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부정과 김일성 비호에 共助한 남북 교과서!
북한 역사서를 표절한 한국사 교과서(7)/북한 역사서의 서술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미제의 주구’로 ‘정권을 조작’하고 ‘매국’을 일삼으며 ‘파쇼’와 ‘독재’정치를 만든 장본인으로 기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대한민국 교과서도 북한 역사서 못지않게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金光東(나라정책연구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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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과 김일성에 대한 옹호

우리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자 민족사 최초로 자유민주체제와 민주공화제 시대를 만드는데 기여한 이승만 대통령의 공적이 일절 서술되지 않고 있다. 봉건제와 식민제를 넘어 공산전체주의와 대결하며 대한민국의 길을 열기 시작한 이승만대통령과 정부는 정권 연장을 꾀하고 탄압을 자행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 때부터 문제(혼란과 혼선)를 불러일으킨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전세계 역사교과서에서 건국 대통령이 한국처럼 서술된 나라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공한 나라의 성공한 길을 열어간 지도자에 대해 역사교과서가 사실 왜곡적 비난을 천편일률적으로 감행한 역시 그 예를 찾기 어렵다.

반면 김일성은 민족지도자나 국가지도자로서의 업적이자 자질이 전혀 없었고 단지 소련이 북한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교과서는 그런 설명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합법적 절차를 거쳐 내각 수상이 되었고, 김일성 주도로 토지개혁등 개혁조치와 민족반역자처벌 등의 민족적 조치를 추진한 것은 물론 김구, 김규식 등과 통일정부 수립을 향한 노력을 끝까지 수행한 인물로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민족을 유린하고 문명을 파괴한 독재자를 이렇게까지 미화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교과서의 방향이 반대한민국적인 것은 물론이고 헌법적 근거나, 인류보편적 가치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조선역사

대한민국 교과서

미제는 이것으로도 마음 안놓여 저들의 오랜 주구인 이승만을 급히 미국으로부터 끌어들여와 반동의 주축으로 삼았다.(175)

미제와 이승만정권은 남조선정권을 조작한 후 남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 정책을 <합법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협정>들을 체결하였다. ...(240)

... 이승만의 추악한 매국책동으로 말미암아 남조선에서는 정치경제적 위기가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다.(452)

이승만정권이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남조선 농민대중을 무마하기 위하여 실시한 <농지개혁>은 오히려 큰 후과를 남기고 남조선인민들을 걷잡을 수 없는 파산을 몰아넣었다. ... <분배>받은 토지까지 지주와 부농에게 도로 빼앗기게 되었다. ...(454)

조봉암을 당수로 하는 진보당은 반제, 반파쇼, 평화통일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투쟁강령을 내놓고 각계각층의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묶어 세우며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분열정책과 파쇼정책을 반대하는 적극적인 투쟁을 벌였다. ...

겁을 먹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유혈적인 탄압책동을 벌여 수많은 진보당 당원들을 체포투옥하고 그 당수 조봉암을 학살하는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으며 ...(457)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앞세워 정권 연장에 힘썼다. ...(비상교육 358)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강조하며 북진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이 탄압받기도 하였다.(비상교육 389)

이승만, 장기 독재 체제를 추구하다

... 이승만 정부가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반민족 행위자를 옹호하여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었다. ...(미래엔 320)

... 특히 남북의 두 지도자 이승만과 김일성은 적개심과 공포심을 부추겨 자신들의 장기 독재 체제를 강화하였다.(미래엔 352)

이승만의 장기 집권과 전후 복구

... 이승만 정부는 어떤 방법으로 장기 집권을 하였을까?

개헌과 이승만의 장기 집권(천재 315)

이승만 정부, 장기 집권을 꾀하다

(두산동아290)

역사 퍼즐

가로 열쇠

2. 남쪽만이라도 먼저 정부를 세우자는 이승만의 주장 oo 발언

9. 이승만이 장기 집권을 위해 625 전쟁 중에 만든 정당

남산의 이승만 동상 1950년대 아시아 최고 높이를 자랑하였다.(미래엔 320)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민 대표 회의 이후 이승만의 탄핵, 자금난과 인력의 부족 등이 겹치면서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두산동아 244)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가 임시 정부에 자금을 송금하고 보낸 전보-

... 이승만박사의 동지회는 19431223일에 재미 한족연합위원회에서 탈퇴하였으며 정신적재정적정치적으로 적지 아니한 혼란과 곤란을 일으켰습니다. 19441월부터 본 위원회는 이승만 씨에 대한 일체 원조를 단절하였으므로 워싱턴 외교 위원부는 임시 정부로부터 새로운 조직이 있기 전까지는 본 위원회는 그 후원을 정지합니다. (미래엔 299)

북한 역사서의 서술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미제의 주구정권을 조작하고 매국을 일삼으며 파쇼독재정치를 만든 장본인으로 기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파쇼적 법질서를 강요하고 탄압하였으며 초보적 민주주의도 아니라는 비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 교과서도 북한 역사서 못지않게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승만대통령을 장기집권’, ‘독재정치’, ‘부정부패’ ‘민중요구에 소극 대처그리고 권력 독점등의 범주 안에서 서술하고 있다.

