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明의 교차로 사마르칸트에서
몽골 草原 역사 紀行(4)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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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6월1일(토요일) 오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타 공항을 이륙한 카자흐스탄 항공사 여객기는 서남쪽으로 날아 한 시간 반만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공항에 착륙했다. 두 도시 사이의 직선거리는 600㎞ 남짓 하지만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눈 덮인 天山산맥이 항상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알마타는 유목적, 東洋的, 몽골的 분위기를 많이 풍기고 있는 데 반해 타슈켄트는 오아시스的, 농경的, 투르크的, 이슬람的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맥은 멀리 있었고 날씨는 더웠으며 하늘은 비취색이었다. 맑은 하늘 속으로 치솟은 고려청자색의 돔(Dome)들―그것은 주로 中世 이슬람의 교회당이요 학교요 大王들의 무덤이었다.
  
  다음날 타슈켄트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 떨어진 사마르칸트까지 자동차로 달렸다. 중국 신강성, 몽골, 카자흐스탄의 유목적이고 야성적 풍경에 익숙해져 있었던 기자의 눈앞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길 주변은 끝없는 草原이 아니라 밀·쌀·목화를 산출하는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의 大海였다. 말을 타고 유창하게 길을 가는 사람 대신 소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자는 유목민의 세계를 벗어나 농경정착민의 세계로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유목민의 말 대신 농경민의 소가 시골 풍경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이 나라 역사는 주변 騎馬민족으로부터 약탈과 침략을 당하는 편에 선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
  
   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에 있는 역사박물관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티무르帝國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적인 권위와 소장품을 가진 곳이다. 박물관장 사이바옙 마수드氏는 기자 일행을 한 시간 동안 안내하면서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우즈베키스탄과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에 위치함으로써 동·서양 문명의 발원지 또는 십자로가 되었다. 중앙아시아는 서쪽으로 카스피海, 동쪽으로는 天山산맥, 남쪽으로 힌두쿠시 산맥과 파밀高原을 경계로 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 초원이 러시아 초원으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호수를 제외하면 어떤 장애물도 없이 우크라이나-폴란드-헝가리 대평원으로 계속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깊은 내륙인 중앙아시아의 중앙은 우즈베키스탄이고 이 나라의 역사적 中心은 사마르칸트이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뿐 아니라 동서양 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수록하고 있는 타임캡슐, 단층, 또는 化石같은 존재이다.
  
  마수드 관장은 전시된 그리스 동전을 가리키면서 『알렉산더 大王이 서기 前 329년에 사마르칸트까지 진격하여 이곳에 3년간 머문 뒤 인도로 南進했다』고 설명했다. 사마르칸트의 역사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알렉산더 大王이 떠난 뒤에도 그리스 군대가 20년간 주둔하면서 그리스식 성벽을 쌓고 동전들을 떨어뜨려 놓았다. 기원 전 2세기부터 동쪽에서 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몽골 고원을 근거지로 삼아 북방초원에 유목민족사상 최초로 제국을 세운 흉노가 중국을 통일한 漢 제국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고 불똥이 天山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튀었다.漢武帝는 투항해 온 흉노人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흉노(匈奴)의 單于(집권자를 지칭)는 월씨국(月氏國)의 왕을 붙잡아 죽이고 그 해골은 술을 담아 마시는 그릇으로 삼았습니다. 月氏國은 흉노를 미워하여 협력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月氏國이 서쪽 멀리 있다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었지만 武帝는 낭관(郎官)으로 있던 장건(張騫)을 책임자로 삼아 100여 명의 사절단을 편성, 무작정 서쪽으로 보냈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추정에 의하면 기원 前 39년의 일이다. 張騫 일행은 天山산맥을 넘기도 전에 흉노에게 포로가 돼 10년을 허송하게 되었다. 포로생활을 하면서 흉노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도 생겼으나 그는 10년만에 탈출하자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쪽으로 나아갔다.
  
   張騫의 우즈벡 탐험
  
  張騫의 일행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대완국(大宛國)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 우즈베키스탄 동쪽의 페르가나 지방으로 추정되고 있다. 天山산맥에서 흘러내린 강물로 비옥한 농토를 가진 이 지방은 지금도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페르가나 분지」로 불리는 이곳은 300×170㎞의 옥토로서 포도만 하더라도 400여 종류가 자란다고 한다. 이 페르가나 지방의 한 도시 코젠트는 옛날에 「알렉산더 大王이 가장 멀리 진출한 곳」(Alexandria the Farthest)이란 뜻을 지닌 이름으로 불렸다. 이 페르가나의 중심도시 안디잔에 大宇가 年産 20만대 규모의 승용차 공장을 세웠다.
  
