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을 따라하다가 나라를 망친 무가베의 실각, 김정은에게 충격 줄 것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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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살던 로데시아(현재의 짐바브웨)를 37년간 망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는 악평을 듣는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는 사실상의 군사 쿠데타를 만나 실각, 이제는 생명과 재산의 보존을 애걸해야 할 신세로 전락하였다. 한때 괜찮은 지도자로 평가 받던 무가베는 1980년 김일성을 만나고 온 뒤부터는 사람이 달라졌다. 그는 김일성의 이른바 주체 독재를 따라하게 되었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숭배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모든 독재자가 그러하듯이 부러웠을 것이다. 무가베는 아프리카의 김일성으로 불렸다. 작년 김일성 사망 22주년에 즈음하여 동상 앞에 놓는 꽃다발을 보낸 사람이다. 작년 4월 김정일의 생일 축하 행사를 열어준 나라도 짐바브웨이다. 2010년엔 북한이 '노아의 홍수' 계획으로 불린 동물 수집에 호응, 아프리카의 희귀동물들을 붙잡아 보내주었다. 북한도 500만 달러가 들어가는 무가베 동상 두 개를 지어주었다.
   차우세스쿠와 무가베는 김일성의 제자였던 셈이다. 이들은 주체 사상을 번역하여 공부하는 등 주사파 행세를 하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좋은 나라를 망친 점이다. 차우세스쿠도 1970년대 김일성을 만나고 와서 사람이 달라졌다. 그 전에만 해도 공산권에서 독자적 노선을 걷는다고 하여 서구의 평가가 높았다.
  
   무가베는 김일성을 만난 뒤 이렇게 달라졌다.
  
   1. 독립 후에도 같이 살자고 약속하였던 백인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하였다. 백인들의 토지를 빼앗았다. 백인들이 떠나자 경제가 망가지기 시작하였다.
   2. 반대파를 숙청하였다. 북한군이 훈련시켜준 제 5여단은 政敵을 학살하는 데 동원되었다. 정치적 반대를 이유로 소수 부족을 한꺼번에 2만 명이나 죽였다.
   3. 포퓰리즘적 경제정책을 썼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하여, 또 독립운동 동지들에게 특혜를 나눠주기 위하여 돈을 마구 찍었다.
   4. 머리 좋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빠져 나갔다. 1700만 명 중 300만이 해외로 달아났다.
   5. 2000년대 짐바브웨의 물가 상승률은 연간 5000억 %를 기록하였다.
   6, 김일성 식 권력 세습을 꾀하다가 실각하였다. 둘째 부인에게 권력을 넘기려고 독립운동의 동지인 부수상을 해임하였다가 반격을 당한 것이다. 차우세스쿠도 부인의 권력 전횡을 방치하였다가 함께 처형되는 운명을 맞았다.
  
   마르크시스트를 자처하는 차베스도 무가베, 차우세스쿠처럼 좋은 나라를 망친 경우이다. 차베스가 좌파적 선동으로 석유부국 베네수엘라를 해체해간 과정은 홍준표 대표와 김문수 전 지사에 의하여 주사파 세력으로 불리는 이른바 촛불혁명 권력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망치는 데는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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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反정부 시위대에 포위된 리비아의 카다피를 지원하기 위해 제5여단 출신들을 傭兵으로 보냈다.
  
   복무 중이거나 은퇴한 수백 명의 짐바브웨 군인들과 소수의 공군 조종사들은 전세기로 수도 하라레에서 리비아로 수송되어 트리폴리에서 활동중이던 코트디부아르, 차드, 모리타니아 출신의 아프리카 용병들과 合流했다.
  
   1980년대 북한군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던 제5여단은 짐바브웨 反軍을 진압하면서‘마타벨레랜드 대학살’사건을 일으켜 2만 명을 학살하였다.
  
   무가베는 1980년대 초 김일성을 만나고 와선 숭배자가 되었고 김일성의 숫법을 자신의 鐵拳(철권)통치에 도입하였다. 차우세스쿠, 무바라크, 카다피도 김일성을 만난 뒤 사람이 달라졌다는 평을 듣는다. 독재자들은 자신보다 더 독재적인 者를 만나면 그를 부러워하고 닮으려 한다. 히틀러는 스탈린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민주적 지도자는 독재자를 만나면 경멸감과 분노를 갖게 되지만 非민주적 지도자는 독재자 앞에서 작아진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김정일 앞에서 비굴하게 행동한 경우이다. 이는, 두 사람이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무가베와 차우세스쿠는 김일성科에 속하는 독재자들이었다. 그 무가베가 군사 쿠데타로 가택 연금 되었다고 한다. 최근 해임된 부통령이 지휘하였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1980년 김일성을 만나고 온 무가베는 사람이 달라졌다. 김일성 전집을 부하들에게 읽게 하고, 자신의 생일을 김일성 생일처럼 국경일로 만들었다. 큰 동상을 세우고, 반대자를 숙청, 고문, 세놰하는 것도 김일성 식으로 했다. 무가베는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북한군의 지원을 받았다. 북한군 약3500명이 짐바브웨에 기지를 두고, 앙골라, 모잠빅, 이디오피아의 독재정권을 지원하였다.
  
   무가베는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추도 위원회를 만들었다. 매년 김일성 추모 모임을 가진다. 2013년 무가베는 김정은에게 핵무기 제조에 쓰일 수도 있는 우라늄 옐로 케이크를 팔기도 하였다.
  
  시리아의 아사드도 김일성을 만나고 온 뒤 전국에 석상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무가베, 아사드, 차우셰스쿠는 악령 김일성에게 영혼을 빼앗긴 독재자이다. 그리하여 나라를 망치고, 국민들을 고생시켰다. 한국에도 김일성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달라져 인생을 망친 이들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북한과 가장 친한 독재자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은 김정은의 손가락 하나를 자른 셈이다. 무가베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독재 기간을 합친 것보다 더 긴 37년을 통치하였다. 그런 그가 간단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 북한 지배층의 계산이 복잡해질 것이다.
  
언론의 난
[ 2017-11-16, 12:53 ] 조회수 : 4135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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