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과 노르만 紀行: 영웅들의 세계(1)
가는 곳마다, 사는 곳마다 超一流 국가를 만든 海賊들의 비밀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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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超一流의 産室' 바이킹 국가 연구
  

  

10세기까지도 殉葬을 하였던 야만의 바이킹은 일단 정복한 나라를 一流로 만드는 데도 선수였다. 바이킹은 중세 때 노르망디, 시실리, 영국을 一流로 만든 원리를 고향에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超一流 국가가 되었다. 文明파괴자가 文明건설자로 극적인 전환을 한 세계사의 기적을 추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롱십인 오제베르크 롱십.
  2010년 11월 유엔개발기구(UNDP)가 발표한 2010년 세계 ‘삶의 질(質)’ 국가별 순위에서 한국은 스위스, 프랑스, 덴마크 같은 서방 선진국들을 제치고 169개국 중 12위로 수직상승하였다.
 
  ‘삶의 질’(Human Development Index) 평가는 교육수준, 평균수명,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을 합산하여 생활수준을 채점하는 방식이다. 법치(法治)나 안보(安保) 같은 요소는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로선 한국이 11위인 일본 다음이었다. 노르웨이가 올해도 1등이었다. 한국은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싱가포르, 영국보다도 앞섰다. 작년보다 14등이나 올랐다. 이는 금융위기로 유럽 나라들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이 빠르게 회복했고, 국민소득을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한 덕분인 듯하다. 구매력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2만9618달러로 평가되었다.
 
  한국이 높게 평가받은 가장 큰 이유는 교육열 때문이다. 국내에선 교육망국론(亡國論)이 드세지만 외국에선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한다.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위인데, 삶의 질 랭킹은 12위였다. 이는 한국이 소득수준에 비하여 교육과 의료가 좋다는 뜻이다. 북한은 통계부족으로 조사대상에 들지 못하였다.
 
  삶의 질 순위에서 늘 상위(上位)에 오르는 나라는 바이킹을 조상으로 하는 스칸디나비아(핀란드는 바이킹 나라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인접, 같은 문화권에 포함) 5개 국가이다. 이번에도 1위에 노르웨이, 9위에 스웨덴, 16위에 핀란드, 17위에 아이슬란드, 19위에 덴마크가 올랐다. 20위 안에 5개국이 다 들어감으로써 초일류(超一流)국가임을 다시 한번 실증(實證)한 것이다. 
  
  2011년 8월 뉴스위크가 선정한 ‘이 나라에 태어나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나라 랭킹’에서도 북구(北歐) 4국(國)이 10위 안에 들었다. 1위 핀란드, 3위 스웨덴, 6위 노르웨이, 10위 덴마크.
 
  세계에서 1인당 자산(資産)보유액이 가장 많은 나라는 노르웨이이다.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 고급문서 해독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 2위는 덴마크, 3위는 노르웨이, 6위는 핀란드. 국가경쟁력 순위는 덴마크가 5위, 스웨덴이 6위, 핀란드가 9위, 노르웨이가 11위. 공무원의 청렴도는 덴마크가 세계 2위, 스웨덴이 4위, 핀란드가 6위, 노르웨이 11위. 남녀평등 지수는 1위가 아이슬란드, 2위 핀란드, 3위 노르웨이, 4위 스웨덴, 7위 덴마크. 민주주의 성숙도는 1위가 스웨덴, 2위 노르웨이, 3위 아이슬란드, 5위 덴마크, 6위 핀란드이다. 정치, 경제, 교육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北歐의 바이킹 국가들이 늘 10위권(位圈)에 든다.
 


 
  미국의 노르웨이 이민자들
 
  스칸디나비아, 특히 노르웨이 이민자들은 미국에서도 사는 곳마다 좋은 환경을 만든다. 미국의 노르웨이 이민자(移民者)들은 약 460만명으로 본국(本國) 인구와 같다. 본국 인구보다 많은 미국 이민자를 낸 나라는 아일랜드뿐이다. 노르웨이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주(州)는 미네소타(16%), 노스다코타(30%), 사우스다코타(16%), 몬태나(12%), 위스콘신(9%)이다. 미국에서 만나는 백인 50명 중 한 명은 노르웨이 사람이다. 이들은 주로 중북부(中北部) 지방에 많이 산다.
 
