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통령 인터뷰, "아무리 치열한 政爭을 해도 안보 및 核정책엔 협력"
몽골 草原 역사 기행(10) "같은 아시아人으로서 한국의 발전에 자부심 느낀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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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사르달 팔루크 아하마드 칸 레가리 대통령

『인도가 핵개발을 포기하면 우리도 한다』

부족장 家門 출신 대통령

1996년 7월23일 오전 11시부터 12시30분까지 파키스탄 대통령 사르달 팔루크 아하마드 칸 레가리 대통령과 인터뷰를 가졌다. 1940년에 태어난 레가리 대통령은 발로크 부족장 가문(家門)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부족장에게 농민들이 내던 세금을 없애는 등 改明한 地主였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지금도 일종의 부족 사회이다. 부족끼리 전투가 벌어지면 경찰이 구경만 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력서에 출신 부족명이 명기(明記)될 정도이다. 옥스퍼드大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그는 지하울 하크 대통령의 軍政 시절에 민주화 투쟁을 벌여 3년간 옥살이를 했다. 1989년 국회의원에 재선된 그는 베나질 부토 총리 밑에서 수리(水理) 및 발전 담당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1993년 부토 여사가 재집권하자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어 국회에서 당선되었다.

 파키스탄의 대통령은 二元 집정제의 대통령만큼 강력하여 정치를 조정하고 군을 통수한다. 이슬라마바드의 대통령宮 접견실에서 기자를 맞은 레가리 대통령은 큰 키에 아주 유순한 인상이었다.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은 편안함과 신뢰감을 동시에 주었다. 그의 성실하고 솔직한 답변은 파키스탄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지도자의 상(像)을 기자의 마음속에 새겨 주었다.

『같은 아시아人으로서 한국의 발전에 자부심 느낀다』

 ―어제 라호르 공항에서 있었던 폭발사고로 희생된 분들에 대하여 조의를 표합니다. 그런 사고를 당하여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테러가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관계로 테러를 방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테러로써 파키스탄의 사회적 안정을 해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만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로서도 정보수집 부문 등 몇 가지 면에서 對테러 작업에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체제를 정비하여 테러조직을 반드시 뿌리 뽑겠습니다. 우리 부토 총리가 귀국을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파키스탄을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기 와서 「동쪽 나라를 배우자」(Look Toward East Policy)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동쪽」중의 하나인 한국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와 바람직한 파키스탄-한국 관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이 굉장한 공업국가로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환(環)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그런 발전을 이루는 것을 지켜보면서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총리께서 귀국(貴國)을 방문한 길에 한국의 성공비결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워오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의 성공 비결은 人的 자원의 개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교육을 통해서 오늘날의 공업대국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문맹률을 낮추고 기술교육을 왕성하게 하고 정치를 안정시킨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에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였고 우리가 한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입장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처지가 역전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의 역사와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공통점 또한 많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도 日本같은 나라로부터 기술을 배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과학기술은 지금 선진국과 비견될 정도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한국의 성공 비결에서 또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 체제를 살려 민간 부문의 역할을 활성화시킨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래의 두 나라 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이번에 부토 총리의 訪韓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민간 회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에 투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파키스탄은 큰 나라입니다. 인구만 해도 1억3000만이 넘고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서양의 여러 文明이 만난 십자로이기도 합니다. 중국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특히 관계가 좋습니다. 걸프 지역과도 가까울 뿐 아니라 소련 붕괴 이후 새로운 맥박이 뛰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관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下에 있는 파키스탄은 한국 민간기업에 있어서 무역의 거점으로 적합한 곳입니다.』

