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친일파 청산했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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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의 친일파 청산 비교!!
  남한과 북한의 친일파 청산 비교!! : 독립신문
  
  글쓴이 : 바로알기!! (2005-09-01 21:50:28 )
  참고 : 건국 초대 내각, 李 대통령 포함 대부분 항일운동가 : 미래한국 / 김필재
  
  북한이 친일파를 완전히 숙청했고 프랑스가 나찌 부역자들을 깨끗이 청산했다는 일부 좌익학자들의 그럴싸한 감언이설에 너무 혹해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친일청산의 진실은?
  
  초대 인민군 공군사령관 이활을 비롯 허민국, 강치우, 김기옥, 김한욱 등 20여명이 모두 일본군 출신들로 인민군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입니다.
  
  
  북한 고위간부 주요친일파 명단
  
  부주석
  김영주 헌병대 보조원
  김일성(김성주) 주석 친동생
  
  북조선 공군 총사령관
  이활
  나고야 항공병학교출신
  전투시간 2000이상의 제국군 에이스
  
  허민군 9사단장
  강치우 기술부사단장
  김기옥 제1연대장
  김한욱 제2연대장등
  북한공군간부 20명은대부분 일본제국군출신, 10명 만군(만주군) 출신
  
  
  장헌근 사법부장 일제 중추원 참의
  강양욱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일제하 도의원
  이승엽 남로당 2인자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정군은 문화선정성 부부상 친일 밀정
  김정제 보위성 일제 시대 관료
  조일명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북한과 독일도 반민족 청산은 물론했으나, 그 의도는 반대정적 제거였습니다
  
  
  즉 NL(민족해방)계열의 역사학자들이 북한은 친일파를 완전제거하였고 남한은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하는데, 이 자료를 보면 거의 날조된 사실임을 알수 있습니다. 즉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좌파가 되기도 하였으며 우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여당의 반민족 청산 제정안을 보면 반대파의 정통성을 없애고 탄압하려는 의도임이 들어납니다.
  
  실예로 대표적인 당시 대표적 친일언론인 대한매일 과 KBS(당시 경성제국방송)은 현정권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반민족 청산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항일운동의 경력이 있는 조선,동아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요 건국인물은 독립운동가
  
  
  당시 80%가 문맹인 관계로 인하여 행정직공무원 경찰같은 관료는 친일파를 섰지만
  
  주요 건국인물은 독립운동가 출신입니다
  
  
  건국 초대 내각, 李 대통령 포함 대부분 항일운동가
  
  열린우리당의 김희선(金希宣) 의원 등은 “해방이후 반세기동안 친일진 상규명이 안돼 역사의식이 흐려졌다”고 전제한뒤 “특별법제정을 통해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세 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건국 시점의 초대 내각의 면면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 본인이 항일독립운동가였으며 각료들 역시 대부분 항일운동 지도자로 채워져 있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은 실무적으로 행정능력이 있는 일제시대의 관료나 친일파를 일부 등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건국 후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에 국내치안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군과 경찰, 행정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부 채용했을 뿐이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제헌국회에서 세웠던 반민족행위특별군사위원회(반민특위)를 불법으로 해산하고 친일파를 재판 없이 석방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반민특위 산하에는 수사권을 부여한 특경대를 두어 친일혐의가 있는 인사들을 체포하는 일을 했다. 이 특경대가 시경 사찰과장 최운하(崔雲霞), 종로서 사찰주임 조응헌 등을 체포하자 자구책을 강구하려던 경찰은 1949년 중부서 병력 40여 명을 동원하여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경대원, 반민특위위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와 같은 소동과 관계없이 활동을 계속하여 1949년 9월 5일 스스로 공식 활동을 정지하기까지 4백 8건의 영장을 발부했고 이 가운데 3백 5명을 체포했으며 23건을 기소해서 사형 1명, 무기징역 1명, 유기징역 10명의 판결을 받게 했다. 유죄판결을 받은 친일파들은 1950년 봄까지 감형 등으로 석방됐다.
  
  김일성 권력 핵심에 친일파 등용
  
  친일파 처단을 주장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북한의 김일성은 일제시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 했으며 그가 북한에서 정권을 잡은 후 친일파를 숙청했다며 오히려 북한에 대해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정일이 한국 근현대사를 자신들 가족의 혁명역사로 모두 왜곡해 버린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례로 1871년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북한은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주도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조선력사 3권 93~94쪽)
  
  북한은 김일성이 1932년~1941년까지 만주에 산재해 있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혼합부대인 ‘동북항일연군’(사령관, 양청우)에서 일본군과 싸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적대 역할에 불과했다. 김일성은 자신의 경력을 조작하여 북한 인민공화국의 창건을 합법화 하고 스스로 수상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대한민국 정권을 가리켜 “친일 부역 배들인 한민당과 이승만이 결탁하여 세운 미제의 괴뢰정부이므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주장해 한반도에 있어서 민족사적 정통성은 북한에 있고 그 근거는 항일 빨치산 투쟁을 했던 김일성 자신을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1941년 이후 김일성은 소련군에 입대해 대위가 됐으며 해방후 평양으로 돌아와 모든 권력을 혼자서 독식하는 스탈린식의 독재체제를 이룩했다. 실제로 그는 스탈린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북한이 제대로 된 군대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여 10,000여명의 젊은이를 뽑아 소련의 군사학교에 위탁교육 시켜 미래의 장교들을 양성했으며, 병사들을 징집했다.
  
  특히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의 입국환영 평양 군중대회에서 사진을 보면 그의 뒤에는 여러 명의 소련군 고위 장교들이 소련기 아래 서 있다. 이것은 김일성이 소련군의 영향력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의 공식간행물에 나오는 바로 이 동일한 사진에는 당시 소련군 장교들과 소련기를 지워 놓고 있다.
  
  김일성은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면 친일파를 등용했다. 김일성의 동생이자 현재까지 북한의 실력자인 김영주(金英柱)는 과거 일본 관동군 소속이었으며 국가부주석을 지낸 김일성의 외척 강양욱(康良煜)도 종교*문화부문의 친일파였다.
  
  한편 과거 남로당의 실력자며 6.25 전쟁기간 중 서울시 인민 위원장이었던 이승엽(李承燁)의 경우 일제시대 인천양곡조합 간부였으며 남로당 간부였던 정백(鄭栢)등도 친일파였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초대 내각 항일운동가-
  
  *부통령-이시영(李始榮*임정내무총장)
  *무임소장관-이윤영(李允榮*국내항일)
  *외무장관-장택상(張澤相*청구구락부사건)
  *내무장관-윤치영(尹致映*홍업구락부사건)
  *법무장관-이 인(李仁*항일변호사, 한글학회사건)
  *채무장관-김도연(金度演*2.8독립사건)
  
  
  *문교장관-안호상(安浩相*항일교육)
  *사회장관-전진한(錢鎭漢*국내항일)
  *체신장관-윤석구(국내항일)
  *교통장관-민희식(재미항일)
  *총무처장-김병연(국내항일)
  ------------------------------------
  
  
  
  
[ 2005-09-02, 14: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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