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이 한강씨에게
'좋은 散文은 (세상을 잘 보게 하는) 통유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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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이라는 작가가 뉴욕타임스에 쓴 글이 대체로 혹평을 받고 있다.
 소설가가 시사문제를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기자가 소설을 쓸 때 조심해야 하는 것과 같다. 전문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강 씨의 글은 사실적 기초가 약하고, 최소한의 균형감각, 그리고 善惡구분 및 彼我분별성이 부족하다. 소설가가 작중 인물을 다루듯이 현실의 문제를 다룰 순 없는 것이다. 관념의 세계에서 통용 되는 논리가 세상에선 무력해진다. 작가면서도 위대한 기자이기도 하였던 조지 오웰의 글을 한강 씨에게 전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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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 '글을 쓰는 것은 惡靈에 씌운 이의 鬪病과 같다.'
   '좋은 散文은 (세상을 잘 보게 하는) 통유리와 같다'


   구글에서 조지 오웰의 語錄(어록)을 검색하니 이런 말이 나왔다.
   '詐欺(사기)가 판을 치는 시절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혁명이다.'
   (During times of universal deceit, telling the truth becomes a revolutionary act.)
    그는 親知(친지)한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공산주의 및 파시즘과 싸우려면 우리도 같은 정도의 狂信(광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는 同意(동의)할 수 없다. 狂信者들을 이기려면 우리는 狂信者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머리를 써야 이길 수 있다.>
   공산당을 닮아 거짓과 억지로 공산당을 공격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지는 게임이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머리를 쓰면 나온다. 절대로 진실을 포기해선 안된다.
 
   그는 '동물농장'을 위한 서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출판인들과 편집자들이 어떤 기사들을 싣지 않기로 한다면 이는 고발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론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러한 知的(지적)인 비겁성은 작가나 언론인들이 맞서야 하는 最惡(최악)의 敵이다.>
   오웰은 '자유란, 사람들에게 듣고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조지 오웰의 一生을 다룬 영화에는 그가 자신의 글을 거부하는 편집자에게 이렇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네는 신념을 사실보다 더 重視(중시)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할 것이다. 50을 채우지도 못하고 죽은 조지 오웰의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것은, 그리하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知性으로 평가되는 것은, 자신이 발견해낸 불편한 사실들을 자신의 신념보다 늘 우선시키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쳐간 知的 성실성 덕분일 것이다.

   그는 1946년 트리뷴紙에 기고한 글에선 이렇게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어도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知的으론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가짜 확신이 확고한 현실과 충돌할 때인데, 보통 戰場에서 그렇게 된다.>
   그렇다면 말장난과 僞善의 곡예를 펼치는 한국의 좌경적 지식인들이 꿈에서 깨어날 때는 그들이 불러일으킨 전쟁의 피비린내를 맡으면서일까?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 교수 존 루이스 가디스의 名著(명저) '冷戰'의 프롤로그는 조지 오웰로부터 시작한다. 오웰이 스콧랜드의 주라 섬에서 '1984년'을 쓸 때 그는 急死(급사)한 부인과 자신의 폐결핵으로 인생의 終章(종장)을 예감하고 있었다. 전화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車道도 없는 외딴 섬을 집필 장소로 고른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말자 核전쟁의 위험으로 치닫고 있던 유럽은 희망이 없어보였다. 오웰은 유럽 문명과 자신의 생애가 끝나기 전에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1984년'은 주인공 윈스턴의 패배로 끝나지만 冷戰은 자유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그 1984년에 미국에선 레이건 대통령이 웃어가면서 소련 공산주의를 무너뜨릴 방도를 연구하고 있었다. 1년 뒤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어 공산帝國을 내부로부터 해체해가기 시작하였다(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8년 안에 유럽과 소련의 공산정권들은 모조리 무너졌다. 오웰의 '1984년'은 유럽에선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2015년의 한반도 북쪽에서는 70년째 지속되고 있다.

   오웰은 '나는 왜 글을 쓰나?'라는 수필에서 사람들이 글을 쓰는 네 가지 공통된 동기가 있다고 했다. 순전히 이기주의로 글을 쓰는 경우, 美學的 열정, 後代를 위해 기록을 남기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의도. 그는 책을 쓰는 것은 '긴 鬪病생활과 같은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싸움'이라고 표현하였다. 오웰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惡靈에 씌워지지 않고는 그런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좋은 散文은 (세상을 잘 보게 하는) 통유리와 같다'고 했다. 그는 뒤돌아보니 정치적인 의도를 갖지 않고 쓴 글일수록 형식적이고 生氣가 없더라면서 글을 쓰려면 정치적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권고도 하였다.

