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관한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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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이 글은 토론방에서 가져 온 것이다.
  
  No, 1191
  이름:개혁적 보수주의자 (conservatist@naver.com) (34 남 회사원)
  2003/1/4(토) 00:24 (MSIE6.0) 220.74.134.9 1152x864
  조회: 31 회
  
  전쟁에 관한 지도자들의 명언 1
  
  어설프게나마 한번 적어봅니다. 북한 핵 문제가 한반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에 대해 지도자들은 어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이에 임했는지 그들의 말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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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에선 어느 편이 스스로를 승자라고 부를지라도 승리자는 없고, 모두 패배자뿐이다.' - 체임벌린
  
  평화시에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전쟁이라는 비참한 파국을 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겠으나 나는 왜 이 말에서 소심한 평화애호가의 변명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걸까?
  '평화적 해결사'를 자처했던 영국의 수상 체임벌린이 파시즘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합병을 인정하고, '뮌헨협정'을 통해 히틀러의 체코 할양요구에 굴복하면서 얻은 비굴한 평화는 그 후 채 1년도 가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그가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을 수행하기엔 너무도 나약한 지도자라는 걸 깨달은 영국이 처칠을 선택한 것은 세계사적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전쟁 또는 나쁜 평화는 없다.' - 프랭클린
  
  상대후보가 당선될 경우 '전쟁난다'고 부르짖던 어느 대통령 후보가 TV 토론에서 외친 말로 유명하다. 그 후보의 주장대로라면 6.25 사변시 국군은 저항하지 말고 인민군에게 항복했어야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왔을 거라는 논리가 성립하니 6.25를 '실패한 통일전쟁'이라고 규정한 현 정부의 이념과 철저하게 들어맞는 기상천외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평생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중하였으며 투철한 공리주의자였던 프랭클린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정치관을 함축한 명언이 이렇게도 인용될 수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떠오른다. '악마도 때론 성경을 인용합니다, 아멘~!'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 워싱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일생을 통하여 여러차례의 전쟁을 경험했으며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후일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민주주의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하는 등 '건국의 아버지'로서 신생 미국의 기반을 굳게 다진 그의 공적은 실로 위대한 것이다.
  그의 명언은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전쟁과 평화를 모두 지휘하며 얻은 체험에서 나온 철학으로서 전쟁과 평화의 양면성을 꿰뚫는 금과옥조라 할 수 있다.
  
  
  '전쟁준비를 해놓아야만 평화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 케네디
  
   현대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 중의 한 명인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TV 토론을 도입시키도록 만든 장본인이며 특유의 웅변과 재기로서 목표를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시키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의 뉴프런티어 정신은 평화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민주주의 추진을 향한 청소년들의 호응은 얻어냈지만 국내정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이 그에 대해서 품고 있는 경의는 그가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암살범의 흉탄에 쓰러진 아쉬움 때문이거나 그의 죽음이 모종의 음모에서 비롯한 냉전체제의 희생양일지 모른다는 의혹 때문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쿠바 미사일 사태시 핵전쟁 일보직전의 세계적 위기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과감하고도 단호한 대응과 그 결과로서 자국의 코 앞에 들이밀뻔 했던 적의 총부리를 저들 스스로가 얌전히 치우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금 위험한 총장난을 되풀이 하지 못하게끔 적을 위압하는 투지를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신뢰와 국가의 안보를 보장했기 때문은 아닐까? 케네디가 핵전쟁 위기를 불사하면서 지켜낸 자국의 안보는 위와 같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오늘 우리에게 케네디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면 과연 그는 북한 핵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지...그와 같은 지도자가 우리 곁에 없음은 당리당략이 국가의 안보보다 앞서는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
[ 2003-01-04, 20: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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