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불법송금 4억5000만 달러의 용도 추적
노동당 조직부 611 계좌 관리자의 증언: 당 자금, 무기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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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초 탈북자 출신이라는 金光進씨가 경남대학교 부설 북한대학원에서 쓴 석사논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본인은 북한 금융 분야에 종사하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현장에서 체험하고 부딪힌 자료들을 토대로 논문을 작성하였다. 여러 은행들(동북아시아은행, 조선무역은행)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며, 외국은행들(ING, Singapore Branch., UOB, Ltd., Singapore)에서 수 차례의 연수도 받았다.  
  2000년부터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책임지고 북한 당국이 핵심적으로 추진한 닭공장 현대화, 대동강 맥주공장 건설, 평양시 개보수 공사 등 인민생활 개선, 경제복구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많은 혁명자금을 관리하고 집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1997년경부터 당 자금을 「혁명자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金光進씨의 논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1997년경부터 당 자금을 혁명자금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김일성 생존시의 당 자금, 충성자금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것과 김정일의 권력승계 후 혁명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당시의 어려운 환경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동당 조직지도부(부부장·장성택)에 1억 달러의 현금이 할당되었으며 이는 김정일의 6월11일 '말씀'에 따라 당조직지도부 행정부문 소속 은행인 동북아시아은행에서 혁명자금으로 관리되었다. 혁명자금 이용에 대한 보고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김정일에게 이루어졌으며 자금관리는 '611계좌'를 통하여 본인이 단독으로 맡아 하였다.>


  金씨를 만났다. 
  ―쓰신 논문을 읽다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을 봤는데 2000년에 金大中-金正日 회담을 할 당시 金正日의 妹弟(매제)인 장성택이 당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죠.  
  '당조직지도부 행정부분 담당 제1부부장이었습니다.'   
  ―그때 金正日이 장성택한테 1억 달러를 줬다는 것이죠. 이것을 동북아시아 은행에서 관리를 했고, 그 자금을 金선생이 집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예, 맞습니다.'  
  ―그럼 이 1억 달러는 소스가 어딥니까.  
  '제가 거기에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DJ가 송금했다는 것도, 남한에서 왔다는 것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소스는 'Bank of China(중국은행)'입니다. 2000년 6월11일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서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받은 金正日 서기실에서 우리 은행에 송금해 줬습니다. 돈이 들어오는지를 굉장히 조바심을 내면서 자주 체크했습니다.'  
  ―체크는 누가 했습니까.  
  '장성택이 직접 했어요. 부서는 '602과'라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체크를 했습니다.'
  
  對北불법송금 사건 수사로 밝혀진 사실이 있다. 金大中 정부가 2000년 6월9~12일 사이 현대그룹을 통해서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으로 보낼 때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DAESUNG BANK-2' 명의의 계좌로 송금되었다.   
  金正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당39호실 산하 대성총국의 마카오 지점인 조광무역상사 총지배인 박자병은 입금상황을 평양의 중앙당 서기실로 보고했고, 그 전화를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감청했다. 金正日은 남한에서 들어온 4억5000만 달러 중 1억 달러를 동북아은행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1억 달러를 金선생이 집행했다는데, 자금의 성격이 이른바 혁명자금입니까.
  '혁명자금으로 들어왔습니다. 즉 金正日 자금으로 분류해 입금시켰어요. 쓰는 용도는 여러 가지죠. 당 쪽으로 책임을 지고 맡아본 것은 장성택이었어요. 당조직지도부까지 경제부분에 대한 개입·지도·관여를 많이 했습니다. 黨的으로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경제정책적 과제를 장성택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때 진행된 대표적인 사업을 보면 대동강 맥주공장 건설, 평양시내 닭공장 현대화가 있죠.'
  
  
  닭공장
  
  ―닭공장이 뭡니까.
 
  '닭을 키워서 닭고기와 달걀을 생산하는 그런 牧場(목장)을 공장화한 것입니다. 규모가 굉장히 큽니다.'  
  ―지금도 가동하고 있습니까.  
  '예, 현대화를 해서 많이 살려 놓았습니다. 다음으로 시리카트 벽돌공장이라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독일에서 집짓는 벽돌공장을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자금이 부족했고, 특히 외화가 부족하니까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국내에서 해결하라'고 해서 절름발이 공장을 들여오게 된 거죠. 그 생산을 정상화하려니까 외화가 필요한 거죠. 그 일 역시 조직부에서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자금이 할당된 거죠.'  


