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사태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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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둑판을 자꾸 쓸면 안 된다>
  - 1987년 6월 10일은 6월 사태의 막이 오른 날이었다. 이 날 민정당 전당대회가 盧泰愚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에 때 맞추어 재야, 학생 세력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고 여기에 일부 시민들이 가세함으로써 全 대통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다음날인 6월 11일 정오 全 대통령은 청와대 대접견실서 있은 우수학회 대표들 초청 오찬에서 학생시위에 대해 격하게 이야기 하였다. 이 날 참석자는 許 雄, 丁炳烋, 梁興模, 金河龍, 金熙執, 林熺燮, 宋大炫, 文詳得 교수 등과 문교부 장관이었다.
  
   이 정부가 눈 하나 깜박합니까
  
   대통령: 요새 학생 데모를 보면 간판은 학생이고 사실은 레닌 식 혁명가들인 것 같습니다. 레닌도 29세 때 혁명운동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학생들이 어용교수라고 한다고 해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위축된다면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 학자들은 그런 데에 구애 받으면 안 되겠어요.
   나도 자식이 있습니다. 넷이나 돼요. 나는 애들을 아주 보수적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밤 12시가 넘도록 애들이 집에 안 들어오면 내가 지키고 있습니다. 며느리를 데리고 앉아서 책도 보고 하면서 기다리지요. 내가 문 앞에 지키고 앉아서 '늦었구나' 하면 들어오다가 놀래요. '사고 날 까봐 걱정이 되어 네 아내와 함께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고하면 아침에 사죄를 합니다. 어릴 때에는 회초리로 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키우니 넷이 있지만 한 놈도 말썽을 부리지는 않습니다.
   교육자들은 남의 지식을 자기 자식을 다루는 이상으로 애정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고 인기를 끌려고 적당히 하면 나라 장래가 암담하게 됩니다. 교수라고 하면서 시류에 편승해서 성명서도 내고 하는데, 아니 교수가 성명서를 낸다고 이 정부가 눈 하나 깜박합니까. 성명서를 낼 정도면 화염병을 들고 학생들을 진두지휘하든지. 그건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어떤 국회의원도 보면 그런 식으로 학생들을 선동하는데 자기 자식은 데모에 안 내보내요.
   오히려 여당 의원의 자녀가 데모를 해서 문제를 일으켰으면 일으켰지 야당 의원들 자녀들은 문제 일으킨 것을 내가 본 일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무슨 정치 지도자입니까. 나는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종교단체도 그래요. 해방신학이라는 게 죄악입니다. 니카라과가 공산혁명을 했는데 가톨릭이 관여했습니다. 그 나라 외무 장관이 신부입니다.
   종교인으로서 정치를 하려면 전에 신민당에 스님이 한 분 들어갔듯이 그렇게 당당하게 들어가야 돼요. 종교의 이름을 쓰고 정치를 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나는 봅니다.
  
   지금도 비상계엄으로 싹 쓸 수 있다
  
   대통령: 사회는 복잡한 겁니다. 나라를 끌고 가는 주류가 있습니다.
   자기 전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지혜를 쏟으면 나라가 곧 선진국으로 발전합니다. 올림픽이 끝나면 중공과의 교역이 현재 13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가 되는 건 간단합니다.
   소련 시장이 인구 2억 6,000만이니 우리 신발이 1억 달러어치가 들어가고 있어요. 시베리아에서 원목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헝가리도, 유고도 우리와 합작하려고 하고 있어요.
   올림픽이 끝나면 새로운 시장이 세 개나 더 생깁니다.
   우리 언론도 그래요. 언론이 모든 국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흥미 위주로 쓰고 있어요. 어제 같은 6.10 데모다 뭐다 해서 두 열차가 충돌한다는 식으로 쓰는데 그러면 언론의 신용이 떨어집니다. 국민을 계도해서 국가 이익을 위해 단합하도록 해야지. 언론이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 됩니다.
   일본의 신문들도 과거에는 하도 못된 소리만 해서 일본 사람들이 신문을 안 사봤대요. 신문이 상당히 비판을 받았다고 해요. 그 후에 대오각성을 했다고 들었어요.
   우리 나라에서 데모하는 거야 40년간 해온 것 아닙니까. 직업적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남북전쟁이라도 일어난 듯이 문제를 만들어 놓으니… 그래도 다행한 것은 모든 시민이 절대적으로 협조를 해주어서 승부가 끝났어요. 정치는 의회에서 정책으로 싸워야지 길거리에서 싸우는 정치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정당을 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통민당 정강정책에 체제와 이념을 초월한 민주통일이라고 했는데 좌경사상을 가진 지원 세력의 압력을 받아서 그런 문구를 넣은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공산화도 통일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월남이 망한 게 아니고 민족통일을 한 거 아니냐고 하는 식의 애들 논리이지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게 이북이 원하는 통일론입니다. 반공의 보가 터지듯 물결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어요. 여기에 정부가 손을 안 대면 모든 게 기정사실화 되어서 확산되어 버립니다. 통민당 정강정책 문제는 자구를 수정하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어요. 어제도 공산당 식 게릴라 식으로 데모를 했어요. 내가 7년 동안 대통령 하면서 군대를 한 번도 안 써먹었어요. 지금도 명령을 해서 비상계엄을 하든지 위수령을 하면 싹 쓸 수 있습니다.
  
