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泰愚를 후계자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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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泰愚를 후계자로 지명 >
  
  <투서가 많으면 나라 망한다>
  - 全 대통령은 1987년 4월 20일 오전 10시부터 11시 35분 사이 黃永時 감사원장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투서의 처리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내용이 정확해도 투서는 사건화 하면 안 돼
  
  대통령: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는 남을 모함하는 투서가 많습니다. 투서는 그 내용이 정확하다 하더라도 절대로 사건화해서는 안 돼요. 정정당당하게 법적으로 조치를 하고, 제재를 해야 한다면 자신의 이름을 딱 밝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는 경우에는 신분 보호 요구를 들어 줄 수도 있지만 백 명의 죄수를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은 한 사람도 만들지 않도록 해야 돼요. 자꾸 투서를 가지고 감사나 수사를 하면 안 됩니다. 정보와 투서는 다릅니다. 전국에서 투서가 일어나는 나라는 망해요. 공직자 보호와 국민의식 개혁의 큰 차원에서 이것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중앙 부처의 공직자가 지방 출장을 가면 항상 대접을 받는데 지방에 무슨 예산이 있나. 이제는 중앙 부처에서 내려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지방에 있는 공직자들을 고무 격려해주는 역할을 해야 돼요. 과거에 보면 하계 휴양이다 뭐다 해서 중앙의 고위직들이 가면 지방에서 호텔을 잡아주고 하는데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부터, 지방 출장을 가는 경우에는 모든 식사 대접을 대통령 판공비와 정보비로 부담하고 지방 장관한테 안 맡겼어요. 수행원과 유지들이 많은데 지방에서 우리 일행한테 밥 한 끼 대접한다고 애를 먹어요. 나의 기호를 모르니까 국을 두서너 가지씩이나 만들고… 내가 그렇게 하니까 무슨 음식을 준비할지 고민도 덜어주고 경제적 부담도 안 주고 6년 이상을 그렇게 해 왔어요.
  외국인이 우리 나라에 호텔을 하나 허가 내려면 100 몇 개 정부 기관을 찾아가야 된다고 해. 이것은 행정의 후진국이야. 한 부처에다 하면 다 될 수 있게 되어야 해요. 웬만한 것은 전화로 협조하고 비망록이나 업무일지에 기록하고 협조공문은 줄이도록 해야 합니다.
  구제 사회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무역자유화 시대에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 물건을 팔면서 우리 시장만 닫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외제를 다 쓰면 관련 업체가 망하고 실업자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화를 절약하고 외제를 안 써야 됩니다. 일본 사람들도 외제를 좋아하지만 참는다고 해요. 절약하고 저축한다고 해요. 그걸 미국 사람들이 보고 답답해서 일본 보고 하는 소리가 저축을 그만하고 내수를 신장시키라고 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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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생관>
  - 1987년 4월 21일 저녁 6시 30분부터 8시 10분까지 全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로 작가 李炳注씨를 초청, 저녁을 대접했다.
  
  경제 공부 3개월만에 방향 잡혀
  
  李炳注 씨: 저는 각하께서 운이 매우 좋다고 보고, 운이 좋은 분이 다스리니까 우리 나라의 운도 좋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임제를 실천하여 나가시려 하니까 아쉬운 게 많습니다.
  대통령: 잘 될 겁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 후 밤잠을 못 자고 번민을 많이 했어요. 제일 걱정된 것이 완전히 파탄 상태에 있었던 경제 문제였어요. 나는 경제는 백지였거든요. ‘내가 왜 하필 망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제 전문가로서 南悳祐씨를 총리로 불러왔어요. ‘당신이 어쨌든 그 동안에 경제를 맡아왔으니 책임을 지고 지속성을 가지고 이끌어나가라’ 고 했지요. 물론 그 사람은 나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때 공부하러 간다고 하와이에 있었는데 갑자기 오라고 하면 겁을 내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중책을 맡아야 되기 때문에 빨리 오라’ 고 통보를 했어요. 그분인들 뾰족한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내가 잠을 못 자고 차관보, 국장, 과장에 이르기까지 계급 고하를 가리지 않고 실무 책임자들의 얘기를 쭉 들어봤어요. 책을 들여다보고 공부할 수도 없고,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기 때문에 브리핑을 들어서 배우는 거였지요. 교수들도 모셔다가 아침 7시부터 당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식으로 6개월 동안을 공부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3개월을 지나니 나대로의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어요.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나라를 책임졌으니 내가 제일 답답한 사람이었지요. 팔자에 없는 대통령을 괜히 해서 이 고생을 하는 구나, 대통령을 잘못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84년도부터는 내가 대통령 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또 내가 대통령직을 맡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자리는 권한이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에 사심 없이 나라를 위해서 정성을 쏟고 배우려고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권력을 누리고 즐기려고 생각하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어요.
  나에게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뚜렷한 사생관(死生觀)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일개 병정도 자기가 맡은 땅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압니다. 장교 때도 나는 그러한 생각을 가졌었어요. 패튼 장군이 한 말에, 병사는 말발굽에 밟혀 죽는 것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이고 적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다’ 라는 것이 있어요. 이 경우 말발굽이라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 사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나는 이렇게 결심했어요. ‘소대장, 대대장, 연대장으로 군에서 싸웠지만 그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목숨을 언제든지 바칠 각오로 싸웠는데, 나라 전체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버릴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냐’ 고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된 후 그렇게 뒤니까, 내가 진두 지휘하고 모든 일을 진정으로 하니까 나라가 돌아가기 시작한 게 느껴졌습니다.
  
  수출 줄이라고 지시
  李炳注 씨: 저는 각하께서 대통령이 되셨을 때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짐작이 있었습니다. 통금철폐만 하더라도 하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라를 책임진 입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가 수출을 오히려 줄이려고 하고 있으니 과거로 보면 꿈 같은 얘기입니다.
  대통령: 며칠 전에 내가 부총리와 경제 수석에서 수출을 줄이라고 지시했어요. 금년 3월 현재 작년보다 수출이 37%나 신장되고 2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두 사람에게, ‘당신네들은 경제 전문가이니 내 얘기를 들어보고 잘못됐으면 판단을 해서 올바르게 해달라’ 고 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한 말은, 금년 한 해 우리가 장사를 하고 내년부터는 문을 닫을 일이 아니지 않느냐? 금년에 수출이 37%가 늘어났는데, 그냥 놔두면 40%까지 신장될 형편이다, 우리 기업들이 평생 이런 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계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고 마구 수출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 어떤 부작용이 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 시장이 주로 미국인데, 작년에 74억 달러의 흑자가 났어요. 금년에 100억 달러까지 흑자가 늘어나면 큰 보복이 오게 돼요. 100억 달러의 흑자가 난다고 해서 우리가 한 번에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회사마다 시설 투자를 하고 그것을 최대한 가동해도 생산 능력이 100이라면 140개를 주문 받아서는 25시간을 돌려도 만들어 낼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 제품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산 제품이 신용을 얻지 못하면 내년부터 엔 화 문제가 정상으로 된다든지 할 때 우리 물건이 제대로 수출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수출과 흑자가 급격히 늘어나면 물가에도 문제가 있게 돼요. 있는 물건은 모두 쓸어서 수출을 하고 나면 내수 시장에 생필품이 돌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뒷거래가 일어나게 돼요.
  
  수출은 자율적으로 조절해야지요.
  