소란스런 정치

 ―저는 파키스탄에 온 지 3일밖에 되지 않아 아주 피상적인 관찰이 될지 모르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파키스탄의 정치는 정책대결보다는 권력게임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나라의 지배 엘리트층은 국가적 목표의식·애국심·개혁의지를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난한 국민들에 대한 동정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국가나 국민을 개혁하기 전에 지배엘리트層이 스스로를 먼저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통령께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파키스탄에 며칠밖에 안 계셨다고 하셨지만 지금 지적하신 내용은 아주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소란스러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전략적 문제에 관해서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컨센서스를 이루었다는 것도 간과하셔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컨대 安保정책, 캐시미르 지역 분쟁에 관한 정책, 그리고 核무기에 관하여는 여야가 구별 없이 합의한 국가적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에 관해서도 자유 개방 정책을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與野가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율을 낮추는 대신에 납세계층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정치세력은 합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적 대결이 정치판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역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돌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두 번에 걸쳐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고 계엄령으로 민주질서를 억압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만, 이런 군사통치가 오늘날의 극한적 대립을 주도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建國 자체가 위대한 지도자 진나의 영도하에서 이뤄진 민중운동의 결과이듯이 우리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은 나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통치세력 기간內에 군인들이 후견하고 후원한 非민주적 정치세력이 생겼습니다.

 민주세력과 이런 세력 사이에는 정치 문화가 다른 만큼이나 적대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특히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을 받아 고생한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도 한 요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여러 정당의 정치인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자주 가집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국가의 중요과제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人的자원의 개발을 위해서 여자들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든지, 의료문제·빈민층 대책에 정치가 앞장서야 한다든지 하는 데 있어서는 같은 생각인 것입니다. 본인이 대통령이 된 이후 2년 반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 정치의 열기를 냉각시켜볼까 고심(苦心)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집권당 소속이었고 민주화투쟁에 섰던 사람입니다만 대통령이 되자마자 黨籍을 버리고 초당적인 입장에서 國政을 관리하겠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헌법에는 대통령이 당적을 포기하라는 규정이 없고 과거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는데도 우리 야당은 본인을 여당 대하듯 공격해 왔습니다.

작 년부터 그들도 태도가 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를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는 것 같고 내일에는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는군요. 그들도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나를 공격하는 야당인사들에게도 대화의 문호를 열어놓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와서 정부와 야당의원들이 캐시미르 문제에 관한 소위원회에서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캐시미르와 核개발 문제

 ―대통령의 부친과 조부께서는 발로크 부족의 長으로서 여러 가지 근대화된 정책과 발상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개명(開明)된 지도자의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나와브 자말 칸 레가리)께서는 소작농들이 부족장에게 바치는 세금을 폐지하신 것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大地主들에게 농업소득세를 부과하려는 조치가 大地主들 출신의 정치세력이 반대하는 바람에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前근대적인 기득권 세력과 농업세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농업세는 중앙정부의 관할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관할입니다. 연방정부는 총리와 함께 지방정부에 대하여 농업세를 부과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두 개 주, 즉 신드주와 北東지역주에서는 농업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농지가 가장 많은 푼잡주에서는 실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농업주(農業主)들은 그 동안 농산물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팔게 유도하는 정책을 따르다가 보니까 결국 우리나라 각계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농업세를 도입하면 그런 보조기능이 약화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납세 계층을 넓히고, 담세율을 지금의 13%(GDP기준)에서 20%로 높여서 사회간접시설과 인력개발에 대한 투자 재원으로 확보하려는 정책에는 찬성하는 바입니다. 세금구조도 고쳐서 세금과 소득이 비례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여러 번 核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었으나 실제로 핵폭탄을 만드는 것은 삼가고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인도도 핵무장을 한 상태입니다. 두 인접 국가는 캐시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 核무장국끼리의 이런 긴장상태는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核전쟁으로 발전할 소지를 제공합니다. 파키스탄 정부의 입장을 설명해 주십시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캐시미르 분쟁은 영토분쟁이 아닙니다. 캐시미르 지역에 관한 UN 안보리 결의는 지역住民들의 자율적 결정에 의하여 이 지역이 소속될 나라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인도가 그 결의안을 위반, 武力으로 강점한 데서 일어난 분쟁입니다. 이 지역의 분쟁이 지난 50년간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를 악화시켜 온 것이 사실입니다. 캐시미르는 150×80㎞의 면적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산악지대도 많습니다. 그런 지역에 인도는 60여 만 명의 잘 훈련된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인구비례로 따져서 이처럼 병력이 집중된 곳은 세계 역사상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결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발포하고 연행하는 등 만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인도 주둔군에게 무력으로 저항하는 캐시미르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5만 명 이상의 캐시미르 사람들이 인도 주둔군에 의하여 살해되었습니다. 청장년들은 집에서 연행된 다음날 시체로 발견됩니다. 유고 학살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1989년 이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武力에 의한 해결에 반대하고 정치적인 해결을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작년에 인도를 방문하여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 등 지도층을 만나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왜? 파키스탄과 인도의 인구를 합치면 약 10억이다. 캐시미르 분쟁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세계 인구의 약 20%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막대한 국방비를 쓰고 있다. 캐시미르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우리는 국방비를 줄여서 발전소, 건설, 의료비 등에 더 투자를 할 수가 있게 되며 공동의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게 강조했습니다.