   바둑판 자꾸 쓸면 바둑이 안 늘어
  
   그러나 바둑을 두다가 잘 안 된다고 자꾸 쓸고 하면 바둑은 안 늘고 성격만 나빠집니다. 바둑에 지더라도 연구를 해서 페어 플레이로 나가야 합니다. 가급적 군부 동원을 안 하고 정치 역량과 정치 타협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데… 정치를 해보니 우스운 것이 민주주의를 하자는 사람들이 소수가 다수를 보고 백기를 들고 나오라고 하니 민주주의가 됩니까.
   통민당은 의식 구조가 무법천지입니다. 처음에 李敏雨 총재가 몇 월까지 시한 준다, 그 때 가서 대통령 물러가라고 했어요. 내가 그 때 잡아넣으려고 했습니다. 국가원수 모독이고 헌법 위반이고… 그러내 내가 두고 봐라, 너희 인내심이 강한지 내가 강한지 보자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 후 李 총재를 점심에 불렀어요. 연세 많은 분이 그렇게 모를 수가 있느냐, 잡아넣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법이 허용하는 것 이상으로 하면 폭력이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나를 만나고 당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보니 생각보다 아는 게 많더라,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이번에는 그 분이 사꾸라로 몰려요. 정당에서는 사꾸라라고 하고 학계에서는 어용교수라고 하지요.
   데모하는 사람들도 현실을 알아야지… 나라가 잘 되어야 가정도 잘 되는 겁니다. 내 임기가 8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인심 얻고 나가기도 바쁩니다. 그렇지만 나는 남은 8개월 동안 가장 무서운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법을 위반하는 것은 인정사정 안 둡니다. 0.1%가 마치 국민대표인 것처럼 불안감을 주고 있어요.
   아주 엄하게, 완전히 휘어 잡아놓아야겠어요. 전통을 확실히 해놓고 나가겠어요. 그만두고 나서 맞아 죽더라도 내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 눈치보고 저 눈치봐서 되겠어요? 일하기 위해서는 욕도 얻어먹어야 해요.
   잘 되면 욕한 사람도 반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위 확산, 위기의 도래
  
   全 대통령은 6월 2일 중집위원들과의 만찬에서 대통령 후보를 추천한 데 이어 10일 전당대회 때까지 통상적인 일정을 가졌다. 6월 3일 오후에는 청와대에서 평통해외자문위원 800명과의 리셉션 행사를 가졌고 4일에는 동해에서 해군의 '統海/' 훈련을 참관하고 귀경했다. 현충일인 6일에는 아침 6시 25분부터 국립묘지를 참배, 충혼탑, 애국지사 묘역, 李承晩, 朴正熙 전 대통령 묘소, 버마순국사절 묘역 등을 차례로 돌며 분향하고 묵념을 올렸으며 이어 청와대에서 盧 대표로부터 전당대회 준비상황을 보고받았다. 6월 8일 오후에는 우산유 버마 대통령이 방한, 6월 12일가지 머무는 동안 공항 출영과 정상회담, 공항 환송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힐튼 호텔에서 열린 축하연에 참석했다.
  10 일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주최 범국민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제대로 열리지 못했으나 전국적으로 4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1,000여명은 명동성당에서 농성시위를 시작, 경찰과 철야 대치했다
   全 대통령이 11일 낮 우수학회 대표들에게 '바둑판을 쓸면 안 되다, 지더라도 페어플레이로 나가야 한다' 고 한 말은 나중에 직선제 수용으로 방향을 바꿀 때의 논리와 동일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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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안정된 사회>
  - 1987년 6월 11일 저녁 6시 30분부터 2시간 20분 동안 全斗煥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부부들을 청와대 대접견실로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다. 司空 壹 경제 수석비서관과 金鐘鍵 전 사정 수석비서관도 참석하였다.
  