  수출 주문이 온다고 해서 그대로 다 받지 말고 업자들이 먼 장래를 보고 물량을 조절해 나가야 합니다. 장사를 해도 배짱을 부리면서 할 수 있어요. 경기가 좋을 때 오히려 조심을 해야 해요. 물가가 오르고, 무역마찰이 생기고, 과잉 시설 투자를 해놓고 나서 내년에 경기가 나쁘면 큰 문제가 생기게 돼요. 작년의 20% 정도만 신장하더라도 그것이 어딥니까? 그러나 수출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도록 해야 해요. 그 대신 일본에 대해서는 40~50%까지 신장시키라, 업자나 조합해서 신장률을 통제하도록 하라고 한 겁니다.
  李炳注 씨: 4.13 결단도 참 잘 된 것입니다. 야당에서는 정부 여당이 일방 개헌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분당까지 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로 위대한 대통령이 되게 되어있는데, 일방 개헌을 해버리면 제임 중 큰 화근을 만들어 주는 꼴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런 것까지 미리 계산해서 4.13 결단을 내리신 것인지요?
  대통령: 사실은 내가 그런 것까지는 모르고 결단을 내렸어요. 내가 지난번 구라파 여행을 통해서 영국, 독일, 벨기에, 스위스를 가보니 모두 정치가 안정되고 나라가 발전되고 있음을 보았어요. 내가 6년 반 동안 대통령을 하면서 보니 대통령의 힘이란 너무 강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얼마나 양심적이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한 몸을 희생하겠다는 자세로 대통령직을 수행해도 될까 말까 한데, 대통령이 돈이나 권력을 누리겠다고 하면 큰일이 나요.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공금을 다 쓰더라도 정치 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돈에 욕심을 두어 그걸 받기 시작하면 몇 년 동안에 돈에 치여 죽을 정도가 될 겁니다. 나는 업자들로부터 일체 돈을 받지 않았어요.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 돈을 막 싸가지고 오는데 너무나 놀랐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네 기업이 지금 얼마나 어려운데 돈을 가져오느냐?’ 고 했어요. 그것은 결국 그렇게 주고 더 많이 울궈내려는 속셈이 아니겠습니까. 또 나한테 줄을 달기 위해서도 돈을 가지고 왔어요.
  
  4.13 정치적 계산 없었다
  
  대통령: 내가 처음에 일체 돈을 안 받았더니 너무 그러면 지지 세력이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떤 공화당 중진을 지낸 사람이 나에게 ‘너무 이상주의로 하면 안 된다’ 고 충고까지 했어요. 선거를 하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이 어떻게 정치가 되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돈을 물쓰듯하고 재벌처럼 행세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을 해서 몇 백억씩을 벌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6년 반을 해보니 양심이 조금이라도 흐린 사람이 이 자리를 맡으면 나라 전체를 망쳐버려요. 내가 구렁텅이에서 이 나라를 건진 것은 지금까지 돈을 멀리하고 목숨을 걸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자부합니다. 기업들이 지금도 나를 매우 어려워합니다.
  민주주의도 정석을 배워야 합니다. 바둑도 정석을 배워야 잘 늘지, 잔재주로는 발전이 없어요. 나는 항상 정석을 두려고 노력합니다. 나야 정치에서 잔재주를 배울 틈도 없었지요. 4.13만 해도 아무런 정치적 계산이 없었습니다. 야당의 당권 싸움 때문에 언제 합의해서 개헌을 하겠어요? 정통성에 시비를 걸면 차기 정부가 나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을 것 같았어요. 또 88올림픽도 물론 어렵게 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이익이 없어요. 누구의 도움보다도 내가 판단해서 논란을 이쯤에서 잘라야겠다고 생각해서 결단한 겁니다.
  李炳注 씨: 우리 나라는 옳은 리더십만 가지면 남북간의 특수 환경에 비추어 대통령제가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앞으로 ‘우리가 경제 발전을 해야겠지만 이 이상 흙과 물과 공기를 더럽혀서는 안 되겠다’ 는 말씀을 국민에게 악센트를 넣어서 일러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는 이북 동토에 대해서도 같은 겨레로서 깊은 연민과 애정을 표시하시고, 金日成에 대해서도 너무 욕을 하시는 말씀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통령: 절대로 필요한 말씀이에요. 그래서 내가 환경청을 대폭 확장했어요. 나는 북한 동포에 대해서도 그러한 자세를 가져왔어요. 지난번 로마 교황이 오셨을 때, 남북은 다같이 형제인데 진정한 의미에서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당신은 하나님과 통하지 않느냐, 저 사람들 같이 이 지구상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골재 팔아 한강 개발한 아이디어
  
  대통령: 내가 서울에 처음 온 것이 사관학교 4학년 때 진해에 피난을 가 있다가 올라왔을 때였습니다. 그 전에 운동 선수로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서 서울에 온 일이 있지만, 서울역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내려갔기 때문에 제대로 서울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마 사관학교 4학년 때인 1954년일 겁니다. 그 때 왕십리 내 후배의 집에서 묵으면서 뚝섬에서 수영을 했어요. 그 후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강을 보니 썩어서 고기가 죽어 올라오는 형편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한강을 돌아보니 한 가운데에 섬이 있고 골재를 채취해서 파는 사람들이 골재를 쌓아놓은 것이 있었어요. 골재 채취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어야 그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골재가 전부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서울시장이 金聖培 씨였는데, 내가 서울시장에게 골재채취권을 특정 업자에게 주면 안 된다, 올림픽도 있는데 외국에서는 세느 강이니 유명한 강이 있어 볼 거리가 있지 않느냐, 그러니 골재 값을 가지고 도로도 내고 한강을 개발하도록 해보라고 지시했어요. 용역을 주어서 골재 값과 공사 예산을 계산해서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침을 주었는데 보고를 들어보니 그 돈으로 개발을 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 싼 골재가 들어와서 한강의 골재가 잘 안 팔려 조정한 일도 있었어요. 지난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골재더미가 미관상 좋지 않으니 옮기겠다고 하는 것을 비용이 많이 드니 그렇게 하지 마라, 끝까지 팔아서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감수성이 민감하고 그만큼 우수한 국민이에요. 84년 버마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내 목숨이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버마 사건이 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朴 대통령은 18년을 대통령 하다가 죽어도 나라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는데 또 내가 죽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나라를 위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몸조심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10개월밖에 안 남았으니 이제부터는 경호를 정말 잘 해야 된다고 경호실장한테 일러두었습니다. 내 나이가 젊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나를 노려요. 지금 내가 죽으면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선례도 세우지 못하고, 나라는 또다시 수십 년을 후퇴하게 됩니다. 임기를 끝내고 밖에 나가서 죽는 것은 관계 없어요.
  
  겁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은 편이지만
  
  대통령: 직무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내 신조입니다. 나도 겁이 있고 두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겁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은 편이지만 직무 수행에는 굉장히 용감한 성격입니다. 맡은 바 임무에 생사를 거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내 목숨이 희생이 된다 하더라도 나라를 위한 것이면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는 신념을 가져왔어요. 그러나 요즘 나도 이만큼 살았으니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 나이로 지금 쉰 일곱인데, 나처럼 일생을 보람 있게 산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능력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고 공부를 특별히 많이 한 것도 아닙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자랄 때도 집안은 가난했지만 우리 부모님께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돈을 꾸어서라도 해주셨어요. 국민학교나 중학교 때도 수학여행 가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할 때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어요. 집에 와서 어머님께서는 ‘수학여행 안 가면 졸업장을 안 준대요’ 하면 부모님들이 다 해 주셨어요. 학교에 내야 할 돈도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들 못지 않게 틀림없이 기간 내에 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부모님들께서 잘해 주셨습니다.
  李炳注 씨: 정치를 좀 한다는 사람들은 각하께서 헌법문제에 관한 논란을 일부러 방치했다가 비상조치를 발동해서 사정이 이러나 도저히 내놓을 수 없다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통령: 야심만 있으면 일부러 시끄럽게 만들어서 더 하는 쪽으로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는 될 수가 없어요.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서 물러나야 돼요. 李承晩 대통령이 얼마나 애국자입니까? 그러나 3선 개헌을 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실망하고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진 겁니다. 우리 나라는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물러가는 전통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아쉬워하는 분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내가 후임자 힘 빌릴 일은 없을 거요
  