 이곳의 긴장이 높아질 소지는 많습니다. 지난 2년간 인도는 核운반 능력을 갖춘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가 射程거리에 들게 됩니다. 우리는 미국을 통해서 인도에 제의했습니다. 즉, 미사일을 전면 폐기하는 방법을 놓고 토론해 보자고 한 것이지요. 인도는 중거리 유도탄도 개발중인데 동쪽으로는 한국까지, 서쪽으로는 中東, 남쪽으로는 서남아시아의 맨 아래쪽까지 射程圈 안에 든다고 합니다. 파키스탄은 평화적인 核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核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보상의 위협을 받는다면 우리는 즉시 核무기에 의존하는 방위능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인도가 核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면 우리도 조건 없이 하겠다고. 우리는 주권국가로서의 생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귀하도 잘 아시겠지만 1971년에 인도는 東파키스탄으로 쳐들어 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시켜 방글라데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인도의 큰 덩치에 의하여 협박을 당하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롭게 번영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권국가의 권리로서 평화적인 核개발을 계속 추구해가면서 인도에 대하여는 이 지역의 평화를 항구화하기 위한 대화를 중단 없이 시도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만.』

 ―몇 년 전에 북한의 核무기 개발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 한국에서는 북한이 파키스탄의 核연구 센터에 많은 기술자를 보내 연수를 시켰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파키스탄은 북한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가끔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사긴 하지만 귀하가 말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남한과 북한이 자율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가 연결되어야』

 ―파키스탄은 中央아시아의 관문과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지금 급속도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과 관련하여 파키스탄은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계획입니까.

『중앙아시아 지역은 지금 아주 역동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입니다. 중앙아시아는 기름, 천연가스, 광물자원이 풍부한 곳이지만 이 지역은 인도양으로 연결되어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파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또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식으로 수송로가 뚫려야 합니다. 가운데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이 해소된다면 인도양과 중앙아시아의 그런 연결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로 연결되는 가스파이프라인과 시베리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으로 연결되는 석유 수송 파이프라인도 구상되고 있습니다.

 터키, 이란,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5개국),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문화권으로서 3억의 인구를 갖고 있습니다. 이 지역 국가는 ECO(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를 조직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이란,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걸프 지역과도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 앞으로 이 지역의 공동발전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WEF(World Economic Forum)가 내년에 파키스탄에서 중앙아시아 및 南아시아 합동 회의를 갖기로 한 것도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980∼90년대에 환태평양 지역이 발전하듯이 2000년대에는 중앙아시아가 거대한 잠재력을 활용하여 번영의 길에 접어들 것으로 봅니다.』


문맹률과 출산율의 비례관계

 ―한국의 朴正熙는 1961년에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인권탄압을 하기도 했으나 정치적인 안정을 이룬 바탕에서 국가근대화를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집권한 군사정권은 그런 근대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께서는 파키스탄 군대의 역할을 어떻게 보시며, 지금 군대에 대한 文民통제는 만족할만한지 궁금합니다.

『1958년에 군사 개입에 의하여 집권한 아유브 칸은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만 제대로 실천되지 못했습니다. 1977년에 우리나라 역사상 두 번째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하울 하크는 오히려 反근대화 정책을 썼고 부패를 확산시켜 지금도 우리는 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의하여 군 최고사령관이기도 한 나는 3軍참모총장의 임명권을 갖고 있고 행정적인 군무(軍務)는 내각의 관할下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군대는 군대의 전문직능인 국가방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지하울 하크의 사망 이후, 즉 1988년 이후 우리 군대는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긍정적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도 군사정권의 후유증을 딛고서 지난 몇 년간 정치적 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에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아주 높은 문맹률과 인구증가율을 어떻게 떨어뜨릴 작정이십니까.

