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車를 괴물로 착각한 돈키호테의 ‘원순이 때려잡기’
嚴相益 변호사의 '박주신 병역비리 의혹' 사건 전말기/ “어떻게 우파의 조갑제와 좌파 박원순과 동시에 친할 수 있죠?”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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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이건 의혹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市長의 아들이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 몸이 세상에 있는데 당신네들이 아무리 惡을 써도 진실을 허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차라리 미안하다고 사과하세요.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선동하는 사회

“여보, 양 집사가 정말 좋은 설교라면서 보내준 건데 朴 시장에 관한 말이 나오는데 한 번 들어봐요”

아내는 핸드폰을 내게 가져와 카카오 톡을 통해 들어온 한 대형교회 목사의 설교 장면을 틀어주었다. 검은 옷을 입은 길게 찢어진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목사가 화면에 나타났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미쳐 돌아갑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쩌자는 겁니까? 박원순이를 찍은 사람들! 내가 이 壇(단)에 서서 분명히 말하는데 나라가 망할 때 책임져야 해. 박원순이를 찍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찍은 사람들은 그 자손들까지 두고두고 그 보복을 받아야 해.”

목사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증오가 가득 서려 있었다. 사랑을 전하는 설교단상에서 서울시장은 왜 마귀취급을 받으며 단죄받고 있을까. 지금 이 사회는 극단적인 편 가르기다. 저주를 퍼붓는 그 목사를 이십년 전 사석에서 개인적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은 항상 오백억 원 정도를 관리하고 있다면서 자기와 친하면 변호사인 내가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고 은근히 과시했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났었다. 그건 신도들이 바친 헌금이었다. 그에게 눈이 먼 신자들이 아멘하고 호응하고 ‘조국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댓글을 달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죠?”

2012년 2월20일경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좌관이 나의 법률사무실로 찾아왔었다. 박 시장과 함께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할 시절 나는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인연으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그는 항상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는 개성이 강한 사람 같았다.

“저희가 법률 대리인이 필요해요. 어디 가서 얘기를 해도 변호사를 대동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서요.”

“그런데 왜 나죠?”

정치판에서는 야당시장인 박원순을 좌파라고 분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朴 시장의 주변에는 좌파성향으로 알려진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많이 도왔다. 나는 정치색과는 상관없는 대한변협 이사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잣대로는 우파로 분류되는 입장이었다.

“진영 논리에 휩싸이고 있는 이 사건에서 정치성을 빼는 의미에서 중립적인 嚴(엄) 변호사님이 하셨으면 해서요.”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불길같이 치솟아 오르는 때였다. 원숭이가 나무 위로 올라갈수록 엉덩이가 잘 보이고 거센 바람에 흔들린다고 한다. 朴 변호사가 시민운동가에서 서울시장이 되니까 광풍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한 국회의원이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들고 나왔다.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는데 병무청에 제출한 MRI가 다른 사람의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바꿔치기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 MRI 사진에 나타난 피하지방의 두께는 도저히 이십대 청년의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면 의원직을 걸겠다고 공언했다. 변호사 출신인 그 국회의원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박원순 시장과 함께 시민운동을 했다는 사람이기도 했다. 여론이 끓어올랐다. 그런데도 시장은 침묵했다. 해명도 없고 사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런 주저하는 태도는 사람들의 의심을 기정사실화시키고 있었다.

朴 시장과는 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고교 1년 후배인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삼십년 전 서소문의 한 빌딩에서 위 아래층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도로 건너편 이면도로의 빌딩에는 고교 선배 조영래 변호사와 천정배 변호사의 사무실이 있었다. 당시 선배인 조영래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부천서 性고문사건 등을 처리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활동했다. 사법연수원생으로 내가 동부검찰청에 試補(시보)로 가 있을 때였다. 검사실을 찾아왔던 조영래 변호사는 우쭐해 하는 나의 태도를 보고 한 마디 주의를 주었다. 판검사나 변호사 모두가 사회가 대접해 주는 데 안주해 턱없는 자기 기만에 빠져 정신 차리지 못할 때였다. 강하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 후 법원 앞에서 다시 만난 조영래 변호사는 자신도 검찰에서 시보를 할 때 검사실로 끌려온 피의자의 오랏줄을 풀어주고 자판기 커피 한잔 담배 한 가치 권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으로 시대의 아픔을 보듬던 인권변호사들의 代父(대부)였다. 박원순 변호사는 그 조영래 선배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었다. 그 무렵 점심시간이면 변호사끼리 삼삼오오 모여 냉면을 먹으면서 정보도 교환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박원순 변호사가 밥을 먹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의 작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시민운동을 칠년 정도 하면 어떤 결실이 나오지 않을까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고시에서 소수의 인원만을 뽑고 변호사조차 전국에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변호사는 돈과 명예가 보장된 지위였다. 박원순 변호사는 꽤 잘나가는 것 같았다.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승용차를 탔고 좋은 단독주택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빌딩을 샀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는 밑에 고용변호사를 두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잡지도 만든다고 했다. 소위 성공한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왕궁의 삶에서 순례자가 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구도자인 조영래 변호사의 영향인 것 같았다.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을 돌리고 마음을 바꾸라고 후배들에게 말하곤 했다.

아름다운가게 후원자가 되다

그 몇 년 후 서초역의 어둠침침한 승강장에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봤다. 헝크러진 머리에 피곤에 찌든 얼굴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기우뚱한 채 걸어가는 뒷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빌딩도 기부하고 살던 주택도 없앴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 시민운동 사무실의 비품 살 돈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또 소설가 조정래씨의 육필원고를 사달라고 하면서 찾아오기도 했다. 시민을 위한다는 사람이 재벌한테 손을 벌릴 수는 없고 나같은 同門(동문) 변호사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가 아름다운가게 안국점을 시작할 때 후원자가 됐다. 골목으로 냉기서린 찬바람이 휘몰아치던 겨울 밤이었다. 문을 연 아름다운가게 1호점에 몰래 가 보았다. 朴 변호사가 먼지 가득한 재활용품이 담긴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를 엎드려 밀면서 옮기고 있었다. 자원봉사 청년들은 추운 날씨에 입에서 흰 김을 내뿜으며 이삿짐센터 일꾼같이 트럭에서 낡은 냉장고를 등짐으로 내려 옮겼다.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었다. 자원봉사를 나온 칠십대 노인은 얼음같이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수거해 온 낡은 구두들의 터진 곳을 꿰매고 고리를 달면서 새 것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말이 재활용품이지 쓰레기를 담아 보내는 얌체족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비치면서 공천을 따려는 정치지향의 변호사와는 다른 것 같았다.

그 후 朴 변호사 부부와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 부부의 말과 행동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부인은 앞에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아름다운 가게가 주최자가 되어 행사를 할 때도 항상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런 부부의 아들이 병역기피자라는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전쟁이 나면 아랫것들의 자식들만 목숨을 잃는다는 게 민족의 한탄이었다. 일제강점기도 징병으로 6󈸩 때도 의용병으로 힘없는 사람들은 아들들을 빼앗겼다. 군대 문제는 사회적으로 예민했다.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됐던 이회창 후보도 아들의 병역의혹 그 자체만으로 쓴 잔을 마셨다. 

 “(朴 시장은) 대응 안하고 피하고 싶어 해요”

 “朴 시장의 대응방안이 뭐예요?”
 내가 보좌관에게 물었다.
 “아무런 말도 지시도 없어요. 대응 안하고 피하고 싶어 해요. 嚴 변호사님도 시장님 성격 그런 거 아시잖아요?”

朴 시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발견한 그의 독특한 성격이 있었다. 그가 아름다운가게의 상임이사로 있을 때였다. 세무사 출신의 자원봉사자 한 사람이 박원순 상임이사의 횡령과 배임문제를 들고 나왔다. 회계장부에서 빠진 백만원이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고 집요하게 따졌다. 워낙 확신을 가지고 덤비니까 주요 일간지도 朴 변호사의 횡령 의혹을 다루고 그 사건은 법정까지 비화됐다. 그때 내가 담당변호사였다. 재판과정에서 확인 결과 실무자가 강연료 명목으로 준 것이 행정처리 과정에서 전표로 정리되지 않았었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원순 변호사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일이 끝나도 박원순 변호사는 내게 고맙다고만 한 마디 할 뿐 일체 언급이 없었다. 그런 성질은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으면서도 전화조차 없었다. 알아서 해달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朴 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에 대한 나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변호사는 권력이나 재벌의 고용된 양심이 아니었다. 속아서 했으면 몰라도 지난 세월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기억은 없었다. 朴 시장은 아들의 병역을 기피시킬 인격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인은 달랐다. 자식에게 애착을 가지는 엄마들은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친해도 비리를 덮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아들의 병역비리가 사실이라면 시장을 물러나고 政界(정계)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趙甲濟 기자를 만나다

일을 시작하기 전 현명한 선배들의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趙甲 濟(조갑제) 씨에게 전화를 했다. 月刊朝鮮(월간조선) 편집장 시절 글을 기고하면서 인연을 맺어 25년 가까이 형 동생 같이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다.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꼭 말을 남기는 그는 시장 아들의 병역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 편이었다.

“서울시장의 법률대리를 맡았는데 그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박원순 시장이 방어를 전혀 안하는데 그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게 아니예요? MRI 바꿔치기 의혹이 핵심인데 그게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어요. 나도 ‘MRI의 바꿔치기 네 가지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지금 글을 준비하고 있어요. 朴 시장의 아들이 훈련소에서 갑자기 통증을 일으켰다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죠. 빠른 시간 내에 朴 시장 아들의 공개신검만이 사건해결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진실을 밝히는 게 선결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지켜봐 주시죠.”
 “알았어요.”

내가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 때문에 소송에 걸린 적이 있었다. 편집장이던 그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 법정에서 그에게 편집장으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어떻게 그 글을 발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는 나를 그냥 믿는다고 대답해 주었다. 신뢰를 표현한 가슴 뭉클한 말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그의 신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다. 오랜 세월 법관으로 지낸 원로였다. 그는 세상을 꿰뚫는 현명하고 폭넓은 지혜의 소유자였다. 그는 대통령에게도 세상을 유연하게 다스리는 많은 조언을 한 분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迂廻(우회)하지 말고 바로 정공법으로 해결하게. 눈사태가 발생할 때 산봉우리에서 눈뭉치가 작게 구르기 시작할 때 바로 해결해야지 그게 눈사태가 되어 계곡으로 떨어질 무렵이면 그 어마어마한 힘을 어떤 방파제도 막아내기 힘든 거야. 그리고 정치가 개입되면 진실이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법이야. 내 생각으로 자네는 이 사건에서 빠지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미 정치인이 된 朴 시장 일을 하다가 정치에 오염되고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그냥 혼자 믿음을 가진 글 쓰는 변호사로 사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

진실한 충고였다. 두 사람의 의견에서 어떤 결론이 나왔다. ‘진실’과 ‘빠른 시간’이 목표로 설정됐다.