  나는 우리 국민성을 대단히 좋게 평가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은 인정이 많습니다. 내가 그만두고 가면 2년 가까이 국민에 대한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나라가 시끄러울 때 내가 국민들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정부에 협조해야 합니다’ 하는 얘기를 하면 그래도 내 말을 듣는 국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 사람에게도 2년이 제일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 90년대가 되면 우리 나라는 정치 지도자가 시원치 않더라도 모든 분야가 발전되어 탄탄대로에 오르게 돼요. 내가 대통령을 그만두고 길거리를 가다가 희생되는 한이 있어도 나라 발전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이 내 소신입니다. 내가 일생 동안 군인으로 지내다가 대통령까지 했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후임자가 될 테니 올림픽을 잘 치르면 그야말로 우리 나라는 발전하게 될 겁니다. 다음 대통령은 내년 2월 25일에 취임하게 되므로 취임 후 6개월 뒤에 올림픽을 치러야 하는데, 그 사람이 국정 파악도 제대로 못 할 처지에 무슨 재주로 그것을 다 치르겠습니까. 국정 파악에는 적어도 1년을 걸려요. 관념적으로 아는 것과 국정의 책임자로서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가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하고 물러가면 북한이 아주 곤란해질 겁니다. 金日成은 자기 아들한테도 정권을 못 넘기는데 국제 사회에서 얼마나 우습게 되겠어요? 이 지구상에 171개국 가운데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하는 민주 선진국은 스물 한 개 또는 스물 세 개 나라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내놓더라도 권력은 못 내놓는 것이 권력의 마력인가 봐요. 내가 퇴임을 한다는데도 개인적인 영구 집권이니 뭐니 하는 사람이 있는데, 권력이란 아버지가 아들한테 넘겨도 일단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내가 차기 대통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싸움이 나게 돼요. 후임자가 알아서 문의하고 조언을 구해오면 몰라도 두 번만 이래라 저래라 하면 당장 브레이크가 들어올 겁니다. 군대에서는 연대장만 해도 전임자와 후임자의 사이가 좋은 예가 드물어요. 참모총장쯤 되면 서로 말도 안 합니다. 전임자는 자기가 잘했다는 것이고 후임자는 자기가 옳다는 겁니다. 절대 권력을 넘겨주는 데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두 마디만 하게 되면 비서들이 중간에서 ‘안 됩니다’ 라고 나서게 돼요. 딱 넘겨주고 그 사람이 하도록 해야 됩니다. 의견이나 조언을 구해오면 경험에 비추어 얘기를 해줄 수는 있어요. 간섭하면 부자지간에도 원수가 집니다. 나는 권력을 내놓고 시민 생활로 일생을 조용히 보낼 생각입니다. 내가 후임자를 도와주는 입장에 서면 아무 사심이 없기 때문에 후임자가 내 힘을 빌릴 수는 있어도 내가 후임자의 힘을 빌릴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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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 오르면 한강으로 뛰어내려야 돼>
  - 1987년 5월 14일 全斗煥 대통령은 오후 5시부터 7시 30분까지 물가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였다. 청와대 소회의실에 참석한 이는 金滿堤 부총리, 鄭海元 보사, 崔昌洛 재무, 농수산, 車圭憲 교통, 李海元 보사, 羅雄培 상공 장관과 司空 壹 경제 수석비서관이었다. 全 대통령은 각 부처의 보고를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못 견디고 인심이나 쓰면
  
  대통령: 81년 대통령 취임하고 나서 내가 물가 상승률 한 자리 수를 강조했을 때 다 웃었습니다. 아니 경제를 안다는 사람은 나를 비웃었지.
  우리 경제 책임자들이 그 동안 기업가들한테 인심 잃어가며 머리 싸매고 밀고 가니 86년부터 흑자경제로 전환된 것입니다. 욕먹는 건 일시적이지만 나라 전체를 발전시킨 결과로 나타났어요.
  申秉鉉 당시 부총리는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업자들이 욕하고 했지만 그 분의 신념과 철학으로 받아들여 주었어요. 그 양반이 천하의 악질로 욕을 다 뒤집어썼어. 그래서 결국 해냈습니다.
  금년도 도매 물가가 1~2% 올랐으니 지금 벌서 목표를 넘어서지 않았나. 경제 장관들이 국민들한테 큰 책임을 느끼고 대통령한테도 책임을 느껴야 돼요. 물가담당책임자도 책임져야 돼. 안 되는 것을 되도록 하는 게 전문가지.
  물가 안정이 보통 굳은 신념으로 되는 겁니까. 금년 물가가 가령 4% 이상 올라간다면 내년에는 10%로 뜁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는 정부나 기업이나 무지무지한 고통을 견뎌야 돼. 느슨하게 풀어서 올라가기는 아주 쉬워요. 고통을 못 견디고 인심 쓰고 하면 몇 달 안 서 휙 올라갑니다. 오르면 끌어 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워. 한 사람 힘으로 안 돼요. 경제 각료와 공무원들이 신명과 명예를 걸고 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안 돼.
  기업이야 물가 오르면 앉아서 돈 버는 게 있지. 부채 다 까버리고. 물가 안정이 되면 피 땀나는 경영을 해야 되니 대기업은 물가 뛰는 걸 바랄지도 몰라. 쉽게 돈 벌고 빚 갚고, 물가 오르면 이게 해결이 돼요. 정부 책임자가 무지막지하게 인심 잃고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 나라 물가에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게 에너지입니다. 원유값이 뛰면 모든 에너지 값이 올라요. 우리가 기름이 안 나니까. 다음이 임금 인상이지. 그리고 원자재 가격이고. 그 다음이 농수산물값입니다.
  
  숫자에서 남고 실제로는 망하는 통계는 안 돼
  
  쌀값이 9% 올랐는데 오른 게 농민들한테 돌아갑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 어리석은 거야. 농수산부에 그렇게 생각하는 국장이 있다면 처벌 받아야 돼. 양곡의 큰 손이 사서 지역마다 놓아두고 가격 조작을 합니다. 내가 수년간 보고 받았어요. 업자를 잡아 처벌도 했어요.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농수산물 값이 오르면 농어민 소득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기 쉬워요. 90%는 중간 상인이 다 먹고 소비자가 손해 봐요. 실제로 형편이 어려운 영세 농가는 혜택 보는 게 없어. 과거에는 통계경제, 피부경제라는 게 따로 있었어. 통계와 현실이 안 맞아서 정부가 불신을 받았어요. 85년부터는 피부경제라는 말이 시중에 없어졌어.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 통계와 주부가 느끼는 물가가 같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물가 목표를 달성 못 하면 국가와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기는 1주일도 안 가요. 농어촌 부채경감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인기가 며칠 갔습니까. 오래 가야 1주일이지. 국가 경제를 경영하는 여러분은 국민 전체와 나라 전체를 보고 해야지, 한 구석만 들여다보면 안 돼. 나라 전체에 맞도록 자기 부처에서 이견(異見)이 있어도 전체를 보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돼요.
  금년도가 물가정책에 중요한 해요. 작년에 국제수지 흑자를 내고 우리가 열광했지만 역사적으로 축배를 들 일입니다. 그러나 흑자가 국민과 기업, 공직자들한테 풍족한 느낌을 느끼게 해요. 흑자가 47억 달러 났으니 예산 편성도 올리자, 하게 돼있어요. 그건 아무런 상식도 없는 소리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47억 흑자가 47억 적자로 돌아갈 수가 있어요. 숫자에서 남고 실제로는 망하는 통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확실한 것은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여러분이 직위를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 책임을 다 못하면 할복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작년 한 해 나라를 잘 만들었는데 한 해가 지나서 물가가 4~5% 되면 여러분이 큰 죄를 짓는 겁니다. 내가 대통령 되면서 최초부터 물가 안정을 내 경제정책의 제일의 목표로 했던 것이 들어맞아 준 겁니다.
  
