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 인터뷰
몽골 草原 역사 기행(7) 그는 『박정희는 한국인들에게 축적된 에너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르게 분출시킨 분이다』라고 평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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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나 이 인터뷰를 다시 읽으면서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사정을 代入해보았다. 우즈벡은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전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에 기지를 제공, 협력하였다. 그 몇 년 뒤 페르가나 지방에서 이슬람 극단파가 개입된 시위사태와 유혈진압이 이뤄지고 미국 정부가 비판적으로 나오자 미군 기지를 폐쇄하였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언론과 정치를 통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경제도 옆 나라인 카자흐스탄과 비교하면 낙후된 편이다. 체제 전환국의 성공은 예외일지 모른다.

◎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지도자는 국민들의 맥박을 짚을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박정희는 한국인들에게 축적된 에너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르게 분출시킨 분이다』라고 평했다.

自主정신

카리모프 대통령은 1995년 2월23일 우즈베키스탄 국회에서 장시간의 보고를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사회-정치, 경제발전에 대한 기본 원칙」이란 제목의 이 연설은 이 지도자의 정치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소책자로 인쇄된 이 연설문을 읽고 있으면 朴正熙가 1963년에 썼던 「국가와 혁명과 나」를 다시 읽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가 있었다. 국가를 근대화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自主的인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강렬한 소신 표명이 두 책의 공통점이다.

<사회주의 치하의 70∼80년은 우리 국민의 역사에 있어선 순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포착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있는데 그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들이 요구하는 도덕적인 원칙과 합치해야 합니다. 동방의 민주화 과정에서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은 일관성과 점진적 방식의 중요성입니다. 혁명이나, 서구학자들이 말하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의 사회 발전」은 우리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경험은 민주적 제도들이 수입될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산물인 것입니다. 서구 민주주의가 개인주의 철학과 대중의 극단적 정치의식화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 동방의 민주주의는 집단주의, 가부장주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감안하여 사회를 운영하는 제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가 부자와 빈자(貧者)로 양극화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발전에 있어서 공통된 목표이며 전략입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1938년 사마르칸트의 빈곤한 가정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고 국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의 인상에서 살짝 엿보이는 고독의 그림자가 이런 어린 시절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제관료로 성장한 카리모프는 우즈벡 공산당 서기장을 거쳐 1990년 3월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고르바초프식의 급진적 개혁·개방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1991년 8월 실패로 끝난 모스크바의 군부쿠데타가 났을 때 카리모프는 쿠데타를 지지했다고 한다. 쿠데타 기도가 실패했지만 고르바초프 지도력이 결정타를 맞은 시점을 놓치지 않고 그는 1991년 8월31일 우즈베키스탄의 소련연방 탈퇴와 독립을 선언하고 9월14일엔 공산당을 해체하고 국가민주당을 창립했다. 12월29일엔 직선을 통해서 대통령으로 뽑혔다.

우즈-대우 자동차 공장 준공식 전날

기자는 1996년 7월18일 낮 12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대통령宮 접견실에서 카리모프 대통령과 인터뷰를 가졌다. 우즈-大宇 자동차 공장 준공식을 하루 앞둔 시점이어서 그런지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1m80㎝정도의 키에 군살이 빠진 건장한 몸집의 카리모프 대통령은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부끄럼 타는 듯한 수줍은 웃음이었다. 얼굴은 東洋的 느낌을 더 많이 주는 반동반서형(半東半西型). 그 외 답변은 러시아語로써 나지막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진행되었는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최선을 다하려는 성실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먼저 인사말을 했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나는 귀하가 일하시고 계시는 신문과 잡지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月刊朝鮮을 통해서 한국인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우즈벡에 대한 이해를 돕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즈-대우 자동차 공장 준공식이 내일 있을 예정입니다만 이것은 한국과 우즈벡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행사에 대하여 한국측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정부 인사와 대표단을 보내주신 것은 양국 친선 관계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귀하를 환영하면서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1937년에 스탈린이 遠東지방에 살고 있던 한국 교포들을 우즈벡으로 강제 이주시켰을 때 우즈벡 사람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고려인들은 지금 우즈벡을 제2의 고향, 제2의 조국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우 그룹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우즈벡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경제발전을 돕고 있는 것도 하나의 보은(報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즈-대우 자동차 공장이 최신설비로서 안디잔에서 준공된 것은 우즈벡과 중앙아시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일입니까.

