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全斗煥 대통령이 미워도 이 통계는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집권 기간에 한국은 세계 제1위의 경제성적표를 기록, 민주화를 뒷받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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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나가서, 내가 全斗煥 대통령을 역사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면 놀라는 기자들이 더러 있다. 모든 대통령은 聖君이어야 하고 모든 스포츠맨은 슈퍼맨이어야 하고 모든 기업인은 無慾의 자선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그러면서 자신들은 모순덩어리이다) 기자들의 눈에는 榮辱(영욕)투성이인 全斗煥 전 대통령의 욕된 면만 보지 않으려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내가 全斗煥 정권에 의하여 두 번 기자직에서 해직된 적이 있다고 말하면 왜 그런 사람이 全씨를 좋게 보느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대한다. 公的 판단에 私感을 介在시키면 안 된다는 원칙이 생소한 모양이다. 수치로 본 全斗煥 대통령의 부정할 수 없는 功積을 싣는다.
  
  
   오늘날 한국에서 識者를 자칭하는 사람들중에는 全斗煥 정권을 변호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金泳三 전 대통령이 주도한 소위 역사재판에 의하여 全斗煥 정권의 출범 과정은 反헌법적인 반란과 내란 행위로 규정되었다. 이 판결에 대한 異見도 많다. 全斗煥 정권의 출범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이 정권이 남긴 實積에 대해서는 異見이 적다. 수치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動機보다는 결과를 重視한다. 객관적 수치로 나타나는 全斗煥 정권의 실적이 역사적 평가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제5공화국 관련 경제정보: 朴正熙 정권 마지막 해와 全斗煥 정권 마지막 해의 비교표
  
   1. 1979년 1인당 GNP: 1,546 달러
   2. 1988년 1인당 GNP: 3,728 달러
   3. 1980년대 경제성장률: 연평균 10.1%로서 200여개 국가중 1위
  
   4. 1979년 수출 147억 달러, 수입 191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 41억5100만 달러.
   5. 1988년 수출 600억 달러, 수입 525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138억 달러.
  
   6. 1979년 국민저축률: 25%
   7. 1988년 국민저축률: 34%
  
   8. 1979년 도매 물가상승률: 20%, 1980년은 44%
   9. 1983-87년 도매 물가상승률: 연평균 2.7%
  
   10. 1970년대엔 외채 망국론이 강했지만, 1988년에 외채 320억 달러, 對外자산 253억 달러로 개선되었다가 1989년에는 純채무국으로 전환.
   11. 전화대수: 1982년 300만 대에서 1988년 1000만 대 돌파.
  
   12. 소득격차: 1980년에 지니계수가 0.39, 88년엔 0.34로 축소(수치가 낮아지면 격차가 줄었다는 뜻임).
  
   全斗煥 정권은 1980-88년 사이 세계 1위의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이 기간 국민소득은 2.3배로 늘었고 무역적자 구조는 무역흑자로 바뀌었다. 두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은 2%대로 안정되었다. 외채도 크게 줄었고 국민저축률은 일본을 앞서는 세계최고 수준에 달했다. 1980년대 全斗煥 정부는 통신망 설치와 전자산업 육성을 國策사업으로 추진하여 1990년대 이후 한국이 세계적 인터넷-전자산업 强國으로 도약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 경제성장으로 해서 한국사회에 중산층이 두껍게 등장했다. 1980년대 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70%가 되었다. 이들이 민주화의 主力부대가 되었다. 이들의 온건성향이 6.29선언으로 나타난 타협적, 평화적 민주화의 엔진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이 만든 쿳션이 한국사회의 바닥에 깔리는 바람에 민주화의 부작용을 견뎌냈다. 1985년 2.12 총선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혼란기에 경제성장률이 피크에 달했다. 경제호황기에 민주화 시위가 절정기를 맞았다는 것은 행운의 타이밍이었다.
  
   全斗煥 대통령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경제를 이어받아 이를 수습한 뒤 물가를 잡고 고도 성장과 흑자를 이룩했다. 全斗煥 대통령이 경제에 성공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정치는 상당부분 경제를 관리하는 기술이다. 경제에 성공했다는 것은 정치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反證이다.
  
   경제 성공의 功을 전두환 대통령이 아닌 金在益 경제수석한테 모두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金在益씨를 잘 부린 사람이 全 전 대통령이었고, 金수석은 1983년10월에 아웅산 테러로 타계, 그 뒤의 경제관리엔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 경제성장은 평화적 민주화와 全대통령의 단임실천을 가능케 했다.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준비한 이도 全斗煥이다. 이런 호재로 安保면에서도 對北우위를 확보했다.
  
   그에게는 물론 12.12사태의 책임이 있고, 비자금 모집의 과오가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년간 백담사 귀양,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들 과오를 한쪽으로 놓고 그 반대편에 경제적 성공과 튼튼한 안보, 그리고 단임실천 및 6.29 민주화 선언(직선제 개헌이 핵심)과 서울올림픽 성공을 놓으면 저울은 어디로 기울 것인가. 한국 민주주의 건설의 결정적인 계기(6.29선언)를 만든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는 게 공정한가?   물론 광주 사태 시의 군 발포와도 그는 관련이 없다.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다. 위험을 느낀 군인들의 자위적 발포가 시작이었다.   