병무청 의사

진실의 근원은 병무청에 있었다. 먼저 담당 군의관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2012년 2월20일 오후 1시30분경 서울지방 병무청에 들어가 책임자라는 징병관을 만났다. 그에게 시장아들을 판정했던 담당 군의관을 보게 해 달라고 했다. 그가 담당 군의관을 오게 해 배석하게 했다.

“왜 병무청에 보관되어 있는 MRI 촬영사진이 불법적으로 흘러나가 인터넷상을 떠돌면서 개인 인격에 대한 공격 자료로 사용되고 있죠? 병무청은 가지고 있는 개인 의료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기관 아닌가요?”

내가 따지고 들었다.
“…”

병무청 책임자는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담당 군의관이 나와 징병관 옆에 앉았다. 징병관은 우물쭈물하는 눈치였다. 옆에 배석한 담당군의관이 말을 하려고 하자 그를 제지했다. 관료적 보신주의의 공기가 주위를 흐르고 있었다. 진실은 간단하다. 시장 아들이 와서 직접 신체검사를 받았고 판정을 받은 과정을 확인시켜주면 되는 것이었다. 부정이 개입할 수 없는 엄격하고 투명한 과정이라면 그냥 말해 주면 되는 것이다. 항상 그런 애매모호한 태도가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병무청의 비밀자료를 반대당 국회의원에게 흘려 시장의 정치생명을 끊으려는 정치공작으로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담당 군의관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병무청을 나왔다. 그가 키를 쥐고 있었다. 의무복무인 군의관은 자신의 자격증과 명예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상부에서 누른다고 그냥 눌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늦게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병무청 담당 군의관이었다.

“저는 의사로서 정당하게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지금 이 문제가 대외적으로는 시장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로 매스컴에 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부정을 한 의사라는 소리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이 꽉 차 있었다.

“저는 의사로서 병무청 의료규칙대로 업무를 수행했어요. 시장 아들이 2011년 12월27일 신체검사를 받으러 와서 관련서류와 함께 MRI 사진을 제출했죠. 담당 군의관인 제가 CT를 찍게 하고 본인을 확인했습니다. 현장의 모습들이 병무청 CCTV에 명확히 찍혀 있을 겁니다. 다른 게 개입될 여지가 없어요. 그것들만 공개하면 의혹이 생길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해결될 문제를 병무청이 뭉개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어요. 오히려 위에서 저의 입을 막으려고 한다니까요. 시장 아들의 공익근무 판정에 대해서도 저는 의사로서 자신 있습니다.”

  “그러면 유사시 양심선언도 할 수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가 응한다면 승부는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병무청 소속 직원이라 어려움이 있지만 상황의 진전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를 신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 身檢하겠다” 기자들에 통보

여론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연세대 의대의 한 교수는 병무청에 제출된 시장 아들의 MRI 사진은 절대 입대할 20대 청년의 것일 수 없다는 의견을 감사원 게시판에 보내 공개적인 감사를 요청했다. 권위 있는 의대교수의 말은 흰 가운을 입은 하나님의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는 시민들 마음 속에 돌같이 굳어진 것 같았다. 언론도 市長(시장) 편이 아니었다. 시장의 보좌관들조차 그들의 표정에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입장상 시장의 지시가 없는 한 한발자국도 과감히 나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나는 독자적으로 치고 나가기로 했다. 그들이 안 따라 올 수 없는 상황을 전개해야 일을 끝낼 것 같았다. 뒤에 어떤 정치공작음모가 있다면 더더욱 칼로 매듭을 바로 쳐 내야 할 순간이라고 느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서 연합뉴스의 서혜림 기자, 중앙일보의 윤창희 기자, 매일경제의 강자영 기자, 한국일보의 안아람 기자, 문화일보의 이현미 기자 등 여러 기자들에게 바로 공개신검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의 귀가 번쩍 띄는 것 같았다. 어디서 할 거냐고 확인해 왔다. 서울대병원이나 연세대병원 등 공신력 있는 병원에서 기자들이나 관계인들이 입회한 속에서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사실이 바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앞서가시는 거 아닙니까?”

“이거 너무 앞서가시는 거 아닙니까?”

전화 저쪽에서 시장 보좌관의 당황하고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저희들하고 사전에 상의 한 마디 없이 기자들에게 그렇게 발표를 하십니까?”

보좌관이 질책하듯 따졌다. 당연했다. 그들은 자기네의 퍼즐에 한 조각으로 나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자유인이고 내 召命(소명)이 있었다. 어쩌면 나의 돌출행동을 그들은 속으로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도 의심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보좌관의 입장에서 시장에게 공개신검하자고 하기는 힘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에서 공개신검을 할 수 있도록 교섭해 주세요.”
 내가 한 단계 더 밀고 나갔다.  

서울대병원의 거부, 세브란스병원이 공개검진 응해

다음날 오전 나는 서초동의 서울중앙지검 강당에서 검사와 수사관들이 모인 가운데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 생활 삼십년을 해오면서 검찰청에서 모욕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았다고 호소한 사람들의 얘기를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인권강연이었다. 지난 30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검찰에 가서 사람들이 당한 고통을 전하는데도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세상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했다. 강연이 끝나고 검찰청 구내식당에서 검사장과 차장검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무렵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시장의 보좌관이었다.

“서울대병원은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 거절한다는데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병원 관계자가 회의를 거쳐 공개신검에 응하기로 했답니다.”

시장 보좌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1시30분경이었다.

“이번에 힘이 많이 들었지?”…“저는 괜찮은데 누나가 마음고생이 많죠”

2012년 2월22일 오후 2시경 세브란스병원 기자회견실이 된 6층 교수 회의실은 약 200명의 각 언론사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앞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비가 붙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공개검진의 핵심은 병무청에 보관된 MRI 사진과 강용석 의원이 입수해 발표한 MRI 사진 그리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찍을 시장 아들의 몸이 일치하느냐였다. 다른 사람의 것을 대신 병무청에 제출했다면 같을 수가 없었다.

회견장에서 웅성대는 기자들을 둘러본 후 나는 그 옆에 있는 MRI 촬영실로 들어갔다. 시장 비서실장도 보이고 대변인의 얼굴도 보였다. 다른 보좌관들이 기자들을 피해 시장 아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MRI 촬영실 앞 의자에는 일반 환자 몇 명이 앉아있었다. 검사실 앞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촬영하기 위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 뒤에 연세대 병원 신경외과의 윤도흠 교수 영상의학과의 김명준 교수 그리고 이환모 교수가 대기하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시장의 아들이 헐렁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그곳으로 왔다. 우람한 덩치의 청년이었다. 아직 여드름자국이 남은 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카메라를 든 다섯 명의 사람들이 시장 아들을 따라 붙으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밀착해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내가 시장 아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힘이 많이 들었지?”
“아니예요. 저는 괜찮은데 가족들 특히 누나가 마음고생이 많죠.”

누나를 강조하는 게 특이했다. 세 명의 의대 교수는 그들 앞에 있는 신장계와 체중계에서 시장 아들의 키와 몸무게를 쟀다. 시장 아들이 그곳에 있는 의료침대 위에 누웠다. 이환모 교수가 시장 아들의 허리 끝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고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고 발가락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허리를 비틀기도 하면서 물었다.

  “지금도 아픈가?”
“ 계단 같은 데를 오르락 내리락 할 때 아픈데 평소에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시장 아들의 대답이었다.
 “기침이나 재채기 할 때 어때요? 더 불편해요? 대변볼 때 다리가 땡기나요?”
 “작년 12월19일 무렵의 증상과 비슷해요.”

담당교수들이 여러 종류의 問診(문진)과 觸診(촉진)을 한 후 시장 아들을 MRI 촬영실로 들여보냈다. 둥그런 원통형의 기계가 바라다 보이는 투명한 유리창 뒤에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검사장면을 찍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촬영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카메라로 찍어 두었다.

윤도흠 교수, MRI 판독 후…“동일인의 것이라고 판단”

오후 2시40분경 MRI 촬영결과가 나왔다. 기자회견장 앞과 옆의 탁자 위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두 개의 영상사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부원장인 윤도흠 교수가 이환모 교수 등 다른 두 명의 교수와 함께 회견실로 들어와 기자들 앞에서 공개검진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사자의 신체계측 결과 키 176센티 체중 80.1킬로그램인 걸 확인했습니다.”

이어서 윤도흠 교수는 MRI 판독결과에 대해 영상의학 전문의들이 회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2011년 12월 찍은 MRI와 오늘 찍은 MRI를 면밀히 판독한 결과 동일인의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의학적 근거는 4,5번 디스크의 튀어나온 정도와 방향이 동일하고 하요추부의 피하지방의 두께가 약 3센티로 동일하며 척추와 하지를 연결하는 장요근의 모양이 동일하며 척추 후관절의 각도와 퇴행정도가 동일했습니다.”

담당 윤도흠 교수는 그 외에도 기자들에게 구체적인 의학적 소견을 자세히 설명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 아들의 증상이나 활동의 폭은 어느 정도입니까?”
 과연 병역면제를 받을 만한 정도인가를 묻는 것 같았다.
 “영상소견과 환자의 증상은 부위마다 다릅니다.”
 이환모 교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의학적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세밀하게 설명했다.

의혹 제기했던 세브란스병원 의사, 공개 사과

담당 교수들은 그동안의 의혹들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렸다. 모 국회의원이 공개한 MRI와 세브란스병원에서 찍은 시장 아들에 대한 MRI가 동일하다고 했다. 또한 시장아들이 2011년 12월 일반병원에서 찍은 MRI의 피사체도 동일인물이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의학적 소견으로 디스크가 분명한지 지방질의 두께 몸 증상의 개별적인 차이 등이 질문이 되고 답변이 됐다.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게 해명이 됐다. 이어서 법률대리인인 내가 기자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암살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상대방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언론에 허위사실을 퍼뜨려 한 인격을 말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게 현대판 정치적 암살일 것입니다. 무책임한 정치적 공세와 그에 동조한 사람들의 명예훼손죄에 대해 민사 형사상의 책임을 앞으로 물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울시장의 아량과 인격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나는 시장이 고소하지 말았으면 했다. 그렇게 하면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법정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살기 위해 다시 똑같은 의혹을 다시 증폭시켜 세상을 흔들어 놓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동안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던 바로 그 세브란스병원의 교수도 바로 그 자리에 나와 공개사과를 했다. 모든 게 끝이 났다.

朴 시장의 상상력

한 달쯤 지난 2012년 3월17일이다. 서울시장이 가까운 몇 부부를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연에 초청했다. 대부분 고교 동창들이었고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만나온 허물없는 친한 사이였다. 전통 무용을 현대적으로 다시 再(재)해석한 경쾌한 율동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던 朴 시장이 옆에서 속삭였다.