  물가 오르면 도둑질해야 돼
  
  물가가 100% 뛴다 하면 1조가 되는 빚은 누가 갚아줍니까. 99%의 국민도 어렵게 돼요. 여러분도 월급쟁이 아닌가. 뭘 먹고 사나. 도둑질해야 된다는 얘기야. 모든 부정부패의 요인이 물가상승입니다. 아무리 정의 사회를 하자고 해도 월급으로 쌀 한 가마도 못 산다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가족 먹여 살리기 위해 부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물가가 오른다고 그만큼 봉급 인상을 시켜줄 수 있느냐, 세수(稅收)가 줄어드니 그럴 수가 없어요. 물가가 오르면 정부의 재정이 약해집니다. 공무원이 부정 부패 해야 되고 월급쟁이는 전세에서 월세로, 나중에는 길거리에 나가 앉게 돼요.
  나는 전체적으로 경제가 물가에 달렸다고 봐요. 그 동안 정부가 잘 해서 작년 물가상승률이 1%, 도매 물가는 마이너스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는데 금년에도 어려움이 있으나 에너지가 배럴 당 24달러로 올라가도 국내 유류 값을 안 올리겠다는 대책이 있다면 에너지 관련 물가를 올릴 이유가 없지 않나. 원자재값이 오르는 것도 기업이 흡수해야 돼요. 기술 혁신, 생산성 향상을 왜 합니까. 그만큼 원가절감 요인이 생기기 때문이요. 농민도 그래요. 농수산부가 쌀값을 올려 심리적으로 물가를 올려놓으면 농어민이 제일 피해를 받아요. 쌀 한 가마에 10만 원이 되고, 신발 한 켤레에 5만 원이 된다면 숫자상으로는 돈 벌로 실제로는 망하는 거요.
  농수산 물가는 조금만 적게 심으면 확 뛰고 그러는데 내가 6년 반 동안 농수산 물가 때문에 불쾌하고 마늘 값 뛰고 소 값 뛰고… 내 마음에 안 들어요. 농수산부가 농어민들한테 경제 교육을 강화하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역대 농수산부 장관은 농수산물값을 올리는 게 농민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역대 농수산 장관한테 농수산부만 떼어서 외딴 섬에 가서 살면 나라가 잘 되겠느냐고 했어요. 맨날 그 사람들 주장만 듣고 하면 안 돼요.
  정부가 물가를 일방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전공무원과 경찰, 군대를 동원시킨다고 물가가 통제되나. 물가 통제는 해서도 안 돼요. 뒷거래 같은 부작용만 일어나요. 경제란 두뇌를 써서 물이 흐르듯이 해야 돼. 물이 흐르는데 둑을 쌓으면 터져요. 물꼬를 돌려서 유도해야 됩니다. 물가도 자율적으로 감시하도록 협조를 유도해야 돼.
  정부가 제지하고 행정 지도를 하는 데도 업자가 물가를 올렸다면 그만한 요인이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 계산보다 높게 받은 것은 세금으로 회수해야 돼.
  
  옛날엔 치국(治國), 지금은 경영(經營)
  
  그래서 소득 균형과 배분의 형평을 유도해야 합니다. 통화 무제는 금년도가 18%인데 가만 놓아두어서 되겠어요? 연말에 가서 18%로 조정하는 것은 소용없어요. 늦어도 6월 이전까지는 18%까지 내려야 돼. 통화안정증권도 한계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를 연구해야 됩니다.
  그 전에야 정부가 은행을 통제했지만 그런 방법을 안 쓰기 위해서 통안증권(通安證券)을 발행한 것인데 자율성이 없어지니 창구에서 통제하는 것은 은행 자체가 자율 협조토록 해야 돼요.
  통화가 안정되어야 물가가 안정될 게 아닌가. 수출도 그래. 수주가 많다고 정신 없이 수출을 하면 내수 부족(內需不足)이 나서 물가가 뛰게 돼요. 우리부터 먹고 쓰면서 수출을 해야 돼. 물가 안정 차원에서 이제는 수입을 과감히 개방할 필요가 있어요.
  원자재 공급이 달리는 모양인데 업자들과 상공부가 파악해서 미리미리 당겨서 안정 공급이 되도록 해요. 우리 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은 방계 회사끼리 쓰고, 수출하고 안 내놓는 경우에는 대량으로라도 수입해서 가격을 떨어뜨리도록 해요. 국가도 장사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치국(治國)이었지만 요새는 경영(經營)입니다. 경쟁력을 올려서 수출을 더 해야 돼. 흑자가 20억 달러 정도로 작년의 절반이 돼도 좋으니 물가를 안정시켜야 돼. 흑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흑자가 100억 달러가 나도 물가가 50% 뛰면 그것을 거꾸로 까먹게 돼.
  물가 안정 속에서의 흑자가 중요하지 흑자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물가가 마이너스되면서 국제수지 흑자가 되는 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겁니다.
  국내독점 원자재 공급 회사가 외국에서 수입 안 하는 경우는 빨리 과감히 수입하도록 해요. 물량이 모자라서 물가를 압박하는 것은 절대 없게 해야 돼.
  
  소비자 단체도 활용하고
  
  수출이 잘 된다고 기업에서 수출 시설을 확대하는데 그것도 경계해야 돼. 원유값이 벌써 뛰기 시작하는데 아직 20달러인 것은 다행이지만 30달러로 뛸 수도 있지 않나. 누가 전망할 수 있겠어. 79년 말에 당한 것처럼 시설을 확장했다가 그 때 가서 기름값 오르면 다 죽게 돼.
  무슨 기회가 왔을 때 노름꾼 같이 왕창 먹으려고 하면 안 돼. 점진적으로 해야지. 물가 안정에 소비자보호단체를 최대한 활용해야 돼요. 쇠고기 값이 오르면 소비자단체에서 안 먹기 운동을 한다든지.
  내가 67년에 일본에 갔을 때 보니까 여자들이 길에 모여서 뭔가 하는데 쇠고기 안 먹기 운동을 주부들이 하는 거라고 해. 그렇게 하니까 일본은 물가가 못 오른다는 거야.
  소비자단체가 형식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정부 비판도하고 물가 오른 것 고발하기도 하고 물가 안정 여론을 주도하게 되어야 해요.
  홍보를 잘못하면 역작용이 나요. 물가가 오를 모양이구나 잘못 생각하게 하면 사재기를 유발하고 그럴 만한 심리작용일 일으키게 하면 곤란하니 장관들이 절대 금년 물가는 오를 이유가 없다, 에너지 값이 내리고 있지 않느냐, 소비자들이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금년 도매 물가 2%, 소매 물가 3%에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야 돼요.
  물가 문제에는 국민들이 지금 정부를 신뢰하고 있으니 오늘 회의에 대해서도 물가가 오르고 있으니 노력하겠다는 거다, 물가가 오를 이유가 없다고 언론에 확실히 얘기해야 돼.
  