  그는 '정치와 영어'라는 수필에서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여섯 가지 주의 사항을 적었다.

  1. 이미 많은 활자를 통하여 익숙해진 은유나 비유를 쓰지 말라.

  2. 짧은 단어가 있다면 굳이 긴 단어를 쓸 필요가 없다.

  3. 한 단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반드시 줄여라.

  4.  능동형 문장을 쓸 수 있을 때는 수동형을 쓰지 말라.

  5. 일상적인 영어 표현이 있다면 외국의 문장, 과학 용어, 혹은 특수 용어를 쓰지 말라.

  6. 야비한 표현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上記 원칙을 다 깨버려도 좋다.

   오웰은, 공산주의의 본질을 가장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가 본 사람이었다. 그가 '1984년'에 담고자 하였던 '정치적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글의 힘으로, 진실의 힘으로 거짓의 공화국을 해체하는 데 '1984년'을 무기로 이용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1984년'은 한반도의 知性人을 위하여 쓴 책인 셈이다. 그가 '머리를 써야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다'고 했을 때 그 '머리'는 오웰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정직한 知性'이거나 레이건과 같은 '위대한 人格'일 것이다. '至誠의 知性으로 大兄을 쳐라!'

 *오웰의 語錄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
“He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H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 George Orwell, 1984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이다. 무식은 힘이다.'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 George Orwell, 1984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 동물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평등하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 George Orwell, Animal Farm 

 '국민을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게 부정하거나 지우는 것이다.'
 “The most effective way to destroy people is to deny and obliterate their own understanding of their history.”
― George Orwell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가 생각을 타락시키기도 한다.'
 “But if thought corrupts language, language can also corrupt thought.”
― George Orwell, 1984 

 '자유가 그 어떤 의미가 있으려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여야 한다.'
 “If liberty means anything at all, it means the right to tell people what they do not want to hear.”
― George Orwell
 
 '인간이란 존재의 핵심은 인간은 완벽성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The essence of being human is that one does not seek perfection.”
― George Orwell, In Front of Your Nose: 1945-1950 

 '모든 세대는 앞서 간 세대보다 더 영리하고, 따라올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상상한다.'
 “Every generation imagines itself to be more intelligent than the one that went before it, and wiser than the one that comes after it.”
― George Orwell

 '고통 앞에선 영웅이 없다.'
 “In the face of pain there are no heroes.”
― George Orwell, 1984

 '大兄이 너를 지켜본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 George Orwell, 1984 

 '소수파라고 해서, 심지어 단 한 사람의 소수파라고 해도 그것이 당신을 돌게 하지는 않는다. 여기 진실이 있고, 저기에 허위가 있을 때, 당신은 이 세상 전부와 맞서서라도 진실을 붙들고 있어야 미친 사람으로 몰리지 않는다.'
 “Being in a minority, even in a minority of one, did not make you mad. There was truth and there was untruth, and if you clung to the truth even against the whole world, you were not mad.”
― George Orwell, 1984 

 '인류의 선택은 자유와 행복 사이에 있는데, 대부분의 인류에겐 행복이 더 좋다.'
“The choice for mankind lies between freedom and happiness and for the great bulk of mankind, happiness is better.”
― George Orwell, 1984 

