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의 음모와 트루먼의 고민, 李承晩의 大전략
《6·25전쟁의 현장》(13) / 한국 現代史 최대의 미스터리- 丁一權이 보았다는 두 통의 편지

鄭淳台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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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을 구사하는 중공군에 압도적 火力으로 대항하는 유엔군. 사투가 계속되던 1951년 4월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제8군사령관에 취임한 밴플리트 중장. 타고난 야전지휘관인 밴플리트의 결단과 행동력. 공산군은 차츰 파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丁一權이 보았다는 두 통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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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一權 육군참모총장

방대한 정보 조직을 가동했던 미 극동군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인 맥아더가 과연 ‘중공의 개입’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趙甲濟(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와 관련한 故 정일권 장군의 증언 등을 제시하며, “맥아더가 중공군 개입을 예상치 못했다”는 說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996년 고려서적에서 펴낸 《丁一權 회고록》에는 다음의 증언이 들어 있다. 1950년 10월 말 北進(북진) 중이던 유엔군 정면에 중공군이 처음으로 나타나 기습하는 바람에 국군과 유엔군이 큰 타격을 받은 직후의 일을 기록한 대목이다.

〈(중공군의 출현 후) 老대통령(이승만 대통령을 지칭)은 내 보고를 듣고 나서 “역시 나왔구먼. 이젠 겁쟁이 트루먼도 배꼽에 힘 좀 넣겠지” 하고 지극히 태평이었다. 戰局(전국)의 앞날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맥아더가 잘 알아서 할 것이오” 하고, “정 총장, 맥아더와 나는 중공군이 나온다고 보아 왔습니다. 장군, 그(맥아더를 지칭)는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겉으로는 부인했으나 北進 전략에 대한 트루먼의 잔소리를 막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맥아더, 그는 훨씬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原爆(원폭) 사용도 불사할 각오라고 내게 굳게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의 전략가로서의 深謀(심모)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하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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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左)와 트루먼 대통령

丁一權 총장에게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두 통의 편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 통은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李 대통령의 편지 寫本(사본)이었다. 丁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 사본의 요지는 이러했다고 한다.
 
〈북진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워싱턴과 英佛은 소련 및 중공의 군사개입을 겁내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本職(본직·어떠한 직책에 있는 사람이 공식적으로 자기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李承晩)은 소련은 몰라도 중공의 개입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보는 바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이 가능성을 긍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귀하가 긍정함으로 해서 북진을 방해하는 작전상의 제한이 가중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은 거족적으로 북진통일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英邁(영매)하신 지도가 아니고서는 이 열망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 간절한 심정을 살펴 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李 대통령이 보여준 또 다른 한 통의 편지는, 맥아더가 李 대통령에게 보낸 답장이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본직은 믿을 만한 정보통의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중공군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 이 가능성을 겉으로는 긍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압록강을 건널 것입니다. 조금도 모르는 것으로 할 것입니다.
 중공은 그 방대한 군사력을 배경 삼아, 가까운 장래 아시아에 있어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소련이 있습니다. 중공의 잠재적인 군사력을 때릴 만한 기회는 지금 아니고서는 없을 것입니다. 전략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워싱턴이 어디까지 본직의 전략을 뒷받침해 주느냐가 문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센 반대에 부딪힐 것입니다. 하지만 불퇴전의 결의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필요하다면 원폭도 불사할 것입니다…〉

