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과 노르만 紀行(4)문명파괴자가 문명건설자로!
로마네스크 건축 붐을 일으키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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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건축붐을 일으킨 노르만
  
  
  
  유럽을 여행하다가 보면 서로마가 게르만족에 의하여 멸망한 5세기 이후 11세기까지의 600년간에 세워진 건축물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중세 암흑기가 바로 이 시기였구나 하는 감을 갖게 된다. 이 시기의 건축물은 드물기에 소중하다.
  
  
  *이탈리아 동해안에 있는 라벤나엔 5~6세기의 초기 기독교 건물(산 비탈레 교회, 네온 세례당 등)이 있다. 라벤나는 서기 402~476년 사이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다가 로마가 망한 뒤엔 동고트 왕국의 수도로 변했다. 서기 540년에 이탈리아 반도 수복에 나선 동로마 제국(비잔틴)에 넘어갔다가 751년엔 롬바르드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독일 아헨 성당: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를 연 샬레마뉴 大帝(대제)의 무덤이 있는 9세기 초 건축물이다.
  
  *스페인 코르도바의 大모스크(메즈키타-카데드랄): 기둥이 천 개나 되는 이 모스크는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8~10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기독교 세력이 탈환한 뒤엔 성당으로 바꿨다.
  
  
  11세기부터 프랑스, 노르망디, 잉글랜드, 남이탈리아, 시실리에서부터 새로운 양식의 많은 건축물들이 등장한다. 성당, 수도원, 성, 궁전이다. 이를 로마네스크 양식이라 부른다. 로마 양식의 건축이란 뜻이다. 거의 600년간 볼 만한 건물을 만들지 못했던 유럽 기독교 문명권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형은 곧 고딕 양식으로 진화하고 유럽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당 건축 붐이 일어난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 붐은 유럽 문명이 중세 암흑기의 침체를 벗어나 再起(재기)의 신호탄을 올림 셈이다. 이들 건물은 큰 것이 특징인데, 건축 기술의 발전을 반영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확산을 매개한 것이 노르만 戰士(전사)들이었다. 이들이 정복 사업을 진행한 노르망디, 잉글랜드, 남이탈리아, 시실리에선 노르만 정권의 후훤 하에서 로마네스크 건축 붐이 일어났다. 노르만의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이들도 시실리나 남이탈리아에 가 보고는 “바이킹(노르만)이 세웠다는 건물이 왜 이렇게나 많나”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노르만이 가는 곳에 성당이 선다
  
  노르만-로마네스크 식 건물은 첫 인상이 육중하다. 벽이 두껍고 창이 작다. 室內는 검소하다. 반원형 천장, 원형 아치가 특징인데, 건물의 규모가 획기적으로 커졌다. 성당이라도 요새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성당과 성을 세트로 지어 방어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서울 태평로의 성공회 본당 건물이 로마네스크 식이다.
  
  노르만이 유럽 도처에서 남긴 노르만-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나 예술품은 웅장하고 아름다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들도 많다.
  
  *영국: 더함 성당, 런던 탑, 윈체스터 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프랑스: 몽셍미셀(수도원과 요새 겸함), 베이유 刺繡 그림
  
  *南이탈리아: 살레르노 대성당, 나폴리의 달걀 성, 카스텔 몬테(시실리 왕국을 다스린 노르만-독일계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데리코 2세가 세운 성), 트로이아 성당, 트라니 성당, 바리의 성당과 성 등
  
  *시실리: 팔레르모의 대성상, 몽레알레 대성당, 팔레르모의 노르만 궁전과 교회, 체라푸 대성당
  
   *노르망디의 수도였던 루앙은 노르만 시대의 건축 붐에 의하여 유럽의 유수한 건축도시로 성장했다. 윌리엄 공의 屍身(시신)이 안치되었던 캉의 수도원도 기념비적인 노르만-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노르만은 11세기 전후에 유럽에서 가장 이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었다. 북유럽에서 비잔틴, 예루살렘, 아프리카, 러시아까지 다니다가 보니까 자연히 박식하고 개방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런 성격이 노르만 건축물에 나타난다. 스칸디나비아 식, 로마 식, 기독교 식에다가 비잔틴(그리스)과 아랍 양식까지 가미되니 건물의 양식이 풍성해진 것이다.
  