  며느리가 부자유스러울 것 같아
  
  (상춘재로 옮겨 만찬)
  대통령: 도매 물가가 오른 주원인이 무엇인가.
  鄭 재무 장관: 원자재 가격 때문입니다. 납사 가격이 15%, 수입원자재가 8% 오른 때문입니다.
  대통령: 범양 사건 때문에 재무 장관이 모략을 받았다면서? 서울대 선후배라며?
  鄭 재무 장관: 실제 얼굴도 본 일이 없습니다.
  대통령: 검찰총장 보고를 받아보니 그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다소 물의가 있어도 칠 것은 과감히 쳐야 돼. 비가 안 와도 농사는 괜찮은지?
  黃 농수산 장관: 저수량이 97%입니다. 좋습니다.
  羅 상공부 장관: 부산에서 신발 수출을 억제시키니 국회의원을 통해 부탁이 들어옵니다
  대통령: 중소기업에서 수출하는 건 풀어주시오. 장관은 욕을 좀 얻어먹어야 잘 하는 장관이야.
  에너지 절약은 계속 깨우쳐 나가고 일본과 비슷하게 따라가야 돼. 우리 정부 관료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아. 경제 수석이 나를 아주 보좌를 잘 해주고 있어요. 버마에서 金在益 수석이 돌아가고 나서 내가 큰일이구나 생각하고 오자마자 司空 壹 수석을 임명했는데 아주 유능해. 여러분이 잘 밀어 주시오.
  (羅昌洛 장관에게)
  마누라가 없으면 갈 곳이 없을 것 같아. 며느리고 딸이고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게 부자연스러울 거야. 며느리는 눈치 보느라 얼마나 피곤하겠어. 자녀들이 다 시집가고 장가가면 아버지는 불쾌한 존재가 돼. 아버지는 엄하니 며느리와는 대화할 것도 없고 며느리가 부자유스러울 것 같아.
  
  마누라는 친구 아닙니까.
  
  사위가 나이가 많아도 장인 앞에서는 담배를 못 피워. 나는 장인께서 오시면 반갑기는 하지만 담배를 못 피워서 부자유스러워.
  자식들한테 부담을 안 주어야 해. 남자의 경우는 마누라가 없으면 공원밖에 갈 데가 없어. 나는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나보다 1년 더 살고 죽으라고 해. 마누라는 친구 아닙니까.
  비서실장이 부산 시장할 때 부인을 잃었는데 10여 년을 혼자 살았어요.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갔다 온 후 주택공사 사장할 때 내가 장가가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결혼을 했더구먼.
  금년도 수출, 성장, 물가가 잘 되면 우리끼리 한 잔 먹읍시다. GNP는 1,100억 달러 이상 올려야 돼. 흑자를 정착시키고 물가가 안정되면서 GNP 1,100억 달러가 되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내가 대통령 되고부터 그게 희망이었으니까. 올해 물가가 3% 이상 올라가면 사표 내고 한강에 뛰어 내려야 해.
  
  鄭寅用 장관: 작년에 각하께서 물가 목표가 안 되면 63빌딩에서 패러슈트없이 뛰어내리라고 하신 것을 저희도 써먹었습니다. 부내 직원들한테 뛰어내리는 것 보려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대통령: 5공화국 경제팀은 내가 대통령을 그만두어도 영원히 동지로서 같이 동고동락 했으면 좋겠어. 연구소도 있으니 내가 창설자이니 특별대우 해주겠지. 柳炳賢 장군이 훌륭한 분이야. 보험회사 사장 하라고 했더니 몸도 안 좋고 4성 장군, 합참의장, 주미대사까지 했는데 배려해주어야 할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고 했어요. 자기는 일해 연구소에서 연구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해. 공직자란 그만 두고 갈 때 애국을 해야 돼요. 자리에 있을 때야 누가 못 하겠어.
  나는 아이들이 어디 갔다 오면 꼭 절을 받아요. 미국서 우리 아들이 지금쯤 도착해 있을 텐데 저녁 머고 가서 절을 받아야 해.
  
  모략 받고 부총리로 승진
  
  全 대통령은 4월의 도매물가상승률이 억제 목표를 넘어서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관계 장관들을 소집해서 물가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주고 저녁을 함께 하면서 사기진작도 병행했다. 이것은 당시 司空 壹 경제 수석비서관이 건의해서 이루어졌다. 모략 부분을 언급한 鄭寅用 재무부 장관은 2주일 뒤에 있은 내가 개편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기용되었다. 여기서 연구소라고 한 것은 일해 연구소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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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머리의 경제성>
  - 1987년 5월 26일 全斗煥 대통령은 평통(平統) 간부 200여 명을 초청하여 오찬을 베풀고 격려했다.
  
  30년 머리 기름 값 모으면 빌딩 하나 살 텐데
  
  대통령: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교양이나 인격이 훌륭한 분들일수록 자기 의사를 잘 표시 안 하려는 습관이 있어요. 좋은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이고 나쁜 일이 있어도 말을 안 하고. 내가 공산주의자들만 박수를 잘 치는 줄 알았는데 세계 각국을 다녀보니 모두 박수를 잘 쳐요. 공산주의자들은 자기가 연설을 하고 자기가 박수를 쳐요. 미국 구라파도 그렇고 아프리카에서도 그래요. 박수 훈련이 잘 돼 있어요. 내가 아프리카에 갔을 때 상대방 대통령의 만찬 연설 도중에 참석자들이 여러 번 박수를 쳐요.
  내가 만찬 연설을 할 때는 우리 수행원들이 아무도 박수를 안 쳤어요. 케냐에서 그리고 나서 다음 순방국인 나이지리아에서는 수행원들을 모아서 내가 연설하는 적절한 구절에서 박수를 쳐라, 그래야 상대방에서도 칠 것 아니냐고 했어요. 그리고 나서 내가 연설을 하니 노다지 아무데서나 박수를 쳤어요(참석자들 웃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연설할 때 냉랭하게 눈을 감고 듣고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박수는 건강에도 좋고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그러니 우리도 연설을 들을 때는 박수를 자주 치도록 하는 게 좋겠어요(참석자들 박수).
  오늘 개각을 했는데 신임 각료들에게 아직 임명장도 안 주고 평통 간부들을 내가 만났으니 여러분은 각료보다도 더 중요한 분들입니다. 난 사람 바꾸는 것을 싫어해요. 대통령 하는 동안에 제일 고민이 많을 때가 개각을 할 때 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점은 좋은데 다른 점은 좋지 않고. 내가 사람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이 다음에는 평통 자문위원 가운데에서도 발탁하면 쉬울 것 같아요(박수). 이제는 나갈 때까지 또 개각을 하면 안 되지요.
  한 참석자: 왜 각하께서는 시계를 바른 쪽 손에 차시는지요?
  