  
  '나머지는 무기 도입 등에 쓰였을 것.'

  
  ―軍관계 사업이나 무기 도입에는 사용하지 않았나요.  
  '나머지는 다 그쪽으로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남한에서 올라온 돈 가운데) 1억 달러 정도는 김경희(金正日의 여동생)한테 주었을 겁니다. 조선통일발전은행에.'  
  ―어디 소속입니까.  
  '김경희가 책임지던 당 경제정책 검열부에서 맡아 보는 은행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어느 방향으로 돈을 사용합니까.  
  '거기는 인민생활 쪽에 씁니다. 대동강 맥주공장 건설은 우리가 했고 거기에 들어가는 호프, 원자재 수입을 호주에서 많이 했습니다. (金大中 쪽에서 보낸 4억5000만 달러 중) 일부는 비자금 쪽으로도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기서 비자금이란 무슨 뜻이죠.  
  '金正日이 사적인 데 쓰는 돈이죠.'  
  ―물론 해외계좌겠죠. 
  '해외계좌가 기본이겠죠.'  
  ―우리는 이렇게 추정해요. 金大中 정권이 평양회담을 위해서 4억5000만 달러를 보냈으니까 북한에선 이 돈을 무기구입과 핵개발 쪽으로 썼을 것이라고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우리 총재를 통해서 '큰 거 두 개는 창광 쪽으로 갔다, 한 개 정도는 軍 쪽에 갔다'는 정도로 들었습니다. 당시는 그 돈이 한국에서 보낸 것인 줄 몰랐습니다.'  
  ―창광은행은 軍이 아니고 어디 소속입니까.  
   '2경제, 즉 군수산업 쪽입니다.'  
  ―軍에 들어가는 것과 창광으로 가는 것이 용도가 다릅니까.  
  '다릅니다. 창광은행은 군수산업을 지원하지요.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생산입니다. 軍은 군인들을 먹여살리거나, 무기를 현대화하거나 유지하는 쪽을 가리킵니다.'  
  ―그럼 軍은 인(人)적인 게 많겠네요. 사단장한테 선물을 한다든지.  
  '그런 건 아닙니다. 선물자금은 38호실이나 39호실 같은 당에서 지출됩니다. 조직지도부 쪽에서 조성되는 원천을 가지고 선물자금 등 통치자금으로 쓰겠지요. '혁명자금'이란 명칭으로 군대로 들어간다면 軍 장비 현대화, 무기 수입이나 개발을 의미하는 겁니다.'  
  ―金선생이 북한을 탈출하기 전에는 金大中씨가 현대그룹을 앞세워서 평양회담 직전에 金正日한테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시점에 큰돈이 들어왔고, 그때 이야기가 되었던 상황들을 돌이켜 보고 지금 판단하는 거죠.'
  
  
  혁명자금이란?
 
 
 金正日이 측근들에게 선사한 벤츠 승용차. 번호판이 金正日의 생일을 의미하는 '216'으로 시작된다.
  ―무역 같은 것으로는 갑자기 1억 달러 정도의 돈이 들어오기가 어렵습니까.  
  '그런 일은 잘 없죠. 더구나 그게 혁명자금으로 들어왔으니까.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그 자금에 대해 이자까지 계산해서 金正日에게 보고했습니다.'  
  ―'혁명자금'의 정확한 定義(정의)는 무엇입니까.
  '제가 논문에 썼을 겁니다. 옛날에는 당 자금이나 충성자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96년경인가 1997년경부터 혁명자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정의는 북한에서도 딱히 없거든요. 金正日 시대의 통치자금을 金日成 시대와 차별화해서 혁명자금이라고 부르고 있죠. 외화벌이를 할 때 '혁명자금을 마련해서 바쳐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金正日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할당을 해서 내려 보내 주는 자금이지요.'  
  ―그건 다른 돈보다 더 신경 써서 관리를 해야겠네요.  
  '혁명자금은 한 푼도 빼돌리지 못합니다. 실무자들이 업무과정에 떼어먹는 게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혁명자금은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가 됩니다.'
  
  金光進씨는 '동북아시아 은행은 원래 네덜란드의 ING 은행과 대외보험총국의 합작으로 설립되었는데, 1999년에 ING가 철수한 이후 2000년 6월11일 金正日의 지시에 의해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행정부문의 자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때 내려 보낸 돈이 1억 달러였다는 것이다. 金大中 측이 불법송금한 돈을 근거로 하여 기능하기 시작한 은행인 셈이다.
 