   *하나 덧붙인다면 전두환 정권은 前 정권을 격하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했던 식으로 前 정권 비리를 캐기 시작했더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현재의 국민적 평가는 매우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全斗煥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를 남긴 사람'이란 대목을 검토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아니면 대단한 일인가. 한 국가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사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 지표이다. 유럽에선 영국이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시부터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프랑스는 1871년 普佛전쟁에 져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쫓겨난 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권교체기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부터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스페인은 철권통치자 프랑코가 죽은 2년 뒤인 1977년부터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舊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은 1989년경부터 이 시기로 들어갔다.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추방 이후 그렇게 되었으나 아직도 불안해보인다. 한국은 1988년 全斗煥 퇴임으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놓고본다면 민주주의의 발달사는 길지만 의외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은 길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30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 역사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충분히 다져졌다고 볼 수 없는 조건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북한과 중국은 아직도 정권교체의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정권교체는 옛날엔 전쟁이나 암살, 쿠데타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엔 선거가 전쟁을 통해서 했던 일을 대신한다. 그만큼 선거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의 전통을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가꿔나가야겠다. 동시에 全斗煥 정권이 만든 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 2016-05-24, 10: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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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록     2016-06-03 오후 12:34
功積(이런 단어는 없습니다) -> 功績(공로의 실적)
實積(실제의 넓이나 부피) -> 實績(어떤 일을 통해 이룩한 실제의 업적이나 공적)

가끔 틀린 한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틀린 한자보다는 차라리 한글이 나을 때가 있지요.
   zaskal     2016-05-28 오후 1:32
다음 대통령은 "문 "보다는 "무"를 겸비한 군출신 으로......
   이중건     2016-05-25 오후 11:26
사실은 사실이다에 동의한다.
   덕유산     2016-05-25 오전 7:03
*대한민국의 3대 영웅-이승만, 박정희,전두환

그 중 전두환의 3대 업적
1. 나라를 침몰위기에서 건져냄-무정부상태에서 북의 침략을 막고 사회혼란을 평정

* 대한민국 3번의 무정부상태:
8.15이후~ 이승만의 건국으로 평정
4.19이후~박정희의 5.16으로 평정
10.26이후~전두환의 제5공화국으로 평정

2. 단임제 실천-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

3. 물가안졍과 경제도약-박정희대통령의 경제초석을 계승, 탑을 세움

   지평선     2016-05-24 오후 11:59
이하동 문 입니다 . 전 전대통령의 경제지표들의 우수함 인정 해야 합니다.
   arock     2016-05-24 오후 8:30
한국인들은 속이 좁다. "적이지만 칭찬할 만 하다" 이건 한국인에겐 안 통한다. 소위 먹물을 먹은 지식인들, 엘리트들은 더 속이 밴댕이 만하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유머가 부족하다. 전두환의 엄청난 실적! 그것은 소위 운동권들은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누가 해도 그 정도는 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우파도 마찬가지..... 솔직히 DJ가 YS보다는 나았고, MH 노무현이 MB 이명박 보다는 사내 다웠다. 그런데 소위 보수가 그걸 인정하느냐? 아니다. 전두환처럼 살아있는 권력을 선뜻 내 놓은 이는 근세,현대사에 러시아의 옐친이 유일한데, 그는 소문난 알코홀리스트라 술김에 그렇게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白丁     2016-05-24 오후 8:05
밉다니요, 朴正熙 대통령 다음으로 존경하는 대통령입니다. 連任 제한은 있으나 重任 제한은 없을테니 한번 더 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안되면 張世東씨 같은 분이라도...
   arock     2016-05-24 오후 2:33
이승만,박정희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면 전두환이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의 행운! 그는 통이 컸기에 정권을 잡았고, 통이 컸기에 단임 약속을 지켰다. 빛나는 치적을 세우면 사람들은 교만해지기 마련... 그럼에도 서슴없이 물러나, 권위주의 정부와 민주정부의 가교역할을 했다. 이 세 걸출한 인물 뒤의 대통령들은 현 대통령 포함,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무언가 하는 자리가 아닌 개인의 영욕을 빛내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런 좀비 대통령을 양산하는 "단임제"는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삼류작가     2016-05-24 오후 1:59
그의 집권시 야당과 운동권들 그리고 국민들까지도 입을 모아 비난한 광주학살주범, 광주사태원흉, 광주발포명령자라는게, 지금까지 증명된 팩트와 관계자 증언으로 모조리 다 허위로 판명났으니 결국 그는 상당히 억울했던 셈입니다.
   Zephyr     2016-05-24 오후 1:17
3김을 비롯한 박정희정권 18년간 부패했던 세력(반역세력 포함)들을
척결한 결과 국가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본인도 나중에는 부패했지만....

당시 제거됐던 부패 반역세력들이 민주화를 등에 업고 다시 권력을 잡은 것이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죠.
   ku77     2016-05-24 오전 11:34
옳은 지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소위 지식인들은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모르느지, 알고도 모른척 하는지? 평화적 정권교체 그 하나만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집권 초기의 광주유혈사태는 시간이 더 지나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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