  내가 오른손에 시계를 차니까 덩달아 차더라
  
  대통령: 다른 사람이 다 왼쪽에 차니까요(웃음). 내가 가끔 그런 질문을 받아요. 내가 오른손에 시계를 차는 것은 밑에 있는 점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이 꼭 시계 크기만 하거든. 내가 어릴 때 어떤 스님께서 오셔서 보고 이 아이는 크면 점을 절대 남한테 보이지 말라고 어머니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른손에 차는 것이 좋은 줄 알고 나 때문에 덩달아서 오른쪽에 차는 사람도 있어요. 이것은 수석비서관들한테도 지금까지 얘기 안 한 개인적인 비밀이었습니다. 내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게 이것이 얼굴 한복판에 났으면 숨길 수도 없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참석자들 웃음). 상당히 예리한 질문을 하셨는데 머리가 왜 그러냐고는 안 물어보시나요(웃음).
  우리 나라도 대머리협회를 하나 만드는 게 좋겠어요. 미국에서도 그런 모임을 결성했는데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회장은 못 했다고 해요. 대머리의 정체성도 무시 못 합니다. 비누나 샴푸를 쓰는 양이 보통 사람의 10분의 1도 안 돼요. 머리 기름을 바르는 경우가 없어요. 나는 아무 물이나 바릅니다. 요새 얼굴에도 바르고 머리에도 바르고…
  30년 동안 머리 기름을 안 바른 돈을 모으면 빌딩 하나 지을 수도 있을 겁니다(참석자들 웃음). 이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마찬가지야. 머리 한 오라기 한 오라기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이발하는 분이 대머리 이발이 제일 어렵대요. 머리털이 없으면 사람 많은 데서 가족들이 찾기에도 좋습니다. 훤한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참석자들 웃음).
  대통령: 우리 나라 통일 문제라는 게 주변 강대국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느냐, 어렵습니다. 한반도는 4대 강국의 이해가 심각하게 교차되는 지역입니다. 그러면 그 이해 관계를 누가 조정하느냐, 그 주역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을 하는 데 있어서 강대국의 의견대로,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에는 통일이 안 되는 것보다 못 합니다. 통일이 상대가 있으므로 전술 전략에 말리는 정책을 함부로 내어 놓으면 민족사에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통일민주당의 강령처럼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통일이란 월남 패망도 통일이라는 식의 논리입니다. 북한은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군사력에서 자신이 있고 국민의 사상무장의 면에서도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해서 남북이 할 수 있는 것은 대화이지 통일이 아닙니다.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회복해서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념과 체제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념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 자체를 이념과 체제를 초월해서 한다는 것은 월남식 통일인 것입니다. 인기나 생각하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통일론은 국민 사상의 큰 혼돈을 가져오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통일이 아니면 통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통일이 2000년대 이전에 달성될 수 있고 가까운 장래에 긴장 완화가 되는 분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앞으로 2~3년, 90년에 들어서는 온다고 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네가 약하면 반드시 협상을 해서 시간을 벌려고 합니다.
  올림픽 때가지, 우리의 정치 스케줄이 끝날 때가지가 북한의 입장에서는 취약점이 됩니다. 그들은 그래서 올림픽도 방해할 것입니다. 국제정치사회에서 우리의 지위를 격하시키려고 내부 혼란의 조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88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그들이 실질적인 남북대화는 원하지 않을 것으로 나는 보고 있습니다. 91,92년쯤 되면 남북을 동서독처럼 트자, 장사도 하고 교류도 하고 돈도 꾸어주고 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한테 당해왔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책을 안 봐도 압니다. 대통령을 하면서 보니 김일성이가 하는 짓이 옛날과 똑같아. 이면에 숨은 음흉한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84년 수해가 났을 때 실제로 큰 수해가 난 것은 그 쪽인데 이북이 우리한테 수해물자를 보내겠다고 했어요. 쌀과 의약품을 보내겠다고 양을 명시했는데 큰 마음을 먹고 양을 많이 한 것입니다. 이런 게 나오면 우리는 으레 거절하는 것이 공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안 받는다면 이북이 공식대로 욕을 해제낄 참이었어요. 비전문가가 전문가보다도 나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져오라고 해보자고 하니 전문가들이 안 됩니다 라고 해요. 그러면 한 달쯤 시간을 주자,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주면 받는다, 그 이후는 안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북 천지가 이 물자를 채우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것을 제의한 사람들이 다 모가지가 날라갔다고 해요.
  
  분위기용의 농담
  
  全 대통령은 임기 만료까지 전국의 평통 간부들을 200명 정도씩 청와대로 초청해서 오찬이나 만찬을 함께 하면서 격려하는 행사를 계속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평통 위원들에 대한 관심의 표시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우군 관리의 목적이 있었다.
  많은 인원들이 모인 자리는 딱딱하고 지루하기 쉽기 때문에 全 대통령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서두에 가벼운 농담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머리에 관한 얘기는 외국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분위기를 재미있게 하는 양념으로 자주 했는데 용모에 관한 농담이었기 때문에 보도된 바는 없다. 이 대목에서는 全 대통령의 남북관계의 전망이 나타나 있다.
  이 날은 盧信永 국무총리와 張世東 안기부장을 경질, 국무총리 서리에 李漢基 씨, 부총리에 鄭寅用 재무 장관, 안기부장에 安武赫 국세청장을 기용하는 등 대폭 개각을 단행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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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과 국가 이익>
  - 全斗煥 대통령은 1987년 6월 1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15분 동안 수석비서관 회으를 주재했다.
  
  3월부터 6월까지 정부가 늘 몰리더라
  
  金潤煥 정무1 수석: 6월 10일 민정당의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와 야권의 불법 집회가 예정되어 대치 상태가 예상됩니다.
  정부는 이 모임을 불순 세력에 의한 불법 집회로 보고 치안 차원에서 단호히 대응할 방침입니다. 통민당이 군중 집회에 동조한 것은 제도권 정당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임을 인식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야당이 국정 조사권 발동을 전제로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으나 전당대화 이후 1주일 내지 열흘 정도로 소집, 민생법안 위주로 운영토록 하고 전당대회 이전까지는 국회 소집에 응하지 않겠습니까. 후보 수락 연설 초안은 7일까지 보고드릴 것입니다.
  康祐赫 정무2 수석: 6월 20일가지 모내기가 완료되도록 하겠습니다. 6.10 대회는 원천봉쇄하며 전후 3일간 경찰이 갑호(甲號) 비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愼克範 교문 수석: 시국선언 교수는 50개교에 1,527명으로 전체의 7% 이며 그 50%가 조교수 이하 소장들입니다.
  북한은 계속 올림픽 종목의 공동 주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7월 14일, 15일 이틀간 4차 남북체육회담에 대비, 대안을 수립 중입니다. 문화예술계는 1,031명이 시국선언에 참가하였습니다. 종교계는 천주교, 개신교의 시위 기도가 일단 소강 상태이며 신부는 1,200명 중 353명이 서명하였습니다.
  朴英哲 경제 수석: 제조업의 실업률이 3.4%로 내려갔습니다. 물가는 5월 중산 현재 도매 0.1%, 소매 0.2% 상승했습니다.
  
  물가 오르는 성장은 성장이 아니다
  
  대통령: 연중 정국 상황의 추세를 보면 3월부터 6월까지 정부, 여당이 늘 수세적 처지에 놓입니다. 6월을 고비로 후반기부터는 항상 정부, 여당이 정국을 주도, 정책을 인식시켜서 7월부터 새해 1, 2월까지 밀고 나가다가 3월부터 6월까지 수세에 몰리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내가 지난 6년간 보니 그래.
  금년에는 경찰의 사건이 있어서 5월 한 달 동안 어려운 고비를 맞이했는데… 어느 나라에서든, 또 어떤 사건이든 거울 같이 속 시원하게 할 수도 없고 어떤 정부도 그렇게 할 능력이 없어요. 미국도 마릴린 먼로의 사인을 속 시원히 못 밝혔고 심지어 케네디 대통령을 죽인 주범도 그렇고, 일본도 록히드 사건이 난 지 7~8년이 됐는데 전세계에 확실하게 안 밝혀진 채로 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나라든지 국가 이익을 위해 어느 길이 좋으냐에 따라서 사건을 다스리는 것 같아요.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봐야 돼요. 여러분도 사건 자체는 명명백백하게 처리하되 사소한 사건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 사람이 희생되고 4,000만 명이 잘 살 수 있다면… 나라 전체의 운명과 4,000만의 인권을 생각해야 돼. 나라를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양심이 어디 있나.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데는 뱃심이 있어야 돼요. 특별히 태어날 때부터 뱃심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렇다고 독선과 독재를 하면 안 되겠지만 청와대 가족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국가 이익의 방향으로 끌고 가야 됩니다.
  경제 분야에서 내가 제일 중요시하는 게 물가 안정입니다. 나는 물가 안정이 동요되는 상황에서 성장하는 것은 성장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달에 각 부처 물가 안정 대책을 보고 받았는데 그것을 부처별로 철저히 집행 상황을 확인해서 반드시 추진되도록 해야 돼요.
  대통령: 모내기가 70% 정도 되고 있지. 앞으로 모내기 실적은 오늘 얼마 하는 식으로 보고 받지 않도록 해요. 밑에서는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어. 매우 불확실한 보고야. 누가 일일이 지키고 앉아서 보겠나. 모내기를 끝내야 하는 기간이 언제인가를 기준으로, 빠르면 주 단위로 보고해주면 되겠어요. 나도 자구 안 물어볼 테니까. 정부 부처에 자꾸 독촉하면 모내기에는 신경 안 쓰고 통계 조작에만 신경 써.
  대일 무역적자 해소는 우리의 생사가 걸린 것이니 확실히 점검해 나가도록 해야 돼.
  중동사태가 상황이 악화되는데 페르시아 만이 우리한테는 젖줄입니다. 원유의 70%를 의존하고 있지 않나.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에너지를 파악하고 에너지 공급 문제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안보 면에서는 페르시아 만에 긴장이 생겼을 때 미국 7함대가 거기로 이동하면 우리한테 영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관계 부처가 분석해서 미리미리 대응해 나가야 해요.
  