   李 대통령이 학생데모로 정권 넘어간 선례 남겨
  
   대통령: 방금 나오면서 뉴스를 들으니 명동성당에 1,000여 명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건국대 사태 때도 그랬지만 포위해서 가두어 놓고 성당 측에서 데려가라고 할 때까지 아주 장기적으로 놓아두는 것도 좋겠어.
   黃善必 MBC사장이 통계를 가져왔는데 재미있어. 83년 한국일보 갤럽 여론조사 때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답변한 사람이 63%였는데 85년 조선일보 조사에건 70%, 86년 동아일보 좌에서는 77%라는 거야. 한 나라에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80%가 넘으면 그건 안정된 사회야.
   李 대통령이 나쁜 전통을 만든 게 하나 있어. 학생데모로 정권이 넘어가는 선례를 남긴 거야.
   柳興洙 총재 비서실장: 데모 집결지의 시장상인들이 플래카드를 걸고 데모한 일도 있었습니다.
   대통령: 그게 진정한 민의야. 언젠가 한신대 데모 때는 농민들이 욕을 해주어서 해산했대.
   이 방(대접견실)은 용도가 많아. 여기서 보직 신고하지, 회의 하지, 외국 손님 인사하지, 점심, 저녁에 밥도 먹고, 방 하나가 다목적이야. 필리핀 대통령 궁에는 영빈관이 2개 있는데 하나는 700상 들어가는 곳도 있어. 내가 외국손님한테 항상 영빈관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데……. 후진국일수록 국가 원수의 생활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해요.
   그저께 버마 대통령과 회담했는데 그 사람이 자기네 나라의 공산주의 역사를 설명하다가 회담 시간을 다 썼어. 독립 후 정당이 하도 많아서 국론 분열을 막느라고 네윈이 당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해요.
   유산유, 우네윈 해서 한 집안인가 했는데 기혼 남자한테는 전부 '우'를 붙인다고 해. 버마 이름은 같은 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이름이 같고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일 수도 있다고 해요. 우리도 李順子를 전화번호부에 찾아보면 10페이지는 될 거야.
   李順子 여사: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학년에 같은 이름이 셋이 있었어요.
  
   중산층에서 신뢰감
   全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의 전출입이 있을 때 저녁 식사를 함께 해온 관례에 따라 5.26개각에 각료로 들어간 두 수석비서관을 위해 11일 저녁을 함께 했다. 여기서 중산층의 통계에 언급한 대목 역시 앞으로의 정국 수습 방향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全 대통령은 중산층을 안정 희구 세력으로 판단하여 상당한 신뢰를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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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모 가열과 명동성당 사태>
  - 全斗煥 대통령은 1987년 6월 13일 아침 9시 10분 李漢基 국무총리와 安武赫 안기부장 등 시국 관계책임자들을 소집, 시위 상황을 점검하고 자신의 인식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전 11시까지 계속된 이 날 회의의 참석자는 高建 내무, 正海昌 법무, 李雄熙 문공 장관, 朴英秀 비서실장, 安賢泰 경호실장, 정무 1, 2 법무, 공보 수석비서관 등이다.
  
  '시민 합세가 늘어 심각한 상태입니다'
  
   대통령: 여러 상황에 대해서 내무 장고나이 설명해 보시오.
   高建 내무 장관: 치안책임자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6.10 시위 진압은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후 명동대회가 기폭제가 되어 11일, 12일 도심지가 시위 사태로 악화되었습니다. 21개 대학 1만 2,000명이 교내 출정식을 갖고 명동성당으로 합류했고 6월 12일에는 1만 3,000명이 교내 시위를 벌였습니다.
   가두시위는 6월 11일에 22개소 연 4,700명, 6월 12일은 83개소 연 5만 7,000명이 참가했습니다. 6월 13일에는 도시 게릴라 양상을 보이고 있고 최고 1만 2,000명이 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문제는 일부 시민이 동조가담 하거나 고무하는 것이 심각한 현상입니다.
  6 월 11일에는 주변에서 관망하고 손뼉을 치거나 경찰에 야유를 보냈고 6월 12일에는 군중이 합세했습니다. 시민의 호응도가 두드러졌습니다. 6월 12일 오후 2시경에는 시위대가 약이 필요하다고 하자 시민들의 즉석 모금이 있었습니다.
   진압 경찰은 피로가 쌓여있습니다.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나 주변 군중들의 야유로 사기 면에서 위축되어 있습니다. 시위 진압을 위한 최루탄 사용에 비판이 많습니다.
   대통령: 어떻게 전망을 합니까.
   高 내무: 명동성당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시위 사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의 주요 대학이 시험 기간이지만 학생들이 이에 90%까지 거부하고 있어 소요 요인은 계속 잠재해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 내가 오늘 여러분을 오시라고 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의연한 태도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소의 시민 호응이란 으레 있게 마련이고 경찰이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高 내무: 서울이 심합니다. 광주는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국제축구대회는 별 상황이 없었습니다.
  