  스칸디나비아 4개국 출신 이민자는 약 1200만명이다. 미네소타주는 스칸디나비아 출신들이 32%, 독일계가 38%이다. 미네소타는 주민들의 건강상태가 52개주 중 1등이라고 한다. 범죄발생률은 52개주 중 14번째로 낮은 편이다. 미국에서 ‘미네소타주 출신’이라면 모범생으로 통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노스다코타는 범죄발생률이 52개주 중 세 번째로 낮다. 사우스다코타도 9위, 위스콘신이 8위, 몬태나주는 7위이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도 본국처럼 호수가 많고 추운 州에 모여 산다. 미네소타주는 별명이 ‘1만 개의 호수를 가진 땅’이다. 노르웨이 이민자들은 모여 사는 경향이 강하고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며 본국과 연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6·25 남침 전쟁 때 우리에게 의료지원을 해준 나라이고 국립의료원을 지어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1953년부터 2008년 사이 이루어진 한국 어린이의 해외입양 중 미국으로 입양된 수는 총 10만8222명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구성하고, 그 다음이 프랑스 1만1165명, 스웨덴 9297명, 덴마크 8702명, 노르웨이 6295명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국적자를 포함하면 미국 다음으로 해외입양을 많이 받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세계 130개국에서 4만5000명을 입양했는데, 인구 비율로 보면 세계 최대 입양국이다. 미국 내에서도 스칸디나비아계(系) 미국인들이 해외입양을 많이 받는데, 미네소타주에는 1만5000~2만여 명의 한국 아동이 입양되었다. 이 수치는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 3국의 인구는 합쳐서 2000만명 정도인데, 받아들인 한국 입양아들은 2만4300여 명이다. 노르웨이는 약 400명의 탈북자(脫北者)들을 수용, 정착시켰다. 한국인으로선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바이킹의 殉葬 풍속
 

덴마크 란겔란드의 무덤에서 발굴된 10세기 바이킹의 유골. 왼쪽은 주인, 오른쪽은 발목이 묶인 채 참수되어 묻힌 노예의 유골이다.

  야만과 문명(文明)의 한 척도는 높은 사람이 죽으면 노예나 종을 죽여 같이 묻는 순장(殉葬)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은 서기 502년에 순장을 금(禁)하는 명령을 내렸다. 바이킹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까지 순장을 했다. 기독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순장 풍습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는 이븐 파들란이라는 아랍인이다. 그는 992년 볼가강변(江邊)에서 목격한 러시아 부족장의 장례식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당시의 러시아는 스웨덴 바이킹이 슬라브족(族)을 정복하여 그 기초를 놓은 나라이다. 러시아란 국명(國名)도 ‘루스’라는 스웨덴 말에서 나왔다.
 
  한 바이킹 부족장(部族長)이 죽자 가족이 남녀 노예들(아마도 슬라브족이었을 것이다)을 모아놓고 “누가 따라 죽을래?”라고 묻는다. 한 여자 노예가 순장을 자원(自願)한다. 그때부터 다른 노예들은 이 여자를 감시한다. 생각이 바뀌어도 봐주지 않는다. 장례식까지 여인은 매일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좋은 일을 기다리는 듯하다.   
  장례식 날, 사람들은 배를 강변에 끌어올려 놓는다. ‘죽음의 천사’란 별명을 가진 비대한 여자가 장례식을 주재한다. 땅에 묻어두었던 부족장의 시신(屍身)을 다시 꺼내와 옷을 입힌다. 배에 천막을 치고 그 안으로 시신을 가져가 안치(安置)한다.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시신 옆에 쌓아둔다.   
  사람들은 개와 닭을 잡아 고기를 배로 던진다. 따라 죽게 되어 있는 여인은 여기저기 쳐진 천막을 돌아다니면서 부족장의 부하들과 성교(性交)를 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이야기하라. 주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 이렇게 한다고”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여인을 배로 데리고 간다. 여인은 목걸이를 벗어 ‘죽음의 천사’에게 준다. 많은 사람이 나무로 만든 방패를 들고 와서 여인을 에워싼다. 여인에게 술을 먹인다. 여인은 노래를 부른다. 통역자는 아랍인 이븐 파들란에게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방패를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여인의 비명을 구경꾼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섯 명의 남자가 배에 올라탄다. 여인을 부족장 시신 옆에 눕힌다. 남자들이, 여인의 두 팔과 다리를 붙든다. ‘죽음의 천사’가 여인의 목을 끈으로 맨다. 두 남자가 끈을 당겨 질식시키는 순간 ‘죽음의 천사’는 굵은 칼로 여인의 갈비뼈 사이를 여러 번 찌른다. 부족장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배에 불을 지른다. 사람들이 차례로 불쏘시개를 배에 던진다. 배가 불길에 휩싸인다.
 