“우연히 인터넷에 안내되어 있는 조그만 연극이 있었는데 제목을 봤는데 ‘朴 시장도 와서 봐야 해’라는 연극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조용히 가서 그 연극을 봤죠. 거기서 느꼈어요. 외국을 나가보면 호텔에 수많은 문화안내 카달로그가 있는데 서울의 경우는 DMZ 가는 정도뿐이더라구요. 우리도 다양하게 볼거리를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아요.”

朴 시장의 상상력은 놀라웠다. 주위에서는 그가 희망제작소를 할 때 그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고 디자인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가진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지하철 9호선의 높고 낮은 손잡이를 제안하기도 했다. 예술과 문화에 굶주린 시민 사이를 연결하려고 연구하는 것 같았다. 참여연대 시절 그는 ‘1인 시위’를 창안하기도 했다. 아름다운가게나 희망제작소 같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아름다운가게를 구상할 때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재활용품을 기부받는 건 생산비가 들지 않는다는 소리예요. 자원봉사를 하는 천사가 있고. 그렇다면 그 경쟁력을 재벌기업인들 이길 수 있을까요? 재활용과 나눔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거죠.”

2009년 아름다운가게 매출이 200억 원이 넘었다.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이었다. 우리 부부는 공연히 끝난 후 朴 시장의 카니발을 얻어 타고 혜화동에 있는 시장공관으로 갔다. 그날은 朴 시장 부부가 저녁을 낼 차례였다. 돌아가면서 돈을 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부마다 회비를 내고 밥을 먹기도 했었다.

 시장 공관의 파티

시장 공관은 조선의 성곽축대 위에 세워진 오래된 일본식 집이었다. 朴 시장이 공관 안으로 함께 들어가면서 그 집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시장 공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인데 대법원장 공관으로도 한때 사용됐어요. 서울의 옛 성곽을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인데 그렇게 하려면 여기 서울시장 공관도 없애야 해요. 그래서 앞으로 공관을 옮기려고 합니다.”

본관으로 올라가는 침목을 깐 계단 위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박 시장을 맞았다.

 “서울이구나.”
 朴 시장이 허리를 굽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내가 이름을 서울이라고 지어줬죠.”

朴 시장은 공관 내부를 있는 그대로 구경시켜 주었다. 시장 부부가 자는 방부터 시작해서 거실 그리고 시장의 보물이 담긴 자료를 보관하는 서재까지 다 오픈했다. 골방 구석에 가득 꽂힌 그의 정책 자료들을 보았다. 미국정부의 비밀이 해제된 서류들도 꽤 많았다. 朴 시장은 발로 뛰면서 직접 구한 자료들을 제목을 붙여 바인더 별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기업 감시, 부정부패, 검찰개혁 등이 눈에 띄었다. 그가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분야 같았다.

거실에서 남자들이 와인을 한 잔씩 하면서 마음을 열어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시장 부인이 와서 음식이 준비됐다고 했다. 우리들은 주방 앞에 있는 조그만 식당으로 갔다.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들이 나왔다. 참석한 고교 동기 한 사람이 가지고 온 양주를 상 위에 꺼내어놓았다. 와인 잔이 부딪치고 음식이 오고가면서 모처럼 분위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전부 다 고교동기이고 그중 朴 시장만 1년 후배였다. 私席(사석)이라 전부 朴 시장에게 반말을 쓰고 朴 시장만 선배들에 대한 대접으로 형이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썼다. 朴 시장도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에서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는 나이가 어린 1년차 선배라도 형이라고 존중했다.

 “어이 朴 시장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거 한 잔 확 하는 거야.”
 혼자 폭탄주를 제조해서 먼저 몇 잔을 마신 친구가 시장에게 폭탄주를 권했다.
 “형, 이거 마시면 저 내일 시장 일 못합니다.”
 술에 약한 朴 시장이 말했다.
 “그래도 마시라면 마셔”

친구가 강권했다. 朴 시장이 폭탄주 한 잔을 억지로 받아 마셨다. 격의 없는 자리였고 속내를 털어놓고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朴 시장의 얼굴이 빨개졌다. 시장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시장은 눈을 속이고 뒤에서 청탁이 오고가는 걸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朴 시장이 잘나가던 시절 소유했던 빌딩을 기부했었는데 지금 그 가격이 엄청 올랐다고 했다. 부인들끼리도 진솔한 말들이 오고갔다. 음식을 나르던 시장 부인이 우리들을 보고 농담같이 한 마디 던졌다.

“아들 문제가 떠오르니까 저 양반이 오히려 나를 의심하는 통에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밖에 나갔다 돌아오던 시장 아들이 식당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인 시장 부인이 아들에게 인사드리고 가라고 했다. 시장 아들이 들어왔다. 병원에서 봤던 청년이 틀림없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 주었다. 시장 아들은 사귀던 여자 친구와의 프라이버시까지 인터넷에 모두 노출되어 곤혹을 겪었다. 오랜만에 모인 즐거운 저녁이었다. 밤 늦게까지 얘기의 꽃을 피웠다.

다시 치솟는 불길

2년이 흘렀다. 2014년 6월경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었고 그 운동이 달아오를 무렵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再選(재선)을 위해 정신없이 뛸 때였다. 서울 충무초등학교장 등 사회 명사들에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거짓 신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그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대한민국의 수도를 책임지는 시장이 저명한 의사들과 언론사 기자들을 동원해 공개적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바보로 만드는 사기극을 펼쳤습니다.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는 맞습니다.’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유권자들에게 퍼지고 있었다. 원자력 의학원 암센터 핵의학과 주임과장이자 영상의학의 전문의 한 사람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박원순 시장 아들은 나이 40을 훌쩍 넘긴 남성의 MRI를 이용하여 현역에서 4급으로 신체등급을 바꾼 대리 신검 병역비리일 확률이 99.99%라는 것입니다. 또한 2012년 2월22일 오후 2시 여론에 밀려 연세대 세브란스에서 실시된 기습적 공개 신체검사 역시 사기극이었을 가능성이 99.99%입니다’

영상의학의 권위자의 말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는 세브란스병원 교수급 의사들까지 동원된 엄청난 사기극으로 확대됐다. 병무청도 의심의 대상이었다. 괴물이 스며들어 대리로 CT 촬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다. 시민들이 분노하면서 사회지도층 병역비리 감시단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생기고 사이버 세계가 끓어올랐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개시됐다. 朴 시장 아들을 병역법 위반으로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고발한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사기극을 밝히라는 취지였다. 다른 인물이 MRI 촬영실로 들어가 대신 촬영을 했거나 그 옆방에서 모종의 영상 바꿔치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검찰수사 결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시장아들이 직접 촬영했다는 게 再확인됐다. 고발한 사람들은 승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고하고 또 재항고했다. 그들은 병무청도 검찰도 대한민국도 믿지 않았다. 어느 날 검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선거 때 허위사실을 공표한 사람들을 수사하려고 합니다. 검찰에 출석해서 수사에 협조해 주세요.”

검찰이 칼을 빼들은 것 같았다. 이 문제가 법정으로 가는데 나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어차피 본질은 의학적 논쟁이었다. 의학교과서와 다른 특이체질에 대해 의사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판정도 대학병원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 했다. 법정은 의심의 불길을 더 크게 타오르게 할 것 같았다. 야당 市長에 대해 검찰이 호의를 베풀 것 같지도 않았다. 기자들 200명도 사기극에 동원됐다는 그들의 주장은 더 들을 필요도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교수까지 올라간 여러 명의 의사들이 평생의 업적과 명예를 버리면서까지 사기극에 가담할 수는 없었다. 방사선기사까지 합치면 10명도 넘는다. 그날 홍보실 직원들도 동원됐으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버려야 맞는 일이었다. 사기극이 성립되려면 나까지도 사기극의 공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시 담당검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시장한테 연락해서 수사에 협조하게 해 주세요.”
“직접 하시기 바랍니다.”
“공관에 연락했더니 영국에 있는 아들 주소도 알려주지 않더라구요.”

사기극의 ‘수괴’ ‘똘마니’라는 경멸도

再選(재선)된 시장의 태도도 단호했다. 더 이상 아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 같았다. 사건의 핵심인 朴 시장 아들에 대한 조사가 생략된 채 검찰은 그들을 기소했다. 알맹이가 빠진 기소가 제대로 유지될까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머리 좋고 유능한 변호사들이 선임되어 법정에서 바로 판을 장악한 것 같았다. 의혹에 불이 붙었다. 다양한 의학적 주장과 소명자료들이 제출되고 그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변호사들에 의해 시장 아들의 치과의 엑스레이나 가슴 엑스레이까지 새로 제출되면서 대리 신검의 의혹이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 거센 물결이 내게도 다가왔다. 인터넷에는 시장공관에서 함께 식사를 한 친구들의 이름이 오르고 ‘호위무사’라는 빈정거림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내게는 사기극의 ‘수괴’라는 욕도 나오고 ‘똘마니’라는 경멸하는 말들도 떠돌았다. 사이버 공간에서 침뱉음을 당하고 수많은 돌이 검은 허공에서 날아왔다. 그 영향은 현실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고교 동창들과 기도모임 후였다. 의사인 친구가 근처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서울의대를 나온 그는 정형외과를 하는 병원장이기도 했다. 그가 예민한 표정으로 내 눈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嚴 변호사가 시장의 법률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발표한 사실을 믿었어. 고등학교 때부터 정직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인터넷에 있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까 시장 아들이 검사받을 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찍은 게 틀림없는 것 같아. 나도 교수를 하면서 엑스레이를 보는 데는 자신이 있어. 그런데 엑스레이가 다른 거야. 솔직히 이제는 嚴 변호사도 의심해. 변호사니까 직업상 거짓말을 해준 게 아닌가 하고 말이야.”

 의사 친구들의 확신에 찬 분노

의사인 그는 내게 엑스레이에 대한 설명을 한참 동안 했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처가에도 의사가 많았다. 병원장인 처형이 집을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朴 시장 아들의 병역문제가 화제로 떠오르자 이렇게 말했다.

“어제 점심시간에 우리 병원 젊은 의사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朴 시장 아들의 엑스레이 사진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것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이 착잡했다. 법정에 제출된 시장 아들의 치과의 엑스레이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그건 시장 아들의 치과사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말감으로 치아를 때우는 것은 서울 중심부의 치과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고교 동창으로 반포에서 치과의원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치과를 30년 이상 한 그는 분노하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인터넷에서 시장 아들의 구강 엑스레이 사진을 봤는데 시장 아들을 치료한 의사는 나쁜 놈이야. 어떻게 아말감을 쓸 수 있어? 미국에서 만든 아말감에는 수은독이 있어서 치과의사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재료야. 미국이 우리에게 막 팔아먹기 위해 수출하는 거고 악덕 치과의사들이 그걸 쓰는 거야. 혹시 쓴다고 하더라도 지방에서 치료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할 수 없이 시술한다면 몰라도 이건 아니지. 시장 아들이고 동창이잖아? 그런데 아말감을 써? 그건 나쁜 놈이야.”

