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의 핵심: 노무현과 김정일의 反美 공조
송민순 회고록과 문재인 씨의 책임 (2) / 이런 노무현의 노선을 이어받겠다는 이가 문재인 씨다. 낮은단계 연방제에 찬성하고, 사드 배치에 비판적이며, 대한민국에 생일(건국절)을 찾아주자는 이들을 ‘얼빠진 사람’이라 욕하고 敵軍의 군량미로 들어갈 게 뻔한 對北 식량 지원을 주장한다. 송민순 회고록은 이런 노무현-문재인 노선의 정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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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17일 작성
  
  외무장관과 미국엔 알려주지 않고 盧-金 회담 추진
  
  宋旻淳(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 창작과 비평 刊)에서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0월 퇴임을 불과 다섯 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소위 정상 회담이 이뤄진 배경을 설명하며 추진 팀이 자신과 미국을 소외시키려 하였던 점을 비판한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읽어보면 노무현은 북핵 문제 해결엔 관심이 없고, 김정일은 오로지 서해 NLL 無力化(무력화)에 집중하는데 두 사람이 일치한 부분은 反美였다. 회담의 그런 성격이 준비 때부터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민순 전 장관은, <정상회담 추진 팀은 (그 과정을) 내가 미리 알 경우에 남북정상회담을 비핵화 속도와 맞추도록 미국과 조율하자고 주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정 추진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고 썼다. 2007년 8월8일 새벽 청와대에서 온 연락을 받고 갈 때도 회담 발표 문제가 아니라 무슨 비상사태가 생긴 줄 알았다고 한다. 청와대 조찬 회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7월29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김만복 국정원장을 비공개로 평양에 초청하여 날짜를 협의했고, 8월3일 노 대통령이 수락하였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사전 협의나 통보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송민순 씨는 ‘당장 미국과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민이 생겼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전화로 라이스 장관에게 사정을 설명할 때 ‘전화기를 잡고 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아무리 늦어도 8월3일 대통령이 회담 날짜를 결정하였을 때는 미국에 알려주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라이스 장관은 대범하게 받아들이면서 단서를 붙였다고 한다.
  
  “북한이 남북간 거래에서 이익만 챙긴 다음 비핵화 작업은 뒤로 제치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송 장관은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하여 비핵화를 촉진시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虛言(허언)이 된다.
  
  
  終戰 선언에 집착한 노무현
  
  며칠 후 버시바우 미국 대사가 찾아와서 한국 정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북한과 어떻게 논의할지 물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이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한국이 비핵화를 위하여 북한에 쓸 수 있는 수단을 미리 풀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휴전체제와 관련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합의하여 나중에 한미 간 이견의 불씨를 남기는 것이었다. 송 장관은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NLL 문제를 전체적인 남북관계로부터 분리하여 검토할 수 없으며 그런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NLL을 基線(기선)으로 하여 등면적의 공동 어로수역을 설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었지만 북한은 NLL을 ‘基線’으로 할 경우 NLL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반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해 9월 시드니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송 장관에게 거듭 “남북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의 분명한 對北 메시지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송 장관은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비핵화의 진전 없이는 실질적 경제협력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할 것이다”고 안심시켰다. 이 말 또한 虛言(허언)이 된다.
  
  노무현은 김정일과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를 이루고 싶어 하였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선 이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한데도 그는 집착하였다. 시드니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노 대통령은 두 나라 대통령이 평화체제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자고 종용하였다. 부시는 이렇게 정리하였다.
  
  “한국전쟁은 종결해야 한다. 김정일과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하다. 그런데 먼저 검증가능하게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입에서 ‘종전 선언’이란 말이 나오도록 하려고 되묻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국을 따돌릴 수 있는 문구에도 합의
  
  송민순 회고록은 2007년 10·4 선언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의 한 수수께끼를 해명하였다. 4항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이다.
  
  핵문제 해결 전에 한국전의 終戰(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북한에 의하여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하는 방향으로 이용될 것이 뻔하였다. 더구나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라고 함으로써 미국, 중국, 북한 3者만 참석하고 한국은 배제될 수 있는 대목이 들어갔다. 송 장관은 초안을 보고 받은 뒤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3자’라는 말은 종래 당사자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사정에 따라서 중국이나 한국은 빼겠다는 전술을 구사할 여지를 갖겠다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송 장관의 문제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정일이 북한 협상 팀에 지시한 사항이라서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하여 수용하였다’는 설명이었지만 ‘거북하게 들렸다’고 한다.
  