  이런 식의 순장이 사라진 것은 11세기 초 바이킹들 사이에 기독교가 확산되면서이다. 노예제도도 사라졌다. 기독교에 의한 문명화(文明化)가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바이킹족이지만 16세기 초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맨 먼저 신교(新敎)로 개종하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들은 1530년대부터 루터교로 개종(改宗), 유럽 신교세력의 보루(堡壘)가 된다. 17세기 전반의 30년 종교전쟁 때 독일의 신교도를 구원한 것은 (프랑스의 후원을 받은) 스웨덴군(軍)이었다.
 
 
  롱십(Long Ship)
 
고크스타드에서 발굴된 롱십.

  서기 8~11세기는 이른바 바이킹 시대. 스칸디나비아에 살고 있던 바이킹이 인구증가, 농지부족 사태에 직면, 약탈에 나선다. 날렵하게 생긴 긴 배를 몰고 유럽을 공격, 정복, 정착해 간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 시리아 해안 지대, 러시아의 모태(母胎)가 되는 키예프, 그리고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점령하였다. 오늘날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는 바이킹족이 건설한 나라이다. 영국과 아일랜드도 바이킹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11세기 후 영국 왕가(王家)는 바이킹족 출신인 정복왕 윌리엄 1세의 후손들이다.   
  바이킹이 유럽으로 쳐들어갈 때나 그린란드와 북미(北美)대륙을 탐험할 때 사용한 배는 흔히 ‘롱십’(Long Ship)이라 불린다. 가늘고 긴 선체(船體)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여러 박물관에서는 발굴된 배를 진열해 놓고 있다.
 
  가장 유명한 배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다. 오슬로 대학 부설 ‘바이킹 배 박물관’에 세 척의 롱십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오제베르크 고분(古墳)에서 발굴된 배가 가장 유명하다. 바이킹 배를 설명할 때 보여주는 사진은 거의 이 배를 찍은 것이다. 길이 22m, 너비와 높이가 각 5m인데 원형(原型)대로 거의 보존되어 있다. 이 배가 발견된 고분에선 20대(代)와 60대의 여인 두개골도 나왔다.   
  2010년 5월에 이 박물관에 갔을 때 세어보니, 배의 양쪽엔 15개씩 모두 30개의 노 젓는 구멍이 나 있었다. 30명이 노를 저었다는 이야기이다. 최고시속은 18km로 추정된다. 배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재료이며, 목재(木材)에 고래기름을 발랐다. 서기 800년 전후(前後)에 만들어진 배라고 한다. 여자 유골이 있었다고 하여 ‘여왕의 배’로 불린다.   
  바이킹 배는 앞뒤가 없다. 약탈을 한 뒤 서둘러 돌아와 배를 돌리지 않고 빨리 도망갈 수 있게 한 것이다.   
  두 여인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을 위하여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쪽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20대 여인의 염색체를 조사한 결과 이란인(人)을 조상으로 둔 것으로 추정되었다. 금속 이쑤시개를 쓴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로 보아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60대 여인은 암(癌)으로 죽었는데 호르몬 분비 장애를 겪어 남자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매장된 연도는 서기 834년으로 추정되었다. 열네 마리의 말과 소 및 개들의 뼈도 발굴되었다.  
  고크스타드에서 발굴된 배도 전시되어 있는데, 길이가 23.24m, 너비가 5.2m이다. 32명의 노 젓는 사람 등 40명이 정원이지만 70명까지 탈 수 있었다. 추정 최고속도는 시속 20km. 이 배의 복제판을 만들어 노르웨이의 베르겐에서 미국까지 항해한 적도 있다.   
  