  6.10 전당대회 앞두고 정국 긴장
  
  6월 수석비서관회의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 추천 등을 분비하기 위해 간단하게 끝났다. 朴鐘哲 사건과 관련한 인권에 대한 인식과 모내기 실적 보고에 대한 지시가 눈길을 끈다. 시국은 5월 1일 통일민주당이 창당되고 金泳三 총재가 선출되어 4.13선언 및 6.10전당대회를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여측은 야당의 정강정책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여 공방이 가열화되고 학원 시위가 과격화 되는 가운데 제2차 朴鐘哲 사건과 관련, 5월 26일 대폭 개각을 단행하고 30일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조작 사건 수가 결과와 발표와 국무총리서리의 사과담화 발표로 수습을 꾀했으나 6월 10일을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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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泰愚 대표를 지명한 이유>
  - 1987년 6월 1일 오후 2시에 全斗煥 대통령은 필자를 불러 민정당 중집위(中執委)에서 盧泰愚 대표를 대통령 후보자로 추천할 때 연설문 초안에 대해 검토한 뒤 약 50분간 보완 지시를 내렸다
  
  야심만 채우려다가는 개인도 당도 사라져
  
  대통령: 내가 후임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통을 시작하는 뜻이 있다. 평화적인 정부 이양을 시도하는 것은 다지고 보면 윌 5,000년 민족사에서도 이번이 처음이야. 후보 지명을 상춘재에서 하는 것은 이 건물이 전통적인 건물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식으로 의자에 앉아서 하는 회합이 아니라 모두 마루에 앉아서 회합을 갖는 게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부합하듯이 우리의 의식에 맞는 우리 식의 정치 전통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뜻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야심이 있어야 개인이나 당의 발전이 있다. 그러나 그 야심이 자기의 위치와 분수를 모르는 오판이나 허욕에만 차서 집권욕에 눈이 어둡다거나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는 것은 안 돼. 그것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은 사례들이 있다. 그 표본이 선조 24년에 일본 통신사로 갔다 온 서인의 黃允吉 정사와 동인의 金誠一이 서로 다른 보고를 내어 그 결과가, 李栗容의 10만 대군 양성 주장을 듣지 못하고 임진왜란을 당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근대 정치사를 봐도 자유당 때 개인 중심으로 주류 비주류로 나뉘어져서 李 대통령께서 하야하신 이후에 자유당이 살아 남았나. 공화당에도 주류다, 비주류다, JP, 반JP다 해서 파벌이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돌아가고 나서 공화당이 지금 있나. 야당만 해도 신파, 구파로 나뉘어서 싸웠는데 이런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 발전에 장애가 된 것이다. 자신의 분수와 실력을 모르고 야심만 채우려 하다가 개인도, 당 자체도 멸망시킨 교훈이 있다.
  역사는 우리의 선생이야. 우리 정치인들이 앞으로 이런 사례를 반복하면 우리 역사와 국민한테 큰 죄인이 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 되다.
  
  총재가 지명해야지 경선하면 당 분열
  
  대통령: 우리 민정당만큼은 당 총재가 중심이므로 총재가 지명해야지 그렇지 않고 서구식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면 당이 분열되고 만다. 우리의 남북 대치 상황과 주변 정세의 격동을 감안해서 당의 단합을 위해서는 총재인 내가 후임자를 지명하는 하나의 불문율을 중집위원들이 명예롭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인사말에 포함시켜야 되겠다.
  그것이 민정당의 전통이 될 수 있다. 정당에서 개인 플레이를 하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가 없어. 결국 신민당도 그래서 분당이 된 거고 통민당도 역시 개인 중심이 될 거다.
  후임자의 자격은 서울올림픽 성공과 선진국 창조 과업을 위해 정치 사회 안정과 국민 단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안보 역량이 중요하다. 한반도의 남북관계에 비추어 볼 대 국민의 생존권 보장이 제일 어려운 문제 아니냐.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과는 국력에 있어서 상대가 안 되고 일본의 국력과도 상대가 안 되니 미국의 보호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은 군부의 신뢰를 받아야
  
  대통령: 우리는 동족간에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지도자는 군부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정권을 잡아도 유지를 못 한다. 군부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세력이야. 사상적으로도 절대반공조직이 군대야. 야당이 아무리 떠들어도 군부 지지가 없으니 안 돼.
  군부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게 65만과 예비군 400만이 있지 않나. 선거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군부가 튼튼하니까 경찰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공화당 대는 군부가 흔들렸다. 장기 집권, 부정부패 때문에 朴 대통령까지 군부의 존경을 받지 못했어. 그게 부마(釜馬)사태 때도 나타난 거다.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해도 제어가 안 됐었다. 그 때 경찰이 데모 진압을 안 하려고 했었어. 金載圭가 그런 군부의 동향을 보고 朴 대통령을 시해한 것이다.
  군부가 대통령한테 절대 충성을 하면 경찰이 잘 한다. 강해지는 거야. 안기부도 소신껏 일할 수 있고 공직자도 그렇다.
  대통령: 남북이 사생결단을 하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군부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하고 작전에 깊은 지식이 있어야 돼. 盧 대표를 후임으로 하는 것은 내 동기생이고 대장을 지냈기 때문보다도 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했고 내무, 정무, 체육부 장관을 지내 정부 조직과 군부도 잘 알고, 당에 있으면서 당의 생리와 정치인의 생리를 상당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나의 후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지만 盧 대표가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총재로서 추천한다, 그러니 흔쾌히 받아 들여서 전 당원이 단합해서 盧 대표를 후보로 해주기 바란다고 표현 하도록 해봐.
  
  군부의 중요성 명쾌히 설명
  
  全 대통령은 5월 25일경, 6월 2일 민정당 중집위원들과의 만찬 회동에서 대통령 후보를 추천한다는 일정을 세우고 추천의 말을 작성하도록 지시했으며 1차 초안에 대한 검토를 끝내고 6월 1일 오후에 필자를 불러 보완 지시를 내렸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내용은 자신의 통치에 있어 군부가 차지하는 의미를 설명한 부분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통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권력 부서간의 관계를 군부를 중심으로 해서 설명한 것은 여러 기록 가운데서도 이 대목이 가장 명쾌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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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 대표를 추천한 만찬 모임>
  - 1987년 6월 2일 저녁 6시 30분 全 대통령은 민정당 중앙집행위원 및 민정당 소속 국회 의장단을 상춘재로 초청하여 盧泰愚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全 대통령은 앉은 자세로 미리 준비해간 ‘추천의 말씀 자료’를 육성으로 낭독해갔다.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 세우자는 것
  