시장 아들의 치아를 치료한 것도 동기동창이었다. 같은 동창의 치과의사를 노골적으로 욕했다. 그 며칠 후 서초동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다른 친구를 만났다.

“요즈음 아말감을 쓰는 치과의사는 없어? 그걸 쓰면 악덕 치과의사인 거야?”

내가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런 말을 하는 치과의사는 나도 같은 치과의사지만 이상하네. 강남 부자동네서 치과를 하는 나도 지금 아말감을 많이 사용해. 그럼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이란 말이야? 아말감에 수은성분이 있는 건 맞아. 그렇지만 100도 이상 온도가 올라가야 독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어. 사람 체온이 100도가 될 수 있겠어? 그런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아말감은 인체에 써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거야. 난 지금도 많이 잘만 사용하는데 뭘.”

10억 원 내기 공개 제안도

나는 도대체 뭐가 뭔지 헷갈렸다. 어느 날 변호사 한 명이 내게 이메일로 인터넷 신문의 기사 하나를 보내 주었다.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이 ‘엄 변호사, 시장아들의 입속 사진을 한번 보세요’라고 되어 있었다. 시장 아들의 치과 엑스레이 사진도 나이먹은 노동자의 것을 제출한 가짜라는 얘기였다. 그는 내게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에 10억 원을 걸어놓고 내기를 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의했다. 세브란스병원에 대한 불신도 전해져 왔다. MRI 촬영실 옆에서 컴퓨터 칩을 조작하거나 전송기술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다른 짓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병원 출신의사의 말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趙甲濟 대표와 함께 밥을 먹는 자리였다.

“시장 아들 병역비리 정말 깨끗한 게 맞아요? 지금 상황이면 판결로 예전의 결론이 뒤집힐 것 같은데?”

趙甲濟 대표가 그 정도로 의혹을 가질 정도면 이미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는 기정사실화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판결과 진실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판결이 나면 어떻습니까? 아닌 건 아닌 거죠. 시장 아들이 존재하는 진실은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다시 공개신검을 할 수 있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거죠. 판사가 다르게 판단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공개신검을 해서 오판인 걸 확인해 줄 수 있죠. 이건 자신있는 확실한 게임이에요.”

“그러면 재판에서 시장 아들을 다시 검사해야 하지 않아요?”

“의혹이 제기되고 고발될 때마다 공개신검을 하면 그게 타당한 일일까요? 기자나 변호사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호기심에 시장 아들이 그렇게 매번 뭉개져도 되는 겁니까? 옷이 벗겨져도 창피한데 이건 뼈 속 내장까지 다 드러내는 거잖아요? 대학병원에서 했으면 됐지 더 어디서 어떻게 합니까?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한다고 믿겠습니까?”

증인 소환장

증인소환장이 왔다. 안 나오면 5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린다고 써있다. 그래도 오지 않을 경우는 감옥에 잡아넣겠다고 했다. 이제는 법정에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서 말들이 많았다. 법정에 나가 진실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이 사건은 진실규명 차원이 아니라 좌우 陣營(진영)논리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정에서 커터 칼로 테러를 당할지도 모르니까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신청하라는 권유도 있었다. 기자들한테서 확인이 왔다. 3년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신체검사를 하던 날 새벽 이미 명지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던 사실을 알았냐는 것이다. 그건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세상은 朴 시장 보좌관들이 개입되어 일을 꾸민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증인으로 나가기 전에 한 번쯤 내가 모르는 부분들을 확인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게 찾아왔던 보좌관의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해 보았다. 그들은 보좌관을 그만두고 각자 자기 분야의 길을 가고 있었다. 당시 시장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도 대학으로 갔다고 했다. 당시 나를 찾아온 보좌관과 실무책임자였던 시장 비서실장을 만났다. 자유인으로 인생궤도를 바꾼 그들은 사건에 개입되는 게 싫은 것 같았다. 지금 교수로 있다는 당시의 시장비서실장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는 비서실장을 했다면 심복이고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걸로 알지만 저는 사실상 그렇지 않아요. 朴 시장과는 선거 무렵에 만나 알게 되고 비서실장이 되어 몇 개월 일한 것밖에 없어요.”

그는 자신에게 쏠린 세상의 오해로 억울함이 가득찬 목소리였다. 그가 덧붙였다.

“저도 민주화 투쟁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 학교에 있지만 앞으로의 꿈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우리를 치밀하게 음모를 꾸민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변호사님 때문에 갑자기 당일치기로 공개신검을 준비하도록 쫓기는 입장이었는데 꾸미고 자시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었나요? 저도 법원에서 증인으로 나오라고 하는데 가서 사실대로 다 말하려고 합니다. 숨길 것도 없고 조심할 것도 없어요. 다만 朴 시장이 선거 때 메르스 관계 발언 때문에 의사들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새벽에 명지병원서 촬영한 이유

 “그날 아침 명지병원에서 촬영해 본 거 맞아요?”
 내가 그 부분을 확인했다.
 “그랬어요.”
 “왜 그랬죠?”

“솔직히 우리도 의심을 하고 불안했죠. 우리도 시장 아들을 모르거든요. 그리고 시장 아들이 전에 디스크를 앓고 있었어도 그 몇 년 사이에 호전됐을지도 모르잖아요? 공개검진을 했다가 멀쩡한 것으로 진단이 나오면 우리가 뭐가 됩니까? 嚴 변호사님이 공개검진을 하겠다고 했어도 우리 보좌진의 내부에서는 망설였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몰래 한번 확인해 보자는 거였죠.”

“그때 朴 시장 입장은 어땠어요?”

“嚴 변호사님은 공개검진을 한다고 기자들에게 발표해 버렸고 하긴 해야겠는데 朴 시장은 오히려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이런 공작정치 속에서 오히려 정권측이 촬영사진을 바꿔치기 해서 시장님에게 누명을 씌우는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거였죠. 새벽의 명지병원 촬영은 우리 보좌관끼리 확인하기 위해 셋이서만 한 거예요. 일단 확인하는 데는 사모님도 동의했어요.

그래서 가서 찍어보니까 확실하더라구요. 자신감이 그때 들었죠. 그래서 ‘기자 불러 까자’ 하고 12시에 대변인을 통해 출입기자들 1진을 불러 그 사실을 알렸죠. 방송사와 일간지 경제지에도 알렸어요. 인터뷰 때문에 그 사실을 몰랐던 문화일보 기자는 막 항의하기도 했어요. 명지병원에서 검사비가 100만 원 나왔는데 제 카드로 계산했어요.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교수 때문에 잃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홍보팀까지 동원해 협조해 줬어요.”

첫 身檢 당시 ‘체중 60kg’이란 기록 보고 의혹 시작?

괴물이 스며들어와 대신 검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다. 당시 시장 아들의 動線(동선)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시장 아들은 그날 어디 도착해서 어떻게 세브란스병원 촬영실까지 올라갔죠?”

당시 보좌관에게 물었다.

“엄마가 시장 아들을 동문 입구까지 데려왔어요. 주차장 쪽인가에 기다리고 있던 세브란스 홍보팀 직원의 안내로 우리 보좌관들과 함께 올라갔죠. 올라가다가 복도에서 방송사 카메라에 걸려 찍혔어요. 그때 시장 아들이 파커와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나도 그때 처음 봤으니까. 그게 다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당시 비서실장이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 나는 기자회견장 앞에 서 있었는데 세브란스병원 사람들이 나를 국정원 직원으로 오해했는지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더라구요.”

  “새벽에 명지병원에서 촬영한 사실은 왜 내게 얘기 안했죠?”
 내가 물었다.
 “변호사님은 우리하고는 입장이 다른 분 아닙니까? 우리가 행동하는 것보다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대동하면 더 신뢰를 얻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朴 시장께 건의를 하고 법률대리인이 되신 겁니다.”

“도대체 이 문제의 발단이 뭐죠? 문제를 제기한 강용석 의원은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한 건 한다고 잡았을 때는 근거가 있었을 거 아닙니까?”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말이죠 시장 아들이 스무 살 무렵 신체검사를 받을 때 몸무게가 60킬로그램으로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은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의 것이었거든요. 의사들 사이에서 이상하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죠. 그걸 국회의원이 캐치한 거죠. 상대방은 巨物(거물)인 서울시장 아닙니까? 의사들은 60킬로그램의 체중에 그런 피하지방의 사진은 불가능하다고 확신을 하니까 국회의원직을 걸고 덤빈 거죠. 시장 아들의 의료자료를 빼내서 인터넷에 올려 공개했는데 우리는 그 과정도 알아요. 처음 민간병원에서 찍은 자료를 그 병원의사를 통해 빼낸 거 같아요.”

“시장아들 몸무게가 진짜 60킬로였어요?”
“우리야 모르죠.”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수들 앞에서 잰 시장 아들의 몸무게는 80킬로그램이 넘었었다. 대충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나 증인으로 나가서는 내가 정확히 체험한 사실만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들은 건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증언

2015년 10월27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311호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진실을 얘기해서 상대방들의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제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인들이 법정에 나와 곤혹을 겪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번 법정에서 치과의사인 고교 동창이 증인으로 나와 여러 시간 곤혹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연세대 의대 교수로 있는 친구도 증인으로 끌려나와 혼이 났다고 했다. 변호사 중 한 명은 아주 못됐더라고 했다. 나는 검찰측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먼저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제가 건 전화를 받은 적이 있으시죠?”

몇 년 전 내게 전화를 걸어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했던 검사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묻는 그의 눈은 호의적인 빛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협조하지 않으니까 화가 스며든 문자를 보내기도 했었다. 경계심 없이 전화로 편하게 대화한 내용을 위증 선서까지 한 법정에서 첫 질문으로 하는 건 유쾌하지 않았다. 말에 실수가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검사의 질문에 나는 아는 사실들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거짓말을 하려면 복잡하지만 진실은 간단했다. 말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앙칼지고 짜증스런 여자 목소리가 날아왔다.

“지금 이런 얘기를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증언을 중단시켰다. 그들의 주장에 맞지 않으면 듣기 싫은 것이다. 검사의 신문이 끝나고 반대신문이 시작됐다. 법원은 피고인들에게 내게 물어볼 게 있으면 물으라고 했다. 죄를 지은 그들이 방어권이라는 명목으로 증인인 내게 돌을 던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적대감을 품은 그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를 꿰뚫는 것 같았다.

 “朴 시장 부부는 아들을 학대했나요?”