한국 교과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구한말부터 시작, 장기간에 걸친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사실이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우리 민족 최초의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내용은 없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상황에서 공산 전체주의와 맞서야 했던 상황을 반공을 앞세워 정권 연장에 힘썼다”(비상교육 358)거나 적개심과 공포심을 부추겨 자신들의 장기 독재체제를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1950년대 아시아 최고 높이를 자랑하였다”(미래엔 320)면서 이승만의 동상을 김일성의 우상화와 같은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국민 대표 회의 이후 탄핵(두산동아 244)되었다거나 혼란과 곤란을 일으켰다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할 수 있는 내용(미래엔 299)으로 채워 넣고 있다.

- 김일성 서술

현대조선역사

대한민국 교과서

김일성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185) 김일성은 당을 창건하고 인민정권을 세운 다음 곧 인민민주주의적 개혁으로 정당과 인민정권기관들, 전체 인민을 총동원시켰다.(187)

첫 민주개혁으로서 토지개혁이 실시되었다. ...(187)

토지개혁법령은 ... 토지의 몰수 및 분배 원칙을 규정하였는데 그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일제의 소유토지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소유지 및 5정보 이상을 가진 지주의 토지, 계속 소작을 주고 있던 모든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어 그들의 소유로 한다.(188)

그는 회의후에 남조선에 나가 자기의 결의를 실천하기 위해 싸우다가 19496월에 이승만이 밀파한 육군소위 안두휘에게 피살되었다....(226)

남북연석회의를 통하여 남북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은 더욱 튼튼히 결속되었으며 김일성의 영도밑에 망국단선을 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성스러운 구국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였다.(226)

역사적인 남북총선거에 기초하여 194892일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소집되었다.

김일성은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으로,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으며, 9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231)

김일성이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부터 실질적인 북한 정권 수립 작업이 진행되었다. 임시 인민위원회는 친일 민족 반역자 및 지주의 5정보 초과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 분배하는 토지 개혁을 실시하였다(1946.3).(미래엔 315)

남북협상의 추진

... 남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들어서고 김구가 암살되면서 남북 협상은 실패하였다.(비상교육 350)...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남북이 분단될 위기에 처하자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한 중도 세력은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김일성에게 남북한 정치 지도자 회담(남북 협상)을 제안하였다. ...(비상교육 350)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 김두봉 등과 함께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해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1948.4)...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김구가 암살되고(1949.6), 막을 내렸다.(미래엔 311)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인 825일 이북 지역에서 최고 인민 회의 선거가 진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489월 제1차 최고 인민 회의가 개최되어 헌법이 제정되고, 김일성이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곧이어 99일 내각이 구성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천재 311)

김일성 1인 체제의 형성

... 김일성은 북한의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주체를 강조하는 한편, 중국 소련과의 사이에서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다.(천재 318)

북한의 역사서는 일제 무장투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핵심적 사건의 중심에 김일성을 두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교과서가 이러한 북한의 역사 서술을 전부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양비론을 전개하거나 완화된 표현을 사용해 서술하고 있다. 김구가 암살되지 않았으면, 김일성이 통일정부 수립에 협조했었을 것처럼 기술하는 것이나 극도의 독재체제를 유일 지배체제라는 주체사상식 표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예들의 하나다. 북한은 이미 남북협상이 이뤄지기 전에 정권이 수립되어 있었고, 1차 최고 인민 회의 때 제정되었다는 헌법 또한 소련의 스탈린의 초안을 토대로 소련군정 관리들이 준 것을 번역한 것일 뿐이었다. 또한 주체라는 것이 단지 구호로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소련의 해체로 지원이 중단되기까지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왔던 점을 외면하고, 주체를 강조하고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주체사상에 대해서조차 우리 교과서는 대체적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만 문제제기하고 있다. 개인숭배적 유일사상체계로 온 민족을 세뇌시키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나오게 된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다. 심지어 교과서는 주체사상과 관련하여 사상에서의 주체, 경제에서의 자립, 정치에서의 자주, 국방에서의 자위를 표방하며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비상교육 386)고 비판 없이 개인숭배적 시각을 그대로 전달하여 소개하고 있다.

[ 2015-11-13, 10: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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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2015-11-14 오전 3:19
북조선 인간들이야 원래가 인간도 아니니까
그렇다 치고
남조선 인간들은 뭐야?
이 인간들은 대한민국을 썩히는 암적인 존재들이죠?
빨리 도려내야 대한민국이 살 것
교과서 전쟁? 글쎄요?
전쟁은 이겨야 되는디 전쟁을 수행할 장수가
안 보이네유. 하ㅏ나마나 질 것
각하
하려면 잘 좀 하세요
   해리슨 김     2015-11-13 오후 4:53
이름과 직장주소, 집주소 모두 공개합시다.
재수없는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애국귀신은
뭘 하시나요?
이런 놈들 빨리 데려가시지요.

어차피 같이 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없애지 않으면 귀신도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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