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거부한 在日 조총련과 朝大의 미래
“시대에 맞지 않는다. 교과서에 사용되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무엇보다도 ‘사상교육’ 부분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모두가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

번역/金泌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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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발간 '조선대학교연구' 제6장>

<전략으로서의 주체사상>

조선학교는 조선어로 수업이 이뤄지는데 김일성은 “국어(조선어)는 어학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듯 하라”면서 유연한 뜻을 내비쳤다. 즉, 금기시해온 일본어 습득을 위해 수업에서 이를 사용해도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이는 과거 김일성이 중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고생했던 경험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교시도 묵살됐다. 하나의 원칙을 일단 허물어 버리면 모든 것이 깨진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노동당의 총련 담당 부서와 총련 지도부는 불편한 교시를 묵살했다. 이는 김정일의 시대가 되어도 계속됐다.

독재자의 면전에서는 웃음을 짓고 큰 박수를 치면서 지시는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면종복배(面從腹背)를 한 것이다. 30대의 朝大 외국어학부 졸업자는 졸업 여행으로 방북하여 북한의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김일성종합대학의 철학 교수가 “(김일성의 사상을 절대화하는) 주체세상은 전략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고 한다.

朝大 강의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지도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조선노동당의 총련 담담부서와 총련 지도부는 ‘교시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유리한 지 불리한 것인 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반 대중은 모두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체가 착각이다.”(총련 관계자의 증언)

그들은 독재자의 위엄을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보신(保身)에 영향을 주는 이런저런 불편한 교시는 묵살해왔다. 여전히 朝大생들의 귀에는 닿지 않고 있다. 총련 주도의 자기모순(自己矛盾)을 안게 된 朝大는 ‘어둠’이 흐르면서 자괴(自壞)의 길을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교육개혁요망서>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학교 교육내용을 ‘바꾸겠다’는 결사의 각오였다. 60대 초로(初老)의 신사는 朝大정경학부를 졸업하고 조직에서는 교육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인물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 교과서에 사용되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무엇보다도 ‘사상교육’ 부분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모두가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

1998년 12월, <민족포럼(민족교육의 오늘과 내일) 참가자 일동,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신교사(新校舍)건설위원회>라는 이름의 조직 명의의 두꺼운 요청서가 총련 중앙의 담당부서에 제출됐다.

내용은 극히 자극적이었다. 총련과 조선학교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온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김씨 일족의 혁명역사와 김일성을 절대화하는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사상교육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사용해온 ‘돌격대’, ‘총폭탄 정신’ 등의 용어 사용을 중단하고 적대시해온 한국의 정당성 등이 적시되어 있었다.

<요청서>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이는 우리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이다. 일부의 의견이 아니다. 광범위한 대중의 의사이다. 오늘날 남조선 사회의 정보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를 통해 학생들의 귀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됐다. 이 때문에 학생의 ‘조국관(祖國觀)’은 조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이중성을 가지게 됐다.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장군의 위대성, 영도의 현명성을 품게하는 목적으로 실행해온 <현대조선혁명사>는 中3~高3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해온 중요과목 으로 다루어져왔다.

최근 이 과목은 <김일성 동지 혁명사>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과목으로 새롭게 규정하여, 교과서 분량도 늘리고 과목 시간도 늘려 주당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과정외의 교양시간>에 추진됐던 <장군님>에 대한 교양, 조청, 청년단에서 진행되어온 교양 등이 이중, 삼중으로 되어 이들 과목의 실효적 추진에 문제가 많다.

과목명에서 ‘혁명’이라는 두 문자의 의의를 발견하는 것이 곤란하며 일본사회의 환경을 감안할 때 과목명을 <조선현대사>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과격한 용어, 군사용어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결사대’, ‘돌격대’, ‘총폭탄 정신’, ‘자폭정신’, ‘결사옹위’ 등의 용어는 일반적으로 일본의 환경에 맞지 않는 용어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학교 규정 과정 이외의 정치사상 교육 등에 대하여 과거에는 위대성 교양, 사회주의 애국주의 교양, 혁명 전통교양, 공산주의 도덕교양 등이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어 조국으로의 귀국(歸國) 지향보다는 일본에서의 영주(永住) 지향으로 동포의식이 변화된 오늘날, 우리 학교의 학생교양 사업은 일본의 실정, 조건, 환경에 부합하고 동포들의 요구 지향(志向)에 맞혀 그 내용이 편성되도록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위대성 교양, 충실성 교양은 일본 매스컴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의 현실, 심리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내용상으로도 조국(북한)의 통제를 받아 일방적 내용의 설화나 제강(提綱)전달, 강의, 지정도서의 독서, 결의집회 등으로 진행되어와 교조적, 기계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진로지도는 학생의 능력, 기질, 소질,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학부모와 학생의 희망을 존중하면서 이에 방향성을 일치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핵-미사일로 군사적 도발을 반복하는 북한의 태도가 아니라 자녀의 교육은 ‘재일한국인 스스로의 손으로 한다’는 심플한 정론(正論)이 관철되고 있다.

“이런 것 모두 철회하라, 자기비판하는 건가!”

“도대체 어디가 틀렸다는 것인가. 현장 교사들도 모두 찬성하고 있지 않은가. 간부 직함 빼고 나서 말 하시오.”

1999년 1월 요청서를 작성한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에게 총련 간부가 큰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상공인 그룹의 남자들도 이에 지지 않았다. 양측은 치열하게 부딪혔다.

총련 간부는 상공인 그룹을 한국 정보기관의 스파이로 취급하며 비난했으나, 상공인들에게는 결정적인 카드가 있었다. 노후한 도쿄조선 중고급학교 교사 개축비용 약 13억 엔을 그들이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냈으니 말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생각이었다.

상공인 그룹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상당한 각오와 위기감을 가지고 정리한 요청서인데, 총련 중앙은 관여하지 않고, 매주 1회, 1년 반~2년 걸려서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들 정치생명에도 관계되는 일인데, 이름을 내도 무방하느냐’고 물었다. 전원이 승인했다고 한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초로(初老)의 신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요청서’는 이윽고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의 눈에 띄게 됐다.

“총련 지도부는 당황했을 것이다. 정규과정을 밟은 제언이었고 김씨 일족을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교육과정의 시정을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의향은 ‘좋을 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둠’은 너무나 깊었다.


언론의 난
[ 2017-12-06, 09:25 ] 조회수 : 262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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