   경찰이 맞고만 있는 것 못 보겠어
  
   대통령: 경찰은 방패밖에 없고 스스로 보호할 수단이 없으니 맞고만 있어요.
   내가 못 보겠어요. 경찰이 두들겨 맞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번에 보니 정부가 방대한 조직과 두뇌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상대한테 한 수 뒤지고 있어요. 이번의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데모 주모 체제와 재야, 야당의 연계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급진좌경 세력과 반체제 세력이 연계되어 있으니 그 연계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시오. 단편적으로 들여다보지 말고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12대 국회의원선거 대부터 연결이 되어 그 학생들이 야당 선거운동을 다해 주었어요.
   그래서 현 정부를 타도하고 그 후에는 야당 세력도 타도하려는 3단계 공산전략이 아니냐고 볼 수 있어요. 저들은 이번에 정부의 공안 치안 지휘 체제가 허술한 것으로 보고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돼요.
   명동성당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 있는 300명 정도는 1년 있어도 끄떡없을 것 같아요. 장기전을 하면 우리한테 불리합니다.
   명동성당 측에서도 학생농성을 다 지지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가톨릭이 용공주의자들을 비호하는 인상을 주어서 되겠느냐 하는 점을 부각해서 여론이 일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어요.
   언론에 대해서도 올림픽 방해는 심각한 것이라는 점을 잘 설명해서 협력을 유도해야 합니다. 언론한테도 이 체제가 무너지면 언론이 무슨 덕을 볼 게 있는지 확실히 얘기해서 여론으로 저들을 견제하도록 해야 돼요.
   지금 명동성당 안에는 주모자는 거의 도망가고, 주모급은 몇 명 뿐일 거요. 정부로서는 명동성당 사태에 인내를 보여주도록 합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잘 대처해 왔는데 다 들어줘도 별 것 아닙니다. 이왕 참은 것 내일까지는 참도록 하시오. 전국교구장한테도 경찰이 성당에 들어가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얘기해주고……
   총리 의견을 어때요.
   李漢基 총리: 명동성당이 성역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성역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 진입하면 심각하니 성당측이 자진해서 학생들을 풀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듣기에는 경찰이 들어오면 추기경이 막겠다는 말도 들립니다. 우선 위기는 넘겨놓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쪽은 사생결단인데 이 쪽은 안 그런 것 같아
  
   대통령: 총리의 생각도 상황에 맞는 말씀이나 위기라고 하기보다 내가 늘 소망하는 것은 임기만료 8개월을 앞두고 비상조치라든지 계엄선포 같은 이런 일이 없이 우리가 좀 괴로워도 평화적 정부 이양의 선례를 남기고 넘어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쉬운 방법은 계엄을 해서 모든 문제를 정리하는…… 정계, 문학계, 종교계, 학원, 교수 중에서 민중사상에 오염된 사람부터 한 번 싹 쓸어서 국기(國基)를 확립시키는 방법인데 우리가 늘 그런 쉬운 방법을 택해선 안 좋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7년 가까이 여러 번 그런 구상을 했지만 그때마다 참아 왔는데 여러분이 슬기를 모아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대통령: 저들은 사생결단의 태세로 나오는데 우리는 안 그런 것 같아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사생결단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자는 거지 독재하자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동요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친 경찰관들을 여러분이 잘 격려해서 위로해야 할 것이고 총리께서도 치안본부도 가고 시경에도 가셔서 격려해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사회질서 확립, 국민 보호를 위해서 경찰이 기동성 있게 조치해야 합니다. 경찰이 맨날 비참하게 데모대한테 맞고 가만있는데 무슨 데모 진압이 그렇습니까. 데모하는 사람들을 제압해야지.
   경찰들이 정부 공공시설을 경비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직장 예비군이 지키게 하고 경찰 병력은 뽑아서 기동타격대로 만들어 데모대의 배후를 차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쟁할 때도 보면 군 병력이 무너져서 도망치게 되면 서너 명만 따라오면서 총을 쏴도 뒤로 돌아서서 총을 쏠 사람이 없게 돼요. 데모 군중은 도망가기 시작하면 수만 명을 경찰이 열 명만 쫓아도 돌아설 사람이 없을 거요.
  
   지침은 '인내'
  
  6 월 12일 공식 방한을 마치고 떠나는 버마 우산유 대통령을 전송하고 청와대로 돌아온 全 대통령은 13일 아침 총리, 안기부장, 내무 장관 등 시국관계 장관들을 소집해서 6.10 사태를 직접 점검하고 정부가 대처하는 지침을 부여했다. 정부와 야당에서는 11일, 12일 계속 대책을 숙의, 13일에 6.10 대회를 주도한 13명을 구속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시국에 대한 초강경 대응의 신호로 받아들였으나 대통령의 지침은 인내하자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총리의 위기의식과 全 대통령의 '인내'가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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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 관계자 비상소집>
  - 全斗煥 대통령은 1987년 6월 14일(일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10분까지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 안보 장관, 군, 치안책임자회의를 주재하였다. 참석자는 안기부장, 외무, 내무, 법무, 국방, 문교, 문공 장관, 서울시장, 합참의장, 육, 해, 공군 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보안사령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시경국장,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 정무1, 정무2, 교문, 공부, 법무 수석비서관들이었다.
  