  당시 평양에 간 남측 대표단은 먼저 종전 선언을 하고 이를 기초로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송민순 씨는 이런 企圖(기도)를 직설적으로 비판하였다.
  
  <종전이 되려면 戰後(전후) 처리, 경계선 확정, 평화유지 구조 등 실질 문제에 대해 합의한 후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조약이 발효될 때 비로소 전쟁 상태가 종료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휴전선의 비무장과 육상과 해상에서의 경계선, 외국 군대의 주둔, 그리고 북한 핵 등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앞에 두고 있다. 종전 선언부터 하게 되면 마치 마차가 말을 끌고 가도록 하는 것과 같다.>
  
  
  김계관의 妄言을 칭찬
  
  송 장관은 평양회담 도중 김정일이 김계관을 불러들여 막 끝난 베이징 6자회담 결과를 설명시키면서, ‘교전상태가 끝나야 핵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하게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그런 조건이 이뤄지도록 남측이 움직여달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설명이 필요하다. 노무현-김정일 회담록에서 인용한다.
  
  <김계관(북한 외무성 부상):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 한다.
  
  노무현 대통령: 수고하셨습니다. 현명하게 하셨고, 잘하셨구요. 뭐 미국이 이 회담 바라고 그러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핵문제는 6자회담에서 서로 협력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6자회담 바깥에서 핵문제가 풀릴 일은, 따로 다뤄질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남북 간에 비핵화 합의 원칙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6자회담에서 같이 풀어나가자 이렇게 갈 거니까요. 그런 원칙은 이미 다 얘기했으니까요. 한나라당은 뭐라뭐라 뭐 핵얘기를 좀 많이 쓰라고 그걸 가지고 인제 시비를 자꾸 걸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합의는 그대로 남북 간 합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한꺼번에 일괄적으로 6자회담에서 풀어나가자 이거니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시구요. 수고 많이 하셨구요.
  
  김정일: 그렇게 그럼 저 이 회담하고 관계없어. 설명이 될란가 모르겠어. 대략 어떤 건가 하는 게.
  
  김계관: 설명해 드린 김에 하나만 더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우리하고 미국과 차이점이 뭔가 하면.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생긴 거니까 적대시 정책을 바꿔라 이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서 아직도 행동은 안 하고 말로만 바꾼다. 바꾼다. 좋은 말 하다가 어떤 때 뒤집어서 거친 말 또 했다 말았다. 이게 첫째 문제점이고. 둘째는 우리는 전 조선반도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반부 비핵화, 우리한테서 핵무기 빼앗아 내면 비핵화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게 차이점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는 평화적 핵활동은 해야 되겠다는 거고 미국은 핵이라고 불은 건 다 안 된다는 겁니다. 이걸 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꺾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어떤 태도변화가 있는가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6자 틀걸이 내에서 풀며, 6자 틀걸이가 아주 좋다. 이런 데서는 점점 일맥상통하는 점을 갖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 예,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反美 보고회?
  
  북한이 합의를 깨고 무기화된 핵물질은 신고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려도 노무현은 따지지 않고 오히려 “현명하게 하셨다”고 칭찬한다. 미국은 송민순 장관에게 노무현이 핵문제 해결에 관하여 확고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기대하였지만 노무현은 김정일을 보스처럼 대하면서 反美를 다짐한다. 역시 회담록에서 인용한다.
  
  <노무현 대통령: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중략) 主敵(주적) 용어 없애 버렸습니다.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 보내지 않았습니까… 보냈고요… 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시지 마시고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거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남측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그런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을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중략)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이런 노무현의 노선을 이어받겠다는 이가 문재인 씨다. 낮은단계 연방제에 찬성하고, 사드 배치에 비판적이며 대한민국에 생일(건국절)을 찾아주자는 이들을 ‘얼빠진 사람’이라 욕하고 敵軍(적군)의 군량미로 들어갈 게 뻔한 對北 식량 지원을 주장한다. 송민순 회고록은 이런 노무현-문재인 노선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언론의 난
[ 2017-04-21, 16:14 ] 조회수 : 1552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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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2017-04-22 오전 11:28
조선말 이완용이는 힘이 없어서 친일을 했는데, 지금 종북이들은 힘이 있어도 종북, 친중을 한다. 그래도 목포는 박지원이를 찌고 광주는 권은희를 찍고 있지 않나?
절라공화국 독립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김정은 공화국 만드는 것만 관심이 있으니 희안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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