“변호사가 법원에 위임장도 제출하지 않았죠?”

한 사람이 첫 번째 돌을 던졌다. 흠집을 내고 싶은 것 같았다. 며칠 전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이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변호한 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재판이 아니라 시장의 법률대리인으로 기자회견장에서 대신 말해준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은 얼마나 받았나요?”
 다른 사람이 화살을 날렸다. 탈세를 하지 않았느냐는 빈정거림 같았다. 
 “그냥 해 준 겁니다. 밥은 한 끼 얻어먹었습니다.”
 “朴 시장 아들한테서 악취가 나지 않던가요?”
 다른 사람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갑자기 악취라니 무슨 얘기입니까?”
 내가 되물었다.
 “시장 아들의 구강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옆에 있을 때 냄새가 나야 맞아요.”
 “마주 대하고 얘기했는데 그런 거 못 느꼈어요.”
 “朴 시장 부부는 아들을 학대했나요?”
 또다른 질문이었다.
 “왜 학대했다는 말이 나오죠?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우파의 조갑제와 좌파 박원순과 동시에 친할 수 있죠?”

짐작하기에 고등학교 때 운동하다가 골반 뼈 조각이 떨어져 나와 신경조직을 건드린 사실을 부모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들에 대한 무관심내지 학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우파의 조갑제와 좌파 박원순과 동시에 친할 수 있죠?”

터무니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진실을 찾자는 법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손톱을 세우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면서 나를 상처 내려고 했다. 이번에는 변호사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증인은 어떻게 몇 년 전의 일들을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나요?”
 내가 말한 것들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질문이었다. 
 나는 앞에 놓인 가지고 온 수첩을 보이면서 대답했다.
 “저는 순간순간 있었던 일을 기록해 놓습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겁니다.”
 그때였다.
 “이보세요 증인.”
 재판장이 끼어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수첩을 보면서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법정의 공간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수첩을 한번 보면 안 될까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는 취지였다.
 “보세요.”

내가 수첩을 건네주었다. 나는 메모狂(광)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상대방과 한 대화까지도 기록해 놓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기록해 왔다. 질문을 하던 변호사가 깨알 같은 글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나의 수첩을 보더니 “이건 완전히 일기네”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법정 벽의 스크린에는 엑스레이 사진이 떠 있었다. 변호사가 그걸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저 엑스레이 사진을 보세요. 병무청과 세브란스의 엑스레이 사진이 다른 데 한번 확인하시죠.”

나는 화가 났다. 전문가인 의사들도 판독하기 힘들고 의견이 갈리는 엑스레이를 제시했다. 무엇을 위한 질문인지 의아했다. 재판장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보세요? 전문의들도 보기 힘든 엑스레이 사진을 증인으로 나온 나보고 판독하라는 소립니까? 저는 무식해서 볼 능력이 없습니다. 더 이상 대답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래도 여기 흰 점 같은 부분이 다른 것과 다르잖아요?”
 변호사는 엑스레이 사진 안의 작고 흰 연기 같은 부분을 가리켰다.
 “같은지 다른지 알아서 판단하세요.”
 “증인은 얼마 전 정형외과 병원을 하는 의사인 고교동창 친구를 따로 커피숍에서 만나 엑스레이에 관한 그의 의문점들을 자세히 듣지 않았나요?”
 무서운 세상이었다. 친구와의 私席(사석)에서 한 얘기가 법정에서 毒(독)이 되어 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죠?”
 “저희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만났는데 그게 어때서요? 의사로서의 의문을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엑스레이 사진은 찍는 각도에 따라 같은 사람을 찍어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의외로 의사도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거죠.”

시장 아들이 입었던 옷, 들어온 門은 기억 못해

변호사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날 시장 아들을 볼 때 무슨 옷을 입고 있던가요?”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건 환자복을 입고 교수들 앞에서 키와 몸무게를 잴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법정 벽의 스크린에 사람들과 섞여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 청년이 시장 아들입니까?”
 “좀 더 화면을 확대해 주시죠.”
 그래도 분명한 얼굴 윤곽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보지 않은 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화면상 얼굴이 보이지 않네요.”
 “좋습니다. 그러면 시장 아들이 MRI 촬영실로 들어올 때 어느 문으로 통해 들어왔죠?”

순간 머릿속에 앞뒤가 생략된 한 장면이 슬라이드 영상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의사들이 다니는 좁은 통로에서 시장 아들이 나타났던 느낌이었다. 시장 보좌관한테서 기자들을 피해 뒤로 오겠다는 말을 들은 게 관념 속에서 한 장면으로 떠오른 건지 진짜였는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때 받았던 느낌을 말했다. 갑자기 변호사들과 판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어서 스크린에 미로 같은 세브란스병원의 건축 설계도가 나타났다.

“시장 아들의 動線(동선)이 어떻게 됩니까?”
 “저 평면도를 읽지 못하겠습니다.”
 나도 안내를 받아 그냥 그 장소로 따라갔을 뿐이다. 몇 번 가본 세브란스 병원 내부의 길은 迷路(미로)같이 복잡했다.
 “시장 아들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옷을 입고 있던가요?”

법정의 넓은 스크린에 화면이 다시 떴다. 파커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 청년이 사람들과 함께 들어오고 있는 장면이었다. 청년 옆에 있는 사람은 시장 보좌관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시장 아들의 옷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 만난사람이라도 당시의 대화나 주변풍경 상대방의 인상과 냄새까지도 기억하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시장 아들의 복장에 대한 기억은 전원이 끊긴 모니터 같이 까맣게 죽어 있었다. 이상했다. 아닐 수도 있었다. 그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시장 아들이 들어온 문이라던지 하는 부분은 기억이 흐릿합니다.”

이번에는 주심판사가 나서서 물었다.

“여기 화면에 나타난 청년은 보좌관과 함께 MRI 촬영실 정문으로 들어왔는데 증인이 본 시장 아들은 어떤 문으로 들어왔습니까?”

“어떤 좁은 문으로 들어왔던 것 같은 막연한 기억인데 흐릿해서 이 말은 자신이 없습니다.”
 “이건 중요한 부분이라 질문드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억이 흐릿하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이건 사실 간단한 재판 아닙니까?

그 외에도 두 시간이 넘도록 끝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증언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내가 말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사실 간단한 재판 아닙니까? 시장 아들의 몸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무슨 이런 복잡한 심리과정이 필요합니까? 그냥 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재판장이 반가운 듯 화답했다.

“시장 아들이 이 법정에 나와 공개적으로 다시 신체검사를 하게 해 줄 수 없습니까?”

“그거야 본인과 아버지인 서울시장의 마음이지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미 세브란스병원에서 그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 앞에서 공개검진을 해서 결론이 나왔는데도 믿지 않으면 또 한들 믿겠습니까? 공개신검을 두 번 해도 세 번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내가 피고인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주장과 다른 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떤 것도 안 믿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내심 자기들이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진실이 몰고 올 새로운 상황이 두려울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식을 재편성하는 게 더 무서울지도 몰랐다.

  증언이 끝났다. 법정을 나서려는 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는 처음에 의혹을 제기했던 의사였습니다. 혹시 변호사님은 자신이 서울시장에게 속았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지요?”
 그는 기자들 앞에서 공개사과를 했던, 의혹을 제기한 교수였다.
 아직도 의심이 남았다면 공개 검진시 왜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사과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진실의 위험스런 물살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선고법정

2016년 2월17일이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법원구내 가로수 가지 사이로 메마른 겨울바람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조갑제 대표가 글을 한 편 써 달라고 했다. 살아있는 글을 쓰려면 법원의 생생한 판결 선고 장면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 입구에는 방송사의 카메라들이 먼저 와 있었다. 서울중앙지방 법원 311호 법정으로 올라가는 어둠침침한 층계참에 법원경비원과 단체로 온 듯한 사람들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태극기와 물병은 안 됩니다. 두고 가셔야 해요.”

태극기를 펼쳐들고 물병을 재판장에게 던지려는 것일까. 양극화의 골이 깊어진 극단적인 편 가르기 사회였다. 법정은 방청객들로 꽉 차 있었다. 서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방청석의 중간쯤의 가운데 빈 자리에 끼어 앉았다. 법정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비원이 벽에 기대있는 남자에게 방청석 중간의 빈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냥 서 있을 거요.”
 남자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거절했다.
 “빈 자리가 있으니까 가서 앉으시죠”
 경비원이 다시 권했다.
 “내가 서 있고 싶다고 하는데 왜 그래?”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덤빌 듯한 기세였다. 경비원이 움찔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자리에 앉아서 앞쪽을 보았다. 피고인들이 나와 있었다. 빨간 립스틱에 하얗게 분을 바른 여성 피고인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증언을 할 때 짜증을 내던 여자였다. 당당한 표정들이었다. 의혹을 제기한 의사도 치과의사도 보이고 출판사 직원도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법정에 선 게 아니었다. 시장 아들의 비리를 진실로 믿고 용감하게 나섰다가 기소된 것이다. 어떤 면으로 그들의 용기는 칭찬할 만했다.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헌신하는 정의로운 시민의 모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그렇게 에너지를 모아 시대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괴물로 착각했듯 그들은 朴 시장을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닐까.

이윽고 재판장과 배석판사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서 계실 정도로 법정이 꽉 찼네요. 판결이유를 설명하는데 한두 시간 걸릴 텐데 괜찮으실까 모르겠습니다.”

“피고인들의 주장은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없는 추상적 정황”

재판장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위로의 말을 던진 후 손에 든 두툼한 판결문을 들추며 판결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피고인들은 병무청이나 세브란스병원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와 대신 촬영했다고 주장하지만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없는 추상적 정황에 불과합니다. 병무청 방사선사는 신분인식 카드와 신분증을 함께 받은 후 식별기를 통해 모니터에 뜨는 사진과 신분증, 그리고 실제얼굴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게다가 방사선사는 촬영 대상자를 가까이에서 얼굴을 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기 때문에 신검을 받으러 온 20대 청년이 아니고 육체적 노동을 해온 35세에서 40대의 남자라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징병검사를 한 의사의 증언 역시 朴 시장의 아들을 직접 보고 검사를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세브란스에서의 촬영에 대해서입니다. 현장에 있었던 여러 증인이 박시장의 아들이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방송국 기자가 찍은 동영상을 봐도 시장의 보좌관이 함께 MRI 촬영실 정문으로 들어간 사실이 명확합니다.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에 의하면 당시 74번 촬영실의 MRI 장비에 들어간 사람이 박시장의 아들임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괴물은 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구라는 것이다.