   오늘 새벽 명동성당에 내가 들어가려 했다
  
   權福慶 치안본부장: 6월 12일에는 연 5만7,000명이 데모에 참가했고 13일에는 1만3,000명입니다. 월요일에 대비, 경찰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高建 내무부 장관: 6월 11일, 12일은 데모가 가속화되다가 13일은 절반으로 감소되었습니다. 월요일에 12일 정도의 많은 사람이 데모에 나와도 경찰 능력으로 진압할 자신이 있습니다. 경찰은 어제부터 분산 위주에서 연행을 배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연행조사를 해서 분리시켜 주동자를 자꾸 색출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새벽 3시에 명동성당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성당도 정신적 구원이란 본연의 역할을 해야지 좌경분자의 거점이 되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그런 종교적 장소는 보호해 줄 수 없다고 밝히고…… 설혹 나를 납치 하든지 하면 경찰이 나를 구출할 명분이 있지 않겠어요. 내 얘기를 듣지도 않겠지만 학생들한테도 내 능력 있는 대로 훈계도 하고…… 대통령으로서 경솔한 행동이 될 것 같고 여러 사람한테 누를 끼칠 것 같고 해서 준비를 다 하고 있다가 보류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역사상 이렇게 융성해가는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나는 집권욕이나 정권욕이 없이 민주주의를 한번 해 보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적 정부 이양을 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긴장된 한반도에서 성공시킴으로 해서 긴장완화를 도모할 수 있고 동족간의 전쟁을 억제할 수 있고 숙원인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그 국력을 바탕으로 평화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민주 절차에 따라서 통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경찰력으로 더 못 버티면 초헌법조처 할 수 밖에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해도 6.10사태 같은 것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국민에게 불안을 주고 피해를 주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경찰력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발동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통치권자로서 대통령에 지워진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임을 안 하면 직무유기가 되는 것입니다. 경찰로 치안 유지가 안 되는 경우에는 군부에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소신은 안 그렇지만 과감히 강경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국민의 자유를 일부 유보하는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업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내가 7년간 제임하는 도안 경찰이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대가 한 번도 출동 안 하고 지나온 것은 경찰의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좀 어려워도, 경찰이 고생스러워도 통치권자의 비상대권을 행사하지 않고 치안 능력에 의해 정부가 호응을 얻을 수 있게 슬기를 모아서 잘 수습해 넘어간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에는 진통이 따르게 되어 있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대통령의 비상대권 발동이지만 고통스러워도 그런 것 없이 나가는 게 내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넘겨서 정권을 이양해 주고 나면 그 때부터는 반체제 용공 세력이 약화되는 큰 변수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 임기가 8개월 남았지만 대통령 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6개월뿐입니다. 저 사람들은 정부가 취약한 시기로 보고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도 임기 만료를 앞두고는 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장점이고 또 약점입니다. 우리는 여가 이래 이것을 처음 해보려고 하는데 이 때가 조심해야 할 시기입니다.
   내주 중으로도 경찰 능력으로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장기화되는 것은 국가 장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못해요. 대통령 비상조치를 했을 때 대내외적 손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하나의 큰 혼란이 와서 발전을 중단하는 슬픈 역사가 나오는 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비상조치를 발동하면 초헌법적인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겁니다.
  
   군은 돌아가서 즉각 출동준비 갖춰 놓도록
  
   대통령: 예를 들어 학교를 휴교시키고 군대가 주둔하는 거고 정당도 일부 해산 시키고 헌정 일부를 중지시켜야 하고 이런 상황 하에서 올림픽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군 지휘관들을 오시라고 한 것은 내가 이미 장관을 통해 지시했는데 비상시 계획에 의거해서 부산은 00사단이 주요 대학에 다 들어가고 육군 군법회의 설치준비를 하고 서울은 중심부인 고대, 연대 등 몇 개 대학에 주둔시키고 병력 출동준비도 다 하고 정신교육, 진압교육을 철저히 시켜서 군이 출동하면 완전히 일시에 사회가 전부 안정될 수 있도록, 국민 생활이 보호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주에 들어가서도 경찰력으로 완전히 대처할 수 있다고 하니 믿음직하고 고마운 일이나 경찰이 진압할 수 있으면 비상조치는 안 할 것이고 계속 산발적 시위로라도 시민을 괴롭히면 대통령으로서 비상통치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대통령: 만약 발동할 때는 정부와 군이 협조를 잘 해야 됩니다.
   군이 과욕을 부리면 그런 조치에 부작용이 생기니까. 이제는 우리가 후진국이 아니고 정부나 군의 수준이 높으니 협조 체제를 잘 유지해서 모든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오늘 만반의 준비를 해야 내일부터 정세를 관망하면서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는 태세가 되지 않겠느냐 해서 여러분을 오늘 모이게 한 것입니다. 군은 돌아가서 즉각 출동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오라고 했는데 경찰이 자신 있다고 하니…… 안기부에선 비상조치 할 때의 여러 상황에 대해 법적으로도 준비하고 지금까지 법적인 문제 때문에 검찰에서 조사하지 못했던 것도 비상조치를 하면 용공성 있는 사람은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합니다.
   용공, 폭력주도 정당은 바로 해체시키도록 하고…… 국민 전체를 괴롭게 하고 나라 발전에 중단을 가져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책임진 사람들이 그만한 희생 정신이 없이는 나라의 발전이 있을 수 없어요.
  