《丁一權 회고록》에서 丁一權은, 이 맥아더의 편지 발송 날짜까지 기억했다. 1950년 10월13일이었다고 한다. 태평양 上의 웨이크島(도)에서 트루먼 대통령―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회담이 있은 날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10월15일이었다. 이 회담에서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이 만주에 약 30만 명이 집결해 있지만, 한반도에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개입한다면 大학살이 있을 것이다. 전쟁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보고하였다. 丁一權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이 두 통의 私信(사신)을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지 확실치 않다. 極秘(극비) 중의 극비였다. 史家들이나 비평가들이 이 극비를 알 까닭이 없었다. 맥아더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비판의 소리, 즉 “중공군 개입의 가능성을 오판하여 유엔군의 북조선 철수를 자초했다”는 책임 추궁에도 이 비밀 서한만큼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趙甲濟 기자에 따르면, 문제는 이 두 통의 편지가 實體(실체)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 문서로도, 梨花莊(이화장) 문서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일권 장군의 증언을 간단히 부정할 수도 없다. 기억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편지 내용이 실제 사태 전개와도 합치된다는 것이다. 趙甲濟 기자는 “맥아더가 李承晩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사실이라면, 이를 통해 맥아더의 大전략이 다음처럼 짐작된다”고 말한다.

<그(맥아더)는 중공이 소련과 손잡음으로써 아시아의 赤化를 가져올 수 있는 거대한 위협세력이 되었다고 판단, 당시가 중공의 그런 잠재력을 파괴할 수 있는 適期(적기)라고 본 것이다. 즉,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으면 한반도 통일은 이루어지니까 좋은 것이고 개입했을 때는 이것을 擴戰(확전)의 기회로 삼아 중공을 치겠다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전략이 현지 사령관의 의지대로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줄 모르는 그런 擴戰의 결정은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맥아더는 10월15일 웨이크 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한 뒤 그달 말에 중공군이 나타나자 그 규모를 축소 보고하였다. 실제론 30만 명이 북한지역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 10분의 1 정도로 줄인 뒤 11월 하순 다시 유엔군을 北進시켰다. 이때 중공군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자 맥아더는 ‘전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면서 중국 봉쇄와 폭격 및 증원군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원하는대로 하면 소련이 개입, 제3차 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 제한전을 선택한다. 맥아더는 이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다가 1951년 4월에 해임되었다.>
 

丁一權의 회고록에 이런 대목도 나온다. 1951년 초 동해안의 38선의 강원도 양양 전선으로 시찰 나온 맥아더가 丁一權 총장과 둘만 있게 되자, 이런 말을 하더란 것이다.
 
<이제까지 만주 폭격과 원폭 사용을 주장해왔지만 조금도 잘못은 아니다. 원폭이라 했지만, 본보기로 허허벌판에 야포로 한 발 터뜨려 보자는 것이었다. 난들(맥아더) 왜 원폭의 가공스러움을 모르겠는가. 다만 중공군에 제동을 걸어보자는 것인데, 트루먼은 끝내 거부해 오고만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丁 장군, 당신도 잘 알다시피 원폭을 그토록 바라고 있는 李 대통령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 만날 때마다 ‘원폭도 不辭(불사)한다’고 했던 약속이 이처럼 허사가 될 줄은 몰랐다고, 노인에게 전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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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니츠

趙甲濟 기자에 따르면, 丁一權의 회고록과 연관된 다른 자료가 하나 있다. 폴 H 니츠가 쓴 《히로시마로부터 글라스트노스트까지》란 회고록이 그것이다. 니츠는 美 외교가의 巨物(거물)로, 주로 전략과 정책 수립에 종사해왔다. 딘 에치슨 국무장관 밑에서 정책기획실장 자리에 있을 때, 그가 입안한 對蘇(대소)전략 기본계획서인 〈NSC 68〉이란 문서는 “이 전략으로 미국이 냉전에서 이겼다”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이다. 국무성 정책기획실장 시절에 그는 한국전을 겪었다. 회고록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내 책상에 올라오는 맥아더에 대한 교신 감청 자료에 의하여 맥아더의 진정한 목표는 중국으로 전쟁을 확대시켜 毛澤東을 몰아내고 蔣介石(장개석)을 복귀시키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맥아더가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이 확실했다. 나는 언젠가는 대통령이 맥아더를 해임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일이 아무리 인기 없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니츠는 회고록에서 맥아더가 그런 위험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원자폭탄의 在庫(재고)에 대해서 제대로 보고받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원자폭탄은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원폭의 재고량은 중국 본토를 상대로 본격적인 공격을 할 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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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니츠 著, <히로시마부터 글라스노스트까지>

