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산탄젤로 城에서 커피 한 잔 하기
산탄젤로 성 안으로 들어가면 요새이지만 소도시 같다. 거대한 토치카, 또는 돌로 만든 항공모함을 연상시킨다. 난공불락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1900 初演)에는 여자 주인공이 산탄젤로 성 난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이 있어 이 건물의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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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성베드로 사원을 마주 보고 있는 산탄젤로 城은 로마 제국의 황금기를 연 5賢帝 시절에 만들어졌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판테온을 지은 사람이기도 한데 자신의 무덤으로 이 건축물을 세운다. 서기 123년 무렵이었다. 콜로세움도 그렇지만 로마의 건축물은 군사작전 하듯이 빨리 짓는다. 10여 년 만에 완성되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그리고 나중에 죽은 아들 부인도 여기에 묻혔다. 칼라칼라 황제까지 그 뒤의 황제들도 죽으면 이곳에 묻혔다.

로마가 쇠망기에 들어서자 이 건물도 수난을 당하였다. 서기 410년 서고트 족이 알라릭의 지휘 아래 로마를 점령, 약탈할 때 이곳에 있던 황제들의 유골함과 유골도 흩어져 없어졌다. 537년에도 고트 족의 공격을 받았다. 산탄젤로 성은 교황의 피난처로도 이용되었다. 맞은 편 성베드로 사원 사이에 비밀통로도 있다.

1080년대 신성로마 제국 황제군이 개혁적인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을 몰아내기 위하여 로마를 점령하자 교황은 산탄젤로 성으로 도피하였다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거쳐 노르만 세력이 다스리던 살레르노로 피신, 거기서 죽었다. 위대한 개혁교황의 무덤은 살레르노 성당에 있다.  

산탄젤로라는 이름은 6세기 전염병이 창궐할 때 미카엘 천사가 나타나 疫病을 끝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성의 꼭대기엔 18세기 작품인 미카엘 천사 청동상이 있다. 14세기에 교황 니콜라스 3세가 산탄젤로-성베드로 사원을 잇는 비밀통로를 만들었고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칼 5세 황제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였을 때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이곳으로 피신, 버티었다.
그는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는데 이번엔 포로 신세가 되어 이 성에 갇혀 있다가 병사로 변장, 탈출, 올리비에토 등을 전전하다가 다음 해 황폐해진 로마로 돌아왔다.

산탄젤로 성 안으로 들어가면 요새이지만 소도시 같다. 거대한 토치카, 또는 돌로 만든 항공모함을 연상시킨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1900 初演)에는 여자 주인공이 산탄젤로 성 난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이 있어 이 건물의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친숙하다. 감옥, 사형집행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천문학자 브루노는 이단으로 몰려 이곳에 6년간 갇혀 있다가 화형되었다.

요사이는 군사 박물관의 용도도 갖고 있다. 산탄젤로 성 옥상에 오르면 로마 구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잘 볼 수 있다. 아래로는 청계천 규모의 테베르 강이 흐른다. 4층엔 음식점도 있는데 의외로 비싸지 않다. 8유로짜리 피자를 먹고 2유로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파아란 하늘을 인 성베드로 사원의 돔을 구경하는 것은 하나의 사치이다.
[ 2017-08-21, 11: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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