『이 사업에는 6억6천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이 공장은 우즈벡 측이 50%, 대우가 50%의 지분을 공유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임도 반반씩 나눠 갖고 있지요. 우즈벡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공장은 중앙아시아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최신형에 속합니다. 이런 공장을 대우의 金宇中회장이 지었다는 것은 우즈벡이 신뢰할 수 있는 나라이며 어떤 경제협력도 가능한 국가임을 全세계 앞에서 보여준 셈입니다.

우즈벡에서는 지금까지 자동차를 생산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대규모 자동차 공장의 탄생은 우즈벡의 경제구조를 개편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동차 연관산업이 생길 겁니다. 정비사업장과 부품 공장들이 생길 것이고 GNP 성장과 고용성장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 가서 기술을 배우고 오는 우즈벡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며, 우리의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것입니다.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새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이들의 의욕을 북돋우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공장을 통해 우리는 국제시장에도 과감하게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보다 경제를 우선시한다』

―대통령께서는 우즈벡 민족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시고 애국심과 근로의욕을 고취하시고 계십니다. 외국의 가치관과 이념을 무조건 받아들여선 안되며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체성을 강조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역사의식과 정신력을 유달리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민주적 개혁 작업을 벌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우즈벡의 자주·독립을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시장경제를 가진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셋째 과제는 세계 경제질서에 우즈벡이 통합되는 길입니다. 위의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즈벡 모델」의 첫째 원칙은 우리 민족의 특성과 우리의 역사·문화·전통에 맞는 방법론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우즈벡 모델의 구성요소인데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다섯 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첫째, 脫이념의 원칙입니다. 이것은 경제가 政治보다 더 우선 순위가 높게 취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국가가 개혁작업의 주체세력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政治의 우위가 지켜져야 합니다.
넷째, 사회보장 정책의 강화입니다.
다섯째, 점진적인 개혁 방식입니다.

개혁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습니다만 우리는 이런 개혁의 원칙이 정당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련 시대에 억압돼 왔던 도덕성과 정신적 가치, 그리고 민족부흥운동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국가에 살고 있으며, 조국이 어떤 역사를 가졌고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이 인류문명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알고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나라의 위대한 역사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朴正熙에 대한 평가

―저는 故 朴正熙 대통령의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우즈벡의 현재 상황은 朴대통령이 근대화를 추진하던 시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朴대통령에 대한 귀하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나는 그 시기의 한국 역사에 관해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적을 이룩한 기초가 만들어진 결정적인 시기였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서 한 개인의 역할은 엄청납니다. 나는 지도자가 역사의 결정적 시기에 국민들의 잠재력을 잘 이해하고 그 축적된 에너지를 어떻게 분출시키느냐 하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될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도자가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것, 당하고 있는 고통을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더 깊고 더 멀리 보는 시각에서 포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주변 인물들보다 더 선견력(先見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을 朴正熙 대통령은 타고났으며 그것이 역사에 길이 남게 될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믿습니다. 朴대통령은 국민들의 잠재력을 믿었고 그것을 분출시켰습니다. 그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설정했던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협력관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긴장시키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목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주권 국가로서의 외교정책을 확립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협력국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우즈벡의 이익을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으로 계산합니다. 둘째도 셋째도 우즈벡의 국가이익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와 협력하고 어느 나라와 친선하여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그 누구로부터도 지시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NATO와 협력하는 문서에 서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이익과 안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가 번영되고 민주적인 나라로 발전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1백년간 러시아와 상호 협력해 오면서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중앙아시아가 종교분쟁으로 말려들 가능성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교(政敎) 분리국가인 터키에서도 회교 근본세력이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그럴 위험이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앙아시아와 中東에서는 그런 위험이 존재합니다. 17년째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의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세속국가(Secular State)입니다. 헌법에 따르면 종교는 국가와 분리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종교,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이슬람을 이야기할 때 광신주의나 극단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10억 인구가 이슬람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를 정책으로 삼는 국가들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단연코 반대합니다. 나는 종교적 근본주의에도, 공산적 근본주의에도 반대합니다. 1990∼91년에 우리는 위험한 시기를 넘겼습니다. 타지키스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우리 국민들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시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질병에서 우리는 회복했습니다. 민주화를 계속하면서 세계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런 상황을 피하는 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산층 육성이 민주화의 지름길』

