보천보를 공격하였다. 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용감하고 민활한 전투행동으로 적들을 쓸어눕히면서 경찰관 주재소를 비롯한 일제의 통치기관들을 순식간에 소탕하였다.(121)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진군과 보천보전투 승리에 대한 소식은 순식간에 온나라 방방곡곡에 퍼져갔으며 암담한 처지에 놓여 있던 우리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였다.(123)

만주 지역 곳곳에 수많은 항일 유격대가 조직되자, 중국 공산당은 이를 규합하여 동북 인민 혁명군(뒤에 동북 항일 연군으로 발전)을 편성하였다. 이를 중심으로 한중 두 민족이 연대하여 항일 유격 투쟁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편, 동북항일연군 내의 한인 항일 유격대는 국내 진출을 적극 도모하면서 함경도 일대의 공산주의 세력과 천도교도 등 민족주의 세력까지 통합하여 조국 광복회를 조직하였다(1936). 그리고 국내 조국 광복회 세력의 지원 아래 항일 유격대의 일부가 함경도 갑산의 보천보로 들어와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파괴하였다. 이 사건은 국내 신문에 크게 보도되어 만주에서 독립군이 모두 사라졌다는 일제의 선전이 거짓이며, 항일 투쟁이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미래엔 293)

1936년에 동북 항일연군으로 개편하고, 일제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단결을 추구하였다. 동북 항일 연군의 지휘관에는 한인들이 많이 있었다... 함경도 일대에도 조직을 확대하고, 보천보 전투 등 국내 진공 작전을 여러 차례 단행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공세가 강화되자 이들은 연해주로 근거지를 옳기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소련군의 일원을 항일 운동을 지속하였다.(두산동아 247)

그날의 역사: 보천보를 습격하다(두산동아 247)

1936년 동북 항일 연군의 한국인 지휘관들이 중심이 되어 만주의 한인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포괄하는 통일 전선으로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기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보천보의 일본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일제를 놀라게 하였다. (천재교육 289)

일본 군국주의의 궤멸은 미국과의 전쟁에 졌기 때문이다. 일본 패망과 대한민국 독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및 미국 주도의 태평양전쟁을 이해시키고 한반도 주변에서 펼쳐졌던 4년에 가까운 미국의 對일본전쟁 과정을 교육하는 것이 맞다. 미국의 對일본전쟁을 제외한다면 중국대륙과 동아시아에서의 항일전쟁은 중국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중국 국민당과 장제스(蔣介石)군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이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교과서는 김일성이란 이름만 명기하지 않았을 뿐 비중도 없고, 실체도 없었던 김일성 중심의 항일투쟁을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교과서들은 일제 下 무장투쟁의 전개 과정을 서술함에 있어, 북한의 역사책 <현대조선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조국 광복회, 보천보 전투 등 공산주의의 투쟁 활동을 비중 있게 다룬다. 무장투쟁 활동의 중심에 사회주의자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한 단체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반해, 민족주의 계열 등의 항일무장 투쟁은 한두 줄 언급하는 정도다. 사회주의 계열이 합류함으로써 한국 광복군의 군사력이 크게 강화되었다”(두산동아 248)고 하거나, 사회주의계열의 항일투쟁을 부각시킨 후 그 투쟁세력이 광복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미래엔 299)고 서술해 북한 정권이 항일운동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인식되게 만든다. 그랬던 소--북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곧 전체주의체제를 만들었고, 곧 대한민국을 전면 침략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서술은 文明史로나, 보편가치의 구현이나, 혹은 大韓民國史的으로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계속>

[ 2015-11-02, 21: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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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천     2015-11-02 오후 11:58
너무 중공계열 한인들의 항일투쟁과 조선독립운동을 과소 평가하고 있네요.
이러다가는 역사전쟁에 있어서 백전백패입니다.

1. 북한건국세력인 김두봉,무정 등과 김일성은 모두 중국공산당 당원이거나 중공당의 지원을 받아 항일투쟁한 독립운동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이 독립운동이 아닙니까? 조선의용대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부대에서 이탈하여 중공 팔로군으로 갔지요.

3. 김일성도 마찬가지. 조국광복회는 위증민의 지시에 의해 전광(오성륜)이 강령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조직을 한 것은 김일성이 조직한 조선의 경계지역 함경도 북쪽뿐이었다고합니다.
함경도내에서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이들이 항일무력활동을 했다면, 조국광복회의 '조국'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조국광복'은 곧 조선독립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4. 그들의 항일투쟁성과를 경시하는 것도 문제지요. 1939~41년 일제가 중공 만주빨치산을 토벌했을 때 그들의 규모는 총 3만명정도였습니다. 3만명. 작은 숫자는 아니지요.

5. 문제는 이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군들이 6.25전쟁때 우리 대한민국을 타도하기 위해 쳐들어왔는데...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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