  ―동북아은행의 잔고가 가장 많았을 때 얼마나 되었을 것 같습니까.  
  '혁명자금이 1억 달러 정도고, 보험회사의 자금이 3000만 달러 정도, 다른 거래자 자금이 2000만 달러 정도 해서 1억5000만 달러 가까이 됩니다.'  
  ―이 은행은 대출은 안 하죠.
  '외화 대부는 떼일 가능성, 즉 위험도가 높아 간부들이 압력을 가하거나 정말 불가피한 사정 외에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개인한테 빌려 주지는 않죠.
   '그건 절대로 없습니다. 기관에 빌려주는 겁니다.'  
  다른 북한 은행이 모두 그런 것처럼 은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현금보관소이다.

''''''''''''

 
은행원 출신 탈북자 金光進 씨가 관리하였다는 북한노동당 조직지도부 산하 동북아시아은행 611 계좌는 2000년 6월11일에 마카오의 'Bank of China(중국은행)' 지점에서  들어온 1억 달러를 받아 생긴 계좌라고 한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 송금이 이뤄졌을지 의문인데, 다음과 같은 사연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만하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국가정보원 국내담당 차장이었던 김은성(金銀星)씨는 <조갑제닷컴>에 자주 안보 관련 글을 써 올린다. 2011년 12월 30일 그는 독재자 김정일(金正日) 사망 후의 남북한 정세를 분석, ‘보수(保守)는 둥지에서 뛰쳐나와 핵(核)개발도 고려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필자가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퍼주기식 원조가 저들을 상전으로 만들었다. 북한은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방북(訪北) 하루 전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전문(電文)을 보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결국 경호와 통신기기 보완을 구실로 방북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은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도록 해야 한다. 식량을 직접 북한 당국에 인도하면 주민통제를 위한 배급용으로 이용하거나 옥수수로 바꿔 주민들에게 나눠 준다. 배급제도를 해체시켜 시장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모든 물자에 대하여는 차관 형식을 밟아 지하자원 등의 현물(現物)상환이라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이래야만 그들에게 책임감을 주고 통일자금을 쌓아 나갈 수 있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하루 전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전문을 보냈다’는 문장이 나를 긴장시켰다. 정부 발표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김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었다. 김씨는 이 문장의 엄청난 의미를 잘 모르는 듯 강조점 없이 평이하게 설명했다. 다음 날 그를 찾아가 만났다.
    
  “돈 다 보낼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
 
  “그날이 2000년 6월 10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러 방북하기로 한 6월 12일(월) 전 토요일이었습니다. 6월 10일은 국정원 창설 기념일이고 직원들은 오전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였고, 저는 오후에 골프를 쳤으므로 기억이 또렷합니다.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던 운동장 스탠드엔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 권진호(權鎭鎬) 해외담당 차장, 그리고 병중(病中)이던 국내담당 차장을 대리한 제(당시 對共실장)가 앉아 있었습니다.
 
  오전 10시30분쯤이었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김보현(金保鉉) 제5국장이 황급히 우리한테 왔어요. 그는 김대중-김정일 회담 준비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김 국장이 문서 한 장을 임 원장에게 건네면서 당황한 말투로 ‘정상회담 못하겠다고 합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원장도 문서를 읽더니 안색이 변해요. 일어서면서 ‘차장들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청 원장실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원장이 한 페이지짜리 문서를 회람시켰습니다. 북(北)에서 보낸 전문이었는데, 두 문장 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돈을 다 줄 때까지 회담을 연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컨대 수금(收金)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평양에 올 수 없다는 협박조 글이었습니다.  
  임동원 원장은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난 표정이었는데, 권 차장과 저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했습니다. 남북회담을 여러 차례 치르면서 경험한 전례(前例)가 있어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북측에서 경호와 통신문제로 회담연기를 요청해 왔다고 발표하면 안 될까요.’ 

  북한과 회담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게 경호와 통신이었거든요. 임 원장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한 15분 요담한 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마 그날 우리가 북측과 급하게 협의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을 거예요.”
 
