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당위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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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오랫동안 사람들은 본질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라고 보았다. 그리스 철학의 이데아, 기독교의 하나님, 회교의 알라, 불교의 부처, 도교의 도(道), 유교의 예(禮)--이들은 갈릴레이와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에 각각의 문화권에서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본질 그 자체였다. 그런데, 과학의 고삐가 풀리면서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추구하던 본질을 한낱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산업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1만 년 동안 공고하던 농촌사회란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인간은 점점 개인화되고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는 얻었지만, 행복은 점점 멀어져 갔고 소외는 점점 깊어 갔다. 한때 과학이 만능으로 보이기도 했다. 인간의 이성을 새로운 신으로 모신 합리주의와 실증주의는 인간 스스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자연을 연구하든 인간을 연구하든 진리 또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가까이 갈수록 인식의 창이 점점 더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특히 다윈이 진화론에서 주장한 적자생존으로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한 제국주의의 발호, 마르크스가 유물론에 입각하여 부추긴 계급투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만연하기 시작한 폭력, 프로이트가 의식과 무의식의 이분화로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면서 법과 관습과 윤리에서 해방된 동물적 욕망의 분출 등은 본질에 기반을 둔 기존의 절대적인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고 상대적인 가치체계를 구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결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실증주의와 합리주의를 누르고 실존주의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본질을 부정하거나 본질에 회의하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존을 중시하는 실존주의는 불안이나 소외를 기본으로 하면서 신에게 귀의하여 평화를 찾거나 실존하는 자신을 우상화하여 자유 의지에 의한 하나하나의 선택과 행동에 최상의 가치를 두었다.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하든 여전히 인간은 자유롭지도 못했고 소외를 극복하지도 못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문화와 지식과 사회 조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후에 서구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가 공짜 평화를 누렸고 앞선 과학기술 덕분에 다른 대륙에 비해 월등한 풍요의 혜택을 누렸다. 그 결과 다른 대륙과는 달리 어떤 말도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었고 어떤 행동도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다.
  
   세상은 넓다.
  
   각기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을 치고 인간의 소외를 원천적으로 없앤다며 소련과 중공이 광란의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 곳의 민중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이를 마치 서구 선진국에는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한다고 생각하고서 그것을 동경하고 따라 배움을 진보주의라 일컬으며 대학생들이 서구와 미국, 일본에서 일제히 발을 구르고 손을 치켜들며 일어났다. 월맹이 전매특허처럼 부르짖는 민족주의를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실존주의로 확신한 사르트르 등도 이를 열렬히 지지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쓰라린 경험으로 그 허구성을 낱낱이 알고 있었지만, 동양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국민들의 열악한 삶에 대해 무지했던 서구의 지성들은, 앙드레 말로처럼 직접 중국의 내전을 보고 들은 지식인까지 포함하여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서구의 지성들은 공산국가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과 변명과 옹호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 발전 단계가 전혀 다른 아시아의 신흥 자본주의 국가가 일부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면, 아무리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나아가 정치면에서까지 전체적으로 향상되고 그 결과 국민들이 동물의 삶이 아닌 인간의 삶을 향유하더라도, 일제히 성토했다. 자기 나라보다 훨씬 야만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 모순되는 이중적인 언행을 일삼으면서도 그들은 그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수천 년 믿어왔던 본질을 근본적으로 부인함으로써 갑자기 삶의 중심을 잃은 데 이어 산업화 이전의 농촌 공동체마저 잃음으로써, 억압적이고 수탈적인 면도 많았지만 대체로 따뜻했던 농촌 공동체마저 잃음으로써, 너도나도 외톨이가 된 제1세계의 군중들은 넘치는 자유와 풍요로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양의 중세 사회나 러시아의 미르, 또는 유목민이나 바이킹의 무리 사회에서 그 지배자들을 타도하고 민중이 중심이 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상적 공산주의와, 종교를 아편이라며 인간을 종교에서 해방시키는 척 스스로 우상이 되어 버린 과학적 공산주의를 소외를 원천적으로 극복하는 휴머니즘으로 확신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문화혁명의 시산혈해가 조금씩 드러나고 마침내 소련과 동구가 무너지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면서, 서양의 지성들이 공산국가에 대해 양심을 걸고 숭배하던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환상이었는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배층과 기득권을 타도한다면서 결국은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공산독재에 반항하거나 회의하거나 줄을 잘못 선 사람들을 무려 1억 명을 때려 죽이고 찔러 죽이고 쏴 죽이고 새 인간을 만든다며 10억 명을 감금하고 고문하고 20억 명을 빵 한 덩이를 위해 하루 열두 시간 일해야만 하는 노예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어린애도 지각할 수 있는 상식이 깨진 바가지처럼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새로운 권력층이 인민의 존재를 짓밟는 당위만 난무했던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각자 무기를 들고 맞서는 나라에서는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자들이 하나같이 소련과 중공의 무기와 전술로 원격 조종되는 괴뢰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산국가의 몰락 후에도 1997년의 '공산주의 흑서'에서 북한편을 담당한 피에르 리굴로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서양의 지성들은 아직까지 반성할 줄 모른다. 더 이상 개인의 자유와 행동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실존주의와 사회의 모든 악을 사회구조에 돌리는 구조주의는 득세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경멸하는 것이 서양 지성인의 자랑이다.
  
   존재(Sein)는 당위(Sollen)에 앞선다.
  