  張騫은 大宛國 왕의 안내를 받아 지금의 키르기스스탄(康居國)을 지나 드디어 大月氏國에 도착했다. 大月氏國은 지금의 타슈켄트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 떨어진 부하라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大月氏國에 도착 해 보니 10년 前과는 사정이 달랐다. 10년 前의 왕은 죽고 아들이 새로 왕이 되었는데 이미 흉노의 꼭두각시가 돼 있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있던 대하국(大夏國)을 점령하여 그곳에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張騫은 군사동맹을 맺지 못한 채 13년 만에 돌아와 漢武濟에게 西域(지금의 중앙아시아와 중국 신강성 지방을 통치하는 중국식 표기) 견문기를 보고했다.
  
  <대완(大宛)은 흉노의 서남, 漢의 서쪽에 있고 漢을 떠나 1만리, 그 습속은 밭농사, 보리재배, 특히 좋은 포도주를 만들며 양마(良馬)가 많다. 이 말들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린다. 속읍(屬邑)은 大小 70여 城, 인구는 수십만, 병기는 활과 방패, 기사(騎射)에 능하다…>
  
  張騫은 大夏國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거기서 사천성(四川省)에서 만든 죽장(竹杖)과 포(布)를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어디서 입수했는가라고 물었더니 상인들이 신독(身毒)(지금의 인도)이란 곳에 가서 사왔다고 합니다. 身毒이란 곳은 대하(大夏)로부터 동남쪽으로 수 천리 떨어진 곳이므로 四川省에서도 멀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武帝는 대완(大宛)의 준마(俊馬)도 탐이 났고 서쪽 나라들과 통상(通商)하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는 흉노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張騫의 탐험과 武帝의 호기심이 중국의 巨大한 관심 방향을 서쪽―신강성·天山산맥·중앙아시아로 쏠리게 하면서 중앙아시아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漢武帝의 대공세와 내분에 의해 와해된 흉노의 기마군단은 북방 草原 지대를 따라서 중앙아시아→東유럽으로 이동한다. 유럽에 나타난 흉노族은 훈(Hun)이라 불렸다. 약 400년에 걸친 흉노 기마군단의 대이동은 로마를 비롯한 고대 정착 문명권의 질서를 허물어버리고 유럽의 역사를 中世의 암흑으로 밀어 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한민족이 투르크族?
  
  이 흉노민족은 몽골―투르크族으로 분류되는데 주력은 투르크語를 쓰는 투르크族이었다. 이 투르크族은 몽골族과 인종적으로 가까운 동양계로 분류돼 왔는데 최근 터키學者들은 고대의 투르크族이 백인종이라는 학설을 제기하고 있다. 투르크族의 근거지는 몽골 서쪽 알타이산맥 부근이었고, 몽골族은 몽골고원의 동쪽에 살았다. 한국 민족의 기원에 대하여 옛날에는 우리 조상들이 알타이 산맥 부근에 살다가 한반도로 이동해 들어왔다는 주장이 강했다. 최근에는 바이칼 호수 근방에서 南下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알타이 산맥 근방에 살았다면 우리는 투르크族의 후손이란 얘기가 된다. 기자가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난 중앙아시아 역사의 세계적 권위자 아하마드 하산 다니 박사도 그런 견해였다. 그는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인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한국어의 구조를 살펴보았는데 몽골系라기보단 투르크系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몽골族과 투르크族은 서로 붙어살기도 하고 뒤엉켜 살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북방초원을 휩쓸고 다녔기 때문에 외부 사람의 눈에는 구별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16세기부터 200년간 인도를 통치한 무갈 王朝는 몽골族이 세웠다는 뜻에서 몽골의 이란語 표기인 「무갈」이라 불렸다. 인종학적으로는 이 지배 집단은 투르크系로 분류되고 있다. 사마르칸트 역사 박물관의 마수드 관장은 『흉노족이 西進하면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全域을 서기 1∼3세기 사이에 통치했다』고 했다.
  