  덴마크 王家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
 
  1945년생인 필자 세대(世代)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덴마크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컸다. 지금도 달가스, 그룬트비 같은 덴마크의 교육자와 농업운동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덴마크가 19세기 후반에 프러시아에 패전(敗戰)한 후 어떻게 국민정신을 바로 세워 나라를 재건(再建)하였는가, 잘사는 농촌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쳤다. 서울농대 유달영(柳達永) 교수 같은 분들이 덴마크 이야기를 책으로 써 소개하기도 하였다.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朴正熙) 정부도 농촌개발에 덴마크의 사례를 배우려 하였다.   
  그래서 덴마크는 농업국가, 평화로운 나라, 그러나 약한 나라로 알려졌지만, 유럽에서는 덴마크라고 하면 ‘무서운 바이킹의 나라’란 인상이 강하다.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의 약 300년간 유럽 기독교 문명권을 강타한 해양(海洋)민족 바이킹족의 중심은 덴마크에 살던 바이킹이었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탐험과 개척, 덴마크 바이킹은 전쟁, 스웨덴 바이킹은 장사를 주(主)특기로 하였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아일랜드, 영국을 침공하더니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개척하고 지금의 캐나다 동해안에까지 건너갔다.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이는 콜럼버스가 아니라 바이킹이란 주장은 이제 정설(定說)이다. 바이킹은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정착하지 않고 철수하였다.   
  덴마크 바이킹은 대부대를 조직, 정복에 나섰다. 유럽의 현존 王家 중 가장 오래된 이는 덴마크 이다. 965년 덴마크의 해롤드 왕(王)은 부하 바이킹들과 함께 원시(原始)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통일왕국을 건설해 노르웨이, 스웨덴 일부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자연히 동원력이 강해졌다. 
  이후 그들은 잉글랜드 정복에 주력(注力)하였다. 그 전 9세기 초부터 덴마크 바이킹들은 북해(北海)를 건너와 잉글랜드를 공격하기 시작, 동부지방을 점령하였다. 잉글랜드 사람들도 이에 대응, 뭉치기 시작하였다. 알프레드 대왕이 나타나 덴마크 바이킹들을 무찌르고 협상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의 동부지방 통치권을 바이킹에게 주는 대신에 바이킹들은 잉글랜드 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기독교로 개종하기로 하였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을 점령한 바이킹과 프랑스 왕 사이에 맺어진 약속과 같은 조건이었다. 덴마크 바이킹에게 주어진 공국(公國)은 데인로(Danelaw)라고 불렸다.
 
  알프레드가 죽은 뒤 잉글랜드와 덴마크는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 10세기 전반 잉글랜드는 바이킹들을 내몰고 실지(失地)를 수복하는 듯하였으나 덴마크 본국에서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다. 덴마크의 스벤 왕(해롤드 왕의 아들)은 북구의 강자(强者)였다. 그는 1014년에 잉글랜드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그의 아들 카누트는 ‘대왕’으로 불린다. 1017~1035년 사이 카누트 대왕은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일부, 그리고 영국(잉글랜드)으로 구성된 대제국(大帝國)을 다스린 사람이었다.
 
 
  영국王家도 바이킹系
 
영국을 정복한 노르망디공 윌리엄(왼쪽). 윌리엄 공이 해롤드 왕을 무찌른 헤이스팅스전투를 묘사한 태피스트리(걸개그림).