 
  김대중 회고록도 정상회담 연기이유 제대로 안 밝혀
 
  일요일이던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이 6월 12~14일에서 13~15일로 하루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에서 준비가 덜됐다는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김정일은 그러나 방북 첫날인 6월 13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머물던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외신(外信)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은성 전 차장의 증언은 정부 발표와 청와대 측의 설명을 뒤엎는 것이다. 김대중은 회고록에서 평양 방문이 하루 연기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돌연 북에서 평양 방문을 하루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10일 대남(對南)통신문을 보냈다. “기술적 준비관계로 불가피하게 하루 늦춰 13~15일 2박3일 일정으로 김 대통령님이 평양을 방문토록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대공(對共)실장 김은성씨가 보았다는 전문 내용엔 물론 그런 내용이 없었다. ‘하루 연기’가 아니라 ‘나머지 돈을 다 보낼 때까지 연기한다’는 엄포였다고 한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핵심 사안에 대한 김대중의 증언은 그동안 너무나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평양회담 준비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다른 국정원 간부도 “연기 사유가 돈 문제였다”고 확인해 주었다.  
  10일 오전 ‘방북 불가’ 통보를 받은 국정원 측이 송금에 차질을 빚은 점에 대하여 북한측에 설명하고, ‘은행이 문을 여는 12일 중에 나머지를 송금할 것이니 하루만 연기하자’고 설득, 북측이 그날 오후에 다시 김대중 회고록에 나오는 그런 내용의 對南전문을 보냈을 가능성은 있다.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이 평양회담 이전에 김정일에게 송금(送金)하기로 약속했던 4억5000만 달러를 다 받지 못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통보를 했다면, 떳떳하지 못한 비밀거래를 연상시킨다. 김은성씨 주장대로 수금 차질로 회담이 연기된 것이라면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본질적 성격은 ‘정상회담 구걸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국정원이 送金責
 
  2003년 6월 23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비밀송금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이○○씨는 현대그룹 정몽헌(鄭夢憲) 회장을 불러 송금 과정을 캐물었다.
 
  <문(검사) : 북측에 4억5000만 불을 어떤 방법으로 지급하기로 하였는가요.
 
  답(정몽헌) : 2000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부두기공식이 있어서 저와 김윤규 사장이 참석을 하였는데, 이때 아태(亞太)위원회 재정담당이라고 하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 부위원장의 심부름이라고 하면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봉투 안에 ‘돈자리(계좌번호)’라고 적힌 몇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5월 중순에 제가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1억 불을 현대가 대신 부담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아태 재정담당에게 우리가 4억5000만 불을 전부 송금하겠다는 말을 부위원장에게 전해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북측으로부터 받아 온 서류 봉투를 보관하고 있다가 6월 1일 해외 출국을 하면서 김윤규 사장을 불러 각사(各社) 사장들에게 전해 줘서 송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여러 관련자들을 조사해 많이 알고 있는 李 검사는, 정몽헌씨에게 이렇게 정리해 준다.
 
  <대북송금 과정을 보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해외에서 자금을 북한측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확인되고, 현대상선만이 국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송금하였습니다.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불의 송금과정을 보면 국정원이 송금의 주체인 것으로 하면서 국정원 직원의 개인 실명(實名)을 이용하였으며, 미국 등 북한과 적대(敵對)관계에 있는 국가에 자금이동이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자금 흐름이 파악되지 않도록 하면서 6월 9일 중으로 송금되도록 국정원과 관계은행인 외환은행의 긴밀한 협조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현대상선은 6월 7일 이미 4000억원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음으로써 송금 준비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9일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국정원에 돈을 건네주어 송금 절차를 밟도록 하여 결국 은행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어렵게 송금이 완료되는 등 상당히 급하게 돌아갔던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측과의 합의는 6월 12일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4억5000만 불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이었으며, 2000년 6월 9일은 금요일로서 해외은행은 토요일 휴무인 관계로 당일 중으로 송금이 완료가 되어야 하고 그 기간 내에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을 경우 정상회담 개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송금이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 몰랐는가요?>
 
  정 회장은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고서 저도 송금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해서 3개사 사장들에게 확인을 하니까, 모두 차질 없이 보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김정일 측 수취인 이름 잘못 써
 

  검사가 다시 “(북측의) 남북정상회담 연기 통보는 6월 10일 오후였고, 송금이 잘못된 사실이 확인된 것은 같은 날 오전으로서 이미 차질이 발생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말인가요”라고 캐묻는다. 정 회장은, “제가 분명히 상선, 건설, 전자 사장들에게 송금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을 때,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검사는 “당시 송금을 담당하였던 외환은행은 국정원 쪽으로부터 수취인이 잘못 기재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으며, 현대 김충식 사장도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송금이 잘못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이 건 송금결과에 대하여는 국정원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검사는 이어서 이렇게 묻는다.
 