  노르만의 세력 확장은, 새로운 건축양식의 확장을 매개하였을 뿐 아니라,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주도한 교회 개혁의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맡은 것과도 맞물렸다. 영국 저술가 폴 존슨은 ‘예술-새로운 역사’라는 책에서 노르만을 ‘가장 활력 있고 재주 많은 소수 민족’이라고 표현하면서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베니스인, 네덜란드인과 비견된다고 했다.
  
  폴 존슨은 <신성로마제국의 바보 같은 황제들은 그레고리 7세의 교회 개혁에 반대하였으나 노르만 세력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 스스로 법, 지혜, 敬虔性(경건성), 그리고 예술에서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평했다.
  
  그들은 질서를 파괴하는 야만 세력으로 출발하였다가 질서를 잡는 문명세력으로 변했는데, 예술을 그런 질서잡기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노르만은 문명세계의 지혜와 문화를 배우면서도, 바이킹으로서의 특징, 즉 적극성, 모험정신, 무자비성, 강력함, 폭력을 즐김, 손재주, 교활함, 수단이 많고 놀라울 정도로 과감한 성격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정복지에서도 교회 내의 개혁 세력, 즉 잘 교육된 수도승이나 주교들과 손을 잡았다.
  
  *더함 성당
  
  노르만이 잉글랜드 켄트에 세운 로체스터 성은 당대 최강이었다. 45m 높이의 이 성벽은 한 번도 공격자의 入城을 허용하지 않았다. 궁전과 요새의 기능을 겸한 런던탑은 새로운 건축 思潮를 반영했다. 교회, 궁전, 요새 기능을 겸했는데 영국을 정복한 노르만 왕조의 깊은 신앙심을 잘 드러냈다. 노르망디에도 수많은 수도원과 성을 지었는데, 캉의 채석장이 좋은 石材(석재)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정복하자 캉에서 석재를 실어 날라 교회와 성을 지었다. 캉의 석재는 ‘영국 교회의 흰 옷’이 되었다.
  
  폴 존슨은 위의 책에서 정복자 노르만 지배층의 안목과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더함 성당 건축을 들었다. 이 성당 건축을 지휘한 사람은 윌리엄 주교였다. 그는 정복왕 윌리엄의 친구였다. 윌리엄 왕이 1087년에 죽은 뒤 아들 루푸스가 즉위, 주교를 프랑스로 추방하였다. 주교는 3년간 파리와 노르망디의 건축물을 연구하고 돌아왔다. 왕의 신임을 회복한 그는 성당을 짓게 되는데 40년이 걸려 그의 死後에 완공된다. 더함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전면적으로 도입, 건물을 크게, 높게 만든 것인데, 건축학적으로 가장 창조적 건물로 꼽힌다.
  
  갈비뼈를 닮은 반원형 천장(the ribbed vault), 飛樑(비량, the flying buttress, 벽을 바깥에서 버텨주는 역할), 뾰족한 아치(the pointed arch)는 이 성당에서 시도된 3대 건축 기법으로서 나중에 고딕 건축으로 이어진다. 그 전 건축물은 자재의 힘에 의존하였는데, 이 성당 이후엔 力學的(역학적) 계산에 의존, 부피를 키우고 창을 넓히고, 벽의 두께를 줄이게 된다. 폴 존슨은 <혁명적 技法을 도입한 건물이지만 전통적 양식 속에서 혁신을 한 것이라 보통 사람들은 급변을 눈치 채지 못하게 된다>면서 바로 이런 점이 노르만 사람들의 천재성이라고 해석했다.
  