“다음은 옆방인 73번 촬영실에서 촬영되고 있는 영상이 74번 방으로 電送(전송)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73번과 74번 촬영실의 기계 사이에는 전송 로드가 설정된 적이 없습니다. 설령 전송이 가능하게 설정한다 하더라도 촬영이 진행 중인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기능은 없습니다. 촬영실의 기계들이 지멘스와 필립스 회사의 제품으로 종류가 다릅니다. 찍은 사진도 화질이 달라 영상기사들이 이 법정에 나와 그 부분을 확인하는 증언을 했습니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추정하는 추리소설 같은 의혹들을 조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허구임을 밝혔다. 폭풍의 근원지는 영상의학 전문의가 제시한 황색지방골수의 축적 비율에 따른 연령측정방법이라는 의학적 이론이었다. 재판장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황색골수 비율에 의한 연령측정 방법은 독일의 스피링거사에서 출판한 노인 영상학 의학교과서 제34장의 내용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령을 측정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독일의학 교과서에 수록된 연구는 황색골수비율을 정확히 측정한 전문영상이었습니다. 그러나 朴 시장 아들에 대한 여러 MRI는 황색지방골수의 비율을 정확히 측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문영상과 그런 일반영상 사이에는 측정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걸 감안할 때 단순히 인터넷에 퍼진 영상만을 보고 그 대상자가 20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겁니다. 또 의료자문위원들은 그것은 검사를 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되어 대상자의 연령을 객관적으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 판사 모가지 잘라버려”

그들의 기반이 됐던 의학적인 근거가 모두 허물어졌다. 재판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피고인은 자신의 입장만 계속 고집하고 의학계의 반대자료가 나와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에서 누군가 대리로 신검을 받은 것이 아닌지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시장 아들이 직접 찍은 것이 맞다는 수사결론을 내리고 언론은 그 사실이나 이유들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판단과 다른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 조사과정에서 문제가 있거나 새로운 정황이 나타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자신의 의혹만을 단정적으로 막연히 반복했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그런 주장을 하려면 증명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소명은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피고인들은 소명도 못한 채 객관적이고 합리성이 없는 주장만 계속 반복해 왔습니다.” 
 
 세상을 흔들던 그들의 의혹에 대해 단호한 판정이 나는 순간이었다.
 “망했다.”
 방청석에서 갑자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사법부가 망했다. 대한민국이 망했다.”
 “저 판사 모가지 잘라버려.”
 재판장이 신경이 곤두선 목소리로 소리쳤다.
 “선고를 방해하는 사람은 퇴장시키도록 하세요.”

법정 경비원들이 번개같이 방청석을 바라보면서 재판장 앞과 옆을 둘러쌌다. 법정 앞에서 여자들의 악다구니가 들렸다. 앞좌석의 여자가 기침 소리 같이 캑캑거리며 마른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왼쪽에 앉아 있는 남자는 따분한 듯 스마트 폰을 켜고 이리저리 검색을 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나이든 듯한 남자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들이 왜 거기에 동원되어 왔는지 의문이었다. 방청석 앞쪽에 있던 조끼를 입은 남자가 단체로 온 듯한 사람들에게 조용하라고 손가락을 입에 대는 제스처를 했다.

 징역형 고민했다는 재판장

다시 법정이 조용해졌다. 피고인석을 보았다. 처음과는 달리 표정들이 침울하게 변해있었다. 의사인 피고인은 작은 플라스틱 컵에 담긴 액체를 들이키는 모습이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주부 피고인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다른 피고인들도 고개를 숙인 채 절망하는 모습이었다. 재판장은 그들의 주장이 모두 허위라고 선언하면서 마지막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영상의학 분야의 전문가라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에 대해 일반인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부가 보기에는 전문가인 피고인은 의혹을 제기한 사실에 대해 확인하려는 노력을 안 하고 기정사실 같이 단정적으로 써서 적극적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시켰습니다. 또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권위자에게 보낸 자료도 일반사진 파일만 보내고 그 의도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의사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은 다른 피고인들이 서울시장에 대해 ‘국민을 기만하고 바보로 만든 사기극을 펼쳤습니다’ ‘거짓 신검으로 국민을 속였으며 이는 대한 국민의 정신을 뭉개버린 행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피고인들은 다른 의사들에게도 좀더 확인해 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아들의 졸업사진과 결혼사진이 인터넷상에 돌게 함으로써 여러 고통을 당했습니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주장만 반복하고 반대자료가 나와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의 얼굴에서 절망적인 패색이 나타나고 있었다. 재판장이 구체적 형에 대해 말했다.

“이 죄에 해당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삼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재판부는 징역형을 할 것인가 벌금형을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검찰은 가벼운 벌금형을 구형했다. 관례적으로 법원은 그 범위 안에서 선고한다. 그런데 재판장은 징역형의 선고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표시는 하지 않았어도 그들에 대한 내면의 분노가 상당했던 것 같다. 재판부는 기소된 영상의학 전문의에게 벌금 천오백만원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그리고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칠백만원에서 천오백만원까지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걸 납부하지 않은 경우는 하루에 십만원으로 쳐서 노역장에 유치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구형보다 세 배까지 더 올린 이례적인 선고였다. 담당 변호사들이 몰려드는 기자들을 피해 멋쩍은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 나갔다. 법정 앞에서 사람들이 악을 쓰며 사법부를 야유하고 있었다. 육십대 초쯤의 여자 두 명이 입에 거품을 물고 판사와 서울시장을 저주하고 있었다.

“여기서만 이럴게 아니지, 우리 서울시청 앞으로 갑시다.”

그들이 그렇게 소리치며 모인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고 있었다.

“차라리 미안하다고 사과하세요.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골뱅이같은 계단을 내려올 때였다. 옆에서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嚴 변호사님이시죠?”

방금 전 가장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었다. 사회명사들에게 사기극이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던 사람이었다. 증인으로 나왔던 내 얼굴을 기억하고 다가온 것 같았다.

“맞습니다. 왜요?”

그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들이 아무리 단체로 목소리를 높여도 나는 당당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만 명이 둘러싸도 아닌 건 아니었다.

“저는 처음에는 嚴 변호사님이 朴 시장에게 속았다고도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는 의심의 靈(영)에 잡혀 눈을 빤히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도둑을 맞은 사람이 이웃청년을 의심한 얘기가 떠올랐다. 한 번 의심하니까 그 청년이 하는 말도 표정도 걸음걸이조차 모두 도둑놈 같았다. 그러다 물건을 찾고 그 청년의 혐의가 벗어지니까 모든 게 정상적으로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지독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한밤중에 썩은 새끼토막을 밟고 그게 뱀이라고 착각한 사람이 있었다. 환한 낮에 새끼토막을 보여줘도 그의 머릿속에 박힌 뱀은 빠져나가지 않는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보세요, 이건 의혹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시장의 아들이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 몸이 세상에 있는데 당신네들이 아무리 악을 써도 진실을 허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항소하고 대법원까지 가면서 계속 해 보시죠. 평생 계속해 보세요. 현대의학의 어떤 첨단기계도 결국은 다 그림자를 찍고 의사들이 그걸 보는 거 아닌가요? 그림자가 아닌 몸이 존재하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미안하다고 사과하세요.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러면 왜 朴 시장 아들이 법정에 나와 공개신검을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일 때마다 해야 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선동꾼’

2016년 2월22일 조갑제 대표의 인터뷰 기사가 조선일보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터뷰 담당 선임기자가 물었다.

“박원순 시장의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해 죄 없는 시장 아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했다가 소위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으셨는데 어떻습니까?”

“음모를 주장하려면 공부를 하고 나서 책임 있게 해야 하는 겁니다. 朴 시장에 대한 미움을 죄 없는 아들에게 전가했습니다. 전문가 집단인 의사, 변호사, 기자들이 합세해 자신들의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한 젊은이의 뼈 속 병력까지 드러냈다는 것은 인권침해죠. 이미 공적 기관에 의해 의혹이 해소된 사안이었습니다. 그걸 믿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 타도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병무청 검찰은 박근혜 정부의 공적 기관이니까.”

“한때 그들은 조갑제 대표의 지지세력 아니었나요? 그리고 그들을 교양 있는 애국시민으로 표현하시기도 했는데.”

“그들이 반공을 기치로 종북 세력과 싸워왔기 때문에 뜻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마녀 사냥식으로 하는 건 잘못됐습니다. 그들은 나를 배신자라고 하지만 확신과 사실이 충돌할 때 사실을 포기하면 선동꾼으로 전락하는 거죠.”

난무하는 선동 속에서 그는 용기 있게 시대의 고삐를 틀어쥔 예레미야 같았다.(끝)

[ 2016-03-05, 17: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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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수학     2017-03-17 오후 2:24
지금 읽어보니,

1) 박근혜 대통령 탄핵
2) 박주신 누명 씌우기
3) 박현정 서울시향 단장 돌팔매질

위의 3사건 모두 그 본질이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쌩사람 몰아 부치기............아닐런지.
   조영환     2016-03-06 오전 12:02
희망제작소는 5주년을 기념하여, 2011년 '희망열차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전국을 순회하다가 제주도에 간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장의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창의적 발상: "제주해군기지는 명백한 불법(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75617)." 이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국법을 지켰겠는가? 무슨 건설적 희망을 만들겠어요? 무슨 상식과 정직을 가졌겠어요? 성경에 '그 나무를 봐서 열매를 안다'고 했죠? 엄상익 변호사님 한번 대답해주소. 허벅지가 아파서 공군에서 퇴소한 박주신이 허리가 아파서 공익으로 판정됐다는데, 그거 증거는 확실하나요? 박주신이 진짜 허리가 아팠나요? 박원순의 딸이 서울대 미대에서 별로 좋지 않은 성적에 법대로 전과했다는데, 그것도 전혀 이상하진 않죠? 내 눈에 구두 뒷창을 쥐어뜯어 청빈을 자랑하는 것 같이 수상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엄상익 변호사님, 나랑 공개토론 한번 허락해주소. 토론시간에 대한 변호사 상담비는 빚을 내어서라도 드릴께요.

엄상익 변호사님의 희망제작소 평가: 朴 시장의 상상력은 놀라웠다. 주위에서는 그가 희망제작소를 할 때 그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고 디자인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가진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지하철 9호선의 높고 낮은 손잡이를 제안하기도 했다. 예술과 문화에 굶주린 시민 사이를 연결하려고 연구하는 것 같았다. 참여연대 시절 그는 ‘1인 시위’를 창안하기도 했다. 아름다운가게나 희망제작소 같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해리슨 김     2016-03-04 오후 8:58
기자와 변호사가 진실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겠지요.
근데, 그런 세상이 박원순 부자에게도 해당 되나요?

우리는 온 가족이 군 복무 했습니다.
생각하면, 정말 억울합니다.

선동꾼이라도 좋습니다.
원숭이 부자 정신적 피해 운운하지면,
군대도 안갔어면서 시장에 그 아들에 유학에
배가 뒤틀립니다.
우리 가족은 별 볼일 없이 사는 데.
이건 정신적 피해 아닌가요?