―인권의 기준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다르다고 봅니다만 대통령께서는 언론자유를 포함하여 인권에 대하여 어떤 소신을 갖고 있습니까.

『민주국가를 건설하려고 목표를 세웠다면 민주국가로서 필요한 기준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거, 권력의 분할, 인권존중, 인신자유의 존중,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책과 국가 및 사회의 건설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그런 기준들이겠지요.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각자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민의 의식구조나 국가적 특수성 때문이겠지요.

민주주의는 위(Top)에서부터 만들어질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밑에서부터 만들어져 올라가야 합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 이념, 가치관 같은 것들이 한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며 민주주의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게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민주화가 1년 내에 끝날 문제가 아니란 점입니다.

민주화를 성급히 추진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혁명적 변화보다는 진화론적(점진적) 변화를 지지합니다. 우리는 75년간 단일 이념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4세대 중 3세대가 그런 조건에서 산 겁니다. 국유재산만 있고 사유재산이 없으니 완전히 기생충적인 심리상태가 생겨나게 되었지요. 룸펜 계급도 생겼습니다. 룸펜은 병균과 같아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아주 위험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는데 사유재산이 으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지금 중산층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너무 잘사는 부자와 너무 못사는 빈민층의 등장을 규제해야 합니다. 그런 양극화는 사회적인 폭발을 야기할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중산층이 생겨나면 국민들의 심리도 바뀔 것입니다. 이 중산층은 또 민주사회와 그 가치관의 가장 중요한 지지세력이 됩니다. 몇몇 언론인들, 특히 러시아 언론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조작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이런 행동은 우즈벡의 자주노선을 비난하여 신뢰를 상실하게 하려는 음모입니다. 우즈벡은 민주화의 노정에 들어서서 자신 있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우즈벡의 전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외국 회사가 어떤 나라에 투자를 하려면 그 나라의 정치적 안정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21세기까지도 우즈벡의 안정이 지속될 것이라고 안심해도 좋습니까.

『비즈니스는 안정된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법이 뒷받침하는 특혜와 보증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금융적인 보증뿐 아니라 정치적 보증까지 제공합니다. 헌법과 몇 가지 법안이 이를 확실하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인은 사람들의 지적(知的)수준, 인구, 전문인력이 되겠습니다. 우즈-대우 자동차 사업이 성사된 것도 위에서 언급한 여러 원칙들 덕분입니다.