  대통령: (준비된 자료를 낭독) 오늘 이 자리는 우리 나라와 민족의 지나간 역사는 물론 미래 역사에 비추어 실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평화적인 정부 이양은 우리의 근대사에서, 아니 우리 5,000년의 민족사에서 처음 있는 일일 뿐 아니라 그 후보자를 결정하는 이 순간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역사적 이정표를 세우는 엄숙한 순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우리가 모인 이 상춘재는 원래 양식 건물이었던 것을 본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청와대에 온 이후에 우리의 전통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내가 이 건물을 지으면서 춘양목을 구하고 전문가의 고증을 받았던 것은 국가 원수의 관저에, 후대에까지 문화재가 될 만한 한국식 전통 건물을 세워서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인이 이 모임을, 다른 회의실이 아니라 이 상춘재에서 가지기로 한 것도 우리 나라 민주주의와 정치를 서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인 전통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우리 토양에 맞게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 민정당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지금 본인이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라와 국민을 책임지는 정치인은 누구나 사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물론 야심이 있어야 개인이나 당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야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되어서 자신의 위치와 분수도 모르고 허욕에 빠져서 집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당리당략에 집착하면 개인은 물론 당과 나라까지 파멸시킨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입니다. (중략)
  
  결단력, 용기, 지도력, 건강이 요건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방법은 그 나라 정치 관행이나 전통, 그리고 국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서양식, 특히 미국식 관행은 말단 당원들의 각급 선거 절차를 거쳐서 후임자를 결정하는 것이고, 일본은 파벌 정치에 따라서 현직 수상의 뜻으로 결정하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미국식의 관례를 우리 현실에 적용하려 한다면 당의 분열을 가져올 우려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처한 국가 상황에서는 격동하는 주변 정세의 추이와 특수한 안보 상황, 그리고 정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고 당의 단합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본인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뿐만 아니라 창당을 한 총재의 입장에서 후보자 지명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중앙 집행위원회가 당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소망스럽고, 이러한 관례가 민정당의 튼튼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중략)
  앞으로 2, 3년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남북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는 이 어려운 시기에 제1의 과제는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 안보입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에 나라의 안보와 번영을 책임질 지도자는 선진 조국 창조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고 당과 정부는 물론 광범한 공직사회와 특히 군부 등 여러 분야를 이끌어 갈 통솔력이 있는,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이 사생결단으로 대처하고 있는 우리의 특수 상황에서 군부의 신뢰와 존경, 그리고 군사 지식을 매우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여 단안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과 용기는 물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지도력과 이러한 모든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건강 등 여러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우리 민정당에는 본인의 후임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분이 많고 그것이 우리 당의 자랑이고 저력이기도 합니다. 그간 각계 여러분들과 상의하고 당원들의 의사도 집약해 본 결과 오늘의 국가 상황을 감안할 때 그 동안 우리와 함께 개혁의 선봉에 섰던 구국의 동지이자 조국 선진화 과업을 함께 추진해 온 이념적 실천적 평생동지인 盧泰愚 대표위원이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에 이르러 이 자리를 통해 추천하는 바입니다.
  
  평생동지 盧泰愚 대표가 최적임자
  
  대통령: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盧泰愚 대통령 후보는 그 동안 국군 보안사령관 등 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해서 누구보다 군부를 잘 알고 탁월한 안보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내무 장관과 정무, 체육부 장관 등 행정부의 직책을 맡아 정부 조직에 정통할 뿐 아니라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국회의원, 집권당 대표위원 등을 거쳐 당과 정치인의 생리를 알고 체험을 쌓음으로써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정치 지도자의 경륜을 두루 쌓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당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신뢰를 확보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와 88올림픽의 국가 양 대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적입자로 盧 대표를 추천하는 나의 이 뜻을 여러분이 흔쾌히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훌륭한 지도자는 주위 사람에게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지 혼자서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오는 6월 10일 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서 집권 제2기를 향한 준비를 본격화하게 되는데 이 재창출이란, 출범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지금과 같이 주변 여건이 순탄치 않은 상황하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국의 안전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중단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정(否定)과 청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그 동안 이룩한 성과를 역사 소에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중략)
  우리에게는 그 동안 이룩해온 빛나는 업적이 있고 국민의 확고한 지지가 있으며 나라를 구하고 발전시켜온 경험과 저력, 그리고 자신감이 있습니다. 역사 창조에는 전통과 시련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용기와 신념으로 단합한다면 못 해낼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빛나는 신화를 창조해온 성과를 바탕으로 영광스러운 민족사를 창조해 나가는 데 우리 모두 단합해서 매진해 나갈 것을 엄숙하게 당부합니다.
  
  대통령 될 때까진 국민한테 벌벌 기어야 돼요
  
  (20분 간의 낭독이 끝난 뒤 참석자들 박수로 동의 후 함께 축배)
  盧 대표: 두려움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각하, 끝까지 지도해 주십시오 동지 여러분, 지도해 주십시오.
  대통령: 盧 대표는 대통령후보가 되면 전 국민한테 벌벌 기어야 돼요. 대통령이 되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야당이나 언론에서 앞으로 우리 후보한테 공격을 할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당에서 대비책을 잘 세워 나가야 합니다. 유언비어나 모략이 굉장히 많이 나올 거요. 후보가 되고 나면 신변 안전 문제도 생각해야 돼요.
  우리 나라가 특수 상황이기 때문에 이북에서 특공대가 노릴 수도 있고…… 우리 나라에서 지금까지 집권당 대통령 후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위험 요인도 많아요. 사실은 후보지명 시기를 늦추려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 정치 상황이 특수하기 때문에……
  우리 경호 법에는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서만 경호해주는 규정이 있고 후보한테는 해줄 수 있는 규정이 없어요. 우리 경찰은 주요 인사에 대해서 경호 경비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경찰이 후보 경비에 지나치게 나서면 국민의 저항이 있을 수 있으니 당에서 전문가들이 신변 안전 문제를 특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봐요.
  오늘 날짜를 잘 잡았어요. 비가 조금 모자랐는데 날씨도 활짝 개고.
  대표위원께서 한 잔씩 돌리세요.
  
  웃는 사람이 무섭더라
  
  대통령: (尹吉重 의원에게) 내가 대통령 그만두고 나가면 연희동이 내 표를 한 표라도 얻어야 돼요. 내가 고정표가 1,000표는 있어요.
  (兪學聖 의원에게) 군에서는 내가 형님으로 대했는데 국회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李鐘贊 의원에게) 종찬이 이봐, 잘못하면 안 돼. 내가 누구란 걸 알지!
  盧泰愚 후보는 金日成이와 남북회담을 해도 문제 없어요. 웃는 사람이 무섭더라.
  
  감격과 흥분으로 상기
  
  민정당 대통령 후보를 총재가 추천하는 의식은 청와대 경내 한식 건물인 상춘재 대청마루에서 상석에 총재가 앉고 대표위원, 국회의장, 고문들과 중집위윈들이 저녁 술상을 앞에 두고 책상다리 자세로 앉은 가운데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全 대통령은 엄숙한 표정으로 준비된 발언 자료를 또박또박 낭독해 나갔으며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기침소리 하나 없는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盧泰愚 대표위원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감격과 흥분으로 상기된 표정으로 좌중에 인사했다. 그리고 모두 축배를 들었다.
  낭독을 마친 全 대통령이 웃으면서 盧 대표위원은 대통령 후보가 되면 전국민한테 벌벌 기어야 된다고 하면서 가벼운 어조로 돌아가자 굳어졌던 분위기는 다시 풀어지기 시작했다.
  盧 대표위원은 잔을 들고 좌중을 한 바퀴 돌면서 일일이 술을 권하고 마시며 악수를 나누었다. 全 대통령이 참석자들에게 한 사람씩 술잔을 보내고 참석자들 역시 여느 만찬 모임 때와는 달리 자유스럽게 자리를 옮겨가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흥을 돋우어 떠들썩한 축하연으로 바뀌었다.
  
[ 2005-07-18, 16: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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