부자가 한 놈도 군 복무 안했으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니
배가 뒤틀립니다.
이런 생각이 뭐 잘 못 됐나요

박원순 부자, 엄 변호사, 조갑제 기자, 판검사 모두 훌륭합니다.
부디, 좋은 세상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사돈에 팔촌까지 병신이 아니면 전 가족이 군 복무 하세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병역의무를 다 하는 세상 말입니다.
나는 벌(?)을 받은 그 분들 편입니다.
나 처럼, 강제로 억지로 빽이 없어서 군대 갔으니까요.
   조영환     2016-03-03 오전 5:02
오늘 처음으로 엄상익 변호사님의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많은 질문들이 생기더군요. 엄 변호사님, 박주신 병역비리를 포함하여 박원순 시장에 관해 저랑 공개토론을 한번 해주세요. 박원순 시장처럼 고매한 시민운동가는 아니라도, 진실과 공익 추구에 박원순 시장보다는 더 신실할 지도 모르니, 박원순 변호사의 자격으로 저랑 공개토론을 하여, 우파의 많은 박원순 증오자들을 잠재우고, 그리고 박주신의 병역비리에 관해서도 공개적으로 의심자들을 타파하게 자리 만들어주십시오. 상투적인 사회봉사나 아름다운가게로 생색내는 것보다 수백만명이 의심하는 문제에 대해 공개토론하는 게 더 큰 진실과 공익에 대한 봉사가 아닌가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도 저는 좋으니, 공개토론 신청합니다. 엄상익 변호사님은 여러 명이 나와도 좋고, 저는 혼자만 나가도 됩니다. 저는 박주신이 공군에서 공익으로 등급하락 하는 과정에 병역비리 가능성을 의심하는 자입니다. 허리 아프다고 군대 빠지는 권력자들의 멀쩡한 자녀들이 없지 않으니깐요. 물론 진실은 박주신의 진정한 공개검증으로만 확인되기에, 나의 의심은 단지 의심이지, 단정적 진리는 못 됩니다. 나는 진리가 거짓을 이기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 내가 반드시 진리라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장악한 엄상익 변호사님은 저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2월 29일 조갑제닷컴에 올린 엄상익 변호사님 글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또 시간이 되면 질문하겠습니다.
   조영환     2016-03-03 오전 4:58
엄상익 변호사님은 “朴 시장의 상상력은 놀라웠다. 주위에서는 그가 희망제작소를 할 때 그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고 디자인한다는 뜻이었다”고 했는데, 박원순 시장이 바꾸려고 지향한 '세상'은 과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이 지향했던 자유대한민국이었을까요? 지금 서울시는 희망적으로 디자인되고 있나요? 박원순 시장이 언제 소셜 디자인을 어디서 배웠나요? 온 아시아가 공산화 될 때에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엔진은 그냥 박원순 따위의 무지몽매한 좌익선동꾼이 마구잡이로 바꿀 정도로 그렇게 허접한 시스템인가요? 좌익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이나 '사회디자인'이라는 게 대한민국 체제 부정의 변형된 표현은 아닌가요?

엄상익 변호사님이 "그가 가진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지하철 9호선의 높고 낮은 손잡이를 제안하기도 했다. 예술과 문화에 굶주린 시민 사이를 연결하려고 연구하는 것 같았다. 참여연대 시절 그는 ‘1인 시위’를 창안하기도 했다. 아름다운가게나 희망제작소 같은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 중에 단 하나라도 창의적 발상과 정상적인 단체가 있나요? 희망제작소는 누구를 위한 희망이며, 참여연대는 누구의 참여를 위한 것인가요? 희망제작소가 말하는 희망이 21세기에 작동되는 희망입니까?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름다운가게가 오늘날 본받을 만한 집단인가요? 박원순 시장이 탈북자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자기 패당에 지원금 늘리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름다운가게를 구상할 때에 엄상익 변호사님이 “재활용품을 기부받는 건 생산비가 들지 않는다는 소리예요. 자원봉사를 하는 천사가 있고. 그렇다면 그 경쟁력을 재벌기업인들 이길 수 있을까요? 재활용과 나눔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거죠”라는 말을 했다는데, 지금 아름다운가게가 재벌의 경쟁력을 이겼나요? 중소기업 하나라도 이긴 적이 있나요? “2009년 아름다운가게 매출이 200억 원이 넘었다.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이었다”고 했는데, 그게 중소기업 하나의 생산성이라도 있나요? 아름다운가게 안국점의 문이 닫힌 것은 경쟁력이 넘쳐서 그런가요? 아름다운가게가 얼마나 부실하냐 하면, 약 3년 전 여름에 안국점 마당에 쌓인 플라스틱 박스에 담긴 재활용품은 도착한지 몇 개월이나 안 열고 군중을 미혹하는 ‘전시용’처럼 쌓아뒀데요. 내가 사진 찍기도 했죠.
   조영환     2016-03-03 오전 4:31
엄상익 변호사님 "원숭이가 나무 위로 올라갈수록 엉덩이가 잘 보이고 거센 바람에 흔들린다고 한다. 朴 변호사가 시민운동가에서 서울시장이 되니까 광풍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는데,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운동가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역사왜곡전문가, 인권 빙자 공권력 파괴자, 복지 핑계 패당주의자, 시민단체 핑계 기업갈취자, 시민운동 빙자 권력추구자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나요? 박원순 시장의 과거 행적은 상식적 국민의 불신을 자아내고, 그런 불신이 박주신 병역비리 의혹까지 만드는 게에 작동되진 않았나요? 기업갈취하고 역사왜곡하고 법치파괴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될 수 있는 사람을 위대한 시민운동가라고 판단한 사람의 이성과 양심을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엄상익 변호사님, 아름다운재단이 1800억원 불법모금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단의 총괄상임이사 직위가 ‘무보수 명예직’이라 각 재단의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무혐의 처분했는데, 조선일보는 “본지가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박 시장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2002년부터 월 200만원가량을 월급으로 받아왔으며 2011년 3월에는 퇴임하면서 2187만 2354원을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의 처분이 정당합니까?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과연 정상적 시민운동가였습니까? 혹시 좌익패당만 챙기는 기업갈취범은 아닙니까?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왜곡 하나만으로도 박원순은 정상적 사회에서는 공직자로서 부적격한 게 아닌가요?

엄상익 변호사는 "시민을 위한다는 사람이 재벌한테 손을 벌릴 수는 없고 나같은 同門(동문) 변호사를 찾아다닌다고 했다"고 했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대기업으로부터 1800여억원을 모금했다는데, 그래도 조영래와 박원순은 동급인가요? 참여연대가 어디에서 돈을 벌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큰 빌딩을 가지고 있는 게 박원순 시장의 고매한 시민운동의 결과물인가요? 시민운동을 하면 참여연대처럼 거대한 빌딩이 생기고, 아름다운재단처럼 수백억원의 저금을 가지고 있게 되나요? 그게 박원순식 시민운동은 그렇게 앞으로 건물을 내놓고 뒤로는 떼부자가 되는 결과로 나타나는가요?
   조영환     2016-03-03 오전 4:13
엄상익 변호사님이 2016년 2월 29일 글을 통해 "2012년 2월20일경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좌관이 나의 법률사무실로 찾아왔었다. 박 시장과 함께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할 시절 나는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인연으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그는 항상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는 개성이 강한 사람 같았다"며 그의 "저희가 법률 대리인이 필요해요. 어디 가서 얘기를 해도 변호사를 대동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서요"라는 발언도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날(2012년 2월 22일) 서울시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 시장은 평소처럼 오전 7시 반에 서울시청 시장실로 출근했다가 8시 조간신문 보고를 받았다"며 박 시장은 동아일보 A1면 기사를 본 뒤 "의사들이 이렇게 얘기했나. 그럼 진실을 명백히 밝히라"고 지시하자 "참모들은 곧바로 대책회의를 열어 재검을 받기로 결정하고 (22일) 오전 9시경 세브란스병원에 MRI 촬영을 예약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님의 증언(미리 보좌관들이 준비를 했다는 증언)과 "박원순 시장이 아침에 출근해서 신문을 보고 결정하니,참모들은 곧바로 대책회의를 열어 재검받기도 결정했다"는 보도는 시간적으로 뭔가 조리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박원순 시장이 보도를 보고 결단하기 이전에 이미 박주신을 명지대병원에 MRI를 찍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동아일보 보도는 엉터리잖아요. 그리고 참모들이 새벽에 리허설 촬영을 했다면 엄상익 변호사님께도 미리 연락하지 않았나요? 엄상익 변호사님이 허겁지겁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갈 필요가 있었나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물론 아주 바쁜 시간인 오후 2시에 예약됐다는 것도 공개검증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만들 정도로 이상한 부분으로 보이지만.. 명지대에서 22일 새벽을 촬영을 해보고, 무슨 근거로 박주신의 엑스레이가 맞다는 확신을 누가 판정했다는 거예요? 그 아마추어 중에도 아마추어인 그 박원순 보좌관들이 판정한 것은 믿고, 전문가들인 의사들이 법정에서 판정한 것은 믿지 않는 게 정상적 인간의 판단인가요?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나온 자료 중에서 1심 법원에서 박주신 엑스레이에 대한 공동감정단이 내린 판단을 가장 과학적인 것으로 신뢰합니다.
   조영환     2016-03-03 오전 4:02
엄상익 변호사님 “여러분 우리나라가 미쳐 돌아갑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쩌자는 겁니까? 박원순이를 찍은 사람들! 내가 이 壇(단)에 서서 분명히 말하는데 나라가 망할 때 책임져야 해. 박원순이를 찍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찍은 사람들은 그 자손들까지 두고두고 그 보복을 받아야 해”라는 한 목사님의 설교가 '사실에 근거한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거짓에 근거한 증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독교 하느님의 중요한 성격 중에 하나가 '표리부동한 위선자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도 표리부동한 위선세력에게 처형당했으니깐요. 물론 증오에 눈멀어서 오판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되지만, 공의의 하느님을 믿는 목사라면, 박원순의 위선에 크게 분노하는 설교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요?

하느님의 속성인 '정의'와 '사랑'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하는 설교단상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마귀 취급하는 저 목사의 설교는 '극단적 편가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박원순 시장의 줄기찬 거짓과 반역의 행적 때문입니까? 박원순 시장의 시민운동과 서울시정은 고매한 것으로 점철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말은 뻔지르르한데, 실제로는 추악하고 사특하고 망상적인 것으로 점철되어 있나요? 인권과 복지을 앞세운 박원순 시장이 실제로 그런 명분에 부합되나요? 북한동포 인권에 단 한번이라도 박원순이 앞장선 적이 있나요? 오직 대한민국 정부에만 과도한 인권 강요한 박원순 시장의 편향성은 정상적 목사가 질타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광화문 태극기 게양대는 안전 때문에 못 세우게 하고, 세월호 떼천막 설치는 지원해줘야 하나요? 그게 진정한 사랑과 정의 구현입니까?