작년에 미국은 1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우즈벡의 예측 가능한 정책과 민주화의 진전은 장기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보증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정치노선에서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중도 노선을 유지해 왔으며 나선형을 올라가듯이 점진적으로 전진해 왔습니다. 이런 운동은 개혁의 후퇴가 불가능 할 정도로 견고한 기반을 조성하였습니다. 지도자나 정부가 후퇴하려고 해도 국민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졌습니다. 내가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그런 의식구조가 우리의 지속적인 개혁과 발전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터키와 우즈베키스탄은 공통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공통점을 기반으로 하여 장래에 군사적인 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즈베키스탄은 민족적인 공통성이란 측면에서 우리의 장래문제를 결정짓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동맹 정책엔 반대합니다. 우리 헌법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군사력이 貴國의 안전보장에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현 상황에서는 어떤 나라의 군대도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군사력에만 의존하여 안보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군사력을 2∼5배나 증강시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예산과 생활 수준에 부담만 증가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지역內, 또는 국제안보의 틀 안에서 조약을 통한 안보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기를 바랍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군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나의 내면적인 의지에 따라서 한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내면적 신념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내면적 自我(inner ego)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내 양심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만, 나의 꿈과 목표가 있다면 내가 이런 고위직에서 물러났을 때, 내가 늙은 연금수혜자가 되었을 때 보통서민들이 나를 찾아와 악수하는 것, 그런 정도입니다. 이런 것이 내가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하는 정도입니다.』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어떠하셨습니까.

『저는 지난해 2월에 한국에 가서 金泳三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정계, 경제계의 많은 지도자들과 만나고 金대통령으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무궁화 훈장을 받았습니다. 저와 우즈벡 국민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이 훈장은 저와 우리 국민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일 뿐 아니라 지난 50년간 한국인과 우즈벡 민족이 발전시켜온 상호존중과 친선의 관계에 대한 표시였다고 생각합니다.

金대통령은 우리 고려인들을 우즈벡 한국인(Uzbek Koreans)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이것은 매우 의미 있고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우즈베키스탄보다 생활수준이 훨씬 높지만 여기 사는 고려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곳이 母國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역사적인 母國인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유익한 많은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문화와 생활 수준, 경제 등 이런 것들은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으며 우리도 이 나라에서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고 이루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했습니다.』

『정당간 경쟁이 사회불안을 야기하도록 방치해선 안돼』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계십니까.

『한국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국가가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서 투쟁해 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하고있지만 더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한국 국민들의 꿈과 희망과 기대가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번영과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난 7월1일∼12일 사이에 우즈벡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여 두 나라 사이의 경제 협력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첸 빅토르 아나톨리예비치 부총리와 14명의 대표 명단을 보십시오. 대표단장인 첸氏, 천氏―우즈베키스탄 하보 율라리 국립 항공사의 부사장이자 굉장한 조종사, 최氏―공업지질 자원위원회 부회장, 유氏―사마르칸트 상공진흥회의소 회장, 변氏―통역. 이 명단을 드리겠습니다. 이 자료가 양국 관계의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朴正熙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통해 중산층을 육성하여 지금은 우리 국민들의 70%가 중산층에 속한다고 대답합니다. 朴正熙가 이룩한 성공적 경제발전의 산물인 이 중산층은 먹는 문제가 해결되자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朴대통령은 이들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향유하는 점과 비례하여 더 큰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게 돼 있는데, 각하께서는 이런 딜레마에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한국과 우즈벡은 둘 다 아시아 국가이지만 한국은 한국의 특성, 우즈벡은 우즈벡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할 때 사회의 맥박, 운동의 맥박을 감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이익이나 관심과 어긋나더라도 時宜 적절한 대처와 선택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가장 의미심장한 문제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개혁은 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정치적, 법률적인 개혁의 가속화가 날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따라서 우리는 오랜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유럽의 질서와 유럽의 틀에 통합되기 위해서도 그런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으며, 헬싱키 협약이 규정한 준수사항을 이행하기 위하여서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전략과 노선을 택한 이상, 그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은 이상, 우리는 후퇴하거나(정치적 자유에 대하여) 소홀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다간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객관적으로, 전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사회 자체도 이런 과정을 의식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상층부의 작은 집단뿐 아니라 전체 국민들이 그런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국민적 공감대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정다이 각각 다른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당간의 투쟁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도 안됩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가 양국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즈베키스탄을 찾아주신 데 대하여 감사합니다.』