  카누트 대왕과 그의 아들이 죽자 잉글랜드를 다스리던 덴마크 바이킹은 잉글랜드의 왕위(王位)를 알프레드 왕의 후손 에드워드에게 물려주었다. 에드워드가 후계자 없이 죽자 노르웨이의 해롤드 할드라다 왕은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을 겸하고 싶어서 1066년 원정군을 보냈다.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공국(公國)의 윌리엄 공(그 또한 바이킹의 후손)도 왕이 되고 싶어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하였다.   
  영국 귀족을 대표한 색슨족 출신 해롤드는 먼저 노르웨이 원정군을 스탬포드 다리에서 맞아 전멸시키고 노르웨이 왕까지 죽였다. 잉글랜드군의 다음 상대는 노르망디에서 건너온 군대였다. 헤이스팅스에서 벌어진 결전에서는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이겼다. 잉글랜드군은 강행군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윌리엄 공(영국왕으론 윌리엄 1세)의 영국 점령은 영국의 進路뿐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다. 노르망디 사람들이 영국의 새로운 귀족층이 되었다. 이들은 선주민(先住民)인 앵글로-색슨 귀족과 융합하여 오늘날 영국의 왕가 및 귀족들의 선조(先祖)가 된다. 현 엘리자베스 2세는 윌리엄 정복왕 1세의 32대 후손이다. 노르망디 사람들이 쓰던 프랑스어가 영어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유럽 대륙의 로마-라틴계 문명이 영국에 많이 들어온다. 바이킹족이 영국과 유럽을 이어준 것이다.   
  이때부터 영국은 北歐를 벗어나 유럽 대륙을 활동무대로 삼게 된다. 노르만의 영국침공은 영국에 대한 마지막 침공이었다. 대륙으로부터 수많은 침공을 당해오던 영국은 그 이후는 침략하는 나라로 바뀐다. 윌리엄 1세와 후손들은 고향인 노르망디의 영유권(領有權)을 주장하고, 나중엔 프랑스의 왕좌(王座)까지 탐하게 된다. 14~15세기 프랑스-영국 사이 백년 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것이다.   
  덴마크는 잉글랜드를 잃고도 수백 년간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를 통치하였다. 16세기까지 약 800년간 북구의 최강국은 덴마크였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제국이 아니면 모을 수 없는 미술품들이 많다. 스웨덴도 140년간 덴마크 지배를 받았다. 16세기 스웨덴은 덴마크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17세기엔 유럽의 새 강국으로 떠오른다.  
  
  장사꾼 스웨덴인
 
  노르웨이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에 대하여 “돈은 셀 줄 아는데 친구는 셀 줄 모른다”고 비꼰다. 필자는 2010년 5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가서 쉐라톤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 1층 화장실에 들렀더니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프런트에 가서 물으니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투숙객에게만 화장실 사용을 허용하는 호텔은 처음 보았다. 공중화장실도 유료(有料)이다.   
  스웨덴 바이킹족은 장사꾼 기질을 살려 러시아, 흑해(黑海), 비잔틴 제국 등 동남쪽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볼가강을 타고 내려가 흑해에 이르고,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두었던 비잔틴 제국과 교역(交易)하는가 하면 일부는 바그다드까지 진출, 아랍 사람들과 장사를 했다. 한때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바이킹족으로 구성된 경호부대를 두었다. 스웨덴 사람들이 이때 발전시킨 도시가 키예프이다. 키예프(우크라이나 수도)를 중심으로 성장해 간 나라가 러시아. 러시아의 초기 지배층은 바이킹이었다. 러시아를 제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토대를 놓은 이반 뇌제(雷帝)도 바이킹 왕족 루릭 가문의 모스크바 분계(分系)이다.   
  유럽을 여행하다가 보면 도처에서 바이킹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스칸디나비아는 바이킹의 고향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프랑스의 노르망디, 영국, 아일랜드, 시실리, 나폴리, 몰타에까지 바이킹의 발자취를 보게 된다. 현재의 영국왕가가 바이킹계이고, 런던탑이 그 왕가의 창시자 윌리엄 왕이 세운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와 시실리의 유수한 건축물들이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 정복시절의 작품이다. 아일랜드의 더블린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또한 스웨덴계 바이킹이 키운 도시임을 알고 놀란다. 노르망디 해안 섬 위에 지은 몽셍미셀 성당은 노르망디공 리샤르 1세가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수도원으로 지은 것이 증축된 건물이다.
 