  흉노族의 기마군단이 중앙아시아를 빠져나가 유럽으로 진입, 게르만族을 밀어버리니 역사상 유명한 게르만族의 연쇄적 대이동이 일어난다. 이 게르만族이 로마 경내(境內)로 들어가 西로마를 멸망시킨다. 유럽으로 진출한 匈奴, 즉 몽골-투르크族은 훈으로 불리면서 헝가리와 다뉴브강에 본부를 두고 아틸라를 지도자로 모시고 대제국을 건설하여 유럽 文明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다가 그의 死後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투르크族의 이슬람化
  
  흉노族이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를 빠져나간 뒤를 메우며 들어온 것이 돌궐(突厥)이었다. 돌궐은 투르크를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투르크란 이름을 딴 최초의 제국이 돌궐이다. 6세기에 몽골을 중심으로 하여 북방 초원지대에 제국을 건설한 투르크族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면서 이곳에 남아 있던 이란 세력을 축출했다. 흉노-돌궐족은 지배민족으로 이곳에 도착하여 이 지역의 선주민(先住民) 아리안(이란)系 인종과 혼혈하게 되었다. 우리와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돌궐족은 이때부터 서양인化되기 시작했다.
  
  타슈켄트 동방학 연구소의 한 연구원에게 『우즈벡人의 피는 몽골系 50%, 아리안系 50%의 혼혈로 보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더니 『60(백인종) 對 40(몽골系)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그 백인종은 西유럽의 백인종과는 다른 아시아的 요소가 섞인 백인종이란 것이었다. 모스크바 동양학 연구소에서 만난 카자흐스탄人 출신 연구원은 『카자흐人의 경우 몽골系 혈통 80%, 아리안系 혈통 20%의 혼합』이라고 했다.
  
  군사적 지배 민족으로 대제국을 잇따라 세워갔던 몽골-투르크族은 인구수에 있어서는 피지배 정착 민족에 비해서는 항상 소수였다. 더구나 피지배 민족에 대한 민족적, 종교적 차별을 하지 않았던 몽골-투르크系는 혈통을 순수하게 보존한다는 의식도 약했다. 그렇다고 정착민족을 감동시킬 만한 고급文化를 발전시킨 것도 아니기에 쉽게 현지화 되면서 흡수·소멸되기도 했던 것이다. 몽골고원에서 西進한 투르크族이 중앙아시아를 거치면서 이슬람교도가 돼버린 것은 세계사의 향방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슬람은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아랍人에 의해 일어났으나 투르크族이 그것을 받아들인 뒤에는 정치적, 군사적 헤게모니는 투르크族에게 넘어갔다. 中東이슬람 세계를 약 800년간 지배한 맘루크, 셀주크, 오스만 터키가 바로 이슬람化된 투르크族이 세운 제국이었다.
  
   투르크族의 脫동양
  
  마수드 관장의 설명은 계속된다. 중앙아시아로 東進한 아랍 군대와 西進해온 唐나라 군대[고구려출신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지휘]는 서기 751년에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탈라스江에서 결전했다. 이때 투르크族은 마지막 순간에 아랍군대 편을 들었다. 唐軍은 참패하였다. 이 세계사적 결전으로 해서 그 뒤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은 天山산맥을 넘지 못하게 되었고 중앙아시아는 투르크-이슬람文化圈으로 남아 오늘에 이른다.   
  투르크族의 「脫동양, 入이슬람」은 세계사의 역학관계를 바꿔놓게 된다. 당시 문명세계에서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했던 투르크族이 漢族과 손을 잡았다면 이슬람의 東進과 팽창은 저지되었을 것이고 동양세력이 유럽으로 진격하는 장애물도 제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르크族은 인종적으로는 동양에 뿌리를 두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을 수용함으로써 편가르기 문제에 이르러서는 종교에 따른 선택을 함으로써 동양을 떠난 것이다.   
  그리스-흉노-돌궐-아랍文化에 이어 사마르칸트를 덮친 것은 東몽골지역 출신인 징기스칸이었다. 1220년 사마르칸트가 징기스칸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도륙되었을 때 이 도시는 호레즘 帝國에 속한 대도시였다. 호레즘은 투르크族이 지배한 강성한 나라였다. 지금의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이란 북부를 통치하였다.
[ 2016-05-02, 10: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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