  “이 건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부분에 대하여는 국정원이 내용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수습을 시도하였지만, 6월 10일이 토요일이었던 관계로 6월 12일 월요일에야 정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정상회담은 6월 12일보다 하루 늦은 13일에 개최되게 되고, 이는 이 건 송금지연에 따른 결과로 보여지는데요. 국정원 직원 명의로 B.O.C(Bank of China) 마카오 지점, 계좌주(主)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 불이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와 일치하지 않아서 송금처리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이에 대한 보고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정몽헌 회장은 “그런 보고는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검사는 다시 《내일신문》을 내놓고 묻는다.  
  “2003년 1월 30일자 《내일신문》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북한 개발권 대가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 측 계좌로 5억 달러를 넣었다’라고 언급>하면서, 정 전 명예회장은 <남북정상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늦어진 것도 ‘같은 해 6월 11일까지 5억 달러 중 4억 달러만 북측에 지급해, 북측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올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다음날(6. 12)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긴급하게 북경으로 가서 사태를 해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어떤가요.”
 
  “정 명예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對北송금 관련 내용을 아시지도 못하셨을 뿐만 아니라, 저는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검사는 “2000년 6월 11일부터 12일까지 김윤규 당시 현대건설 사장 겸 현대아산(주) 사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던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요”라고 물었다.
 
  정몽헌 회장은, “김윤규 사장이 무슨 일로 중국을 방문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랬을 수는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수행하여 평양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 중국을 통하여 평양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피했으나 곧 검사의 공격이 들어왔다.  
  “그러나 6월 13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 김윤규 사장은 평양으로 가지 않고서 귀국하였던 것을 본다면 그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몽헌 회장은 “그 부분은 김윤규 사장에게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피했다.  
  
  경호 위해 하루 연기?
 
  對北송금사건 특검은 평양회담 준비를 전담한 김보현 당시 국장(나중에 북한담당 차장으로 승진)을 불러 회담 연기 내막을 따졌다. 신문 기록에서 인용한다.
 
  <문 : 진술인은 6. 10.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전문(電文)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6. 10. 오후 4시경 국정원 상황실을 통해서 전문을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문 : 위 전문을 받은 부서는 진술인이 국장으로 있던 대북(對北)전략국이 아닌가요.
 
  답 : 5국이 중심이 된 별도의 상황실에서 전문을 받았습니다.
 
  문 : 위 전문 내용에 회담이 연기된 사유에 대해서 기재가 되어 있었는가요.
 
  답 : 기술적인 준비관계로 하루 연기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문 : 회담이 하루 연기된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2000. 6. 3. 임 원장과 제가 수행원(서○○ 당시 과장)을 대동하고 극비리에 판문점을 통하여 방북을 하여 그날 저녁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김 대통령의 신변안전을 확실히 해야 한다. 12일 방북을 하루 앞당기거나 하루 늦추는 방안도 생각해서 혼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에 임동원 특사가 일정을 (한 줄 보이지 않음) 고려할 때 하루를 앞당길 수는 없다고 답을 하였고 서로 결론을 내지는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6. 4. 귀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6. 10. 연락을 받고 나서 직감적으로 ‘하루를 늦추는구나’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 : 최근까지 이 부분은 알려지지 아니한 부분이지요.
 
  답 : 임동원과 북측의 김용순 사이에 이 점은 극비에 부치기로 합의된 내용인데 최근 언론 보도로 곤혹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문 : 연기가 된 실질적인 이유는 송금된 4500만 불이 계좌번호를 잘못 기재하여 북한 측 계좌에 늦게 입금된 것 때문 아닌가요.
 
  답 :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
 
  김보현씨와 김은성씨의 말엔 차이가 있다. 김은성 전 차장은 북측의 회담 연기 통보를 접한 게 국정원 창설 기념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던 6월 10일 오전이라고 확신하는데 김보현씨는 그날 오후라고 주장한다. 김보현씨는 전문 내용도 ‘수금 차질’이 아니라 ‘기술적인 준비관계’였다고 했다.
 
  김은성씨는 電文에 ‘하루만 연기한다’는 내용은 없었고, ‘수금이 완료될 때까지 무기 연기한다’는 취지였다고 기억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을 통하여 ‘하루 연기’를 발표하도록 했는데, 김은성 전 차장은 10일 중에 남북 당국자가 비밀접촉을 통하여 이 문제의 해결방안에 합의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검(特檢)도 김윤규 현대아산 회장의 긴급한 중국 방문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보고 추궁했다.
 