 
  최초의 근대국가 시실리 왕국
 
노르망디공 리샤르 1세가 노르망디 해안 섬 위에 지은 몽셍미셀 성당.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를 다스리던 윌리엄 공이 영국으로 쳐들어가 이를 정복, 영국의 모태를 만들던 무렵에 노르망디 출신의 또 다른 바이킹이 시실리와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 150년간 다스리면서 이 왕국을 유럽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일부 역사학자들은 최초의 근대적인 국가라고 부른다)로 만든 사실(史實)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르망디에 살던 노르만인들은 전사(戰士)들이었으므로 유럽과 비잔틴 제국에서 용병(傭兵)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들끼리 정보망이 발달하였다.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고향인 노르망디에 연락하여 동료들을 불러왔다. 바이킹들은 영웅적인 기질로 인해 용병에 만족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용병을 하다가 영주나 지도자가 되는 노르만인들이 생겼다. 
   그들 중 오트빌 가문 출신의 로저가 1071년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시실리를 정복하였다. 이 세력은 그 전후(前後) 이탈리아 반도의 약 3분의 1이나 되는 남부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차례로 정복, 시실리와 함께 묶어 한 왕국으로 다스렸다. 이 왕국은 지중해의 몰타와 지금의 트리폴리, 튀니지 해안 등 아프리카 북안(北岸)의 몇 개 도시도 정복하였다. 노르만 세력의 꿈은 시실리를 근거지로 하여 이탈리아를 통일, 지중해 제국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시실리 왕국은 王朝가 바뀌고 한때 나폴리 왕국이 떨어져 나가는 곡절을 겪지만 1861년의 이탈리아 통일 때까지 유지된다. 
  노르만이 다스리던 시실리 왕국은 다양한 문화, 종교, 언어가 뒤섞여 활기가 넘쳤다. 시실리는 문명의 교차로에 자리 잡아 옛날부터 여러 문화가 혼재(混在)된 곳인데, 노르만 정복자들은 이런 지정학적(地政學的)인 조건에 잘 적응하였다. 이슬람, 기독교, 그리스정교(正敎), 유대교가 공존하였다. 이탈리아인, 유대인, 아랍인, 그리스인, 게르만인, 노르만인들도 섞여 살았다.   
  노르만들은 백성들에게 자유를 많이 주었다. 종교적, 인종적 차별을 하지 않았다. 노르만들은 중앙집권적인 관료제도를 만들어 법치를 세우고 피지배층의 관습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포용하였다. 왕은 봉건영주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직속 관료제도를 강화하였다. 안정과 관용 속에서 풍성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실리 왕국이 유럽에서 등장한 최초의 근대 국가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議會는 바이킹 公會
 
훌륭한 전사(戰士) 집단인 바이킹은 지중해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議會)는 바이킹이 만든 것이다.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를 점령한 다음 서기 930년에 알싱이란 의회를 열었다. 36명의 추장과 12개의 소공회(小公會)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기 위하여 15일간의 회기(會期)를 가진 것이다. 사회를 본 사람은 법령(法令)을 기억하는 의무를 맡은 사람이었다. 한 독일사람은 이런 모임을 열어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보고 “그들은 왕이 없으나 법이 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가 들어와 중앙집권적인 왕이 등장하기 전 바이킹 사회에서 왕은 입법권(立法權)이나 사법권(司法權)이 없었다. 그런 권한은 공회에 있었다. 공회는 자유민들의 회의체인데, 마을, 지역 단위로 있었다. 이런 공회는 연간 한두 번 열렸다. 공개적으로, 민주적인 토론이 이뤄졌다. 재판도 이 공회가 맡았다. 기소된 사람은 자유롭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다.   
  바이킹 사회는 노예와 부족장이 있긴 했으나 자유민이 주축이었다. 바이킹 자유민은 당대의 유럽 사람들보다 훨씬 큰 자유를 누렸다. 바이킹 사회의 평등성에 기반을 둔 민주성, 민주성에 근거한 역동성(力動性)은 지금도 북구에서 이어져 온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보여주는 평등, 자유, 복지의 모델은 바이킹 사회의 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듯하다.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고 하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만 들어간다. 핀란드는 빠진다. 노르딕국가들(Nordic Countries)이라고 하면 3국 외에 핀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파로에 섬이 들어간다. 이들 나라를 북구라고도 부른다. 북구 나라들은 국기(國旗)에 옆으로 누운 십자가를 공통적으로 쓴다. 
    
