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타락할 때

강철군화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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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후반 北宋은 두 가지 고민을 안고 있었다. 하나는 수취 체제의 모순과 빈부 격차의 심화로부터 농민 등 소외계층을 구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遼나라,西夏 등에게 빼앗긴 失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1067년 즉위한 청년 황제 神宗은 이러한 과제를 직시하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王安石을 전격, 발탁했다.
  
  청렴강직한 지방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왕안석은 일찍부터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삶을 깊이 동정하면서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온 인물이었다. 그는 지방 현령으로 있으면서 청묘법(조선 시대의 환곡 제도와 유사)을 실시하는 등 善政을 베풀었다. 三司度支判官(삼사탁지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국정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소를 仁宗에게 올렸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왕안석의 개혁성향과 능력을 주목하고 있던 신종은 왕안석을 參知政事(부총리 격)로 삼아 국정 개혁의 대업을 맡겼다. 이때 왕안석이 시행한 일련의 개혁책들이 청묘법,균수법,면역법,시역법 등 이른바 '왕안석의 新法'이다.
  
  왕안석의 개혁방안들은 백성들에 대한 원시적인 수탈을 지양하고, 국가자본을 활용하여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촉진, 경제의 총량을 확대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재정의 확충을 기하자는 것이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근세 초기 서구 각국이 시행했던 重商主義 정책을 방불케 하는 이 개혁안이 열매를 맺었다면 동서양의 근대사는 역전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개혁에는 항상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있는 법. 송나라는 '개혁세력'(신법당)과 '기득권 세력(구법당)'의 항쟁에 휘말려 들었다. 역사서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 명문장가 소식(소동파) 등 쟁쟁한 인물들이 기득권 세력의 멤버였다. 게다가 이들 뒤에는 황실의 어르신인 황태후가 있었다.
  
  기득권 세력의 끈질긴 방해 외에도 신법당 내부의 갈등, 그리고 상당한 정도의 '近代性'을 내포하고 있는 이들 개혁정책을 뒷받침할 행정 및 司法 시스템의 부재로 말미암아 결국 왕안석의 개혁을 열매를 맺지 못했다.
  
  왕안석의 개혁은 현실을 외면한 급진적이고 이상주의적 개혁정책이 결국 어떻게 파탄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뭐, 여기까지는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기고, 그 뒷이야기가 있다.
  
  왕안석의 '신법'은 좌절됐지만, '신법당'은 그 후에도 살아남았다. 신종의 사망 후 한때 구법당이 득세해 반동정치를 펴기도 했지만, 철종대를 거쳐 휘종대에 이르러 신법당의 蔡京(채경)이 집권했던 것이다.
  
  채경!
  
  <수호지>에 나오는 탐관오리, 양산박의 108호걸들을 못 잡아 먹어 안달복달하는 악당이 바로 채경이다.
  
  채경은 재야에 있을 때는 꽤 능력 있고, 깨끗하고.평판이 좋은 선비였다. 그가 재상이 되자 조야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는 그가 정권을 잡은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 가운데 하나는 '역사 바로세우기'였다. 그는 사마광 등 이미 사망한 자들까지도 포함해서 구법당 계열 인사 120명을 姦黨(간당)으로 낙인찍고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그렇다고 개혁은 제대로 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채경 일파는 개혁은 뒷전으로 미루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이제 '개혁'은 권력 투쟁을 위한 구호 내지 수단으로 전락했다. 개혁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사라지고 반대파에 대한 저급한 증오와 탐욕만이 남았다.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수호지>의 모델이 된 '송강의 난'이다. 얼마 후 북송은 金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은 꼭 조선 중종 때 조광조가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했지만, 선조대에 이르러 士林 정권이 들어서고, 이후 사림 정권이 기득권세력화하면서 현실 모순을 해결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조선 왕조가 멸망한 것을 연상케 한다.
  
  노무현과 열우당, 어용 언론들이 연일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고 있다. '연정론'을 들고 나왔다가 별 재미를 못 보자, 다시 '기득권 세력 對 개혁세력'의 형태로 전선을 재편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언동 속에서 '기득권 세력'에 대한 공격은 있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하는 진정한 '개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이 '개혁'이라고 내세우는 정책들은 과거사법 제정, 보안법 폐지, 신문법 등 민생과는 관련 없고, 현 정권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들 뿐이다.
  
  그런 노무현 정권을 보면서, 껍질만 남은 '개혁' 을 무기로 삼아 반대파들을 핍박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민중들의 반발을 사고, 결국은 나라를 말아먹었던 남송의 채경 일파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 2005-07-17, 15: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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