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감사해야 할 두 사람: 李承晩과 트루먼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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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李承晩·1875~1965)  

나라가 망국(亡國)으로 치닫던 시기에 태어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동서양의 교양을 통합하고, 자유의 가치를 일찍부터 신념화한 바탕에서, 국제정세를 최고 수준에서 꿰뚫어보면서, 70년간 개화·독립·건국운동을 지도, 대한민국이 反共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 받아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해방 뒤엔 공산주의 세력의 도전을 극복,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2년 뒤 소련과 중공의 사주로 북한군이 남침,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 공산화를 저지하는 한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승만과 트루먼 두 대통령이 지도한 한국전쟁 수행은 비록 한반도 통일엔 이르지 못하였으나, 자유진영을 결속시키고, 대소(對蘇) 포위망을 완성, 냉전의 최종 승리를 예약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李 대통령의 영도 하에 한국은 국제공산주의의 확장을 막는 자유세계의 방파제가 되었으며,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한 조국 근대화가 1960년대 이후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갖추어나갔다. 李 대통령이 주도한 한미동맹, 강군(强軍) 건설, 농지개혁, 교육개혁, 시장경제와 언론창달 등에 의한 새로운 나라 세우기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근대화 혁명의 사례로 꼽힌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이미 확정되어 있었던 李 박사는 부통령 선거의 부정으로 유혈(流血)사태가 발생하자 부상한 학생들을 찾아가 “不義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젊은이가 있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 3일 뒤 스스로 하야(下野)하였고, 5년 뒤 하와이에서 90년에 걸친 생애를 마감하였다. 남긴 재산은 없지만 한국의 자유민주주는 그의 위대한 遺産(유산)이다.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이 분 덕분이다.  

2. 해리 S. 트루먼(1884~1972)  

미국 부통령으로 있다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急死(급사)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확고한 역사의식과 자유에 대한 신념으로 2차 대전과 한국전을 지도, 세계를 구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자유진영의 수호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공산전체주의의 팽창을 막는 결정적 조치들을 취하여 40년 뒤 '악의 제국'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원자폭탄 투하 결정으로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마감, 한국을 해방시킨 후, 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를 통한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지원하고, 트루먼 독트린 선언, 베를린 봉쇄 극복, 마셜 플랜, NATO 창설, 對蘇 전략(NSC-68) 입안 등으로 소련의 침략주의를 견제하였다.

소련과 중공의 지원 하에 김일성이 불법남침을 일으키자 즉각적으로 미군 파병을 결정하고 유엔군 창설을 주도, 한국을 살렸다. 중공군의 불법 개입으로 유엔군이 총퇴각, 한국을 포기하자는 국내외의 압박이 일어나고 있을 때는 '미국은 친구가 어려울 때 버리는 나라가 아니다'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 본격적인 對蘇(대소) 봉쇄망 구축에 들어갔다. 韓美軍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공산침략군을 저지하는 사이에 트루먼은 대만 보호를 선언하고 일본의 경제부흥, 독일의 재무장, NATO 강화, 국방비 증액으로 본격적인 군비경쟁을 시작, 자유진영이 냉전에서 이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그는 또 공무원과 군대에서 흑백 차별을 금지시키는 행정명령으로 흑인 인권 향상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李承晩과 트루먼이 지도한 한국전은 이젠 '냉전 승리를 예약하여 인류를 구한 聖戰'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두 지도자는 유엔군이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넘어 인류 전체의 자유를 지키는 위대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였다. 트루먼은 휴전협상이 시작되자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 원칙을 발표, 반공포로들을 구하였지만 공산군 측의 반발로 휴전이 늦어져 수 만 명의 미군이 더 희생되었다. 그는 한국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이 악화되자 불출마를 선언하고 역대 최저의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퇴임, 고향으로 돌아가 淸貧한 삶을 이어갔다. 트루먼은 국제 공산주의의 붕괴를 戰後하여 인기가 높아져 전문가들의 조사를 종합한 최근 랭킹에선 43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 중 6등으로 평가된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 살아가는 데도 모범을 보였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에서 시골의 평범한 서민으로 돌아간 것이다. 퇴임 때 그의 수입은 1차 대전 참전자로서 받는 군인 연금(월112 달러)밖에 없었다. 트루먼은 기업체나 상업성과 연관되는 일체의 활동을 거부하고 은행 대출금으로 생활하면서 회고록 집필로 수입원을 마련하였다. 1955, 56년에 나온 두 권의 회고록은 미국 역대 대통령으로선 최초였다. 67만 달러의 인세수입을 올렸지만 3분의 2를 세금으로 납부하였다. 트루먼은 또 자신의 기록물을 기증, 기념 도서관을 건립하여, 그 후 다른 대통령들이 따라 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의회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규정을 만든 것도 트루먼 이후이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일찍부터 정치를 시작하였던 트루먼은 미국 보통사람들의 우직한 용기와 정직과 유머 감각, 그리고 독서로 함양한 역사의식이 종합된 지도력을 구사하였다. '강력한 심장을 가진 보스'라는 별명을 지닌 트루먼은 역대 최고의 장관으로 평가 받는 딘 애치슨과 조지 마셜의 존경을 받았다.

 

 

언론의 난
[ 2017-04-19, 17:10 ] 조회수 : 605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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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용     2017-04-20 오전 12:15
선생님 일전에 인사드린 후학 입니다.
차근히 조갑제 선생님의 분전에 감사 드립니다.
늘 이모습 건강 유지 하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인천 영종 백운산 자락에서 맥아더 옥고를 공부 하는 후학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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