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도 공화국과 대통령이 있었다!
호카이도 하코다데 五稜郭(오릉곽)의 비밀. 명치유신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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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인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편으로 일본 北海道 新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니 정오 무렵이었다. 비행시간은 두 시간. 비행기는 時速 1000km로 날았다. 등바람을 받은 덕분이다. 音速(마하) 0.9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 셈이다. 여객기는 동해를 가로질러 일본 서해안에 바짝 붙은 다음 동북 방향으로 날았다. 눈 덮인 일본의 해안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도야마 해안을 지날 때는 히말라야처럼 눈을 덮어쓴 3000m급의 산맥들(北알프스)이 펼쳐졌다. 이런 경치를 보려면 오른쪽 창쪽에 앉아야 한다. 커피를 한 잔 했다. 20여년 전 점보의 조종실에서 알라스카 맥킨리 산 꼭대기를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尙美會 여행단과 함께 노보리베츠(登別) 온천의 한 호텔에 들었다. 北海道는 일본에서 유일한 道이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1都(도쿄), 1道(북해도), 2府(교토부, 오사카부), 43개 縣으로 되어 있다. 북해도는 면적이 약8만 평방km이고 인구는 약 600만 명이다. 면적은 남한과 거의 같은데 인구는 9분의 1이다. 눈의 고장이다.
  
   북해도 눈은 습기가 적다. 밟으면 뽀득뽀득 소리가 난다. 물기가 적어 덜 미끄럽다. 눈 덮인 북해도를 돌아다녀보면 차량통행도 적고 인적도 드물다. 도시는 죽은 듯 눈에 파묻혀 있다. 마을도 冬眠하는 듯하다. 1960년대 굶주리던 시절, 강원도와 경북 산간지방의 火田民들도 겨울엔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고 집안에 누워서 에너지 방출을 줄이는 일종의 冬眠을 했다.
  
   尙美會(02-724-1345) 여행단(22명)은 노보리베츠에서 버스로 해안길을 달려 4시간 만에 하코다데에 도착했다. 일본 사람들은 눈길을 잘 관리하고 운전자들은 아주 안전하게 차를 몬다. 暴雪이 내려도 교통 大亂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코다데는 요사이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인천-하코다데 직항로는 늘 만원이다. 인구가 약 40만 명인 이 항구는 1854년에 개항되었다. 1868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하코다데 전투'라는 것이 일어났다. 明治維新은 일본이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하기 위한 혁명이었다. 이 혁명이 성공하기까지는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이 7회 정도 있었다.
  
   1868년4월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幕府토벌군에 포위당한 에토성(지금의 도쿄)을 자진해서 開城하여 넘겨주고 은퇴하였지만 막부에 충성하는 세력은 항복하지 않았다. 주로 東北지역의 藩主(번주)들이 武力으로 저항했다. 이들은 지금의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그리고 고치 등 西南 세력이 주도한 明治維新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戊辰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戊辰전쟁의 최후 전투가 하코다데에서 벌어졌다.
  
   이 최후 저항전의 주인공은 에노모도 다케아키였다. 30대 초반의 그는 막부 해군의 부사령관이었다. 막부가 공식으로 항복한 직후 그는 네 척의 증기선 군함에 2000명의 병력을 태우고 도쿄항을 탈출하여 北行했다. 이 반란군 속에는 일본에 파견된 프랑스군의 고문관들도 있었다. 반란함대는 1868년 8월 동북지방의 큰 도시인 센다이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병력을 증강했다. 10월 반란함대는 1000명의 병력을 보태어 센다이를 출항, 그 달 20일에 하코다데에 상륙했다. 센다이에서 합류한 그룹중엔 新選組(신선조)라고 불리는 무사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망해가는 막부를 끝까지 死守하기 위하여 결속한 젊은이들이었다. 이 新選組의 지도자 히지가타 도시조는 당시 35세였다. 明治維新의 행동파들은 거의가 30대 초반의 熱血남아였다. 죽은 이들은 영웅이 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권력자가 되었다. 한국과 惡緣(악연)이 많은 伊藤博文이 대표적 인물이다.
  
   하코다데엔 五稜郭(오릉곽)이란 5각형 유럽식 城이 있었다. 반란군은 이 城을 사령부로 삼았다. 지금 이 오릉곽은 공원으로 되어 있고, 그 옆에 90m짜리 관광 타워가 있다. 막부를 타도한 官軍은 토벌군을 하코다데로 보냈다. 10척의 군함과 약 7000명의 육해군이었다. 1869년 5월까지 兩軍은 육전과 海戰을 되풀이했다. 증기엔진으로 움직이는 근대적 군함끼리의 海戰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었다. 당시 일본이 도입한 군함은 네덜란드 등에서 만든 것인데 2600t 정도였다. 토벌군의 主力은 가고시마(사쓰마藩) 군대였다. 이때 艦砲(함포) 담당으로 참전한 사람이 러일전쟁 때 대마도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멸시킨 도고 헤이하치로였다.
   반란군의 지도자 에노모도는 국제법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하코다데에서 ‘에조 공화국’을 선포하고 본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일본 역사상 前無後無한 대통령과 공화국이 탄생했다. 에노모도는 하코다데의 외국인 영사관을 설득하여 에조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 공인까지 받았다. ‘에조’란 아이누族을 일본인들이 낮추어 부른 것이다.
  
   衆寡不敵(중과부적)의 반란군은 두 달간 抗戰하다가 항복했다. 3000명중 1300명이 전사하고 400명이 부상, 1300명은 포로가 되었다. 에노모도 대통령은 역적 두목이 되어 감옥에 갇혔다. 다른 나라 같으면 大逆罪(대역죄)로 처형되었을 것이지만 때는 亂世(난세)였다. 그는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선 새 일본 정부에 등용된다. 그의 실력과 인간됨을 잘 아는 명치정부의 실력자 구로다(黑田淸隆)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북해도 개척사, 해군중장, 문교상, 체신상, 農商務相 등 요직을 지내고 72세에 죽었다. 도쿄엔 그의 동상이 있다. 敵이라도 實力이 있으면 자기 편으로 만들어 重用하는 것이 일본 武士사회의 한 전통이다. 군인과 商人들에게 중요한 것은 實利이고 實力이다.
  
[ 2016-02-11, 23: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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