몽골族 그 마음을 얻은 뒤 그 기(氣)를 이(理)로 제(制)해야

카리모프 대통령은 『선물이 있다』면서 우즈벡의 전통 가운을 기자에게 입혀주고 수건 같은 것으로 허리를 졸라매어 놓은 뒤 전통 모자까지 씌어주고는 사진촬영을 하도록 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답변 중에서 『지도자는 국민들의 에너지가 어떻게 축적돼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어느 방향으로 분출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복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지도자는 항상 사회의 맥박을 짚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몽골-투르크系 유목민족의 가장 중요한 성격적인 공통점은 감정적이란 점이다. 가슴이 너무 뜨거워 머리까지, 팔다리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민족성을 가진 사람들을 움직이려면 그런 가슴, 그런 감정을 잡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東洋의 옛 선현들이 天心이니 民心이니 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정치와 전쟁의 가장 중요한 승부수로 설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몽골-투르크系 인종의 이런 마음을 잘만 통합하면 민중은 非이성적 용감성과 희생정신을 발휘, <1+1=2>식의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적 폭발력을 내는 수가 있다. 이른바 신바람이다.

이런 폭발력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순간적 파괴력을 발휘하고 끝나 버리는 원자탄이 될 것이고 이성적 계획 아래에서 냉정하게 관리하면 원자로가 되어 장기적으로 생산에 기여하게 된다. 가슴이 뜨거운 몽골-투르크系의 지도자는 오히려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여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족의 왕성한 氣를 냉정한 理가 현명한 목표의식과 방향감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관리하면서 끌고 가야 그 큰 힘을 낭비하지 않고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몽골-투르크系역사에서 성공한 정치적·군사적 지도자는 대체로 氣的 인간형이라기보다는 理的 인간형이었다.

한국의 역사에서 보면 김유신(金庾信)·김춘추(金春秋)·세종대왕·이순신(李舜臣)·정조(正祖)·이승만(李承晩)·朴正熙 같은 이, 베트남(몽골系 민족임)의 호지명(胡志明), 지압 장군 같은 이들이 뜨거운 氣를 차가운 理로써 통제해간 사람들이었다. 몽골-투르크型 조직(그것이 회사든·군대든·국가든)의 경영법은 에너지를 어떻게 충전시킬 것인가, 충전된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노하우를 정리해야 하는데, 그 바탕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 아닌 감정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몽골-투르크系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하면 非이성적으로 반발하는 특징이 있다. 자존심을 세워주면 非이성적으로 충성한다. 이런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는 지도자의 제1조건은 人情의 기미를 알아차리는 것이고(즉 사회의 맥박을 느끼는 것) 그럴 수 있으려면 민중 속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체험을 가져야 한다. 몽골-투르크型 조직의 리더십은 거의 예외 없이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구는 속에서 우러났지 군림하는 자세에서 생기지는 않았다.

끝없는 초원에서 가족단위로 자유롭게 떠도는 생활에 익숙했던 몽골-투르크族은 생래적으로 자유인이었으며, 속박과 압박을 받을 수 없는 체질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이전의 세계역사상 몽골-투르크系는 늘 지배민족이었지 노예나 피지배 민족이 돼 본 적이 거의 없다. 유아독존적 자유인의 기질을 가진 몽골-투르크系의 사람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리더십은 아마도 최고 수준의 지도력일 것이다.

*20년이 지나 이 인터뷰를 다시 읽으면서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사정을 代入해보았다. 우즈벡은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전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에 기지를 제공, 협력하였다. 그 몇 년 뒤 페르가나 지방에서 이슬람 극단파가 개입된 시위사태와 유혈진압이 이뤄지고 미국 정부가 비판적으로 나오자 미군 기지를 폐쇄하였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언론과 정치를 통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경제도 옆 나라인 카자흐스탄과 비교하면 낙후된 편이다. 체제 전환국의 성공은 예외일지 모른다.

[ 2016-05-11, 07: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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