趙甲濟 기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하자는 대로 하면 제3차 전쟁이 터진다고 생각하여 한반도에서 무승부 전략을 세웠다. 그 뒤 휴전선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어느 체제가 민족을 행복하게 만드느냐”라는 命題(명제)를 내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계속되어 왔다. 이 전쟁에서 남한은 이기고 있으나 北이 핵무장에 성공, 한반도의 미래는 아직 불확정적이다.>


미국의 정책변화— 北進통일의 단념

당시, 미국의 停戰(정전) 구상이 공표되지는 않았다. 이쪽에서 약세를 보이면 적은 강하게 나오게 마련이었다. 정전회담은, 어디까지나 승리자의 입장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 변화가 한국에 통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完勝을 추구하던 맥아더를 파면한 것은 北進통일을 단념했다는 의지의 표시에 다름 아니었다.

‘맥아더 파면’ 소식을 접한 李 대통령은 “보기에 딱할 정도로 낙담했다”고 한다(丁一權 의 증언). 李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센스에 의해 워싱턴의 정책을 간파했다. 그는 정전 반대의 결의를 굳히고 그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맥아더의 후임에는 제8군사령관으로 있던 리지웨이 중장이 임명되었다. 1951년 4월14일, 유엔군사령관으로 영전한 리지웨이 대장의 후임으로 밴플리트 중장이 8군사령관으로 着任(착임)했다.

맥아더의 뒤를 이어 한국전쟁 총지휘한 매튜 B. 리지웨이(1895∼1993)는 충실하게 워싱턴의 정책을 실행한 군인이었다. 그가 38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는 데 最良(최량)이라고 판단한 線은, 임진강 남안∼華川(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캔사스 라인(38도선 북쪽 20km 연결하는 선으로 화천수력발전소를 포함)이었다.
 
리지웨이 사령관은 우선 캔사스 라인을 목표로 北上하여 그것을 확보했다. 그리하여 방어에 필요한 지역을 확보하고, 또한 敵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기 위해 북진을 계속시켰다. 리지웨이는 미 육군 ‘空挺(공정)부대의 아버지’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의 공정작전의 대부분을 지휘했고, 제18공정군단장으로서 종전을 맞았다.

리지웨이는 ‘前線(전선)의 勇者(용자)’라는 분위를 가진 장군이지만, 동시에 理智的(이지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트루먼과의 충돌로 해임된 맥아더의 후임으로, 그는 유엔군 총사령관에 취임했던 만큼 워싱턴에 순종적이었다.

신임 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리지웨이가 시도했던 것은 38선을 낀 대량 출혈전이었다. 휴전 교섭 중에 실시된 일련의 소모전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훗날, 리지웨이는 나토군 최고사령관 → 美 육군참모총장 등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정부의 인도차이나 전쟁 개입에 반대, 사임했다.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깊이 존경했지만, 압록강에의 北上에 실패한 이후의 出處進退(출처진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제8군사령관 재임 시의 리지웨이는 敵의 공세를 버틸 수 없다면 서울의 放棄(방기)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신임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固守(고수) 전략으로 변경시켰다. 서울의 정치적·심리적 그리고 군사적 가치를 再평가했던 것이다. 그는 서울 북측에 ‘골든 라인(golden line)’으로 명명한 방어선을 설정하고, 각 사단에 대해 방어 준비를 강화토록 했다. 

인해전술을 구사하는 중공군에 압도적 火力으로 대항하는 유엔군. 사투가 계속되던 1951년 4월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제8군사령관에 취임한 밴플리트 중장. 타고난 야전지휘관인 밴플리트의 결단과 행동력. 공산군은 차츰 파탄을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 2016-07-12, 09: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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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배     2017-11-19 오후 10:03
맥아더가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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