   안 잡을 테니 명동성당에서 나가라고 하시오
  
   대통령: 이번 사태는 경찰이 지금까지 불상사 없이 진압을 잘 했습니다. 이 정도 범위 안에서 5,000명 내지 1만 명이 나와 가지고는 비상조치를 할 명분이 없어요.
   이보다 더 확대될 때는 각 기관이 분서해서 나한테 보고해주기 바랍니다. 질질 끌지 말고……
   사태는 극한 상황에 가서 하면 힘이 없어서 안 돼. 시기를 놓치면 안 돼요.
   명동성당은 오늘 자정을 기해 전부 풀어주시오. 안 잡을 테니 나가라고 해요. 시경국장이 추기경을 만나자고 신청해서 오늘 저녁에 다 내보내라고 해요. 그러면 경찰을 철수시키겠다고 해요.
   경찰관들은 햇볕 뜨거운 곳에 있지 말고 지하실이나 편안하게 대기할 수 있는 곳에 있게 해요.
  
   맑은 초여름 하늘 아래서
  
   全 대통령은 일요일 아침에 안보관계 장관과 군, 치안 책임자들을 청와대로 비상 소집해서 군 출동준비 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헌법상 비상대권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사태가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시켜놓자는 뜻이었지만 대통령의 지시는 매우 심각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넥타이를 매지 않은 색깔 있는 콤비차림의 대통령은 이 모임을 청와대의 회의실이 아닌 상춘재 앞뜰 잔디 위에 간이 의자를 갖다 놓게 하고 맑은 초여름 하늘 아래서 주재했다.
   지시를 하는 대통령은 밝은 표정과 명랑한 어조를 보여 가벼운 야외 행사에 나와 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비상출동준비 지시는 극히 실무적인 성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예비용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날 모임에서 밝힌 새벽의 명동성당 기습방문 아이디어는 그 시간에 자지 않고 있던 2남의 만류로 백지화되었다. 그는 명동성당이 성역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찰력을 투입해서 강제해산시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단신으로 들어가 대응하면 여론을 유리하게 돌릴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이것은 全 대통령이 이 무렵 비상 대권의 발동을 피하면서 시국을 수습하는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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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은 준비가 끝났지만>
  - 1987년 6월 16일 저녁 6시 30분 全斗煥 대통령은 신임 李漢基 총리서리 등 국무위원 전원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 축하 저녁을 함께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올림픽이 걱정스럽다
  
   대통령: 총리서리에 대한 국회 인준이 끝난 후에 저녁을 하려고 하는데 차일피일하다 보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어요.
   요새 대일 수입(對日輸入)이 늘어났습니까.
  羅雄培 상공 장관: 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환율 때문에 중소기업이 수지가 안 맞는다고 뉴스에 나오던데.
   鄭寅用 부총리: 곧 안정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 잘 이해시켜 나가도록 하시오. 기업이 원가 절감 노력을 해야지 환율차(換率差)를 가지고 경쟁력을 갖추려고 해서는 곤란해요.
   상공 장관: 수출이 60%를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우리 나라는 해방 후 10년 주기로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朴鍾哲 사건 하나로 시작이 되어 시끄러운 일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
   체육부 장관이 좀 나서야겠어요.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괴의 사주에 의해 움직이는 게 분명한데 내가 염려한 대로 벌써 뉴욕 타임즈 등에서는 시위 사태에 따라 올림픽의 안전 문제를 들고 나오는 모양이던데. 반체제와 반정부세력이 연합전선을 펴는 데 빨리 이 줄을 끊어야 되겠어요. 르잔느 회담은 언제지요.
   李世基 체육부 장관: 7월 14일부터 15일까지입니다.
   대통령: 올림픽이라는 게 다시 없는 호기인데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거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없는 집에서 태어나도 노력만 하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층이 정해져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우리 젊은 아이들이 그런 사상에 물들어서 사생결단으로 체제 전복을 하려고 하니 교육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잘 알아야 해요. 오늘날 먹고 살 만하게 된 게 갑자기 된 걸로 알기 쉬운 근대사에 중점을 두고 교육하는 게 좋겠어요.
   어느 나라나 먹고 살만하게 되면 편안해지기를 원하고 나태해지기 쉬워요. 구라파에서도 공산당과 사회당이 후퇴하기 시작하는 추세 아닙니까.
   영국은 대처 수상이 여자인데도 대단해요. 160년만에 처음으로 3선을 했다고 하지요. 한때 노동조합 지도자를 잡아넣어서 여론이 안 좋았는데 오히려 그게 역전이 되어서 3선에 성공했다고 그래요. 그 양반이 테러를 당해 죽을 뻔도 했지. 미국 레이건 정책을 제일 지지하는 사람인데 반대 세력을 꽉 누르고 하는 걸 보면 대단해.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두 달이 안 가요.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것도 두 번 세 번 텔레비전에서 틀면 싫어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해요. 내가 버마 가서 죽을 뻔한 것도 이제는 모두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레닌이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게 민중혁명인가?
  