『우리의 인구증가율은 3%로서 정말 너무 높습니다. 2%까지는 낮추어야 합니다. 문맹률도 65∼66%나 됩니다. 여자의 문맹률은 이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간에 직접 관련성이 있습니다. 여자가 문자를 깨치고 교육을 받게 되면 집안에서 곧바로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면 출산 자녀수도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에 대한 교육의 강화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GNP의 2%만 교육예산으로 쓰는데 4%이상은 되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총리와 이 문제를 자주 의논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현장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있습니다. 정부 이외에도 지역사회운동과 대중운동이 일어나야 문맹과 多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이 더 투자해야』

―어제(7월22일) 저는 이슬라마바드에서 라호르에 이르는 고속도로 6차선 공사현장을 달려보았습니다. 大宇건설이 시공하고 있는 이 도로는 한국 고속도로보다도 더 좋다는 인상까지 받았습니다. 貴國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대한 평가를 해주십시오.

『본인은 파키스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숫자나 활동이 그들의 회사 규모나 해외활동의 규모, 그리고 파키스탄이 가진 잠재력에 비교해 볼 때 다소 부진하다고 봅니다. 건설과 공업부문에서 진출하고 있기는 해도 앞으로 더욱 활발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우가 시공하고 있는 고속도로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나는 야당의원으로 있을 때에 그 공사가 결정된 방식이나 조건에 대하여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만, 예정대로 완공되기를 바라며 빨리 그 길을 달려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BOT 또는 BOOT 방식으로 한국기업들이 제조업이나 고속도로 같은 사회간접 시설에 진출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엔지니어링 부문에 많이 투자해 주기 바랍니다. 파키스탄의 민간 및 국영 엔지니어링, 중공업 분야 시설은 거대합니다.

 최근에 우리는 「중기(重機)공단 계획Ⅲ」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성사되면 300 메가와트급 발전기의 반을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증기엔진·가스터빈 및 수력 발전기를 생산하게 될 이 프로젝트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하이테크 기술과 뛰어난 생산기술이 파키스탄의 기존 시설을 개선하여 발전설비를 생산해 내는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꼭 한국에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파키스탄의 인력과 설비+한국의 자본」, 그리고 ECO지역(중앙아시아)에 대한 파키스탄의 접근 능력을 잘 조합시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계십니까.

『한국이 경이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대하여 축하를 드리며 우리도 같은 아시아人의 입장에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점도 많지만 공통점 또한 많으며 이것을 더욱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나라는 상호 문화를 존중하게 될 때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하며 협력의 폭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에는 귀국의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꼭 방문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인터뷰 도중 몇 번 손목 시계를 보던 레가리 대통령은 『서둘러야 되겠습니다.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서 라호르行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일어섰다. 전날에 있었던 라호르공항 테러사건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러 가게 돼 있었던 것이다,



 *보완: 레가리 대통령은 나와 인터뷰한 4개월 후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발동, 부토 총리 내각을 해산시켰다. 외화 횡령 등 정권의 부패를 문제 삼았다. 이듬 해 총선에서 나와즈 샤리프가 이끄는 정당이 집권했다. 원칙주의자인 레가리 대통령은 사법부의 독립 문제(대법원장 파면 건)를 놓고 샤리프 수상과도 충돌하다가 여당의 압력을 받아 사임하였다. 그 뒤에도 자신의 정당을 만들어  파키스탄 정치에 영향을 끼치다가 2010년 만 70세에 宿患으로 사망하였다. 파키스탄은 1998년 인도가 핵실험을 하자 대응 핵실험을 단행, 핵무장 국가가 되었다. 두 나라 사이엔 공포의 균형이 이뤄져 그 뒤로는 전쟁이 없다. 그 전엔 네 번의 전쟁이 있었고 파키스탄이 모두 패배, 東파키스탄(방글라데시)를 잃기도 하였다. 
 