   배부른 좌파는 이미 스스로 기득권에 올라섰지만, 항상 자신은 억압받는 민중 또는 그 민중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생각함으로써 스스로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정부는 이래야 된다, 언론은 이래야 된다, 역사는 이래야 했다, 교육은 이래야 한다, 부동산은 이렇게 묶어야 한다, 금융은 이렇게 묶어야 한다, 자연환경은 절대 손을 대어선 안 된다, 핵발전소는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강대국에 맞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묵인해야 한다, 사회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세계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등등 그들은 항상 현실보다는 공상, 존재보다는 당위를 앞세운다. 특히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개혁의 팡파르를 날마다 울리며 눈빛을 사이하게 반짝인다.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최대한 휘둘러 이미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공산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럼으로써 나날이 권력을 공고히 다진다. 아는 거라곤 권력투쟁밖에 없으니까!
  
   이에 대해 비판하면 즉시 부정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듯이 사방팔방에서 돌을 던진다. 정신 못 차린 기득권자의 시대착오적인 저항을 질타하는 댓글이 순식간에 수십만 건씩 올라온다. 시장은 그들의 말과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오르지 말라는 부동산은 오르고, 개혁의 비옥한 땅에서 마땅히 성장해야 할 경제는 성장하지 않고, 늘어나라는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정부의 지침에 따라 사라져야 마땅한 사교육은 나날이 번창하고, 정화되고 성숙되어야 할 퇴폐적인 음악과 옷과 영화는 태평양을 개울처럼 히말라야를 앞산처럼 넘나든다.
  
   그러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비판과 충고를 받아들여서 생각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한층 강하게 당위를 내세운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현실이 잘못 되었다, 시장이 엉터리다!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 기득권의 저항을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따라서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면 안 된다. 시장이 따라오지 않고 민심이 등을 돌리면, 이미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자신에게만 완벽하게 보일 뿐 엉성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동원하고 도덕도 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알지만 잘 지키지도 않는 도덕을 절대시하여 오로지 그 도덕으로 다시 단단히 재무장하여 권위의 갑옷을 동여입고 권력의 칼을 휘두르면, 사람들은 무섭고 두려워서 또는 더럽고 아니꼬워서 마음의 문을 닫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꼭꼭 숨어 버린다. 그러면 이들은 승리감에 도취하여 당위의 축제를 벌인다.
  
   고구려가 통일했어야만 했다,
  
   요동을 정벌했어야만 했다,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통일된 남북 정권을 수립했어야만 했다, 김구가 국가 수반이 되었어야만 했다, 친일파가 완벽하게 청산되었어야만 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말았어야만 했다, 유신은 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광주의거는 성공했어야만 했다, 정경유착이 없었어만 했다, 재벌은 해체되어야 한다, 재벌의 지배구조는 바꿔야 한다, 재벌은 절대 은행을 소유해선 안 된다, 남북이 한 걸음씩 양보하여 우리 민족끼리 평화롭게 통일되어야만 한다, 북한은 대승적 차원에서 무조건 도와 주어야만 한다, 농민과 중소기업을 죽이는 세계화는 거부해야 한다, 우리 상품은 많이 팔고 외국 상품은 사지 말아야 한다, 평준화는 신성불가침이다, 대학 본고사는 절대 안 된다, 서울대의 총장 나부랭이는 청와대의 교육문화비서관 나으리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북한인권은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 탈북자는 못 본 척해야 한다, 김정일의 독재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말아야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무조건 이해해야 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는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야 한다, 지역균형개발은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 부동산으로 번 돈은 모조리 회수해야 한다, 강남은 때려잡아야 한다, 수도권 이외의 땅값은 올려야 한다, 민간인이 어떤 방법에 의해 당선되었든 선거에 이겨 대권을 잡으면 그와 그 집단은 5년 내내 당위의 축제를 벌임이 마땅하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어느 날 일어나 보니, 20세기 후반 세계 최대의 기적 대한민국이 20세기 후반 세계 최대의 악몽 북한에 이어 세계 제2의 코미디 공화국이 되었다. 북한에서는 하나같이 해괴망측한 국가 정책에 대해 김정일 외에는 절대 웃지 못하지만, 다행히 한국에서는 80년대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수준의 국가 정책에 대해 아직 웃을 수는 있는데, 점점 그 웃음이 썰렁해지고 있다. 여차하면 기득권으로, 개혁저항세력으로, 친일파 후손으로, 군사독재 향수병자로, 수구꼴통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와 상식이 통하는 인간 사회의 존재는 승리의 결과이고 스스로 존재의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그런 존재는 이해하려고 애써야지,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말살하려고 이를 갈면 안 된다. 굳이 당위를 내세우려면 정정당당히 싸워 이겨서 스스로 존재 가치를 높여야 한다. 굳이 당위를 내세우려면 자신의 당위만이 아니라 상대방과 제3자의 당위도 인정해야 한다. 먼저 높은 사람이 권력의 칼을 칼집에 꽂고 권위의 갑옷을 벗어 옷장에 넣은 다음에 섬돌을 내려와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대방과 같이 편안하게 앉아서 뭇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보와 지혜, 지식과 상식을 총동원하여 논리와 직관, 말과 유머로 토론하고 타협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여야 한다.
  
   존재는 당위에 앞선다.
  
   (2005. 7. 17.)
  
[ 2005-07-18, 07: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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