  잉글랜드 더함 성당의 길이는 143m, 예배당의 너비는 25m, 높이는 22m, 중앙 탑의 높이는 66m이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은 더함 성당을 처음 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다리 위에 서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장면을 보면서 찬양하고 황홀하였다. 성당은 크고, 성스럽고, 달콤한데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되었다. 나는 이처럼 사랑스럽고 대단한 광경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유럽의 성당은 토털 아트
  
  중세 유럽의 성당은 주로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인데, 폴 존슨에 따르면 인류의 예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성당은 모든 양식의 예술을 다 포함하는 최대 규모의 토털 아트이다. 그는 사람들이 全생애를 투입, 성당을 찾아가 세밀하게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은 결코 헛된 투자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들 중세 성당의 진짜 위대성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 1000년간! 이렇게 오랜 기간 중단 없이 사용되는 예술품은 달리 없다. 중세에선 한때 국가 재정수입의 약10%가 성당을 짓는 데 투입되었다. 이 돈도 길게 보면 낭비가 아니다. 이들 성당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잘 정비, 관리되어 빛난다. 그런 중세 성당의 태반을 차지하는 로마네스크 및 고딕 성당에 가장 야만적이던 노르만의 손때가 묻어 있다는 점이 경이로운 것이다.
  
  *실력제일주의
  
  노르만 戰士들은 어디를 정복하든지 통치와 행정에 뛰어났다. 잉글랜드를 정복한 윌리엄 왕은 1085년에 전국 國富(국부) 조사를 했다. 이 조사보고서는 ‘돔스데이 북(Domesday Book)'이라고 불린다. 전국 13,418 지역의 토지 및 가축 소유 실태, 세금, 軍役, 생활 상태 등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유럽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정확한 國勢(국세)조사였다. 조사 목적은 課稅(과세)의 근거 자료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노르만 王朝(왕조)가 잉글랜드의 토지 소유권을 장악,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사 대상 지역의 약5분의 1은 왕이 직접 소유하였다. 4분의 1은 교회, 반은 윌리엄 왕의 추종자들이 소유하였다. 해이스팅 전투에서 토착 앵글로 색슨 귀족들이 섬멸됨으로써 지배층이 완벽하게 교체되었고 따라서 중앙집권적인 효율성 높은 통치가 가능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남이탈리아를 장악한 노르만 세력도 이 돔스데이 북을 참고로 하여 1100년에 국세 조사를 실시했다. 노르만이 어딜 가든지 건축 붐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중앙집권적, 효율적 행정능력을 바탕으로 종교나 민족의 한계를 초월, 실력제일주의의 입장에서 개방적이고 실용적 정책을 펴 富國强兵(부국강병)에 성공한 餘力(여력)이 있었던 덕분이다.
  
  
[ 2016-03-27, 09: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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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보다가     2016-03-27 오후 6:14
감상문....

조갑제대표는...( 독재 개념에에 근접하는 ) 중앙집권적= 효율적 행정이라는 용어를 좋아하는 듯하다.
늘 박정희대통령을 늘 염두에 두는지...

그 당시 유럽에서 말하는 중앙 집권적이란 말은...군소군주/봉건주의에 반하는 말이며, 유럽 특히 북구 유럽은 , 조갑제대표 스스로가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자본주의적 우클릭이 심한 미국식 자본/민주주의가 아리라, 사회주의 개념이 많이 합쳐진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미국식 자본민주주의만 주로 접한 70-80년대 한국의 유햑파들이 , 자본민주주의의 대표국가인 서독에서도 사회주의적/좌파적 개념이 일반화된 것에 많이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 민중당 출신/이재오는 여기 오면 ...좌파 근처에도 못간다 )

그리고 이 서방선진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체제는... ( 국가원수/국왕들의...위정자들이라는 위를 쳐다보는 경향이 있는 )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아니라,( 철저히 국민들 /아래사람들의 복지/심려를 우선시하는 ) 지방자치제 라는 것을 모르는체 하면 안된다.

( 선진국에서는 이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권 보장/언론자유 개념처럼 핵심가치인데...
이 또한 미워하는 ? 김영삼이 대한민국에 처음 실시한 것이라서 ..늘 비판의 입장일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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