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 콜로세움 이야기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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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내부



로마 시내에 있는 콜로세움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데 건축 과정이 가장 정확하게 밝혀지고 연구된 건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선 불가사의한 점이 없다.  

이 원형 경기장은 서기 7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되어 10년이 지난 80년에 완공되었다. 이때는 아들 티투스가 황제였다. 티투스는 유대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파괴한 사람이다. 포로 10만 명을 끌고 와서 4만 명을 이 극장 건립에 동원하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한 번 본 사람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돌산 같기도 하고 정교한 예술품 같기도 하다. 가운데의 경기장과 관중석을 포괄하는 콜로세움 전체는 약간의 타원형이다. 긴 축은 188m, 짧은 축은 156m. 관중석을 에워싸는 돌벽의 높이는 52m이다. 둘레는 545m, 경기장은 87x55m. 콜로세움을 짓는 데 약10만 입방미터의 石灰華가 들어갔다. 너비 6m의 도로를 만들어 수십 km 떨어진 채석장에서 이 돌들을 날랐다 

콜로세움의 외벽에는 경기장과 관중석으로 통하는 80개의 아치와 160개의 출입구가 있다. 7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4층 관중석엔 거대한 차양(遮陽)을 만들어 뜨거운 햇볕을 막도록 하였고, 경기장은 바닥이 나무였다 

콜로세움의 지하 구조도 복잡하였다. 맹수 우리, 검투사 대기소, 맹수를 경기장으로 들여보내기 위하여 끌어올리는 승강기, 배수 시설 등등. 100마리의 사자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경기장으로 몰려나오면서 부르짖는 소리가 너무나 커 관중들이 겁에 질려 조용해졌다는 기록도 있다 콜로세움은 준공당시엔 프라비안 원형경기장이라 불렸다. 근처에 네로 황제의 거상(巨像)이 있었다. 거대하다는 뜻의 colossus에서 콜로세움이란 말이 나왔다 

준공을 기념하여 열린 검투사 시합은 100일간,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지방을 점령한 것을 기념한 시합은 서기 107년에 120일간 이어졌다. 이 경기에는 만 명의 검투사와 11000 마리의 맹수가 투입되었다. 경기장에 물을 채워 모의 해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에 대한 형 집행도 娛樂 차원에서 콜로세움에서 하였다 

콜로세움 부근에는 비너스 신전과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세워졌다. 前者는 없어졌지만 後者는 잘 보존되어 있다. 서기 312년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반 다리의 會戰에서 막센티우스 황제의 군대를 무찌르고 포위된 로마를 해방시킨 것에 감사하여 이 개선문을 세웠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허용하였으므로 그를 기리는 조각품이나 건물은 기독교화된 로마인들에 의하여 보존이 잘 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것이라고 잘못 알려져 파괴를 면한 경우이다 
콜로세움은 서기 435년까지 검투사 경기장으로 이용되었다. 동물 사냥 경기는 서기 523년까지. 콜로세움은 7세기 이후엔 경기장으로 사용되지 않고 교회, 수도원 등으로 이용되다가 황폐해졌다. 성베드로 사원을 지을 때는 이곳의 石材를 뜯어가기도 하였다. 일종의 채석장이었다. 콜로세움은 세월과 지진과 약탈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리하여 圓形이 손상되었지만 아직도 위엄을 잃지 않고 있다. 로마 인들은 정복지마다 원형 경기장을 지었지만 콜로세움이 가장 크다.

*카피톨 언덕에서 내려다 본 로만 포럼의 맨끝에 콜로세움의 관중석 외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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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19, 23: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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