저의 눈에는 저 목사의 개탄은 진실과 공의와 자비에 바탕을 둔 애국심과 신앙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리 부자 목사라고 해도, 박원순 보다는 표리부동한 위선이 부족한 게 아닌가요? 구두 뒷축이 억지로 쥐어뜯긴 사진이 돌아다니는 인간의 가증스러움이 몸서리치는 게 목사가 아닌가요? 정의 없는 사랑보다 사악한 것이 없습니다. 박원순 정도로 집요하게 좌익패당을 챙기고, 객관적 사실에 어긋나는 말을 잘 하고, 애국에 대적하는 서울시장이라면, 목사가 저런 심판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게 성경의 명령이 아닌가요? 박원순 시장의 사특함에 분개한 목사를 꼭 돈벌레로 매도하는 게 정의입니까? 사랑입니까? 아니면 박원순 서울시장 변호사의 공작입니까?
   진실한우파     2016-03-02 오전 11:19
엄상익 변호사에 한마디...“저는 처음에는 嚴 변호사님이 朴 시장에게 속았다고도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 말 한 피고인이 누군지 알겟는데 그 사람 뜻은 이젠 꿈을 좀 깼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표정은 어땠는지 몰라도 속맘은 엄상익 변호사에 적대감을 갖고 한 말이 아니었을거야 아마. 실제 지금 뭔가 꿈깨고 피고인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났단 소문도 많다. 우파바닥에도 병역비리가 아니라고 뒤늦게 꿈깨는 사람이 늘고 있쥐.
   진실한우파     2016-03-02 오전 10:25
저 정도 글이 길다고 할 정도면 문제가 있는 것일세. 책은 어찌 읽겠누. 그라고 글 길다고 하는 이들은 실제론 글을 읽으며 힘들엇단 소리에 다름 아니제. 아예 글을 읽지 않은 이는 무관심이제. 덧글 달지도 안고 아예 클릭자체를 안 하는 수가 많제. 글 길이를 말하며 읽지도 안았다고 하는건 '좌빨식 아몰랑'이제.ㅋㅋ^^^ 진실은 밝혀졌제. 간단하제. 판결에 나와 있제. 의학적 증거라 한 걸 양박 개인생각이라 봤제. 국가기관 다들 아니라는데 양박 주장 하나만 믿는 천안함좌초부류들은 그냥 그렇게 믿으면 되제.ㅋㅋ 그렇게 믿지만말고 원순이 아들 신검하자고 계속 운동좀 하게나들. 날도 따뜻한데 시청앞서 시위 좀 하숑.
   청년백수     2016-03-01 오후 11:14
김철*라는 분과 이 엄 변호사라는 분이 쓴 글의 특징은 장황하고도 길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간단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분들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젠 지면의 낭비 그만 하십시다.
   기곤     2016-03-01 오후 12:07
사실과 확신은 구분해야 되고, 사실에 근거한 객관성이 사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이야기 하는데 왜 비난받아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고생 많이 하신게 글속에 묻어나네요.
글은 잘 읽었습니다.
   얼핏보다가     2016-03-01 오전 3:41
조갑제대표의 '반론'이 논객으로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듯이, 박주신의혹 동조자들도 타당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주신의 병역비리는 당연히 박원순의 병역면제 논란거리였던 것과 연결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슈마다 건건이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허접한 '변명으로 일관한 박원순의 '전과(?)'에다가 , 박주신의 병역비리 증거정황이" 하필이면?.." 의 연속적 꼬투리(?)가 증폭되어 '집단적 착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본인 또한 조갑제대표/양승오-차변호사의 논거 양쪽에 다 확신이 없어 , 조갑제대표를 옹호(?)하는 글 말고는 단한번의 댓글을 올린적이 없지만....... 딱 단한가지......다른 여러가지 '하필이면의 정황'과는 달리, 핵심인물인 양승오박사의 '' 증거 확신/단정'은 마음속으로 '의심'한 바가 있어서 댓글논쟁/부화뇌동에 휩쓸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이것은 결정적 KEY가, 명예훼손재판이었고 ( 박주신 병역비리 확인 재판이 아닌 ), 그것이 가장 과학적으로 공감력이 앞선 것으로 인식될... 의학적 전문가인 자신의 주장이 .. 강하면 강할수록, 비록 박주신의 비리가 진실이 아닐 경우에도, 적어도 /최소한 전문가로서의 '착각/오류'로 판단되어...의도적/ 명예훼손에 대한 무죄만은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는 .... '짐작/의심'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아마도 판사도 이런 점을 간과 했을리는 없었을 것이고, . , 그래서 '적어도' 양승오편/동조하는사람들은.... 명예훼손 재판 과정에 필연적으로 따라 와야하는 절차로...박주신의 비리를 확인코자하는 마음으로 재재검을 주장하는 반면,,, 양박사는 '최소한' 명예훼손의 무죄판결의 배경으로 재재겸을 주장하는 차이점/괴리가 있다는 가능성....,,재재검 주장은, '확신 주장의 진정성'을 나타내는데에 보탬이 되는...바둑의 꽃놀이패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는 것.......판사는 오히려 '양박사의 재재검 주장'을 포함한 , 강력주장/단정이 정반대로 '죄질이 나쁜 배경중 하나'로 보았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요컨데, 박원순에 대한 미움이 박주신으로 눈멀어' 마녀사냥'으로 진행되었고...그 미움은 미워하는 사람을 더 해친다는....진실과 확신의 둘중에서, 확신이 아닌 진실을 선택해야 된다는 조갑제대표의 주장에 동감한다.
그렇지만, 조갑제대표는 그러했는가?

조갑제대표가 사랑하는 영도자/.박정희대통력과 영도자(? )전두환/노태우와 대적/대립한 사람은 , 예외없이...미움으로 사로 잡혀 수백번 비판한다. '사실(fact)"에 해당하는 박정희대통령의 남로당 좌익사상과 전두환/노태우의 방산비리는 거의 비판도 없고 안중에도 없다. 심지어는 장준하선생을 조갑제대표가 '무시/격하/비판' 하는 것을 보고는 이럴수가 있나 싶었다. 해방 이전의 주변적환경으로 인해 좌파가 득실되던 독립운동가/민족지도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반일과 반공과 민주주의 투쟁을 동시에 가진.....정말 흔치않는 보수주의자/애국자 이사람을....일본군탈출 광복군합류/미군참여/보수우익사상가 -좌익비판/유신을 비판등등...결국 의문의 죽음으로 희생된 바, ..박정희대통령의 치명적인 약점 모두와 하나하나 대비 되다보니.... 보수애국자라도 오히려 박정희대통령의 '영웅 업적'에 누가 된다고 판단했다고 밖에 보지 않을 수 없는 정황...(좌파세력은 장준하선생이 보수인사라서 외면하는 것이 당연하다 치더라도.).

믿기 어렵겠지만, 조갑제대표는.. 보수를 지킨다기보다 , 박정희/전두환/노태우라는 개인들 보호/옹호/영웅만들기를 위해서는 ...'보수의 핵심가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 얖으로도 계속 지켜보시라...)

그렇다보니 ..자기의 영웅/영도자를 비판하는 사람을 늘 미워하는 것으로 인해 ( 보수/사상이념이라는 가치보다 사람자체에 우위를 두다보니 ..)...논거는 언제나 '묻지마/나홀로 주장/왔다갔다 논거가' 끊이질 않는다. 종북이 싫다고 하면서도,,종북 행위의 정주영...종북 DJ를 결정적으로 도운 김종필/박태준은 ....'준 영웅'이란다..개성공단은 이적행위라도 노태우의 남포공단은 모른단다. 김영삼의 단 한번의 민족운운이 종북 숙주라면....박정희대통령의 자주/민족 ..74공동성명은 '반역합의서'가 아니던가 ?

한마디로...양승오 박사의 '단정'은....조갑제대표의 '단정'과는 감히 비교수준도 아니다.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풍차를 영웅으로 착각하는 것도 '예사병'이 아니다.
자기말 그대로, 조갑제대표의 발목을 반드시 잡을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고치도록 여러사람들이 노력해야 될 듯.
   유신     2016-03-01 오전 3:08
정말 짜증난다
바쁜 세상에 이렇게 긴 글 읽으란 말이야?
요점만 말하세요 다 알아먹으니까
박원순하고 한팬데 나는 우익이다 그런 얘깁니까?
우익은 무조건 진영논리로만 판단하는 광신도 같은 인간들이고?
나는 빨갱이들이 이름 붙인 우익도 아니고 빨갱이는 더욱 아니고
그냥 대한민국 국민인데 박원순 한테는 두 가지 이름이 딱 맞습니다
좌파찌질이 악한 인간
박원순이 박헌영 버금 가는 빨갱이라는 건 아는 사람 다 아는 사실이고
아들 주신이 땜에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거 보면 나쁜 인간이란 증거
재검하면 되느데 피하는 이유? 전부 밝혀질테니까!
대통령? 꿈도 꾸지 마시오
그대가 대통령 되는 날 대한민국은 망하는 걸 예약하는 거니까
   조영환     2016-03-01 오전 12:00
미안합니다.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의 말을 모두 믿고 싶습니다. 딱 하나, 박주신 거처를 알아내어서, 법적 강요는 아닐지 모르지만, 박원순 시장이 좋아하는 사회봉사하는 샘치고, 박주신이 재검으로 거짓과 진실을 판가름하게 박원순 시장에게 부탁해주소. 양승오, 오연상, 최대집 등 정의감 있는 의사들을 사법권력으로 때려잡지 말고 박주신 재검을 통해 과학적으로 거짓과 억지를 심판해야죠.

박주신 와서 재검하는 것도 안 믿을 거라는 선입견은 악입니다. 엄상익 변호사님도 박주신이 연세대 세브란스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직전에 알고 헐레벌떡 달려간 것인데, 기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알고 갈 수 있었겠어요? 2012년 2월 22일 새벽 박주신의 명지대 리허설 검사와 오후 연세대 본검사는 음모소설을 쓴 엄상익 변호사의 눈에는 '범죄자나 보여줄 수 있는 이상한 행각'이 아닌가요?

모든 것을 차치하고 희생과 봉사의 상징적 인물인 박원순 시장은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에 대해 공개적 재검을 보여줘야죠. 이회창 후보처럼 공개적 신검 한번 받아서 확인이 되면, 양승오 박사의 의사직을 빼앗고, 우파 돈키호테들도 모두 박원순 시장의 뜻대로 진압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재판과정에 양승오 박사가 옳다고 영상감정한 오연상 등 의사들도 면허증 빼앗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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