  10일 중 국정원과 현대그룹이 급히 움직여 송금 차질에 대한 북측의 오해를 풀고 은행이 문을 여는 12일에 나머지 돈을 보내겠다고 약속, 그날 오후에 북측이 공식적으로 ‘하루 연기’를 요청하는 전문을 또 내려보냈고 김보현 국장은 검사에게 그것을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시각 2000년 6월 12일 오후 6시, 마카오 현지 시각 오후 5시. 우리 정부의 對北 감청기관은 마카오 주재 북한 조광무역 상사에서 평양 중앙당에 긴급 보고하는 국제 전화 내용을 포착했다. 보고자는 조광무역 상사 총지배인 박자병(朴紫炳). 그의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송금 차질을 빚었던 4500만 달러가 입금되었다는 표현이었다.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감청 내용은 對北송금 사건이 폭로된 2002년 가을 한나라당에 유출되었고 《월간조선》이 입수, 보도했다.
 

    

 


[ 2016-10-02, 19: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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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선     2016-10-03 오후 8:10
햇볕정책의 fact
* 추적 날짜별 순서로 정리 함 (2016년 10월4일 현재)
fact.1
2016년10월2일 . [사건·사고 趙甲濟, 10-02] 조갑제 닷컴 발췌
"국정원 전 차장, "수금 다 안 되었다고 김대중 못 오게 했다."
국정원 직원이 계좌 번호를 잘못 써 송금에 차질이 생기자 北은 金 대통령의 訪北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시켰다.~ "한국 시각 2000년 6월 12일 오후 6시, 마카오 현지 시각 오후 5시. 우리 정부의 對北 감청기관은 마카오 주재 북한 조광무역 상사에서 평양 중앙당에 긴급 보고하는 국제 전화 내용을 포착했다. 보고자는 조광무역 상사 총지배인 박자병(朴紫炳). 그의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송금 차질을 빚었던 4500만 달러가 입금되었다는 표현이었다.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감청 내용은 對北송금 사건이 폭로된 2002년 가을 한나라당에 유출되었고 《월간조선》이 입수, 보도했다. " !!!!!!!!!!!!!!!!!!!!!!!!!!!!!!!!!!!!!!!!!

fact . 2
2016년 10월4일 TV 조선 (18: 40- 19: 30) 라이브쑈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 출연
1. 2016년 9월12일 기자 회견이후의 샇황 (박지원 의원 대북송금 문제 청문회)
2. 새누리의 국회의원 10명이상 동의가 필요 한데, 현재 2명의 국회의원만 동의한 사태???????
cf: DJ 가 생존에 있다면 , 햇볕정책 실패 했다고 인정 할것이다. 글쎄요 ?
햇볕정책 실무자 박.원씨의 북한 옹호 발언은 문제가 있다. (사드반대 와 대통령 연설문 선전 포고로 비난) 박.원의 경거 망동은 새누리의 지지 덕분 인가 ?

fact. 3
2016년 9월19일.TV 조선 라이브 쇼(18:40 ~ 19: 30)
이영작 교수가 햇볕정책은 실패 한 것이고 , 그정책은 처음 부터 시작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고, 그사실을 호남 인들이 인정 해야 한다고 덧 붙였습니다. 1994년 5월 12일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햇볕 정책의 창시자도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을 믿자는 게 아니고 북한의 진의를 시험해보자던 거였다? 게다가 ㄱ대중. ㄴ무횬 두 전직 대통령이 북한과 중국에 속았다고도 말 했습니다. (이영작교수)



   지평선     2016-10-02 오후 10:30
fact.
"對北불법송금 4억5000만 달러의 용도 추적" !!!!!
절묘한 타이밍 ~~~ !!!!!!!


실패한 햇볕 정책(2016년 9월19일 . 이영작 교수) 의 결론
악의 집단에 갖다 바친 돈이 부메랑 이되어 핵폭탄으로 만들어지고 !
영원한 비밀 처럼 묻혀 버릴것 같던 일들이 , 세상 밖으로 나오 셨습니다.


PS: 21세기는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세상 이라는 의미는
달과 별의 어두운 시절이 지나고, 태양의 법 (묘법) 으로 세상을 다스리니
만물을 구석 구석 비추이는 태양 처럼 밝은 세상에는 무엇을 감출수가 없다는말 !
그것뿐 입니까 ? 뿌린 대로 거두어야지요 . 사필귀정 아닙니까?
태양의 법이란 일체 중생 평등의 생명존엄 사상의 묘법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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