   대통령: (저녁식사 후) 朴군 사건으로 6.10 이후 학생시위가 연일 계속되어 국무위원 여러분과 함께 관계 부처에서 많은 애를 쓰고 있고 경찰이 더운 날씨에 겨울에도 참기 힘든 복장을 하고 데모 진압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 현실에 대해서 다시 인식을 하고 시대적 중요성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건국 이래 금년과 같이 국운이 융성 하는 호기를 맞이해본 일이 없을 겁니다. 이 호기를 놓친다면 우리 형편으로는 다시는 도약하지 못하고 발전할 수 업는, 제자리걸음밖에 못 하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도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존권을 보존하면서 우리 역사를 영광스럽게, 세계 속의 선진국으로 발전시켜서 세계사의 흐름에 당당한 주역국가로 참여해야 되지 않느냐고 소망합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역사도 사람이 창조하고 역사를 망하게 하는 것도 그 시대의 인물들입니다.
   각료 여러분은 이 호기를 활용해서 나라를 선진국으로 반드시 끌어올려야 하는 역사적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 소명이 확실하고 나아갈 길이 명확한 이상 주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뭐가 있겠습니까. 개인적인 사리사욕이나 영예를 위해서 우리가 일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나라의 장래와 후손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일을 하다가 보면 사건이나 사고가 나기 마련이고 선진국에서는 문제가 될 게 없는 일이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배경 때문인데 우리가 그것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취임한 이후에도 이런 시험기를 여러 번 겪었어요.
  
   초조해하지 말고 해결방안을 생각해야
  
   대통령: 그때마다 지식인들이 염려를 하고 했는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앞장서기 전에 염려부터 하는 것은 북괴 金日成이 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걱정만 하면 사기가 저하되고 의욕이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걱정도 해야 되겠지만 해결방안을 먼저 강구해야 돼요. 여러분 친척 가운데서도 요즈음 상황에 대해서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이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걱정하는 소리가 유언비어가 됩니다.
   학생과 종교인들이 일어나도 군대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권이 절대 쓰러지지 않아요. 레닌이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게 민중혁명이었습니까. 결국은 군부 쿠데타로 제정(帝政) 러시아가 망한 것입니다. 민중혁명으로는 어떤 희미한 정권도 안 넘어가요. 학생 몇 사람 떠드는 것 연례행사 아닙니까. 5월에 끝나야 할 행사가 사고가 명분을 주었기 때문에 한 달 연기된 거지.
   이런 때일수록 총리를 중심으로 각료들이 단합해서 의연하게 모든 사태를 수습하고 국가 목표와 계획을 추진하는 데 차질이 없어야 합니다.
   부인들께서도 친척들이나 주위에서 잘못 인식하는 게 있으면 설명을 해주고 수고하는 전경들한테 음료라도 사가지고 가서 격려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지금 선택의 여지가 어디 있습니까.
   올림픽을 해야 됩니다. GNP가 몇 천억 달러 되어도 우리가 이 올림픽을 다시 따올 수 없습니다.
   이것을 못 하게 하려고 하는 세력들이 뭘 원하겠어요. 그 사람들은 민주화라고 하지만 공산주의화를 민주화라고 하는 겁니다.
  
   경제가 잘 돼 작년에 비상대권 발동을 참았어요
  
   대통령: 내가 이제 7년째 대통령을 하지 않습니까. 총리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80년 3월, 4월, 5월에 전국적으로 시끄러웠던 것은 말할 수 없었어요. 서울시내에 학생이 수십만 명이 나와서 깔렸고 부산, 대구...... 심장 약한 사람은 까무러치게 되어 있었어요. 그 때 계엄사령관, 국방 장관, 내무 장관, 치안본부장이 겁을 먹어 얼굴이 사색이었습니다. 나도 나가서 살펴 보았는데 데모대가 나오기도 참 많이 나와 있었어요.
   나라가 안보적 측면에서, 사회적 측면에서 망하게 되어 있었어요. 내가 합동수사본부장인데 용의자들을 잡으라고 하면 잡지 않고 정보를 알려주어 도망을 가게 해요. 검찰이나 판사도 사정을 모르니 그 모양이야. 우리가 결국은 법으로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 고비가 몇 번 있었지만 잘 정리하고 넘어 왔어요.
   지금은 두뇌싸움입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조직력, 힘, 인물, 지식과 경험 모드 걸 따져 볼 때 야당이 나온다고 해서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그러나 모두들 편하게 하려고 하고 진정으로 일을 하지 않고 구경이나 가버리고 바둑에 훈수 두는 입장에 있는 것 같이 무책임한 짓을 하면 방대한 힘도 쓰러지게 돼 있습니다. 로마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쓰러졌습니까. 내부의 부패와 분열이 원인입니다.
  우리 나라의 이처럼 좋은 기회. 나는 이것을 내 목숨과도 바꿀 각오가 돼 있어요. 반드시 이 호기를 발전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기회는 자주 주어지는게 아닙니다. 꼭 살려야 돼요. 설사 평화적인 정부 이양이 안 되는 한이 있어도 올림픽은 꼭 해야 돼요. 공직자가 방관자 같은 자세를 가져선 안 됩니다. 우리가 이룩해온 모든 업적과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우리가 힘이 들어도, 군부를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가 반보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내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발동하려고 했어요. 경제가 잘 돼 한 달 더 참자 참자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지금도 보세요. 수출을 자꾸 줄이는데도 60% 늘고 있어요. 시끄러운 사람은 시끄러워도 기업과 근로자가 열심히 하니까 결국은 성장해 나가고 있어요. 이게 우리 나라의 복(福)이지.
  사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기분 나쁘고 자존심도 상해요. 내가 밤낮으로 뛰고 노력했는데 그 성과가 아주 크다고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평가가 나겠지만 양심적으로 평가할 때 역사 발전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고 우리가 자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참고 인내하는 것은 우리가 다져놓은 기반이 있는데 8개월 남아있는 것을 못 넘기고 힘으로 모조리 쓸어서 집어넣으면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역사를 순리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게 아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합리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전통을 세우기 위해 비상대권 발동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군부는 다 준비가 돼 있지만.
  