 한편 파키스탄에선 그 사이 군사 쿠데타가 또 일어나 무샤라프 정권이 등장하였다(1999년).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지원하였지만,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부시 정부와 협력, 反탈레반으로 돌았다. 무샤라프 군사정권이 물러나는 혼돈 속에서 부토 여사가 선거 유세 중 암살되고, 정치부패의 상징이던 그의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도 하였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대에선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준동, 아직도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무샤라프가 쿠데타로 몰아낸 나와즈 샤리프가 총리로 복귀, 집권하고 있다. 地主 출신들이 정치를 독점함으로 주역들이 잘 바뀌지 않는다.  

 *파키스탄 정치 현황(주파키스탄한국대사관)  

2013.6.5 출범한 샤리프(Muhammad Nawaz Sharif) 정부는 선거 대승으로 안정적 리더십을 구축하고, 경제회복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 중

- 하원의석 57% 점유, 파키스탄 전체 인구의 50%를 점유하는 펀잡주 의회 의석 85% 확보

* 전임 자르다리(Asif Ali Zardari) 대통령이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함으로써 파키스탄에서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ㅇ 샤리프 정부는 경제회복을 위해 ①심화된 전력난 해결, ②치안 안정, ③대외관계 개선 적극적 추진

- 2017년까지 전력난 해결을 위해 전력요금미납금(48억불) 해결, 석탄․수력발전소 대거 건설, 盜電(도전) 철저 단속, 송배전망 확충 등

- North Waziristan 군사작전, 카라치 갱단 소탕작전, 정보기반작전(IBOs) 등 치안 회복을 위한 노력 경주

- 대외관계 적극 개선 적극 추진

* 인도: 2014.5월 샤리프 총리의 인도 모디 총리 취임식 참석을 위한 인도 방문, 2015.7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 계기 양국 총리회담 개최

아프간: 2014.11월 아프간 대통령 파키스탄 방문, 2015.5월 샤리프 총리 아프간 방문

미국: 2014.9월 샤리프 총리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방미, 미국 바이던 부통령과 회담 개최

중국: 2014.11월 샤리프 총리 중국 방문, 중국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개최


*나와즈 샤리프 수상 프로필

성장과정 및 학력

 

ㅇ 1949년 펀잡주에서 철강 사업으로 유명한 샤리프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사탕수수 및 철강부문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전환

 

ㅇ 상류층에서 부유하게 성장기를 보냈으며, 펀잡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

 

정치적 면모

 

ㅇ 1976년 보수 이슬람 성향의 PML(Pakistan Muslim League)당에 가입, 1980년 펀잡주 재무부장관으로 취임해 정치적 영향력을 넓혔으며, 이후 자신을 총수로 한 PML-N(Nawaz)당을 창설하고 1985~90년 펀잡주 수상을 역임

 

ㅇ 1990년 파키스탄의 12번째 총리로 당선, 재임기간동안 규제 완화, 민영화 등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기업계의 지지를 받았으나, 1991년에 200억 루피 상당의 금융스캔들 연루 의혹, 군부와의 불화 및 당시 대통령 Ishaq Khan간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결국 1993년 대통령과 동반 사임

 

ㅇ 1997년 총리로 재선, 경제 회복에 주력하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육군참모총장 임명권, 대법원 판사 임명권을 없애는 등 집권 기반을 다졌으며, 1998년 인도의 2차 핵실험에 대항해 인도 전역을 사정거리에 둔 핵탄두 미사일의 5차례 시험발사를 성공시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1999년 당시 육국참모총장이던 Pervez Musharaf의 쿠데타로 실각,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로 국외 추방 망명

 

ㅇ 이후 2007.11월 귀국, 14년 만에 13.5월 총선에서 승리하여 세 번째로 총리에 취임

 

가족관계

 

ㅇ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동생인 Shahbaz Sharif가 현 펀잡주 수상 역임 中

 

특이사항

 

ㅇ 대우건설에 파키스탄 고속도로(M2)를 발주한 인연으로 한국 기업에 우호적이며 한국의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하는 등 깊은

[ 2016-05-24, 16: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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