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받은 대중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21) 광인, 살인자, 성범죄자 등 비정상적인 인간을 소설 주인공으로…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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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의 예술 


김동인(金東仁)은 서서히 지는 해를 뒤로 하고 인왕산 위에 있었다. 바위 위에 구부러진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앞은 소나무가 빼곡한 계곡이었다. 계곡 사이사이에는 붉은 빛이 감도는 바위가 보였다. 그의 등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올라서면 무학재로 통하는 커다란 골짜기가 보인다. 그의 발 아래도 회색빛 둔중한 바위다. 그 아래로는 몇 포기의 난초, 또 그 아래는 두세 그루의 잔솔, 잔솔 넘어서는 또 바위, 바위 위에는 도라지꽃 그 바위 아래부터는 가파른 계곡이다.

그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경성(京城)시가의 한 모퉁이가 보였다. 길에는 더러 자동차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곳은 깊은 산이다. 깊은 산이 갖추어야 할 온갖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바람이 있고 암굴(暗窟)이 있고 계곡이 있고 샘물이 있고 절벽이 있었다. 본래 이 도시 경성은 깊은 산 속의 한 계곡이었다. 그것을 500년간 닦고 갈아서 경성부를 이룬 것이다. 김동인(金東仁)은 회색의 지붕 아래 고요히 누워있는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는 바위와 잔솔 사이에 자리 잡고 비스듬히 앉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산보로 생각하고 올라온 길이라 담배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는 망연히 앉아있다.

김동인의 화두(話頭)는 문학이었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계몽이나 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문학 그 자체에 미적(美的)가치가 있어야 하는 독립된 예술이었다. 예술가는 미(美) 자체를 창조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한다. 이광수(李光洙)의 글들이 인기를 얻는 현상은 구(舊)소설에서 현대문학으로 올라가는 도정(道程)의 반짝하는 순간이라고 그는 봤다. 이광수의 소설은 대중을 상대로 한 달콤한 글이었다. 이광수는 대중에게 지지를 받았다. 김동인의 탐미주의의 ‘리얼’을 창조하고 싶었다. 대중들은 소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중은 그가 창조하는 예술적인 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무심히 생각하고 있던 그의 코로 그윽한 송진 냄새가 들어왔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골짜기 아래서 샘물소리가 싱그럽게 들리고 있다. 그의 영혼은 또 다른 공상의 세계 속에서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의 뇌리에 한 화공(畵工)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두꺼비 같은 추한 얼굴이었다. 그는 그런 흉한 얼굴 때문에 철이 든 이래 한낮에 거리를 다닌 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화도(畵道)를 위해 인가(人家)를 떠나 숲 속에 조그만 오두막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그게 어느새 30년 세월이었다. 생활이나 그림에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만 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저잣거리로 들어갔다.

금욕과 은둔 속에서 그는 모든 열정을 그림에 쏟아 부었다. 한 장의 그림이 나올 때마다 그는 희열에 빠졌다. 그는 계곡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바위를 그렸다. 그리고 또 그렸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에게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살아있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 사는 그에게 사람의 표정이 기억에 가물가물했다. 기억나는 것은 상인들의 간특한 얼굴, 행인들의 무표정한 얼굴들뿐이었다. 좀 더 색깔이 다른 표정을 찾고 싶었다. 화공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몽롱한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자기를 품에 안고 눈물이 글썽하던 눈으로 굽어보던 어머니의 표정이었다. 철이 든 이래 추한 자기를 보는 얼굴들은 모두 경악과 공포의 표정밖에 없었다. 그는 사랑이 가득한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