  노르딕 모델
 
  인구는 스웨덴이 937만명으로 가장 많다. 덴마크 550만, 핀란드 534만, 노르웨이 483만명이다. 아이슬란드는 약 32만 명, 그린란드는 5만6000명, 파로에는 4만9000명이다. 면적은 그린란드가 216만㎢로서 호주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그린란드와 파로에는 덴마크 자치령(自治領)이다. 북구 4개국의 인구는 모두 2500만명 정도이다.   
  종교는 신교가 84%이다. 거의 모두가 루터교이다. 가톨릭은 1.25%로서 이슬람(2.58%)보다 적다. 북구는 그러나 기독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EU(유럽연합)에 가입한 북구 나라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이다. 유로를 쓰는 나라는 핀란드뿐이다. NATO에 가입한 나라는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이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왕국,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는 공화국이다.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된 것은 1905년, 스웨덴은 1523년, 아이슬란드는 1944년, 덴마크는 10세기경부터, 핀란드는 1917년이다.
 
  북구모델(Nordic Model)이란 말이 있다. 이 나라들이 개발하여 정착시킨 독특한 사회, 복지, 교육 제도를 말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혼합형태이다. 개인의 기본권 존중, 평등, 여성의 취업 장려, 경제활동 인구의 최다화(最多化), 빈부(貧富)격차의 최소화, 강력한 사회보장과 의료보험, 폭넓은 의무교육 제도, 낮은 범죄율, 높은 생활수준, 많은 세금, 높은 고급 문서 해독률, 민주주의의 성숙, 법치주의의 확립, 높은 노조 가입률(80% 이상), 사회민주당의 장기집권을 공통점으로 한다. 이들 나라는 공공(公共)부문의 지출이 많지만 생산성은 높다.   
  실업수당이 덴마크는 받던 임금의 90%, 스웨덴은 80%이다. 독일은 60%. 국민총생산 중의 세금은 스웨덴이 51%, 핀란드가 43%. 독일은 34%. 교육투자율도 높은데, 덴마크는 국내총생산의 7%, 스웨덴은 6.5%를 투자한다. 영국은 5.5%.
 
  스웨덴 사람들의 80%는 매년 한 번 이상 직업훈련을 받는다. 유럽 평균의 두 배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국내총생산의 4%를 매년 연구개발 투자에 쓴다. 영국은 2% 이하. 덴마크는 풍력(風力)발전으로 전력(電力)의 25%를 댄다. 경제와 복지 분야의 규제는 입법으로 하지 않고 이해(利害) 당사자 간의 합의로 한다. 유럽에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랭킹에선 1위가 덴마크, 4위가 아이슬란드, 5위가 노르웨이, 6위가 핀란드, 7위가 스웨덴이다. 노조(勞組)의 힘이 세어도 기업 자유도가 높다.  
  덴마크는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이다. 반(反)복지 정책처럼 들리겠지만 해고가 자유로운 덕택으로 재(再)취업률도 높다. 유럽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유연(柔軟)안정성(Flexicurity)이다. Flexibility(유연성)와 Security(안정성)의 합성어로서 고용의 유연성을 통하여 직업의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덴마크의 실업률은 2%대로서 10%에 육박하는 서구(西歐) 나라들에 비교된다. 덴마크는 거의 매년 국민행복도가 세계 1등으로 조사된다(2016년 조사에서도). 고용의 신축성과 공무원 사회의 투명성(세계에서 가장 덜 부패한 나라)이 만든 결과라고 한다.   
  
  바이킹이 세운 나라가 초일류가 된 이유
 
  바이킹이 세운 나라가 초일류(超一流) 국가가 된 이유를 나름 정리해 본다.
 
  1. 민족적 자질이 우수하다. 체력이 좋고 IQ가 높다. 탐험가, 모험가, 지배민족의 체질을 타고났다. 공동체의 권력구조가 비교적 평등하였다. 상무(尙武)정신과 상술(商術), 그리고 행정력이 뛰어났다. 바이킹 시절에도 정복한 곳을 다 一流로 만들었다.
 
  2. 기독교 문명을 맨 나중에 받아들였으나 종교개혁 때 개신교로 개종, 산업화와 민주화에 유리한 정신적 풍토를 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3. 바이킹의 해양정신을 잃지 않았다. 무역, 탐험, 이민, 해운(海運)에 주력하고 진취적인 삶의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평등정신에 기초한 사회 복지 제도를 만들었다.
 
  4. 국가별 인구 규모가 500만~900만 수준으로 관리하기가 좋다.
 
  5. 지정학적인 전략(戰略)가치가 약하여 유럽 강대국으로부터 본토를 공격받는 일이 적었다.
[ 2016-03-19, 00: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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