  언론이 나라 위한다면 삐라를 써서는 안 돼요
  
  대통령: 그런 일이 터지면 GNP 1,000억 달러는 간 곳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나 개인이 장기 집권하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나라의 발전을 위하는 것 아닙니까. 언제든지 여러분의 어적은 높이 평가 받을 것이며 절대 독재의 앞잡이로 평가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정권을 넘겨준다니까 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이 잘못된 전통을 바로잡으려면 용기와 슬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신념을 바탕으로 뱃심을 가지고 밀고가야 돼요. 전공직자가 우리가 한 일,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언론 문제도 각 부서가 너무 신경쓰지 않는 게 좋겠어요. 당당하게 논리로 대응해야 돼요. 내가 언론의 공격을 받는다고 해서 거기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한 일이 없어요. 언론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 장래를 위한다면 정론(正論)을 써야지 삐라를 써서는 안 돼요.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나쁜 일을 했는지 언론을 겁내는데 공직자는 언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안 돼요.
  인권 인권하지만 영국에선 데모대가 오면 도로 위에 선을 그어서 그걸 넘어오면 경찰견을 풀어서 물게 한대요. 일본경찰은 사람이 손만 대면 부러지게 돼 있는 작대기를 갖고 있다가 데모 군중이 그걸 건드리면 경찰봉을 가지고 때리고 최루탄을 쏜다고 해요.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 그런 겁ㄴ다.
  우리 나라는 진짜 인권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이 우리처럼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가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돼요.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최루탄을 쓰는 것 아닙니까.
  최루탄을 쓰면 모두 눈이 따가워서 경찰을 욕하는데 내무 장관, 그런 소리에 구애받지 마시오. 데모 진압은 전국민이 다 책임이 있어요. 그걸 원하지 않으면 시민이 데모를 못 하게 협조를 해야지 경찰은 맨날 매만 맞고 있어요. 경찰은 우리들 아이들이 아닙니까. 이런 조심 저런 조심 하다가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짊어지고 가야 될 판이야. 공권력이라는 게 한 번 밀리기 시자하면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이제는 단임이 전통이 될 겁니다.
  부인들께서도 소매 걷어부치고 해야겠어요. 모처럼 오셨는데 너무 딱딱한 얘기를 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부부 국무회의를 한 셈이 됐구만(웃음). 다같이 분발해서 훌륭한 역사를 창조해 냅시다.
  
  비장한 각오
  
  6.10 사태는 6월 10일 저녁부터 명동성당을 점거, 농성하던 학생 재야 세력들이 6월 15일 경찰이 포위를 풀어준 가운데 6일만에 해산했으나 16일 전국 8개 시에서 1만7,000명이 가두시위에 참가하고 남해고속도로와 경부국도가 데모대의 점거로 한때 불통되는 등 전국적으로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15일 鄭鎬根 신임사령관 등 군 인사에 따른 보직 신고를 받았고 오후 3시에는 영빈관에서 미리 예정돼 있던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했다.
  개각이 있은 다음에 신임 각료들에 대한 환영 만찬을 베풀어 주는 것은 관례였다. 대통령은 5월 26일 개각에 따라 내각의 진용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가운데 시국의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어 내각이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을 우려, 환영 만찬을 통해, 각료들에 대해 시국에 관한 인식을 잡아주는 정신 교육을 했다. 바깥에 시끄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각이나 비서실, 여당구성원 등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어 범여권을 통해 사회전반으로 확산시켜 나가게 하자는 것이 대통령의 계산이었다.
  여기에도 인내와 순리에 따른 대응의 기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자신의 목숨을 내놓더라도 나라 발전의 호기를 잃게 하지 않겠다는 말은 비장한 각오를 전해준다.
  
[ 2005-07-19, 16: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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