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발'을 읽은 북한 사람이 보낸 글
북한에 사는 작가가 쓴 反체제 소설을, 한국의 출판계를 매개로 하여 북한 사람이 읽었다는 건 하나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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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刀盡(도진)'이라는 필명의 북한인은 <이 소설은 김일성을 우상화한 북한의 시인과 작가들을 고발한다>고 평하였다.
 
북한에 사는 작가 반디가 목숨을 걸고 탈출시킨 소설 '고발'을 읽은 북한 사람이 있다. 조갑제닷컴이 실시한 독후감 현상 공모에 응하여 아래와 같은 글을, 중국을 통하여 보내왔다. 북한에 사는 작가가 쓴 反체제 소설을, 한국의 출판계를 매개로 하여 북한 사람이 읽었다는 건 하나의 사건이다.
  
   '刀盡(도진)'이라는 필명의 북한인은 <이 소설은 김일성을 우상화한 북한의 시인과 작가들을 고발한다>고 평하였다.
  
   <암흑의 땅 북녘에서 보냅니다.
   나의 감상문에서는 남한,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고발' 책을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여기에서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책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사진처럼 찍힌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겠다.
   반디의 고발을 세 번째로 읽어본다. 읽어볼수록 그 의미가 깊은 소설이라는 게 안겨온다. (중략). 반디의 소설은 남한 독자들에게는 수령독재에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동정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왜 들고 일어나 싸우지 못하느냐? 3달째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면서도, 남편을 수용소에 보낸 아내도 어버이 수령님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해야 하는 그런 독재체제를 반대하여 왜 들고 일어나지 못하느냐? 왜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 못하느냐? 북한에는 무지렁이들만 모여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남한 독자들의 안타까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북한에 살고 있는 나도 늘 하는 것이다.
   반디의 소설을 곱씹어 읽어보면서 철학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거대한 집단 최면술에 걸린 것과 같은 북한 2000만 주민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은 정신적 근원이 어디 있는가를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수령만을 위한 사회 그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자기의 감성마저 죽은 수령을 위하여 억제당하는 독재체제는 처형과 수용소라는 공포통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령 독재체제가 인민들의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통치철학을 가지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2000만 인민이 여기에 마취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사는 이 땅의 암흑은 장본인이 김일성이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주민의 90%는 이런 생각을 못 가지고 있다.
   '김일성은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다. 락후했던 식민지 반봉건 국가였던 우리나라를 경제강국으로 올려 세워 놓았던 위대한 수령이고,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였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이 꼴이 된 것은 김정일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정치를 기대해볼 게 없지만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이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김일성처럼 정치를 잘 하면 이제라도 바로 잡힐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있어 그렇듯 참혹한 인권유린 속에 신음하면서도 순한 송아지 마냥 눈물만 흘릴 뿐 뿔질 한번 없는 것이다. 이 인식을 바꾸어 놓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일성과 같은 인민의 수령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반디는 소박하고 꾸밈새 없는 단편 이야기로 여기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하였다. 반디는 유령의 도시에서 이렇게 썼다.
   '저 마르크스가 내놓은 모든 리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리론이 뭔지 아오?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 공산주의 건설 리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리론이요, 프롤레타리아 독재 리론!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 다 토영삼굴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한 마디의 말이지만 한 생에 걸쳐 깨달은 반디의 인식관이 집약되어 있다. 공산주의 리론은 모든 사람들이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후려잡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것은 계급투쟁을 말한다. 계급투쟁에는 원쑤의 구분을 국가나 민족 단위로 정하지 않는다. 재산과 지식의 유무(有無)나 사상이나 리념의 차이가 원쑤를 구분하는 기준점이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같은 민족이라도 같은 마을 사람이라도 다 죽이겠다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끝나는 시점이 공산주의라고 정의한다.
   결국 공산주의는 투쟁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투쟁대상이 없어질 때까지 자기들끼리 싸워야 한다.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는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마르크스가 내놓은 리론을 김일성이 실현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결국 김일성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그 누구든 프롤레타리아 독재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반디는 유령의 도시라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을 휘여 잡는 악마의 통치철학에 대하여 까밝히고 있다.(중략). 반디의 소설은 북한의 수령전체주의 실상을 폭로하였다는 데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김일성의 '인자함'의 본질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고 본다. 北 주민들은 자기들이 겪고 있는 불행과 고통을 절대로 김일성과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때의 기억이 한 가지 나는 것이 있는데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이다.
   북쪽 땅에서 태어난 사람치고 이 시를 배우고 항일의 전설적 영웅 김일성에 대해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나 역시 김일성의 위대함에 완전히 넋을 빼앗겼댔다. 그 시를 지금도 기억한다. 조기천은 시에서 김일성을 우리 민족을 구원한 빨찌산 대장,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하였다. 우리 민족을 이끌 위인으로 노래하였다. 거짓과 위선으로 이루어진 이 詩가 2000만의 넋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조기천은 이 시를 1946년에 썼다. 그 전까지는 우리 인민들이 김일성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김일성은 항일전의 공로가 아니라 이 시로 인하여 민족의 영웅으로 되었다.
   내가 시인 작가들을 혐오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의 권리와 자유를 빼앗은 장본인이 김일성이라는 데 대해 생각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 나라의 시인 작가들은 독재자의 賣文(매문) 문필가로써 민족 앞에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질렀는가를 반디 선생의 분노의 작품 앞에서 돌이켜 보아야 한다.
   반디의 비판정신, 항거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 반디의 작품은 이 땅의 매문 문필가들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세습독재 하에서 신음하는 2000만 인민들에게, 독재정권의 창시자이며 봉건 조선을 재건한 김일성의 실체를 바로 알려주는 투쟁의 시작을 말이다.
   암흑의 땅 북녘에서 刀盡(도진) 올림.>
  
   남한 지식인의 위선에 대한 고발
  
   이 북한 사람은 반디의 목숨을 건 문학이, 김일성을 우상화한 北의 가짜 문학인을 고발하고 있다고 적었는데, 나는 '고발'이 북한정권을 고발하지 않는 남한의 문학인도 고발하고 있다고 본다. 이 단편집을 다 읽고 나면 반디의 自敍(자서)대로 '피눈물에 뼈로 적은' 글이란 실감이 온다. 대중 소설에 흔한 지나친 작위성도 없다. 名作처럼 자연스럽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한국어를 썼다. 한글專用으로 암호화된 한국어를 구사하는 문학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늘 의문이었는데, 반디는 土俗(토속) 한국어로 눈에 선한 光景(광경)과 心境(심경)을 그렸다. 漢字의 장점은 고급 언어에 필수적인 개념성과 관념성인데, 한글로만 표기할 수 있는 토속 한국어의 장점은 자연 현상을 표현하는 生動하는 맛이다.
   서구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이 스탈린의 대학살을 비호한 것이었듯이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은 김일성을 비호하고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못한 것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머지 않아 내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디의 '고발'은 '붉은 魔王(마왕)'의 잔인한 압박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문학의 존재증명이며, 북한체제뿐 아니라 남한 지식인의 위선에 대한 고발장이기도 하다.
  
[ 2016-03-20, 10: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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