세상은 못생긴 자신에게 아내를 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붓끝으로 선녀(仙女)를 탄생시키고 싶었다. 은거(隱居)하던 그는 대낮에 얼굴을 가리고 저잣거리를 다니기 시작했다. 행여나 길에서라도 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순간이라도 미녀를 볼 수만 있다면 그걸 마음에 담아가서 그려볼까 하는 요행심이었다. 그러나 장안의 여자들은 얼굴을 내놓고 길을 다니지 않았다. 우물가나 장터에서 더러 하녀 중에 예쁜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어야 했다. 그는 성문 밖 왕실뽕밭 언저리에 하루 종일 숨어서 궁녀(宮女)들을 훔쳐보았다. 잘생긴 궁녀는 있지만 그가 찾는 미녀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눈이었다. 눈빛에 사랑과 동경(憧憬)이 스며있어야 했다. 그런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가을 하늘이 높고 맑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계곡의 시내로 내려가다가 멈춰 섰다. 시냇가 바위에 처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석양을 받고 망연히 앉아서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있었다. 그는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초월한 초점 없는 몽롱한 눈빛이 열반의 미소와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눈이었다. 바로 그가 찾아 헤매던 눈이었다. 화공(畵工)은 처녀를 데리고 오막살이로 돌아왔다. 그는 화구(畵具)를 펼쳐놓고 붓을 들었다. 그는 처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세밀하게 화폭 위에 옮겼다. 황혼은 어느덧 밤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그림 속의 여인은 단지 눈동자만 그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눈동자까지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생명인 눈동자를 그리기에 날은 너무 어두웠다. 밤이 가고 다시 산등성이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들에 핀 꽃을 꺾어다 놓으면 화병 안에 든 꽃은 이미 자연과 어우러진 어제의 그 생생함이 없다.

화공의 심미안(審美眼)에 비친 그 여자의 눈은 이미 어제의 그 눈빛이 아니었다. 그가 꺾어서 애욕(愛慾)의 눈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화공은 여자에게 그런 눈빛이 되게 생각을 하라고 강요한다. 그림은 마지막 눈동자를 그려달라고 애원하듯 방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여자의 눈은 깜박일 줄도 모르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바보 같은 눈을 보면서 화공의 노염이 폭발했다. 최고의 미녀가 들어 있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십년을 공들인 마지막 순간이었다. 반은 미친 화공은 여자를 목을 잡아 흔들었다. 흔들다가 화공은 손을 놓았다. 여자의 몸이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여자가 뒤로 나가 넘어졌다. 그 순간 벼루가 뒤집어지면서 튀어나온 먹물이 여자의 얼굴에 덮였다. 여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화공은 어쩔 줄을 모르다가 시선을 바닥의 자기 그림 위에 던지는 순간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그 그림의 얼굴에는 어느덧 눈동자가 찍혀 있었다. 여자가 화공에게 목을 잡혔을 때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던 원망의 눈, 그림의 눈동자는 완연히 그것이었다. 수일 후 한양성 내에는 괴상한 여인의 그림을 들고 음울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늙은 광인(狂人) 하나가 생겼다. 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괴상한 그림을 너무 소중히 여기므로 사람들이 보려고 하면 기를 쓰고 보이지 않고 도망했다. 그렇게 수년간을 방황하던 광인은 어느 눈보라 치는 날 돌베개를 베고 일생을 마감했다. 죽을 때도 그는 그 족자의 그림을 깊이 품에 품고 죽었다.


상상 속에서 화공(畵工)이 되어 헤매던 작가 김동인(金東仁)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깊은 숲 속에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여자 소경이 작품의 논리성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우연성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처녀를 오막살이로 데려가 고심하던 작품을 순조롭게 완성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건 너무 싱겁다. 영원히 그림을 미완으로 남기면 어떨까.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인을 데려가 아내로 삼으면? 별별 구상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매일 인왕산 계곡에 앉아서 작품 구상을 계속했다. 소나무 틈으로 번득이는 샘물을 보고 조심조심 벼랑을 내려갔다. 30분이나 걸려 샘물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 앉기 좋을 바위가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았다. 그곳을 화공이 쌀 씻던 장소 그리고 아름다운 처녀가 망연한 눈길을 물 위로 보내며 앉아있던 곳으로 생각해 봤다. 고요한 골짜기였다. 바람소리만 들렸다. 물은 바위 위를 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의 영혼이 낮에 본 골짜기로 돌아가면서 원고지 위에 놓인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 화공과 여인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광화사(狂畵師)’란 작품이 탄생했다.

그는 비정상적인 인간을 주인공으로 소설의 공간에 많이 올려놓았다. 중외일보(中外日報)에 ‘광염(狂炎)소나타’를 발표했었다. 기존의 윤리관을 완전히 뒤엎은 작품이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음악가 백성수는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른 후 건반 앞에 앉아 미친 듯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피와 불에서 받은 영감은 전율할 만한 멜로디로 변해 세상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품 ‘포플러’의 주인공은 성범죄로 사형당하는 최 서방이었다. 대중은 충격을 받았다. 김동인이란 작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계속)


[ 2018-02-14, 10: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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