언론의 난
[ 2017-10-10, 11:00 ] 조회수 : 3512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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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은자     2017-10-15 오전 9:21
한강씨가 수상한 맨부커 국제문학상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그게 그렇게 명망있는 상이 아니더군요...2005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한 역사가 짧고요....인터넷 검색해 보시면 나옵니다.. 한국 언론에서 잘 모르고 3대 문학상이라고 과장포장 광고해 준셈인데요... 이번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1989년 받았던 Booker Prize와는 완전히 다른 상이어서... 그리고 영국 번역자 분도 한강 씨와 이념적으로 통하는 분이라는 느낌이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느껴집니다 Booker Prize 와 Man Booker Prize International 영어로도 아주 큰 차이가 있는데 왜 한국 언론은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까요? 의도적인가요? 무식한가요?
   파나마     2017-10-11 오전 9:46
오웰-이 한마디 할 급수가 아닌데요?
조기자님이 뉴욕 타임에 명문으로 한번 쓰세요!
   白丁     2017-10-10 오후 8:05
문학상 하나 받고나니 우쭐해서 뵈는 게 없었던 모양. 제 분수를 알고 낄 데 안낄 데를 가릴 줄 알아야지, 철부지 전대협 아해도 아니고…지능이 모자란가 지역적 특질인가…?
   지유의메아리     2017-10-10 오후 7:24
조갑제 대기자님 마한사람 한강씨는 지금에 사는사람이 아니고 한반도에 국가가 생성되기 이전 부족사회 시대에서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원시 사회에서 살고 있네요 그사람은 아무리 우리고 진실을 Fact를 말해주어도 그게 뭔가하고 어리둥절 할겁니다 우리가 그런 부류의 인간들과 함께 섞여살며 동족이라는게 서글프고 눈물이 나네요 아니 눈물이 난다는 말도 사치가 아닐까요 북괘는 이럴때 아마도 고사총이나 화염 방사기로 해결하지않을까요 아직 덜 익은 마한사람 그냥 더 두고 볼렵니다 머지않아 종말이 오겠지요
   넬라판타지아     2017-10-10 오후 3:28
이 댓글은 2017.10.9자 다른 분의 한강씨 관련 칼럼에 올렸던 글인데 조 대표님의
본 칼럼에 댓글 다시는 분이 없어 그냥 한 번 더 올립니다.

한강씨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이 소설을 2권 샀다.
한 권은 내가 읽고, 또 한 권은 책을 잘 읽지 않는 누구에게 읽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한국의 문학수준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쾌거를 이뤘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이기도 했다.소설의 내용까지는 모르고,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했으니 당연히 큰 울림이 있고,감동이 있고,빼어난 문장력을 선 보일 것이다
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나는 이 소설을 읽고 크게 실망했다.이 소설에 왜 ‘맨부커상’이 수여됐는지
알 수 없었다.큰 울림도,감동도,주제의 돋보임도,빼어난 문장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기억나는 거라곤 주인공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유의 억지스러움과 애매모호,
사람의 알몸에 그림을 그려 놓고 행위예술을 하는 행위예술가 형부와,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는 이미 결혼한 처제가 서로의 전신에 그린 그림에 성적 욕망을 느껴
형부와 처제가 성행위를 하고,남편과 동생의 성행위 체위장면을 다각도로 촬영한
장면이 담긴 캠코더를 보고 망연자실하는 주인공의 언니외에 기억나는게 없다.

우리는 문학을 하는 여성이면 마음이 참 따듯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다.
그런데, ‘뉴욕 타임스’지에 실린 한강씨의 기고문은 한강씨를 냉혹한 여성으로
느끼게 한다.자신의 목숨을 세 번씩이나 구해준 은인(恩人)도 필요에 따라 원수
(怨讐)나 주적(主敵)으로 생각할 사람처럼 느껴진다.

미국은 대한민국과 국민의 목숨을 세 번씩이나 구해주었다.
일제해방 독립, 6.25남침 공산화 저지, 전쟁후 폐허에서의 구호,
또한,그동안 미국의 도움없이 대한민국의 국력이 이만큼 신장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은공(恩功)은 잊은채 미국을 향해 지식인들이 마구 지껄여 댄다면 한국사회를
어찌 문명인들이 사는 문명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뭐? 6.25남침전쟁을 두고, “한국전쟁은 이웃 강대국들이 저지른 대리전”이라고?
뭐? 6.25때 노근리 사건은 미군이 한국인 피난민을 민간복장을 한 인민군으로
잘못 판단하고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을 가지고, “미군이 한국 피난민을 인간이하의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조갑제TV 2017.10.8일자)

전쟁의 한 복판에서는 예측불허의 비극적 사태가 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노근리 사건 하나로 전체를 상쇄하려 하는가?

푸르고 아름다운 산을 두고 산 속에 나무 한 그루가 말라 죽었다하여 그 산 전체가
말라 죽었다고 하면 그게 정상적인 사고(思考)인가?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93세)이 북한의 핵포기와 미.북간 평화협정체결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소식(윤창중칼럼세상TV 2017.10.9일자)을 듣고,
한강씨 혼자의 뜻으로 이런 정치적 의견을 ‘뉴욕 타임스’지에 기고 했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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